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40)
로판 속 공무원 740화(741/945)
크라시우스 형제의 마지막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신랑과 신부 둘 다 22살일 때 진행하는 결혼식. 귀족의 결혼치고는 약간 늦은 감이 있지만, 내가 처음 결혼했을 당시의 나이를 생각하면 에리히와 세라는 상대적으로 빠른 편이다.
게다가 당사자와 관계자들은 살짝 늦은 것에 대해 아무런 유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결혼을 했다는 것 자체에 기뻐할 뿐이지.
‘조금 늦은 걸로 아쉬워하기에는 결과가 좋으니까.’
하객석 가장 앞쪽에 앉은 부모님과 세라의 부모를 바라봤다.
이 결혼으로 인해 크라시우스 가문은 장남에 이어 차남도 무사히 결혼을 마쳤다. 늦둥이 막내 테레사를 제외하면 모든 자식들이 제 가정을 꾸린 것이고, 그 가정조차 정략이 아닌 연애결혼의 결과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
세라의 부모인 자이겔 남작과 유모는 말할 것도 없다. 유일한 자식이자 후계자인 세라가, 객관적으로 보면 허약한 육체 때문에 결혼 상대로 썩 좋지 못한 세라가 마침내 결혼에 성공했다. 그것도 팔려가듯 이상한 가문과 이어진 게 아닌, 세라가 어릴 때부터 마음에 품었던 상대와 말이다.
그 덕분인지 자이겔 남작은 어깨를 주기적으로 들썩이며 울음을 참는 모습을 보였고, 유모는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를 닦았다.
‘마음고생이 심했겠어.’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자이겔 남작과 유모 사이에서는 두 자식이 태어났었다. 그중 첫째는 어릴 때 세상을 떠났고, 둘째인 세라는 허약한 상태로 살아왔다. 마치 리제가 언니를 잃고, 본인은 허약했던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저 눈물이 더욱 안타깝게, 더욱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남작과 유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아빠.”
그렇게 결혼식을 지켜보는 사이, 내 품에 안겨있던 페디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왜 그러니?”
같은 원탁에 앉은 사람들만 겨우 들릴 정도의 목소리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기특하고 똑똑한 페디. 작은 아빠의 결혼식을 방해할까 봐 작게 속삭일 줄도 알고.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배려심이다.
“작은 압빠는 몃뻔 결혼해?”
“뭣.”
허나 작은 목소리와 달리 질문 내용은 배려심과 거리가 멀었다.
결혼식 중에 다음 결혼식을 묻다니. 아니, 그보다 마지막 결혼식인 사람한테 몇 번 결혼하냐고 묻다니.
“흐읍.”
“크흠. 큼.”
이 경이로운 질문에 같은 원탁에 앉아있던 리제와 린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작은 아빠는 이게 마지막 결혼식이야. 더 안 할 거야.”
“웅? 작은 압빠 이걸로 두번째라며. 왜 두번바깨 안해?”
진심으로 의문이라는 듯 눈을 반짝이는 페디.
차마 그런 페디에게 ‘원래 결혼식은 한 번만 하는 게 정상이야.’ 라고 할 수 없었다.그럼 페디는 비정상인 부모를 두는 꼴이니까.
“아빠가 쟉은 압빠 결혼 대신한거야?”
“프읍… 흐읏…”
어느덧 에리도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형인대 동생꺼 빼슨거?”
자세히 보니 마르와 트릭시, 피네마저 입술을 깨물며 필사적으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객석이 여러 원탁으로 나뉘어 있어서 망정이지, 교회 의자처럼 일자로 길었으면 대참사가 터질 뻔했다.
‘어쩌지 이거…’
물론 미수에 그친 것은 대참사뿐이었다. 내 마음은 페디의 악의 없는 공격으로 인해 처참히 찢어져 버렸다.
이래서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하는구나. 내가 페디에게 이상한 상식을 주입시키고 말았어.
