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42)
로판 속 공무원 742화(743/945)
늘 오던 손님인 황태녀에 이어 황자까지 손님으로 놀러 왔다.
아무리 우리 저택이 어린이집으로 변해가고 있다지만, 이제 막 기어다니기 시작한 황자까지 보내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이 어리고 어린 황자가 우리 저택에서 잘못되면 어쩌려고.
‘자기 자식을 그냥 내보낼 놈이 아닌데?’
여전히 방싯방싯 웃고 있는 황자를 품에 안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황제는 자식에 대한 애정이 넘치고, 그걸 굳이 숨기지 않는 성격이다. 황자가 태어나기 전에는 황태녀의 입지와 곧 태어날 둘째의 미래를 염려하며 한숨을 내쉴 정도였지 않나.
그런 황제가 황궁 밖으로 황자를 내보냈다. 솔직히 언젠가는 황자도 우리 저택에 올 줄 알았으나, 빨라도 걸음마를 뗀 이후일 줄 알았다.
“황제 폐하께서는 대부님의 드넓은 사랑이 황자 전하도 훌륭히 감싸 안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실로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내가 말없이 황자를 안고 있자 시녀장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어차피 내가 황태녀의 대부니까 겸사겸사 황자도 챙겨 달라는 부탁. 딱히 이상한 부탁은 아니고, 거절할 부탁도 아니나─ 가장 의문인 ‘왜 이 시기에.’가 풀리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나. 기껏 황궁 밖으로 나온 황자를 돌려보낼 수도, 친동생과 같이 논다는 기대감에 눈을 반짝이는 황태녀를 실망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성품은 아빠랑 반대네.’
그리고 황자의 머리는 황제와 똑 닮았으나, 해맑은 미소를 보니 성품만큼은 황제를 닮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아이를 냉정하게 밀어낼 수는 없지.
“전하. 오늘 하루는 제가 전하의 시종장이 되겠습니다.”
“우아!”
내 말에 황자는 다시 천사처럼 순수한 얼굴로 웃었다.
황제 따위가 황태녀에 이어 이런 아이까지 얻다니. 아무래도 황후의 유전자가 열심히 일한 모양이다.
“때부! 이제 까롤루쑤 내래져!”
“전하. 황자 전하께서는 처음 이 저택에 오신지라, 제가 직접 전하를 안내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니야! 까롤루쑤는 기어다니는거 조아해!”
예상치 못한 말이라 다시 황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기어다니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보통 성격이 활동적인 아이다. 우리 크라시우스 가문에도 어마어마한 활동력을 자랑하는 아이가 있고, 그 아이 덕에 타일글레헨 백작성은 수십, 수백 번 뒤엎어졌지.
그런데 이 조용하고 순수한 아이가 테레사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얌전한데?’
버둥거리기는커녕 내 품에 안긴 채 눈만 초롱초롱 빛내는 황자.
이상하다. 전성기 시절의 테레사였다면 이미 다섯 번은 울음을 터뜨렸을 상황이거늘. 아무리 봐도 황자는 테레사와 정반대인 것 같은데?
“내래져! 내려져!”
“아, 예, 전하.”
허나 황궁에서 황자와 함께 사는 황태녀의 증언이다. 황자를 어쩌다 가끔 보는 나보다 황태녀의 의견이 더 정확할 터.
“아우우!”
그렇게 저택 복도로 황자를 내려놓자, 황자는 내 품에서 조용히 있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빠른 속도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각개전투에 임하는 훈련병처럼 경이로운 속도.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지는 황자의 뒷모습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까롤루쑤! 가치 가!”
뒤이어 황태녀도 황자의 뒤를 따라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황자 전하께서는 어디 계시든 즐거워하십니다.”
“어디 계시든… 말입니까?”
“예. 침대에 눕혀드리면 곤히 낮잠을 주무시고, 품에 안으면 조용히 경치를 구경하십니다. 지금처럼 바닥에 발이 닿게 되면 누구보다 빠르게 기어가시지요.”
“그, 렇군요.”
상황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변하는 포지션. 무슨 상황에 처하든 불만을 표하지 않고 빵끗 웃기만 하는 포커페이스.
