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41)
로판 속 공무원 741화(742/945)
에리히와 세라의 결혼식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결혼식의 여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우리 저택에서만 여파가 끝나지 않았다.
“유리쓰 누나.”
“네, 소가주님! 필요한 거 있으세요?”
“누나는 결혼 몇뻔 할꺼야?”
페디의 질문에 유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윽고 히히 웃기 시작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어린아이가 자기에게 결혼을 운운하다니. 누구라도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그러게요. 저는 얼마나 할까요?”
“난 동생들 잇스니 한번만 할꺼야! 누나는 만이 해도대!”
그 말에 유리스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에리히의 결혼식을 계기로 사람마다 결혼 횟수가 다르다는 걸 깨달은 페디. 그 사실이 페디 입장에서는 신기하고 경이로웠는지, 결혼식 이후로 페디는 저택의 사용인들에게 결혼 횟수를 묻고는 했다. 지금 유리스에게 하는 것처럼.
물론 난데없이 진행되는 결혼 조사에 사용인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어린아이가 무언가에 흥미를 가지며 직접 조사하는 건 기특한 일이지 않나. 이 아비의 마음은 사용인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친절하게 답해줬다.
“저는 한 번입니다, 소가주님.”
“왜애? 아빠가 결혼은 좋은거라고 했는대?”
“소가주님이 한 번만 하시니 저도 한 번만 해야죠!”
“와! 고마워!”
정원사의 말에 양팔을 파닥인 페디와 그런 페디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사용인들.
며칠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그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우리 페디, 벌써부터 사용인들의 지지도가 하늘에 닿고 있어. 이러다 이 아빠는 20대에 레임 덕이 올지도 몰라.
“마리아는 결혼 얼마나 할꺼?”
심지어 페디의 조사는 동생들에게도 뻗었지만,
“결혼이 모야?”
페디보다 어린아이들이 결혼에 대해 무얼 알까. 페디의 질문에 마리아를 비롯한 모든 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 바빴다.
“만이하면 조은거!”
“그럼 만이 할래!”
“나는 한번만 할꺼야!”
“그럼 나도 한번만 할래!”
“프흐.”
페디와 마리아의 대화를 떠올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결혼의 의미도 모를 아이들이 한 번만 한다느니, 많이 한다느니 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이거 미리 약혼녀를 찾아줘야 하나 잠깐 고민할 정도였다.
한 2초 정도만. 난 우리 아이들을 정략으로 팔 생각이 없으니까.
‘아쉬운 것도 없는데 정략은 무슨.’
한 가문의 가주로서 교만하고 철없는 생각일 수 있으나, 난 우리 아이들에게 정략혼을 강요할 생각이 없다. 오직 연애결혼만이 크라시우스 가문의 미래다.
애초에 내가 작정하고 정략혼을 노리면 제국 사교계가 몇 번은 뒤엎어진다. 오시덴 공작가의 결혼으로도 벅찬 황제가 기겁을 할 수도 있어.
“압빠!”
그런 생각을 하며 페디와 유리스를 보던 중, 페디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왔다.
“우리 페디. 샤를로테 누나 왔는데 보러 가야지?”
“누나 왓써?”
“그럼. 우리 페디랑 동생들이랑 놀려고 왔지.”
“와!”
내 말에 페디는 귀여운 환호성을 지르더니, 매정하게 나를 지나쳐 정문으로 향했다.
황태녀랑 사이가 좋은 것 같아 기쁘지만, 동시에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아무리 친구 겸 누나가 좋아도 이 아빠랑 같이 가면 안 되겠니?
“페디가 짓궂은 질문을 해서 놀랐지?”
아무튼 저 멀리 사라지는 페디의 뒷모습을 보다가 유리스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유리스 입장에서는 평소처럼 일을 하기 위해 지나가다가 소가주와 강제 면접을 한 것이다. 아무리 사용인들이 우리 아이들을 귀엽게 여겨도, 귀여운 것과 곤란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헤헤, 아니에요. 오히려 언제 물어보시나 기대했어요!”
“그럼 다행이고.”
하지만 해맑은 유리스의 반응을 보니 픽 웃음이 나왔다.
요 며칠 동안 여기저기 질문을 난사하고 다닌 페디. 다수의 사용인들이 결혼 질문을 받아서 그런지, 이제는 질문을 받지 못한 소수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흐음.”
“왜 그러세요?”
“생각해 보니 너랑 소피아도 결혼할 때가 된 것 같아서. 혹시 마음에 담아둔 사람 있어?”
“괜찮아요! 저랑 소피아는 이 저택하고 결혼했어요!”
너무 당당한 대답이라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일하고 결혼하는 게 아니라 저택하고 결혼하다니. 이 저택의 주인은 난데 누구 마음대로.
“소피아는 동의한 사안이고?”
“저랑 소피아는 둘로 나뉘었지만 마음은 하나! 제가 말 안 해도 같은 생각일 거예요!”
동의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는 말에 조용히 유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장 친한 친구를 부동산과 결혼시키는 중매쟁이. 아마 유리스 같은 중매쟁이는 이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연인이 생기면 말해. 너희가 남도 아니고, 내가 응원해 줄 테니까.”
“헤헤…”
연인만 데려오면 결혼식도, 독립해서 지낼 터전도, 이후 생계도 전부 책임져주겠다는 말이었으나, 유리스는 그저 웃음으로 넘어가려 했다. 아무래도 결혼은커녕 연애를 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그게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평생 나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리스.”
“네?”
“네가 원하면 결혼해도 저택에서 일하게 해줄게.”
그러자 유리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역시 후자의 이유로 결혼을 미루고─
“저 그냥 일만 하느라 남자 못 만난 건데요.”
“어?”
