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43)
로판 속 공무원 743화(744/945)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쉬워진다.
아이가 놀러 오는 것에 어렵니 뭐니 하는 것도 조금 우스운 일이지만, 아무튼 황자의 저택 방문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았다.
“때부! 우리 왓써!”
“아우!”
“어서 오십시오, 황태녀 전하. 황자 전하도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우우!”
황태녀가 세 번 놀러 오면 한 번 정도는 같이 오는 황자. 오늘도 시녀장의 품에 얌전히 안긴 황자는 내 인사에 빵싯 웃으며 양팔을 허우적거렸다.
볼 때마다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금발 자안의 인간들은 상황, 황제, 2황자, 아인테르밖에 없었다. 각각 다른 의미로 임팩트가 강한 인간들이었는데, 이제 내 마음속 ‘금발 자안’에 황자도 추가되었다. 이렇게 귀엽고 순수한 황자가.
그 덕에 황제를 떠올릴 때마다 언짢았던 감정이 다소 줄어들고 있다. 황제 보고 빡친 가슴, 황자를 보며 달래는 중이니까.
“전하. 오늘도 전하의 시종이 될 아이를 준비했습니다.”
“우─”
내 말에 황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한 일이다. 만으로 1살도 되지 못한 황자가 내 말을 알아듣다니. 황자가 천재인 걸까, 아니면 우연히 고개를 기울인 것에 불과한 걸까.
‘원래 애들은 다 이런 건가?’
생각해 보면 황태녀는 물론, 내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은근히 말을 알아듣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긴 문장을 말하면 멍하니 눈만 깜빡이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짧게 말을 걸면 나름의 반응을 보였다. 기뻐할 만한 말을 하면 꺄르르 웃었고, 궁금증을 유발할 만한 말을 하면 고개를 갸웃거렸지.
아니, 어쩌면 말의 내용이 아니라 표정이나 목소리 톤으로 짐작하는 걸 수도 있다.
‘아무렴 어때.’
잠깐 솟아올랐던 의문을 억누르고 뒤에 숨겼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황자가 내 말을 알아들었든 말든, 이다음 행동으로 인해 기뻐할 것이 분명하니까.
“오늘 하루, 황자 전하의 시종이 되어줄 삐약이입니다.”
“난 겸손이다, 주인. 대체 내 이름은 어디까지 추락하는 건가…”
내 손에 올라와 있던 삐약─ 아니, 겸손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우우!”
허나 그 씁쓸함은 황자에게 닿지 않았다.
성수들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는 장생이. 그리고 그런 장생이보다도 압도적으로 작은 겸손.이 작고 소중한 동물의 등장에 황자의 눈은 반짝였고, 느릿느릿 움직이던 양팔은 더욱 거세게 허공을 휘저었다.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열렬한 반응인지라 내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역시 예상한 반응이 나왔다. 겸손을 제물로 바치면 황자가 좋아할 줄 알았지.
“전하. 직접 만지고 싶으십니까?”
“우! 우!”
슬쩍 겸손을 앞으로 내밀자 황자도 겸손에게 양손을 뻗었다. 마치 빨리 달라고 떼를 쓰는 것처럼.
“조심해서 만지셔야 합니다.”
“주인. 저 녀석의 화려한 손동작 좀 다시 보는 건 어떤가? 저 손에 잡히면 내 몸은─ 그아아아악!”
겸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겸손은 황자의 손에 잡혔다.
아직 어린아이라 힘 조절이 미숙한지 겸손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으나, 그동안의 경험상 저 비명은 엄살 겸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한 퍼포먼스다.
‘아무리 신격을 잃었어도 신이었던 존재지.’
성수들이 불멸의 존재에서 필멸의 존재로, 위엄 넘치는 신에서 아기자기한 동물의 모습으로 전락한 건 맞다. 그러나 동물인 것들이 사람 말을 하고 다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녀석들은 평범한 동물과는 거리가 멀다.
그 거리가 먼 특징 중 하나가 튼튼한 육체다. 아마 튼튼하지 않았다면 성수 중 셋이나 넷 정도는 에넨의 곁으로 갔을 거야. 그만큼 성수들은 요 몇 년 동안 어마어마하게 시달렸으니까.
‘힘내라.’