‘황제 자식 맞네.’
인정한다. 황자는 어리고 어린아이지만 황제의 적자가 맞다.
저 기묘한 처세술은 황제의 핏줄을 타고나야 선보일 수 있는 예술이다. 성인이어도 황제의 피가 없다면 재현하지 못하고, 아기라도 황제의 피가 있다면 본능적으로 행하는 예술.
‘…좋게 생각하자.’
잠깐 마음이 복잡해졌지만 이내 진정시켰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황자는 황제의 피를 이어서 처세술에 능한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밝게 웃을 수 있는 순수한 아이인 거다. 어른의 품에 안기는 것도, 누나와 함께 노는 것도 좋아하는 아이.
“아우!”
“그아아앗! 이 녀석은 또 뭐냐!”
“주, 죽음이시여! 괜찮으신─ 꺄아아악!”
얼마 지나지 않아 황자와 황태녀가 달려간 방향으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하필 근처를 지나가던 장생이와 리시안느가 리브노만 듀오에게 붙잡힌 모양이다.
장생이는 예나 지금이나 작은 체구와 귀여운 외견을 자랑한다.
이 녀석이 죽음이라 불리던 시절에는 어떻게 생겼을지 알 수 없으나, 볼 수 없는 과거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이 먼저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즉, 우리 저택에 처음 온 황자 입장에서는 작고 귀여운 장생이에게 환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우, 우우우!”
장생이를 끌어안은 채 해맑게 웃는 황자.
“그으으읏…”
차마 버둥거리지 못하고 황자에게 포박당한 장생이.
“죽음이시여… 이 또한 당신을 모시는 종에게 찾아오는 시련…”
덤으로 장생이 옆에 있던 리시안느까지.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이라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작은 아이와 작은 개와 작은 사람(이었던 것)이라니. 어디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장하다, 우리 장생이.’
그리고 황자는 막 기어다니기 시작한 만큼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작고 약한 존재다. 장생이가 작정하고 발버둥 치면 품에서 탈출할 수 있으나, 장생이는 그러지 않았다. 작게나마 발톱을 가진 장생이가 날뛰면 황자가 다칠 수도 있으니.
기특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아이가 다칠까 봐 자신의 고통을 감수한다? 이제 장생이도 아이들의 완벽한 놀이 상대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원래도 외모가 깡패라 완벽했지만 더욱 완벽해졌다.
“까롤루쑤! 얘가 쟝생이야!”
“아- 우?”
“얘는 리씨안느!”
“우우우?”
“맞아! 까롤루쑤 똑또캐!”
‘뭔데.’
그 와중에 황자 옆에 착 달라붙어있던 황태녀는 히히 웃으며 황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금 무슨 대화가 오고 간 거지. 내가 듣기에는 그냥 아우아우밖에 없었는데.
‘남매끼리는 생각이 통하나…?’
대단하다, 리브노만. 같은 혈족이라고 칼라를 공유하는구나. 나와 에리히와 테레사는 그런 거 못 하는데.
“칼.”
“아, 마르.”
“이번에도 장생이가 놀아주고 있었네요?”
그 말에 슬쩍 장생이를 돌아봤다.
이제는 귀가 쪽쪽 빨리고 있는 장생이가 보였다.
“저걸 놀아준다고 표현해도 되나 싶어.”
“아이들은 좋아하니까요. 게다가 장생이도 말로만 싫다고 하지, 은근히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복도에서 어슬렁거려요.”
정말 힘들면 숨어서 안 나오지만요.
쿡쿡 웃음을 흘리던 마르는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나에게 건넸다.
“여기 리제가 만든 쿠키예요. 황자 전하는 아직 못 드시겠지만, 황태녀 전하를 생각해서 초코 쿠키 위주로 구웠대요.”
“초코야? 황후 폐하께 들키면 조금 혼나겠는데.”
“후후, 황궁으로 돌아가기 전에 열심히 이 닦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틀린 말은 아닌지라 나도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 황태녀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열심히 이만 닦으면 들킬 확률은 적지.
