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38)
로판 속 공무원 738화(739/945)
하늘이 돕고 있는 건지, 다행히 지즈의 입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단속을 할 수 있었다.
‘지즈한테 이번에 있었던 일은 절대! 절대 말하지 말라고 전해주십쇼!”
– 좋아! 걔가 입이 좀 가볍기는 하지만, 내가 신신당부하는 건 듣는 편이거든.
가볍고 철이 없는 동생이지만 그래도 언니 말은 잘 듣는 착한 아이라는 말.
– 대신 그, 이번에 죽음의 파편 얻었다고 했지? 그것 좀 줘.
‘지즈한테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 응.
‘바로 가겠습니다.’
동생을 단속하는 대가로 처리하기 곤란했던 장생이의 파편을 받겠다는 말.
한 번에 두 가지 근심을 해결하는 꼴이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솔직히 이 기분 나쁜 구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우호적인 신이 처리해 주겠다고 하면 나야 좋다. 이거 하나 때문에 교국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건 양심이 아팠으니까.
그렇게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지즈의 둥지로 이동했고,
– 응? 벌써 오셨─
“언니가 하는 말은 잘 들었지?”
– 넹? 아, 넹.
“이 소식이 대륙으로 퍼지면 나도 죽고, 너도 날개가 네 개로 변하는 거야. 처신 잘해.”
내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지즈였으나, 이윽고 자신의 날개를 보더니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즈의 날개가 네 개로 변한다는 것은 날개를 가로로 찢어버리겠다는 의미기에.
– 걱정 마세요! 제가 신이었던 시절에는 신뢰의 지즈라고 불렸어요!
“그래. 잘 하자.”
아무리 생각해도 신뢰와 지즈가 공존할 수 있는 단어 같지는 않다. 게다가 신이었던 시절에 신뢰의 지즈라고 불렸다면, 지금은 아니라는 의미잖아.
그래도 노골적인 경고와 언니인 영원한 푸른 하늘의 단속이 있었으니 자제하겠지. 지즈가 눈치는 좀 부족해도 상식이 없는 녀석은 아니니까.
– 저기, 그런데…
“왜 그래?”
갑자기 말꼬리를 흘리는 지즈의 모습에 불안감이 솟구쳤다.
왜 ‘그런데’라는 단어가 나오는 거지? 대체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 진짜, 진짜 앞으로 얘기 안 할 자신은 있거든요?
“그렇겠지. 입단속 잘할 거라고 믿어.”
– 그런데 이미 다른 애들한테 얘기해─ 아, 아니! 검부터 뽑지 말고요!
지즈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시 희미해졌던 정신을 붙잡았다.
위험했다. 방금 본능적으로 하늘을 벨 뻔했어.
“누구야.”
흑염룡이 울부짖는 오른손을 진정시키며 겨우 입을 열었다.
대체 그 짧은 시간 안에 누구한테 말한 거냐고. 누구한테 그 가벼운 부리를 조잘거린 거냐고.
– 레, 레비아탄이랑 베히모스요.
“그렇게 둘?”
– 네! 딱 둘!
불행 중 다행인 말이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둘이라면 괜찮다.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레비아탄은 물론, 옛 트리카 제국의 수도에서 평화롭게 가축들을 돌보는 베히모스. 딱히 사람들과 대화를 즐기는 성격도 아니고, 입이 가벼운 타입도 아니지 않나. 지즈가 재잘재잘 알려준 정보도 ‘그런가 보다.’ 라며 넘어갈 확률이 높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둘한테도 비밀 엄수를 부탁해야지. 방심했다가 일이 터지면 나 스스로가 너무 미울 것 같다.
“진짜 둘뿐인 거 맞지? 지금 사실대로 말하면 수습할 수 있어. 늦으면 답도 없으니 전부 말해봐.”
– 진짜예요! 애초에 저하고 대화해 줄 상대가 몇이나 있다고!
