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4)
죽어서도 곱게 죽지 않고 끔찍한 저주를 남긴 것이 과거 신이라 불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해신은 무슨, 이거 함장 말대로 재앙신 맞네.
“흐아아아아앙! 흐끅, 흐으으, 흐어어엉!”
어떻게든 울음을 꾹 참으려던 이리나는 한 번 무너지자 그대로 체면도 신경 쓰지 못한 채 대성통곡을 했다.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모습에 마법사단장을 빨리 돌려보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
그 와중에 사람이 정말 서럽고 정신이 없을 때는 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처절한 울음소리를 낸다는 걸 알게 됐다. 훌쩍이나 흑흑 같은 조용한 소리는 아직 정신이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체면 유지 울음이었네.
물론 딱히 알고 싶은 정보도 아니고, 알아서도 안될 정보였다.
‘나도 돌아갈 걸 그랬나.’
보는 사람이 서글퍼질 정도로 우는 이리나를 보면 자리를 비우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지만, 크라켄 시체 사이에 주저앉아 우는 아이를 혼자 방치하는 것도 할 짓이 못된다. 심지어 아래… 로도 우는 아이를.
무심코 물줄기가 흐른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가 황급히 올렸다. 수치스러움의 결정체를 보는 걸 이리나가 눈치채면 저 멀리 바다로 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지 이거.’
진짜 어쩌냐. 뭐라고 달래지?
나는 신경 쓰지 않으니 걱정 마? 가문의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 앞에서 이런 꼴을 보였는데 퍽이나 걱정 없겠다.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지랄도 정도껏이지,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 봤다는 강력한 의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감수성에 직격타를 맞은 17살 여고생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다.
“이리나, 잠시만.”
“흐그윽?”
펑펑 우느라 목도 쉰 것 같은 이리나를 조심스럽게 안아올렸다. 내 곁에 있는 것도 무서워 하는 애 몸에 손을 대는 건 미안하지만, 당장 생각나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 이대로 두면 탈수로 쓰러질 기세니 원.
몸이 딱딱하게 굳은 채 눈물 범벅인 얼굴로 올려다보는 이리나를 애써 외면하며 둘 다 몸이 푹 젖을 정도로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몬스터 체액에 닿았으니 혹시 몰라서. 이렇게 씻으면 별일 없을 거야.”
사실 안 씻어도 별일 없다. 크라켄은 살아 움직일 때나 골치지, 죽으면서 흘린 체액 따위는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리나를 계속 하반신이 찝찝한 상태로 둘 수도 없고 혼자가 아닌 둘이 젖으면 덜 창피하지 않겠나. 괴상한 논리인 것은 나도 알지만 내 머리로는 이게 최선이었다. 크라켄 이 개같은 거. 죽을 거면 곱게 죽어야지.
“돌아가자. 많이 놀랐을 테니 좀 쉬어야지.”
“…네에…”
작게 대답하는 걸 보니 그래도 조금이나마 진정은 된 것 같다. 허락도 없이 몸을 들더니 바다에 들어가서 어이가 없겠지만, 그래도 폭풍 같이 몰아치던 눈물이 조금은 들어갈 계기가 돼서 다행이다. 원래 어이 없는 일을 겪으면 감정 흐름이 깨지더라고.
‘이제 얘 얼굴은 어떻게 보냐.’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 넘긴 것이지 오늘 겪은 일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제 이리나는 영원히 못 보겠구나. 나라도 이 악물고 피해 다닐 거다.
오늘부터 자리를 비운다고 했던 사람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복귀하면 의아할 사람은 많을 거다. 심지어 전혀 연관 없는 사람과 함께 젖은 채로 돌아온다면 더더욱.
“오라버니? 이리나?”
마침 계단을 내려오던 루이제와 마주치며 그 의아함이 입증됐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이리나를 번갈아 보는 것이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
“다녀왔어.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나서.”
“다행이에요. 기껏 놀러 왔는데 일만 하다 돌아가시면 슬프잖아요.”
그건 나도 걱정했는데 하루 만에 끝나더라고. 그 대가가 좀 참혹하기는 했지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자 루이제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내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런데 왜 이리 젖으신 거예요? 어디 빠지셨어요?”
“파도가 좀 세더라. 지나가다 맞았어.”
“조심하시지…”
애초에 수영복을 입은 이리나와 다르게 난 평상복으로 바다에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덕분에 한 영애의 눈물이 멈췄으니 괜찮은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이리나, 언제 나갔어? 몸은 좀 괜찮아?”
“으, 으응. 조금 나아졌어.”
“다행이다. 걱정 많이 했는데.”
이리나의 손을 잡으며 헤헤 웃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리나의 시선이 바닥으로 내리 깔렸다. 꾀병 부렸구나. 그런데 의심은 커녕 저렇게 기뻐하는 루이제를 보니 마음이 좋지 못하겠지.
“오는 길에 만나서 같이 왔어. 피곤해 보이던데 쉬게 두고.”
“아, 네!”
내가 옆에 있는 것보다 루이제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테니 적당히 자리를 피했다. 쉬게 두라고 했으니 루이제가 어련히 챙겨주겠지.
“그, 오, 오빠.”
루이제를 지나치려고 하자 뒤에서 이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견 첫날, 내가 감찰부장인 걸 몰랐을 때 한 번 부르고 그 뒤로는 듣지 못했던 오빠라는 호칭.
뒤를 돌아보자 머뭇거리던 이리나가 허리를 숙였다.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고, 고맙습니다…”
“고맙긴. 별일 아니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요룬 백작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많이 민망하다.
