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35)
로판 속 공무원 735화(736/945)
다행히 장생이와 뜻밖의 이별을 할 일은 사라졌다.
“여기 있다, 주인…”
“고맙다.”
내 무언의 경고를 이해하고 순순히 흑색 구체를 반납한 장생이. 그런 장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생이 토벌전은 피했네.’
리시안느가 몸 안에서 꺼낸 흑색 구체. 누가 봐도 리시안느가 가진 힘의 원천이자, 과거 죽음이라 불린 장생이의 일부였던 것. 만약 장생이가 이 구체에 욕심을 부렸다면 나는 눈물을 머금고 장생이를 처리했을 거다.
비록 우리 아이들 마음속 부동의 2픽인 장생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해할 때 통하는 이야기니까. 이 구체를 먹고 죽음이었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장생이를 품을 이유가 없다. 애초에 죽이거나 봉인할 생각이었던 악신들을 성수로 부리는 것도 안전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으니.
물론 신격 자체를 상실한 장생이니 구체를 흡수해도 악신 시절로 돌아갈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기껏해야 장생이의 덩치가 커지거나, 물리적인 힘이 늘어나거나, 회복력이 상승하는 정도로 그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허나 안전이라는 건 모든 대비를 갖추었을 때 이루어지는 법이다. 신격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걸 허용하면 무슨 변수가 터질지 알 수 없으니, 장생이가 불필요한 힘을 흡수하는 건 차단하는 게 옳다.
이 다짐은 리시안느의 흉악함을 느낀 직후라 더욱 굳건해졌다. 장생이의 파편을 가진 리시안느도 저런 괴물로 각성했는데, 오리지널인 장생이는 얼마나 괴물이겠어.
그래서 촉촉한 눈망울로 흑색 구체를 바라보는 장생이를 조용히 쓰다듬어줬다.장생이가 탐욕을 버린 덕분에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다.
“어, 어째서?”
딱 한 명만 빼고.
“죽음이시여! 당신을 위한 힘인데, 어찌 그것을 사도에게 넘기시는 겁니까!”
“사도?”
리시안느의 외침에 장생이는 내 얼굴을 흘끗 보더니, 실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난 사도는커녕 사제 하나도 품을 수 없는 몸이다.”
“그, 그건 알고 있습니다. 간악한 에넨 때문에 죽음께서 처참하고 하찮은 모습으로 영락한 것이겠지요!”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인 말에 장생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처참하고 하찮은…’
나도 모르게 동정을 담은 눈으로 장생이를 바라봤다. 아무리 장생이가 쪼그맣게 변했어도 처참이나 하찮다는 단어는 너무하지 않냐.
주인인 나조차 장생이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는데. 정작 죽음을 따르는 사제가 가장 심한 말을 내뱉었다.
“그렇기에 죽음께 제가 품고 있던 힘을 바친 겁니다! 조금이라도 힘을 회복하실 수 있게, 다시금 죽음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지나간 영광에 집착해 봤자 무슨 의미겠나. 나는 모든 걸 잃었고, 에넨은 승리했다. 그게 전부다.”
시큰둥한 장생이의 반응에 리시안느는 멍한 얼굴로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나도 조금은 놀랐다. 분명 처음 봉인에서 풀려났을 때는 다시금 세상에 도전하겠다느니, 에넨을 용서할 수 없다느니, 자신은 모든 생명 위에 군림하는 죽음이라느니 떠들었던 장생이다. 그 넘치는 자아와 분노는 제법 오래갔고, 성수들 중 가장 사고뭉치였던 녀석이기도 했다.
그랬던 장생이가 자신의 몰락과 에넨의 군림을 인정했다. 그 이유가 기껏 손에 넣은 힘의 파편을 반납해 의욕을 잃어서인지, 아니면 리시안느에게 ‘처참하고 하찮음.’ 이라는 말을 들어서 빈정이 상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아이들과 놀아주다 보니 독기가 빠진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일까. 장생이가 온순해지고 있다는 건 매한가지인데.
“들었나?”
덕분에 리시안느를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네가 믿는 신은 이제 없다.”
“아, 아…”
“힘은 잘 받았다. 이제 그 끔찍했던 회복력도, 대지를 뒤덮을 시체들도 옛날이야기가 됐어.”
“아니야아아아아아!”
내 확인 사살에 리시안느는 땅을 내리치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아아! 죽음께서 포기하셨을 리 없어!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생명이 존재하는 한! 죽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고 진리라고!”
“생각보다 집착이 심한 성격이었군.”
“죽음만이, 죽음만이 모든 영혼들을 보살필 분이야! 모든 영혼들에게 공평한 자비를 베풀고, 이교라는 이유로 지옥불에 던지지 않는! 진정으로 공명정대한 분이야!”
어느덧 바닥에 드러누워 양팔, 양다리를 버둥거리는 리시안느. 마치 다섯 살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하필 리시안느의 사이즈가 손가락 정도인지라 더더욱.
“추기경 예하.”
“예, 각하.”
그 광경을 보다가 추기경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의 리시안느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테니 우리가 할 일을 해야겠지.
“사왕은 자신의 근원을 뽑아냈습니다. 이제 신조차 모욕하던 기이한 회복력도 사라졌겠지요.”
그러자 추기경의 시선이 리시안느에게 향했다.
“사왕은 교단의 전 추기경이기도 하니, 교단의 손으로 마무리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잠깐이지만 사왕을 숨겼던 제가 마무리하는 건 교단에게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내 제안에 추기경은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여전히 울고 있는 리시안느에게 다가갔다.