틀린 말은 아니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을 누비는 전열함 크기의 독수리. 그런 존재와 평온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얼마나 있을까. 2천 년이나 잠들었다가 깨어난 지즈기에 레비아탄과 베히모스를 제외하면 친구라고 할 존재도 없다.
생각해 보면 지즈가 내 앞에서 말이 많은 것도 그것 때문일 수 있다. 대화 상대가 몇 없으니, 그나마 있는 상대한테 온갖 말을 쏟아붓는 거지.
‘쓰으읍.’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 없는 외톨이한테 과도한 잔소리를 했어.
“하긴. 하늘의 제왕이 말을 걸면 다들 벌벌 떨기 바쁘겠지.”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민망하지만, 서운하고 억울할 지즈를 위해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지즈에게 말할 상대가 없는 건 단순히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위대한 하늘의 제왕이라 사람들이 눈치를 보는 거라고.
– 흐흫. 그건 그렇죠.
내 말에 날개를 파닥이던 지즈는 어깨… 어깨 맞나? 아무튼 어깨로 추정되는 부분을 으쓱이기 시작했다.
얘가 순수하고 해맑은 성격이라 다행이다.
믿었던 베히모스에게 배신을 당했다.
– 미안하다. 마침 콘스탄티나와 대화할 일이 있어서, 사왕이라는 녀석에 대해 말했었다.
“뭣.”
베히모스는 이미 지인인 콘스탄티나에게 사왕에 대해 말하였고,
– 정령왕들도 알고 있습니다. 세계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친우들이기에 대륙의 일이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듣고 싶어 하니까요.
“…….”
콘스탄티나는 정령왕들에게 말했으며,
“사왕이 살아있다고 들었단다.”
정령왕들은 외조모님에게 떠들었다.
그리고 외조모님에게도 소식이 들어갔다면 그다음은?
“칼.”
“응…”
“잠시 얘기 좀 하자꾸나.”
트릭시를 비롯한 다른 부인들이다.
기적적으로 마르 한 명으로 그쳤던 정보 공유자가, 순식간에 부인 전체로 늘어나고 말았다.
‘이건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입단속을 하기도 전에 떠들고 다닌 지즈의 죄인가, 아니면 진즉에 단속하지 못한 나의 죄인가.
머리는 후자라고 외치지만 가슴은 절대 인정하지 못하는 죽음의 이지선다. 너무도 어렵고 서글픈 일이다.
***
최근 형이 호수에서 발견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바람을 쐬러 갔던 귀족원 의원들이 낚시 중인 형을 자주 봤다고 한다. 아침에 가든 점심에 가든 저녁에 가든 보여서 거기 사는 줄 알았다나?
‘과장도 심하지.’
픽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멀쩡한 저택, 여섯이나 되는 부인들, 여덟이나 되는 자식들이 있는 형이다. 그런 형이 뭐가 아쉽다고 호수에서 지내겠나.
심지어 형은 딱히 낚시를 즐기는 성격도 아니다. 무인이라면 활동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나, 내가 아는 형은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안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낚시를 할 바에는 집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걸 택할 사람이고.
…
‘그만 생각하자.’
순간 형이 호수에서 지내는 이유를 추론할 뻔했지만 형의 명예를 위해 참았다. 세상에는 알아도 될 진실과 몰라야 할 진실이 존재하는 법이니.
그리고 나한테 중요한 건 형의 임시 터전 따위가 아니다.
“괜찮니? 물 좀 더 가져다줄까?”
“괘, 괜찮아요. 조금만 더 앉아있으면 나아질 거예요.”
“누워있어야 할 것 같은데…”
코앞으로 다가온 결혼식 때문에 벌벌 떨고 있는 세라. 그런 세라를 열심히 달래고 있는 비아.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을 형보다 이 둘을 신경 쓰는 게 우선이다. 곧 내 부인이 될 여인, 내 아이를 품고 있는 여인을 생각하는 게 먼저다.
“세라. 잠깐만 손 좀 줄래?”
“아, 응.”