그렇기에 그에엑 거리는 겸손을 속으로 응원했다.
넌 버틸 수 있다, 겸손아. 넌 우리 저택의 자랑이야.
“때부, 때부!”
“예, 전하.”
“나두 시종 필요해! 시종!”
“좋습니다. 오늘은 누구와 노실 건지요?”
“정-결!”
황태녀의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결. 한때는 음욕이라 불렸으나 지금은 하루의 절반 정도를 수면에 투자하는 히키코모리 백수. 근면과 더불어 우리 집 성수 중 가장 느긋하고 게으른 녀석.
허나 작은 여우 형태라 그런지, 아이들의 살아있는 여우 모피 목도리로 활용당하는 가여운 성수.
“사실 정결이 말인데, 전하를 기다리다가 졸고 있습니다.”
“진짜!?”
당연히 거짓말이다. 정결은 누군가와 놀기 위해 기다릴 만큼 여유롭고 활동적인 성격이 아니다.
“물론이지요. 언제 전하가 오시나 애타게 기다렸으니, 자고 있던 정결이를 안아주면 기뻐할 겁니다.”
“와아!”
그래도 어쩌겠나. 황태녀의 작은 기쁨을 위해서라면 황태녀의 선택을 받은 정결을 팔아야지.
황태녀가 정결하고만 놀지는 않겠지만, 정결을 일일 시종으로 삼았다면 주로 만지작거릴 대상은 정결이다. 그만큼 다른 성수들에게 여유가 생기니, 성수들의 우는소리도 줄어들 터.
“정결이! 나 왔서!”
정결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복도 너머로 달려가는 황태녀.
그 모습을 시녀장과 함께 흐뭇한 얼굴로 보다가, 시녀장의 품에 있던 황자를 건네받았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부님.”
“부탁이라고 하실 것도 없습니다. 대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자연스레 내 품에 안긴 황자는 두 눈을 깜빡였고,
“아우!”
잠깐 놀다 오겠다는 듯 시녀장을 향해 한 손을 붕붕 흔들었다.
반대쪽 손에 겸손이 잡혀있는 건 말할 것도 없으리라.
***
때부 집애 오니까 재밋어!
원래도 좋았찌만, 까롤루쑤랑 같이 오니 더 죠아!
“정결이도 그러치!?”
“…그래. 뭐. 그렇지.”
때부의 말처럼 코코 자고 있던 정결이. 내가 오자 깜쨕 놀라며 반겨주던 정결이.
그런 정결이도 내가 맞다고 해줫다. 역시 다들 까롤루쑤를 좋아하는게 틀림없써!
“누나.”
– 멍!
“뻬디! 띠띠!”
“카롤루쑤는 어딧서?”
뻬디의 말에 기분이 좋아졋다.뻬디도 카롤루쑤를 좋아하고잇다.
“까롤루쑤는 삐약이랑 잇서!”
“삐약이?”
“겸손이! 그치만 오늘은 삐약이야!”
때부가 삐약이라고 햇스니까. 그럼 오늘은 삐약이가 마자!
“그럼 우리두 삐약이한태 가쟈.”
“웅!”
– 멍!
뻬디의 말에 그러자고 말했따. 나도 뻬디랑 까롤루쑤랑 셋이서 재밋게 놀고시퍼.
그러케 점심 먹꼬 놀고, 쿠키랑 쪼꼴릿도 먹고 다시 놀앗고,
“우우…”
“까롤루쑤?”
이제 집으로 도라가야 하는대 까롤루쑤가 이상햇다.
“아무래도 황자 전하께서 삐약이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삐약이가?”
때부의 말애 까롤루쑤 손애 있떤 삐약이를 봤다.
삐약이가 귀엽끼는해. 짝고 귀여워서 나도 삐약이가 조아. 삐약이말구 띠띠랑 쟝생이랑 다른애들도 좋지만!
“까롤루쑤! 이재 집에 가야대!”
“우우우…”
내 말에 까롤루쑤는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더니 바닥에누웟다.
“이런. 더 놀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까롤루쑤! 안대! 집애 가야대!”
“우우!”
까롤루쑤가 실어하는거 같아 나두 죠끔 화가났다.
