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36)
로판 속 공무원 736화(737/945)
영혼을 죽이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는가. 애석하게도 일개 필멸자들은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물리 대미지 원툴인 기사들은 논할 가치가 없고, 지혜의 상징인 마법사들도 정신이나 영혼 관련으로는 지식이 부족하며, 신을 섬기는 사제들조차 영혼을 축복할지언정 죽이는 법은 모른다. 육체를 던져주면 수천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을 수 있으나, 영혼을 던져주면 무엇도 하지 못하는 것이 필멸자의 숙명이다.
허나 이 대륙에는 불멸자가 존재한다. 그것도 전투 경험이 풍부하며, 스스로 영원한 안식에 빠지려고 했던 불멸자가.
“모든 드래곤이 영혼에 해박한 것은 아니나, 나처럼 늙은 존재들은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 애초에 불멸인 육체를 내던지고 안식을 택한다는 것부터가 영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
실제로 아텔리우스는 내 질문에 덤덤히 답하며 연륜과 지혜를 뽐냈다.
역시 아텔리우스다. 아텔리우스라면 답을 알고 있을 거라 믿었다고.
“결론부터 말하면 드래곤도 상대의 영혼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다.”
“예?”
믿음이 잠시 흔들렸다.
“그, 어르신은 드래곤들 중에서도 긴 세월을 살아온 편이라 들었는데, 그런 어르신도 방법이 없는 겁니까?”
“오래 살았다고 유능해지는 건 아니지. 내 영혼 정도는 스스로 처리할 수 있지만, 상대의 영혼도 소멸시키는 건 전대 로드께서도 이루지 못한 위업이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드래곤들이 육체가 아니라 영혼 자체를 죽일 수 있다면 아펠스에게 사냥 당한 치욕의 역사가 존재했겠나. 아펠스의 용살부대가 수백, 수천, 수만이 와도 영혼을 죽이면 되는데.
“허나 사왕을 통제할 방법은 존재한다.”
‘오.’
이어진 말에 흔들렸던 믿음이 다시 굳건해졌다.
그래. 전성기 시절에는 악신들을 두들겨 패고, 용을 잡고 다닌 아펠스도 건드리지 못한 존재가 아텔리우스다. 그런 아텔리우스가 사왕 공략법 따위를 모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우선 사왕의 육체와 영혼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 있습니다.”
아텔리우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에 들고 있던 자루를 거꾸로 뒤집었다.
그러자 자루 안에 있던 리시안느의 잔재가 후드득 바닥에 떨어졌다.
“흑, 흐으윽…”
“허어.”
몸도 박살 난 주제에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 건지, 여전히 훌쩍이는 리시안느의 모습에 아텔리우스는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직접 보니 기괴하기는 하군. 육체가 조각 났는데도 죽지 않는 존재라.”
“사왕에게 있어 육체는 옷에 불과하다고 하더군요.”
“실로 적절한 표현이다. 옷이 찢어지고 불타더라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법이니.”
그렇게 말한 아텔리우스는 오른손을 가볍게 휘저었고,
“복종하라.”
평소와는 미묘하게 다른 목소리로 읊조렸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법에 능통하지 못한 나조차, 복종 대상이 아닌 나조차 저 짧은 한마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흐으윽…?”
이윽고 바닥에 가루처럼 흩어져 있던 리시안느의 육체가 다시 하나로 뭉치더니, 하늘색이었던 리시안느의 머리카락은 점차 검은색으로 변했다.
“끝났다.”
“벌써요?”
“그래. 사왕의 영혼을 나와 연결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사왕은 다시는 난동을 부리지 못할 거다.”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얘기를 하는지라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영혼 연결이라는 게 이렇게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인가? 영혼을 소멸시키지만 못하는 거지, 그 외에는 능통한 것 같은데?
“나와 연결된 상태니 내가 죽으면 다시 풀려나겠다만, 네가 염려할 일은 아니다.”