파르르 떨고 있는 세라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자, 세라는 평소보다 더욱 새하얘진 손을 건넸다.
안쓰럽다. 안 그래도 몸이 허약한 세라라 작은 충격에도 휘청거리는 편인데,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경험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육체가 약한 세라니 그 긴장감만으로도 골골거릴 수밖에 없다.
물론 어디까지나 긴장이지 싫어하는 건 아니나, 이러다 결혼식 때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손이 많이 차갑네. 날도 따뜻한데.”
그렇기에 세라의 손을 주물럭거리며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온몸이 긴장에 빠졌다면 따뜻한 손으로, 부드러운 말로 달래줘야 한다. 이렇게 신체의 끝부분부터 조금씩 조금씩 풀어줘야 한다.
“결혼식. 우리끼리 간소하게 할까?”
“아, 아니야! 예정대로 하자!”
슬쩍 꺼내본 말이었지만 세라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떨려도 귀족 가문과 귀족 가문의 결합을, 사랑하는 사람과 정식으로 부부가 되는 행사를 간소하게 하고 싶지는 않을 터.
그럼에도 이런 짓궂은 말을 하는 건 만약을 위해서다. 만약, 만약 세라의 부담과 긴장이 극에 이르렀다면 결혼을 간소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니. 결국 부부를 위해 하는 결혼인데 신부가 힘들어하면 곤란하잖아.
“생각이 변하면 언제든지─”
“그럴 일 없어.”
“알았어. 다시는 안 물어볼게.”
단호한 세라의 대답에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세라.”
“응?”
“이번에도 지즈가 온다고 하더라. 결혼식 때 뿌릴 꽃도 전부 준비했대.”
그 말에 세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기쁨을 표현했다.지즈의 화려한 등장을 보자마자 탄식했던 나와 달리 비아와 세라는 지즈의 등장을 기꺼워했으니까.
너무도 과한 퍼포먼스라 처음에는 세라도 당황했었다. 하지만 거대한 독수리가 결혼식을 축복하듯 나타나고, 형형색색의 꽃비를 하늘에서 뿌린다? 이보다 화려한 퍼포먼스는 감히 생각해낼 수 없다. 하객으로서 결혼식에 참석했던 세라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한 퍼포먼스였다.
덕분에 지즈는 이번에도 출격할 예정이다. 사실 세라가 꺼려 했어도 ‘결혼식을 차별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라며 형이 강행했겠지만.
‘그놈의 차별.’
그 빌어먹을 차별 때문에 터진 일들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그래도 이해하자. 형은 한때 6명 동시 결혼을 고려했을 만큼 정신 나간 인간이잖아. 정상적인 동생이 미친 형을 이해해 줘야지.
“각하.”
“음?”
그렇게 좋은 형인지, 나쁜 형인지, 이상한 형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형을 생각하는 사이, 저택의 집사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가주님께서 오셨습니다.”
“…형이?”
“예, 각하.”
형이 방문했다는 소식에 잠깐 움찔하고 말았다.
미친 형 취급하자마자 저택에 오다니. 혹시 형은 멀리 떨어진 상대의 마음도 읽는 건가?
“들어오라고 해.”
허나 기껏 찾아온 형을 돌려보낼 수는 없기에 순순히 방문을 허락했다.
‘오죽했으면.’
게다가 호수에서 생활하던 형이 내 저택을 찾아올 정도면 노숙─ 아니, 낚시 생활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뜻.
아무리 괴팍하고 이상해도 하나뿐인 형이다. 잠깐 몸을 누일 바닥을 청한다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받아줘서 고맙다…”
“고맙습니다…”
‘이건 또 뭐야.’
그리고 형이 말하는 인형을 들고 있는 걸 보자마자 실소가 나왔다.
사왕 토벌전에 참여했던 사람이 언제 저런 걸 주워온 거야. 뭐 사왕이라도 주워온 건가?
‘그럴 리가.’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발상이기에 쓴웃음을 지었다.
형이 아무리 미쳤어도 그 정도로 미친 인간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