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44)
로판 속 공무원 744화(745/945)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한 점도 없으며, 햇볕은 따사로웠다.
‘뭐 하지.’
마음이 뻥 뚫릴 것 같은 경치였으나 내 몸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한여름이 되어갈수록 해가 떠있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지만, 정작 해가 떠있는 동안 마땅히 할 게 없으니까.
더워서 바깥을 돌아다니기는 귀찮고, 호수에서 아버지와 낚시를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면 끝날 일이고, 에리히는 제수들이랑 놀러 갔는지 보이지를 않고, 황제는 웬일로 나를 찾지 않았다.
일정 없이 무작정 쉴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분명 기쁜 일이기는 한데, 막상 고요한 나날이 이어지니까 몸이 좀 쑤셨다.
‘여행을 갈 수도 없고.’
침대에 누운 채 애꿎은 배만 벅벅 긁었다.
사실 본래 예정대로라면 에리히의 결혼 전, 혹은 직후에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마르와 여행을 다녀왔으니 다음은 리제 차례지.
하지만 내가 제레노 왕국으로 떠난 사이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마음 편히 여행을 갈 수 없었다.
‘적어도 메리가 기어다닐 정도로 커야 돼.’
내가 없는 사이 펑펑 울며 아빠를 찾던 메리. 졸지에 우리 막내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말았는데, ‘미안. 아빠가 좀 바빠서.’ 같은 마음으로 다음 여행을 떠날 수는 없다. 그딴 짓을 하면 메리에게 고려장을 당해도 할 말이 없어.
그렇기에 다음 여행은 빨라도 가을, 늦으면 겨울 정도다. 메리가 봄 중에 태어났으니 겨울 즈음에는 기어다닐 테니까. 무려 일곱의 아이를 기르며 확보한 빅-데이터니 확실하다.
‘그냥 애들이랑 같이 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빠르게 털어냈다.
이 여행은 가족 여행이 아니라 뒤늦은 신혼여행이다. 나랑 부인들은 당연히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래도 신혼여행은 둘이서 즐기는 게 옳지 않나.
게다가 티티와 성수들, 사용인들이 투입되어야 겨우 커버할 수 있는 아이들의 체력을… 고작 둘이서 감당하는 건…
‘와.’
나도 모르게 손이 파르르 떨렸다. 대륙 제일 검이어도 무한한 체력 앞에서는 답도 없지.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가을이나 겨울까지는 여름잠을 잔다는 느낌으로 저택에 박혀있는 수밖에.
– 멍!
“너도 심심해?”
– 멍멍!
침대 옆에 앉아 헥헥거리는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흐으으음…”
그리고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때 아이들에게 시달려 낑낑거리던 티티였으나, 타일글레헨 백작령으로 긴급 휴가를 떠난 후로는 다시 원래의 기력을 되찾았다. 주인이 더위를 피해 저택에 처박힌 반면, 티티는 저택 내부는 물론 바깥으로 놀러 가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골든 리트리버가 온순한 종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형견은 덩치에 맞는 활동을 해야 우울증이 오지 않는 법. 티티를 위해서라도 적당한 운동과 놀 거리를 제공해 줘야 하는데,
‘귀찮은데.’
이러면 안 되지만 귀찮다. 몸은 할 짓이 없어서 찌뿌둥했지만 막상 나가려고 하니 귀찮다.
다행히 내가 더위나 추위에는 내성이 있는 편이나, 그래도 한여름에 제도를 돌아다니는 건 좀. 얼굴에 직통으로 꽂히는 햇볕과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아무리 내성이 있어도 거슬린다.
그렇다고 매정하게 티티를 외면한다면 티티가 서운해할 터. 우리 가족이 티티 덕에 얼마나 편한데 그깟 산책 좀 못 시켜줄까.
…
‘나가기만 하면 되는 건가?’
협탁 위에 있던 만년필을 바라봤다.
나는 나가기 싫다. 부인들과 사용인들도 최대한 더위를 피하는 중이다. 반면 티티는 혼자서도 멀쩡히 뛰어놀 수 있다.
그래, 티티라면 혼자서도 괜찮을 거다.
“티티야.”
– 멍?
“천 하나만 가져올래?”
– 멍!
내 부탁에 티티는 빠르게 방을 뛰쳐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색 천을 물고 왔다.
좋아. 색깔도 재질도 크기도 딱이다.
“잠깐만 가만히 있어.”