자신은 절대 죽을 일이 없다는─ 혹은 근 시일 내에 죽을 일이 없다는 선포였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드래곤이 한때 극단적 선택을 고려했던 독거 노룡이었다니. 내 설득이 한 생명을 살렸다는 걸 인식할 때마다 흐뭇하기 그지없다.
“만일 죽을 일이 생긴다면 다른 드래곤에게 넘기고 떠나마.”
“그런 말씀은 마시지요. 이 대륙에 누가 어르신을 해하겠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다.”
픽 웃음을 흘린 아텔리우스는 다시 오른손을 까딱였다.
“어? 어어?”
‘뭐야.’
그러자 육체가 회복된 리시안느가 내 품으로 날아와 안겼다.
물론 여전히 손가락 크기였기에 아프지는 않았으나,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건지 모르겠다.
“헛짓거리 못 하게 조치도 취했으니 도로 가져가거라.”
“…제가, 말입니까?”
“그럼 내가 관리해야 하느냐? 갑자기 못 보던 게 같이 살면 저 녀석들이 무서워한다.”
그 말에 옹기종기 모여서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동굴 토끼들을 바라봤다.
솔직히 지금의 리시안느보다는 쟤네가 더 큰 거 아닌가. 오히려 리시안느가 토끼들의 습격을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으나, 머리카락이 본래 색으로 변해가면 나한테 찾아오면 된다. 연결이 느슨해진다는 뜻이니 도로 강화하면 되니까.”
“아, 예. 명심하겠습니다.”
무기한 무상 A/S도 해준다는 말이라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리시안느를 아텔리우스에게 완전히 맡기고 싶었으나, 그래도 영혼 자체를 종속시키며 사고를 칠 확률을 줄였다. 희대의 괴물에서 성수들 수준으로 위험도가 급락한 것이다.
게다가 하늘색이었던 머리카락도 검은색으로 변했다. 리시안느가 만들었던 가짜 시체는 하늘색 머리카락이었으니, 이 작디작은 본체를 보고 사왕을 연상할 사람은 없을 거다. 재수 없게 ‘감찰성 장관이 사왕의 본체를 가지고 있다!’ 라는 말이 나올 일은 사라졌다.
‘할 만큼은 했다.’
검게 변한 머리카락이 어색한지,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리시안느를 도로 자루에 넣었다.
“저, 저기. 이왕 넣는 거면 자루가 아니라 품속에─”
무언가 말하려던 것 같았지만 자루의 입구를 묶으니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덩치가 작으니 목소리도 작은 모양이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아무튼 사왕 토벌전은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비록 우리가 생각하던 피와 눈물이 흐르는 전투, 신앙과 거악의 대립 같은 장엄한 모습은 없었으나─ 그래도 사왕이라는 거악을 큰 피해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대륙적으로 보면 이보다 경사인 일도 없지.
그저 리시안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 사왕의 진실을 알아버린 타니안과 추기경의 심적 고생이 막대할 뿐.
“장관.”
“예, 폐하.”
“짐은 사왕 토벌에 힘을 보태라고 했지, 생포하라고 한 기억은 없네만.”
“송구하옵나이다…”
그리고 덩달아 진실을 보고받은 황제의 멘탈이 위태로울 뿐이었다. 아마 지금쯤 교황도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이제는 하다 하다 사왕까지 가져오다니.”
연신 한숨을 내뱉은 황제는 거칠게 보드카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벌써 두 병째였지만 차마 만류할 수 없었다. 저 급속 알코올 섭취의 원인이 나인데 어떻게 말리겠나.
“그래서, 어디까지 알고 있다고?”
“폐하와 아텔리우스 어르신을 제외하면 추기경과 차기 성자, 교황 성하만이 아실 겁니다.”
“그나마 최소치로군.”
신경질적으로 병을 내려놓은 황제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말없이 천장을 바라봤다.
“장관.”
“예, 말씀하소서.”