800년 전 교단과 대륙을 뒤흔들고, 다시 대륙을 위기에 몰아넣을 뻔한 존재의 최후치고는 허무했다.
2차 회의가 진행되었다.
“안 죽는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회의 사유는 여전히 죽지 않는 리시안느였다.
‘환장하겠네.’
추기경에게 허리가 베여 리시/안느가 되고, 가슴팍이 뭉개졌음에도 훌쩍거리고 있는 리시안느.
그런 리시안느의 모습에 나도, 타니안도, 추기경도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일단 회복력은 사라졌습니다. 죽지는 않지만 회복이 되지도 않습니다.”
“사기는… 모르겠군요. 저희 앞에서 완벽히 숨긴 전적이 있으니 확신하기 어려우나, 저 구체가 뽑힌 이후로 사기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두 신앙인의 증언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시안느의 능력이 대폭 감소한 것은 맞다. 온몸이 가루처럼 흩날려도 도로 복구되던 회복력은 더 이상 발휘되지 않았고, 리시안느의 상징과도 같던 사기 또한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높은 확률로 던전을 만드는 능력도, 시체를 일으키는 능력도 같이 사라졌을 거다.
남은 것은 한때 사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불사뿐.
‘가장 골치 아픈 게 남았네.’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다른 능력이 남을 것이지 하필 불사가 남았냐. 불사가 남으면 죽일 수도 없는데.
아니, 사실 다른 능력들이 사라졌는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리시안느가 우리를 속이고 있을 확률도 적지는 않으니까.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에 ‘속았구나, 에넨의 개들아!’ 라며 던전을 기습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죽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애초에 육체는 이미 죽어 있는 상태다.”
“응?”
“예?”
내 품에 안겨있던 장생이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
“죽음을 품은 순간부터 저 존재는 생명이 아닌 무언가가 되었다. 육체가 영혼을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영혼이 육체에 머무르고 있는 거지. 그러니 백날 육체를 찢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어차피 영혼에게 있어 육체는 옷에 불과한데.”
벗을 수 없는 옷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렇게 덧붙인 장생이의 말에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요약하면 영혼에 타격을 주는 게 아닌 이상, 리시안느가 스스로 영혼을 내던지는 게 아닌 이상 달라지는 게 없다는 말이잖아.
“하지만 그, 죽음을 도로 내뱉지 않았습니까.”
“저 존재는 종족 자체가 변했다. 이제 와서 파편을 뱉어냈다고 인간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지. 제련된 강철을 다시 철광석으로 만들 수 있나?”
‘대충 밴시 같은 건가.’
타니안과 장생이의 대화를 들으며 리시안느에게 도로 시선을 돌렸다.
육체를 내던지고 영혼으로 돌아다니는 존재. 그럼 물리력으로 팰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밴시라는 뜻이잖아.
“혹시 성법 중에 영혼 퇴치법은 없습니까?”
“영혼의 안식을 비는 축복은 있습니다만.”
유감스러운 대답이라 거칠게 마른 세수를 했다.
일단 리시안느는 완벽한 불사가 아니었다. 육체가 아니라 영혼을 죽여야 완전히 소멸하는 조건부 불사였다. 그런 대상을 상대로 물리 대미지만 꽂아 박았으니 잘도 리시안느가 죽었겠어.
그런데 영혼을 죽이는 법은 대체 뭐지? 교단도 이쪽 분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은데.소금이라도 뿌려야 하나?
“아무래도 성법으로 봉인하는 것이 무난하지 않겠습니까?”
“괜히 육체를 성법으로 자극했다가 영혼이 탈출하면 곤란합니다. 최선의 경우는 영혼까지 함께 봉인되는 것이나, 전례가 없어서 확신할 수가 없군요.”
“그렇다면 물리적으로 땅에 묻거나 바다에 내던지는 건─”
“만약 자력으로 땅을 파거나 헤엄쳐서 육지로 올라오면 어쩌시겠습니까?”
교단의 수뇌부인 차기 성자와 추기경조차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처음 겪는 일이라는 게 이래서 곤란하다. 간단하게 처리하기에는 무슨 부작용이 터질지 알 수 없으니까 결정을 못 하겠어.
“장생아.”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내 추종자들이 전부 이랬다면 여명 교단이 아니라 내가 이겼겠지.”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하긴. 단순히 신의 힘을 빌려 쓰는 게 아니라, 신의 파편 자체를 흡수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죽음이라는 흉악한 악신의 파편을.
‘…그 방법밖에 없나.’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방법뿐이다.
***
늘 아이들과 같이 오던 칼이 난데없이 혼자 찾아왔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들으면 곤란한 용무가 있는 것 같아 슬쩍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로 왔느냐. 안색이 조금 어둡구나.”
“어르신. 긴히 여쭤볼 것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습니다.”
“이제 와서 물어보는 것 정도로 실례는 무슨. 편히 말해보거라.”
내 말에 칼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영혼을 죽이는 법에 대해 아십니까?”
“…음?”
그리고 의외의 말인지라 눈을 가늘게 뜬 채 칼을 내려다봤다.
“영혼을?”
“예. 그… 최근 사왕이라는 존재가 부활해서, 그 존재를 완전히 없애려면 영혼을─”
“이해했다. 그 이상 말하지 않아도 좋다.”
사왕이라는 말에 납득했다.
과연. 벌써 사왕을 제압하고 거기까지 알아낸 건가. 역시 내가 개입할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