“우리 페디. 티티랑 장생이랑 겸손이랑… 그런 애들하고 놀면 재밌지?”
“웅.”
“한 번에 많이 놀면 좋지만, 그러지는 않고.”
“웅. 동생들도 노라야대.”
“결혼도 그런 거야. 좋은 거라서 많이 하면 기쁘지만, 혼자만 많이 하면 다른 사람들이 못 해. 그래서 사람마다 횟수가 달라.”
“그런거야?”
아니. 전혀.
결혼이라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많이 하는 사람은 없고, 자기가 많이 하면 남들이 못 한다고 적게 하는 사람도 없다. 방금 내가 한 말 중 유일하게 맞는 내용은 사람마다 횟수가 다르다는 것뿐이다.
“그럼. 그런 거야.”
허나 페디는 아직 어리다. 최대한 페디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야 하니, 진심을 담아 ‘결혼은 사랑과 정략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사교 속 예술’ 같은 말은 할 수 없다. 페디한테 익숙한, 페디가 받아들이기 쉬운 성수들을 언급해서 ‘아무튼 사람마다 횟수가 다름.’을 이입해야 한다.
조금 이상한 비유지만 당장은 이걸로 충분하다. ‘아빠는 왜 작은 아빠보다 결혼을 많이 했어?’ 라는 의문을 ‘횟수가 다른 게 정상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덮어야 한다.자세한 지식은 페디가 더 자랐을 때 가르치면 되니까.
“그럼 난 결혼 한번할래.”
“응?”
“좋은거면 동생들이 해야대! 난 한번이면 대!”
그 말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픽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내가 독신선언을 한 사람은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동생들을 위해 한 번만 결혼하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그래. 페디가 한 번만 하고 싶으면 한 번만 해.”
그런 페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페디의 결정을 응원해 줬다.
일처인 아버지, 육처인 나에 이어 다시 일처인 페디라.
‘내 손자는 육처 복귀인가.’
기가 막힌 격세유전의 연속이라 조금은 무서워졌다.
아니지. 헤카테까지 포함하면 칠처니 손자도 칠처일 수 있다.
페디 덕분에 작은 소란이 있었으나, 에리히와 세라의 결혼식은 무난히 마무리되었다.
고작 4년 사이에 8번이나 되는 결혼식을 진행한 크라시우스다. 이 어마어마한 경험으로 인해 크라시우스 백작가는 제국 내에 존재하는 귀족 가문 중, 당당히 2위에 빛나는 결혼 전문가 가문이 되었다.
당연하지만 1위는 황금공의 오시덴 공작가다. 거기는 무슨 짓을 해도 못 이겨.
“결혼 축하한다.”
아무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입맞춤, 하객들의 열렬한 박수, 하늘에서 쏟아지는 꽃비.
누가 봐도 성공적인 결혼을 상징하는 삼위일체 속에서 에리히에게 다가가 덕담을 건넸다.
“세라도 축하한다. 아니, 이제 이름이 아니라 제수씨라고 불러야겠네.”
“고마워요, 아주버님.”
헤실헤실 웃는 세라의 모습에 새삼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에리히와 세라를 잇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던가. 이걸 못 먹으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이러고도 진전이 없으면 사람 대가리가 아니다, 이랬는데도 효과가 없으면 짐승 새끼다. 그런 말들을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던가.
마침내 그 눈물겨웠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눈치와 굿바이 키스를 나누었던 에리히가 세라와 결혼 키스를 나눴어.
“형 울어?”
“조용히 해.”
뒤에 이 새끼야─ 라고 덧붙이지 않은 건 마지막 이성이었다. 차마 새신부 앞에서 새신랑의 명치에 주먹을 꽂을 수는 없었다.
“당분간 푹 쉬고 있어.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걸 보면 라테르 결혼식은 아무리 빨라도 늦가을이야.”