“장관이 오기 전, 외무성의 보고가 있었네. 대륙 전체가 사왕 토벌에 기뻐하고, 다시금 승리한 교단을 칭송하고 있다고.”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성 토그라 대성당의 종도 다시 다섯 번 울렸다네. 거악을 처리했으니 다시 자비와 관용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말이야.”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기껏 다섯 번의 종소리를 울린 성하께서 어떤 심정일지. 짐은 너무나도 궁금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내 진심 사과를 끝으로 집무실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나는 먼저 입을 열 염치가 없었고, 황제는 말을 할 정신이 없을 테니.
“…하지만 장관도 어쩔 수 없었겠지.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존재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폐, 폐하.”
이윽고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로 고개를 들었다.
황제의 말이 맞다. 내가 대가리에 메테오를 맞은 것도 아니고, 좋아서 사왕을 생포해왔겠나. 아무리 답을 찾아도 답이 안 보여서 차악을 선택한 것이다. 그 차악을 어떻게든 차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나는 모든 도리를 다 했다. 토벌대 부사령관이자 제국의 귀족으로서 노력했어.
“안전한 것은 맞나?”
“아텔리우스 어르신께서 확신하셨습니다.”
“그럼 믿을 수 있겠군.”
그렇게 말한 황제는 탁자 위에 놓인 자루─ 정확히는 리시안느가 갇혀있는 자루를 바라봤다.
“악신 열하나에 사왕이라. 가만 보면 장관의 저택보다 흉악한 던전도 없는 것 같아.”
차마 반박할 수 없어서 침묵을 지켰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 저택은 뭔가 이상해지고 있다.
***
사왕이 토벌됐다.
800년 전에 대륙과 교단을 위협했던 거악이, 다시금 부활하여 대륙을 뒤엎을 뻔한 괴물이 토벌대의 손에 쓰러졌다.
그리고 대륙 제일 검인 칼도 대륙을 위해 토벌대에 참가하였으며,
“타일글레헨 백작 각하께서 사왕과 일대일 승부 끝에 승리하셨다!”
무려 사왕을 홀로 쓰러뜨렸다.
“실로 성자 베를로의 재림이다! 살아있는 복자는 뭔가 달라도 다르군!”
“하늘조차 베는 검사가 그깟 괴물 하나 못 베겠나? 당연한 결과지!”
덕분에 교단이 발표한 승전보를 들은 제도 시민들은 너도나도 칼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놀라운 일이다. 칼이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치지 않을 거라 믿었지만 설마 단신으로 사왕을 이길 줄은 몰랐다.
물론 남편이 사왕과 일대일 승부를 벌인 건 아내로서 가슴 아픈 일이다. 남편이 무리해서 영웅이 되는 것보다, 안전하게 병사들 사이에 있기를 바라는 게 아내의 마음이다.
그래도 이미 지나간 일. 전쟁에서 돌아온 칼에게 왜 그랬냐고 추궁하는 것보다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것이 옳다.
그래, 분명 그런데…
“칼. 한 번만 더 말해주겠어요?”
“이, 이거 사왕이었어.”
“다시 말해주세요.”
“사왕…”
“다시.”
“미안해 마르.”
이상한 말을 하던 칼은 내 앞에 납작 엎드리며 사과를 했다.
이상하다. 왜 칼이 사과를 하는 걸까. 왜 이런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걸까.
“나도 당연히 죽이려고 했지. 그런데 무슨 짓을 해도 죽지를 않아서, 겨우겨우 영혼에 제약을 건 게 고작이었어.”
왜 나한테 작은 인형을 들고 변명을 하는 걸까.
“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네? 저도요?”
왜 저 인형은 사람처럼 말을 할까.
마치 악신이었다가 성수가 된 우리 집 짐승들처럼.
“칼.”
“어, 응?”
“안주인으로서 가주에게 실망했어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문장이었으나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이보다 내 심정을 적절하게 표현할 문장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