“다른 사용인들도 기혼인데 여기서 일하고 있잖아요. 당연히 저도 여기서 일할 거라 생각했는데… 저만 그렇게 생각한 거였어요?”
충격이라는 듯 중얼거리는 유리스의 말에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유리스와 소피아를 독립시키는 건 당사자들이 원할 때지, 다짜고짜 방출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막연하게 어릴 때부터 하녀로 일했으니 결혼한 이후로는 편하게 살고 싶지 않을까─ 생각한 것뿐이다.
“전 소가주님이 가주가 되실 때까지 일할 거예요! 소가주님의 소가주님도 볼 거예요!”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허나 기습 방출을 당할 뻔한 유리스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강렬한 충성 맹세를 했다.
괜히 오해할 만한 말을 해서 미안할 따름이다.
***
오늘도 장관의 저택으로 놀러 간 황태녀는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왔다.
“재밌게 놀다 온 것 같구나.”
“응! 재밋써써!”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는 황태녀를 번쩍 안아올렸다. 업무가 많아 황태녀와 오래 놀아주지 못하니,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사소한 놀이라도 하는 게 좋다.
“그럼 이번에는 아빠랑 놀까?”
“조아!”
꺄르르 웃는 황태녀를 보니 나 또한 미소가 지어졌다.
고작 안아주는 걸로도 기뻐하는 우리 황태녀. 장관의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친동생인 황자도 애지중지하는 기특한 딸.
내가 이 끊임없는 업무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보물이 황태녀다.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세 보물 중 하나야.
“맞따, 아빠!”
“응?”
“나는 결혼 몇번하는게 좋아?”
그 말에 웃고 있던 얼굴 그대로 굳고 말았다.
결혼? 누가? 황태녀가? 우리 사랑하는 샤를로테가?
“갑자기 그게 무슨…”
“뻬디가 결혼 몇번할거냐고 물엇써! 뻬디는 한번만 할거래!”
이어지는 황태녀의 말에 입만 달싹이다가 도로 다물었다.
혼란스럽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장관의 장남이 결혼을 운운한 거지? 황태녀와 한 살 차이니 이제 겨우 4살인 아이인데?
‘하디네르 남작 때문인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최근 하디네르 남작─ 장관의 장남 입장에서는 작은 아버지의 결혼이 있었다. 그러니 결혼이라는 행위에 막연히 흥미를 느꼈을 수 있다.
그런데 자기는 한 번 하겠다는 첨언은 왜 붙인 거지? 황태녀에게는 왜 물어본 거고.
‘그건 장관 때문인가?’
마음이 복잡하다. 다른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냥 웃어넘겼을 텐데, 하필 장관의 후계자가─ 장관을 똑 닮은 아이가 하니 불안했다.
물론 아이는 죄가 없다. 내가 보기에도 그 아이도 해맑고 순수한, 장관과 비교하는 것이 실례인 선량한 아이다.
‘아비가 엉망이라 문제지.’
다만 물려받은 핏줄은 아무리 선량한 아이라도 거역할 수 없다.
화려한 연애와 결혼을 선보인 장관. 그 장관의 핏줄을 진하게 이었다면 그 아이의 미래도 불안하다.
“뻬디가 한번이면 나도 한번할래!”
“그, 렇겠느냐?”
“웅! 아니면 나랑 뻬디가 결혼하는것또 죠아!”
그 말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장관에게 홀렸던 장관의 부인들, 사교계를 뒤엎었던 장관의 연애 소식.
‘안 된다.’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장관의 화려한 연애는 지켜보는 입장에서 유쾌했지, 내가 관계자로 엮이면 그만한 재앙도 없다.
게다가 만약, 만약 황태녀가 먼저 페디에게 홀려버리면? 황태녀가 페디의 곁에 몰리는 영애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면?
‘절대 안 된다.’
둘이 마음이 통해서 연인이 되는 건 막을 생각이 없다. 장관과 사돈 관계가 되면 좀 미묘할 것 같기는 하나, 내 감정 때문에 황태녀의 사랑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다. 정략적으로도 장관이 황태녀의 시가가 된다면 그보다 든든한 일이 없다.
허나 그건 페디가 황태녀에게 빠져야 되는 일이지, 그 반대로 흐르면 곤란하다. 황태녀가 페디에게 끌려다니는 건 안 된다.
‘어쩌지?’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 황제인 나조차, 황태녀의 아비인 나조차.
그렇다고 페디와 못 만나게 한다? 황태녀가 펑펑 울 것이 뻔하다. 어쩌면 황태녀에게 미움을 받아 안아주지도 못할 수 있다.
끔찍한 선택의 순간이다. 현재를 택하면 황태녀의 미래가 위험하고, 미래를 택하면 황태녀의 현재가 서글퍼지다니.
‘…관심을 분산하는 수밖에.’
필사적인 고민 끝에 일단 임시방편을 꺼내들었다.
황태녀가 장관의 저택에 가는 걸 막지 못하면 적어도 페디에게 향하는 관심을 분산해야 한다.
페디에게 향하는 관심과 호감을 조금이나마 줄여야 한다.
***
황태녀의 방문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정확히는 황태녀와 함께 온 일행 덕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아우?”
황제를 닮은 금발에 보라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아기.
황자 카롤루스. 제국의 유일한 황자가 황태녀와 함께 왔다.
“전하. 오늘은 어인 일로 두 분이서…”
“아빠가 까롤루쑤랑 같이 놀래!”
“그렇군요.”
황제의 지시라는 말에 다시 황자를 바라봤다.
“아우!”
내 시선을 눈치챈 듯 빵긋 웃는 황자.
귀엽기는 한데, 이제 막 기어다닐 것 같은 애를 왜.
‘무슨 생각인 거지?’
황제 이 새끼가 아무 이유 없이 황자를 내보낼 놈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