***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가족에게도, 누구보다 친한 친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을 가장 보이면 안될 사람한테 보였다.
끝났다. 내 인생은 끝났다… 여자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인생이 끝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오징어한테 먹힐 걸.
그 뒤에는 정말 한참을 울었다. 입이 열리는 대로, 목소리가 나오는 대로 울었다. 체면? 이미 저 바다에 처박혔는데 무슨 체면이야. 난 이미 끝났어, 감찰부장에게 ‘네 몸에서 나와서 그런지 네 머리하고 같은 색이구나.’ 라는 말을 들어도 반박할 수 없다고.
“이리나, 잠시만.”
그렇다고 갑자기 감찰부장이 내 몸을 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상태로 바다로 가는 건 더더욱 못했다.
‘이, 이대로 담가버리는 건가?’
감찰부장이 바다에 들어갈수록, 내 몸이 조금씩 잠길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서 지리는 걸 보니 역시 요룬 백작가는 유죄다!’ 라며 이대로 보내버리는 건가? 뒤늦게 발버둥 치고 싶었지만 몸이 굳어 움직이지도 못했다.
하지만 감찰부장은 내 몸이 젖을 정도로만 걸어갔다. 그대로 던지거나 놓기는 커녕 꽉 잡아서 흔들리지도 않게 만들었다.
“몬스터 체액에 닿았으니 혹시 몰라서. 이렇게 씻으면 별일 없을 거야.”
그 말에 멍하니 감찰부장만 바라봤다.
‘왜?’
이제서야 감찰부장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감찰부장은 나를 안고 귀찮음도 경멸도 비웃음도 아닌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다못해 무표정도 아니었다.
이 상황에 대한 난감함, 그리고 미안함. 분명 그런 감정이 담긴 표정이었다.
‘왜…?’
왜 당신이 그런 표정을 지어? 우리 가문의 원수인 당신이 왜 나한테 그래? 내가 그렇게 피하고, 그렇게 무서워하는데 왜 이렇게 다가와? 왜 이렇게 신경 쓰는 거야?
차라리 무시하지. 그러면 감찰부라는 자연재해에 재수 없이 당했다고 넘어가기라도 하지. 왜 자꾸 이상한 모습을 보여서, 이상한 배려를 해서.
왜 내가 이상한 마음을 품게 만들어?
‘대체 왜.’
미워, 당신이 정말로 미워.
“돌아가자. 많이 놀랐을 테니 좀 쉬어야지.”
하지만 누구보다 미운 건.
“…네에…”
하필 그런 당신에게 두근거리는 나야.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내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도 모르겠어서.
그래서 숙소에서 만난 루이제에게 밖에 나간 것이 들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를 믿어주고 걱정해주는 루이제에게 미안했다. 미안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잠시 멍하니 바닥만 내려다보니,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
먼저 간다. 비겁하게 내 마음만 흔들어놓고.
“그, 오, 오빠.”
급하게 부르고도 아차 싶었다. 오빠라니, 이제와서 오빠라니. 그렇게 피했으면서 친한 척을 하면 뭐라고 생각하겠… 아니, 저 사람한테 오빠라는 말은 아까워.
그래도 죽을 뻔한 걸 구해줬으니 오빠라는 말은 당연히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맞아, 어차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불렀잖아. 응. 문제 없어, 이상한 일이 아니야.
“고, 고맙습니다…”
난 그냥 감사 인사를 하는 거니까. 아무리 가문의 원수여도, 미운 사람이라도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니까.
“고맙긴. 별일 아니야.”
담담히 대답하는 오빠의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역시 비겁한 사람이 맞아. 고작 저런 말로 마음만 흔들고. 정말 비겁해.
***
크라켄을 토벌한 건 함장이 직관했고 마법사단장이 시체까지 확인했다. 먼저 보냈으니 황금공에게도 소식이 갔겠지.
– 수고 많았네. 설마 하루도 지나지 않아 끝낼 줄은 몰랐군.
그렇다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연락이 올 줄은 몰랐지만. 아, 이 리조트 황금공 소유지. 직원이 알려줬나 보다.
“운이 좋았습니다.”
– 너무 겸양하지는 말게. 자네가 없는 동안 고생한 내 가신들은 뭐가 되겠나.
“제가 좀 잘났습니다.”
– 그래, 그리 당당하니 얼마나 보기 좋나.
이런 반응을 원한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지만, 황금공 감성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당당해서 좋기는 무슨. 역시 공작들은 하나 같이 어딘가 특이하다.
– 아, 그리고 보상 말인데. 아무래도 조금 조정해야겠어.
“예?”
이 새끼가 설마 먹튀를?
아니, 그럴 리가. 아무리 예상과 달리 당일에 끝났다고는 하지만, 설마 황금공이 그런 치졸한 짓을 할 리가.
– 자네에게 처음 요청했을 때와 달리 놈의 행동 반경이 넓어지지 않았나? 그건 약속 때 언급이 없었으니 새로 적용해야지.
“아, 예.”
– 그리고 인명 피해를 막았다지? 하마터면 관광업에 타격을 입을 뻔했네. 그것도 감안해야 하니.
그러면서 손가락 다섯 개를 펴는 황금공.
– 이 정도면 되겠지.
“감사합니다, 각하.”
30%에서 50%로 상승했다.
그래, 황금공께서는 언제나 공명정대한 분이셨다.
역시 믿고 있었다, 쿨거래의 황금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