“그런데 조금 신기하네요.”
“뭐가? 황태녀 전하가 쿠키 좋아하는 거? 아카데미 때는 리제가 이상한 조리법에 눈을 떠서 그런 거지, 원래 실력은 좋았어.”
“아, 아뇨. 그거 말고요.”
슬쩍 황자와 장생이를 가리킨 마르가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린아이라면 동물을 무서워할 수도 있는데, 황태녀 전하도 황자 전하도 그런 기색이 없어요.”
“그건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지 않아?”
“우리 애들은 태어나자마자 티티랑 성수들이 놀아주잖아요. 같은 조건으로 보기는 힘들죠.”
순간 상황의 동물농장이 생각났지만 애써 털어냈다. 황궁 한구석에 있는 동물농장과 같은 저택에 펼쳐진 동물농장은 다른 법이니.
“황가의 피에 일개 짐승마저 품을 수 있는 자비로움이 있나 봐.”
그렇기에 기습 황가 숭배로 마르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결론이 나올 수 없는 의문이라면 ‘아무튼 황가가 위대해서 그런 거임.’으로 마무리하는 게 무난하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마르도 내 마음을 이해한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제를 넘기기 위해 내뱉은 무난한 대답. 그러나 의외로 이 대답이 가장 그럴듯한 가설이기도 하다. 리브노만의 중시조인 상황은 실시간으로 동물농장을 플레이 중이고, 상황의 손주인 황태녀와 황자는 동물을 물고 빠는 중이다. 리브노만의 피에 동물 애호 본능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 사이에 낀 황제는 딱히 동물에 대한 애정을 보인 적이 없어서 애매하지만,
‘짐승보다 더한 새끼한테 시달렸으니 어쩔 수 없지.’
애석하게도 황제는 짐승보다 미친 새끼에게 시달린 경험이 있다. 도르고스라는 이름의, 혹은 2황자라는 이름의 새끼에게…
그러니 어쩌겠나. 인간 실격, 짐승 미만의 존재에게 시달린 트라우마는 황제에게 동물 애호는커녕 혐오 본능을 심어주어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뺨은 2황자가 후렸지만, 이 대륙에 그 새끼 같은 괴물이 더 존재할 리가 만무. 대충 2황자와 가장 유사한 존재인 짐승을 대신 꺼려 할 수밖에 없다.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이 자라를 보고도 술렁이는 것처럼.
“때부! 때부!”
황제의 성장기에 유감을 표하는 사이, 황자, 장생이, 리시안느와 놀던 황태녀가 쪼르르 달려왔다.
“예, 전하. 필요한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뻬디는 어딧써? 뻬디한테 까롤루쑤 보여줄래!”
친동생과 페디를 인사시키겠다는 말에 가슴이 절로 훈훈해졌다.
황자가 바로 옆에 있어도 마음의 동생인 페디를 잊지 않았구나. 황태녀가 황제로 즉위한다면 훌륭한 성군이 될 거다.
***
황태녀, 황자와 함께 장관의 저택에 갔던 시녀장은 다소 유감스러운 보고를 올렸다.
[ 황태녀 전하께서는 페르디난트 영식과 황자 전하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셨으며, 그 후로는 셋이서 대부의 저택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또한 페르디난트 영식은 황자 전하에게 큰 관심과 호의를 보였고, 황자 전하도 페르디난트 영식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셨습니다. ]페디에게 향할 황태녀의 관심을 줄이기 위해 황자를 옆에 붙였으나, 도리어 황자도 페디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보고를.
안타까운 일이다. 그 셋이 사이좋게 놀았다면 환영할 일이기는 한데, 지금은 불안한 미래를 억누르는 게 우선이다. 황자는 페디의 대항마가 되어야지 협력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문득 자괴감이 들었다. 가장 연장자인 황태녀도 아직 5살이거늘, 벌써 황태녀의 연애를 걱정하며 견제니 관심이니 대항마니 협력자니… 이게 대체 무슨 망상인가.
가장 서글픈 점은 내 행동이 추하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제2의 장관 사태가 터지면 안 된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페디의 피가 너무 두렵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