그러자 티티는 입도 꾹 다물며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입도 다물라는 건 아니었는데.
“됐다.”
아무튼 티티가 물고 온 천을 티티의 몸에 옷처럼 두른 후, 만년필로 끄적끄적 글씨를 적었다.
[ 이 개는 명예로운 제국 행정부의 감찰성 장관이자 제국의회 귀족원의 의원이며 리시자리우네 기사단원인 타일글레헨 백작의 비호를 받는 개이다. 만일 이 개를 제도 밖에서 발견할 경우 제도의 타일글레헨 백작 저택, 혹은 타일글레헨 백작령의 백작성으로 인도하라. 이 개에게 선의를 베푸는 자는 백작의 호의를 받을 것이며, 악의를 보이는 자는 응징을 받을 것이라. ]다소 긴 문장이지만 티티가 주인 있는 개라는 걸, 그 주인이 화가 나면 인생이 다소 꼬일 수 있다는 걸 명확하게 적었다.
‘마지막으로 혹시 모르니까.’
문장의 끄트머리에 백작 인장과 장관 인장까지 찍었다.
완벽하다. 이제 티티가 혼자 제도를 돌아다녀도, 인생에 미련이 없는 미치광이가 아닌 이상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할 거다.
…
“티티. 트릭시 좀 불러줄래?”
– 왈!
두 번째 부탁이지만 티티는 아무런 불평 없이 쪼르륵 문밖으로 나갔다.
만약의 만약을 대비해서 티티한테 방어 마법이랑 위치 추적 마법도 걸어두자. 극악의 확률로 인생에 미련 없는 미치광이가 출몰할 수 있으니까.
***
주인님이 산책을 허락해 줬어요!
주인님이랑 같이 가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난 혼자서도 잘 놀다 올 수 있으니까!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와. 도중에 배고프거나 목마르면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부탁하고. 신원도 확실하고 돈주머니도 달아뒀으니 쫓아내지는 않을 거야.”
– 멍!
게다가 주인님은 나 혼자서도 잘 놀 수 있게 여러 준비를 해줬어요! 주인님의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내 옆에! 그렇다면 주인님이랑 같이 산책하는 거 아닐까요?
분명 그럴 거예요! 주인님은 상냥하고 좋은 분이니까 언제나 마음으로 함께 있어요!
“흐으음.”
내 머리를 잔뜩 쓰다듬어주던 주인님은 쪼그려 앉으시더니, 내 코를 살짝 때렸어요.
하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어요! 신기해요, 주인님은 엄청 힘이 센 분인데?
“효과 확실하네.”
– 왈왈!
기분이 좋은 듯 웃는 주인님을 향해 나도 웃었어요.
주인님이 기쁘면 나도 기뻐!
“…조금만 더 쓸까?”
– 멍?
그렇게 말한 주인님은 내 몸을 잡더니, 몸에 두른 천에 무언가 쓰기 시작했어요.
간지러웠지만 꾹 참았어요. 이것도 주인님이 나를 위해 주는 선물이니까!
“위리디아 백작위도 적고, 레온 쪽 작위도 적고, 대부인 것도 적고… 또 뭐가 있었더라.”
조금 길어지는 것 같지만 그것도 괜찮아요! 주인님이 주는 거면 다 좋아!
주인님 집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갔어요!
역시 난 밖이 좋아요! 안에서 작은 주인님들이랑 노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집보다는 밖이 더 넓잖아요!
두근거려요. 주인님이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라 했었죠? 그럼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마음껏 놀아도 된다는 말!
– 왈!
그래서 힘차게 달리며 거리로 나섰어요. 조금 덥기는 하지만 좋은 날씨예요! 뛰어놀기 딱 좋은 날씨!
“음? 웬 개지?”
“아니, 누가 개를 줄도 없… 어?”
“저 문장은…?”
달리다가 다른 사람들과 마주쳤지만, 다들 옆으로 피해줬어요!
친절한 사람들이에요! 주인님이랑 산책할 때도 다른 사람들은 나랑 주인님이 가기 쉽게 길을 피해줬어요! 여기 사람들은 다 마음씨가 좋은 것 같아요!
“방금 문장, 분명 타일글레헨 백작의─”
“마침 백작 각하가 기르는 개와 똑같이 생겼군. 물론 비슷하게 생긴 개일 수도 있으나, 어떤 개가 각하의 문장이 찍힌 채 돌아다니겠나.”