나두 때부 집에 더 잇구 시픈데. 뻬디랑 동생들이랑 동물들이랑 더 놀구 싶은대.
그치만 아빠랑 엄마가 저녁애는 집으로 돌아오랫서. 저녁애는 가치 있어야한다구 했단마리야…
“까롤루쑤! 일어나!”
“우우우!”
“땍! 쟈꾸 그러면 삐약이 버릴꺼야”
“아니, 가만히 있던 나는 왜…”
까롤루쑤를 새우려고 햊지만 까롤루쑤는 무거웟다.
까롤루쑤 대단해! 저번애는 가벼웟는데 무거워졋어! 빨리 자라고잇서!
‘아, 아냐.’
히히 웃었찌만 웃으면안대. 엄마가 화낼때는 화내야핸다고 햇서.
그치마아안… 까롤루쑤 쑥쑥 크는거… 조은 일인대…?
“어쩔 수 없군요.”
“웅?”
때부의 말애 때부를 봣다.
“삐약이를 황자 전하께 드리는 건 무리지만, 그 대신으로 드릴 건 있습니다.”
“대신?”
“예. 물론 황태녀 전하 것도 있으니 같이 드리지요.”
선물을 주갯다며 사라진 때부는 쟉은 인형 두개를 들고 돌아왓다.
“장생이랑 삐약이 인형입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웅! 귀여어서 죠아!”
“황자 전하께서는 어떠신지요?”
“우…”
까롤루쑤도 때부가 든 인형을보더니 삐약이를 놔줫따.
역시 까롤루쑤! 착해!
***
다소 의외인 보고가 올라왔다.
“황자가 장관의 저택에서 떼를 썼다라.”
“떼를 쓴 것은 아니옵고, 장관이 기르는 동물들에 큰 관심을 보이셔서─”
“돌려 말할 필요 없다. 아직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러자 보고를 올리던 로만 경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상황인 내 앞에서 황자가 떼를 썼다고 말하기에는 부담스럽겠지.
허나 로만 경의 심정과 별개로 의외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무얼 해도 해맑게 웃고, 누가 안아도 좋아하는 황자가 떼까지 쓰며 고집을 보였다.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다.
동시에 기껍기도 했다. 황자에게도 떼를 쓸 만큼 좋아하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뜻이지 않나. 아직 어린 녀석이 웃기만 해서 조금은 걱정이었거늘.
“로만 경.”
“예, 상황 폐하.”
“황자가 어찌하여 장관의 저택에 애착을 보였는지 아는가?”
“그것이, 아무래도 장관이 기르는 짐승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가.”
납득할 수 있는 사안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장관이 기르는 짐승들은 사람의 말을 할 줄 알고,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지능을 갖춘 존재들. 성인이 봐도 신기한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특히 병아리에게 큰 관심을 보이셨다고 합니다.”
“병아리?”
“예, 폐하.”
무심코 고개가 마당으로 향했다.
너겟, 프라이드, 오븐은 최근 몇 년 동안 열심히 번식하였고, 적지 않은 숫자의 알이 병아리를 거쳐 닭까지 성장했다. 그렇게 성장한 닭들도 알을 낳을 수준에 이르렀으니, 마당에는 수십의 병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병아리는 여기에도 많거늘.”
“말을 할 줄 아는 병아리는 장관에게만 있지요.”
틀린 말은 아니라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로만 경이 물러난 후, 마당을 누비던 병아리 중 하나에게 손을 뻗었다.
– 뺙!
미물이어도 먹여주고 재워주는 주인은 알아보는지, 병아리는 내 손에 올라타 울어대기 시작했다.
말을 하는 병아리. 말을 하는 병아리라…
“크펠로펜.”
– 뺙?
“리브노만.”
– 뺙뺙!
흠.
‘역시 이건 안 되겠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어 몇 개를 병아리에게 알려주었으나, 병아리는 여전히 삐약거리는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아쉬운 일이다. 황자가 좋아하는 병아리가 황궁에도 많다면 좋았을 터인데.
‘어쩔 수 없지.’
손에 올라탄 병아리를 몇 번 쓰다듬어준 후, 도로 마당에 내려주었다.
황자에게 선물을 주지 못하는 건 아쉬우나, 안 되는 일에 집착하는 건 우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