그리고 에리히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에리히는 라테르가 결혼식을 올리면 개인 자격으로 유벤에 가고, 아카데미 친구였다는 관계를 내밀어 축하할 예정이다. 신혼 중에 해외 출장을 가는 건 끔찍한 일이다만, 다행히 몇 개월 정도는 여유가 있다.
“그러다 첫째 태어날 때 옆에 못 있는 거 아냐?”
허나 몇 개월의 여유 시간에도 불구하고 에리히는 착잡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게 문제기는 하다. 에리히도 나나 아버지처럼 건강한 무인인지라, 제노비아도 소리 소문 없이 무사히 아이를 품었다. 라테르의 결혼식이 늦가을이나 겨울에 걸쳐진다면 에리히가 유벤에 있는 사이에 출산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만삭인 부인과 해외에 가기도 어려운 일.
“여차하면 텔레포트로 돌아와.”
그렇기에 에리히에게 덤덤히 해결법을 말해줬다.
“어? 그래도 돼?”
“어차피 공식 사절 임무도 아니고 개인 자격으로 가는 거야. 가정에 일이 생겨서 복귀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아니, 그래도 폐하께서…”
“국운을 건 임무도 아니니 폐하도 이해하실 거다.”
만약 이해를 못 한다고 하면 태양전에 가서 지랄 좀 떨면 되는 거고.
단순히 에리히만 고통받는 일이면 옆에서 구경할 자신이 있지만, 내 제수인 제노비아와 첫 번째 조카도 연관된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첫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 가장이 부재중이면 얼마나 서럽겠어.
마침 황제도 제국과 유벤 사이에 더 확실한 기름칠을 하고 싶어서 에리히를 보내려는 거지, 반드시 진행해야 할 숙원처럼 여기지는 않는다.
‘숙원처럼 여겨도 상관없지.’
감찰성 장관의 개지랄보다 유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면 어디 유벤을 골라보든가.
“…저기, 형. 그럼─”
“사유가 없으면 꿈도 꾸지 말고.”
“망할.”
날로 먹으려 드는 에리히를 단호히 저지했다.
이 형도 명분이 없으면 황제의 지시에 개처럼 굴러야 하는데, 감히 에리히 따위가 발을 빼려고 들어?
‘어림도 없지.’
출산 시기만 아니라면 황제가 너를 빼려고 해도 내가 막을 거다.
“그럼 난 이만 가본다. 좋은 시간 보내고.”
그래도 이 이상 업무 얘기를 하면 새신랑의 기분이 땅에 처박힐 테니 슬쩍 물러났다.
게다가 에리히의 장인, 장모가 된 자이겔 남작과 유모가 반대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처가와의 오붓한 시간을 형이 방해하면 안 되겠지.
‘사랑받는 사위네.’
에리히의 손을 잡으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자이겔 남작. 세라를 감싸 안으며 등을 토닥이는 유모.
방해하기 미안할 정도로 훈훈한 광경이라 에리히 쪽으로 다가오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잠시 붙잡고 있기로 했다.
사돈 사이의 관계가 좋아도 가끔은 처가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
***
“날이 풀려서 그런지 물고기가 잘 잡힙니다. 조만간 날 잡아서 배라도 띄울까요?”
“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
“나룻배 작은 거 하나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잔디와 흙내를 맡으며 낚시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물 위에서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흠. 하긴.”
두런두런 낚시 얘기를 하는 빌리와 칼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라우라와 자이겔 남작. 어쩔 줄 모르는 에리히와 수줍게 웃고 있는 세라.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바로 옆에서는 부자가 같은 취미를 공유 중이고, 앞에서는 차남이 처가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이 보인다.
행복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광경은 꿈조차 꾸지 못했는데.
‘이제 테레사만 건강히 자라면 되겠어.’
우리 소중한 막내 테레사. 부디 너도 무럭무럭 자라서 이 엄마와 아빠의 행복이 되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