“글도 적혀있었던 것 같은데. 자네는 봤나?”
“순식간에 지나가서 못 봤네.”
저 뒤에서 길을 비켜준 사람들이 나랑 주인님에 대해 얘기하는 게 들렸어요!
기뻐요! 주인님이 나한테 준 선물! 다들 알아봐 주고 있어요!
‘주인님 최고!’
아까도 좋았지만 기분이 더 좋아졌어요! 이제 난 놀기 위해서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주인님의 선물을 보여주기 위해 돌아다닐 거예요! 그래야 주인님이 나를 아끼고 사랑해 준다는 걸 모두에게 알려줄 수 있으니까!
“어? 티티?”
“진짜네. 너 왜 혼자 있어?”
그렇게 곳곳을 누비던 중,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어요.
주인님이랑 산책을 하다가 만나면 주인님이 칭찬해 주는 사람들! 이 거리를 지켜준다는 사람들이에요!
– 멍멍!
반가워요! 반가워요!
“너 도망친 건 아니지?”
– 으르르릉…!
그치만 방금 한 말은 반갑지 않았어요.
주인님의 집에는 주인님이랑 마님들, 작은 주인님들이 있어요! 나를 귀여워해 주는 사람들이랑 내 친구들도 잔뜩 있어요! 그런데 내가 왜 도망치겠어요! 난 평생 거기서 지낼 거예요!
“티티 화났잖아. 어떻게 할 거야.”
“흐흐, 미안해. 혼자 다니길래 조금 놀라서 그랬어.”
– 멍!
그래도 바로 사과했으니 봐드릴게요! 이제 화 안 났어요!
“아.”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주인님의 선물을 보고 놀랐어요.
대단하죠? 부럽죠!? 주인님이 저한테 직접 준 선물이에요! 다들 보면 깜짝 놀라고 시선을 떼지 못했어요! 분명 부러워서 그런 거예요!
“역시 티티가 우리보다 신분이 높아.”
“무슨 소리… 아.”
다른 사람도 주인님의 선물을 보고 웃었어요.
“그러네. 하긴, 각하께서 티티를 애지중지하시기는 하지.”
“솔직히 나였어도 티티 같은 개 있으면 물고 빤다.”
“너도? 나도.”
물고 빤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작은 주인님들은 나랑 친구들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우리 털을 물거나 빨거든요! 그만큼 이 사람들도 저를 좋아한다는 거겠죠?
“참, 우리 티티 간식 줘야지.”
“아, 나도.”
간식을 준다는 사람들의 말에 몸을 열심히 흔들었어요.
주인님은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면 돈주머니가 있으니 아무 가게나 가라고 했어요! 그럼 돈을 주고 먹으라는 거겠죠?
“응? 티티 목에 뭔가 있는데?”
“목 무거우니까 빨리 달라는 건가? 크흐, 알겠어 임마.”
– 멍멍!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많이 배고팠나 보네. 이렇게 보채는 건 처음인데?”
아니에요! 주머니만 보지 말고 안을 봐요!
“자! 여기 육포! 특별히 개가 먹을 수 있게 만든 거야!”
– 끼이이잉…
결국 주인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그냥 간식을 받고 말았어요…
간식을 준 고마운 사람들 뒤로도 여러 사람들을 만났어요. 작은 주인님들처럼 작은 사람들은 나를 만졌지만, 큰 사람들은 내가 가기 편하게 길을 비켜줬어요.
나도, 큰 사람들도 덩치가 있으니 배려해 준 거겠죠? 정말 고마워요!
‘여기는 처음 오는데.’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처음 오는 구역에 도달했어요.
주인님의 집보다는 작지만, 여러 집들이 모여있는 곳! 거리도 깨끗하고 조용한 곳!
처음 오는 곳이지만 그래서 좋아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 멍?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엄청난 걸 보고 말았어요.
주인님의 집처럼 딱딱한 막대로 막혀있는 입구. 그 입구 앞에 누워있는 나랑 비슷한 크기의 친구.
그 친구도 나를 봤는지 빤히 내 눈을 봤지만, 금방 고개를 돌렸어요. 매정한 반응이라 서운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서운함보다 다른 마음이 들었어요.
‘엄청난 미견…!’
가슴이 두근거려요! 주인님의 칭찬을 들을 때, 작은 주인님들이랑 놀 때와는 다른 의미의 두근거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