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45)
로판 속 공무원 745화(746/945)
흠.
흐으으으음.
‘이상한데.’
만년필로 이리저리 선을 그은 지도를 보며 턱을 매만졌다. 아무리 봐도,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경로가 왜 이러지?’
산책을 갈망하는 티티, 외출하기 귀찮은 나. 이 모순 속에서 둘 다 행복할 수 있게 티티를 바깥으로 내보냈다. 물론 티티가 사고에 휘말리지 않게 온갖 조치를 취했고, 그중에는 티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 추적 마법도 존재했다.
덕분에 티티가 어디를 누비고 다녔는지, 어디서 얼마나 있었는지 완벽히 파악할 수 있었는데─
‘한 곳에 몇 시간이나 있었잖아.’
제도 내에서도 티티가 유독 오래 머무른 장소가 있었다. 10분, 20분 정도가 아닌 2시간, 3시간 동안이나.
기이한 일이다. 몇십 분 단위면 티티가 잠시 쉬어갔나 보다, 라고 생각했을 거다. 날씨가 날씨니 털복숭이인 티티도 지칠 법하지. 그런데 그렇게 놀고 싶어 했던 티티가 몇 시간 단위로 휴식을 취했을 것 같지는 않다.
‘중견 간부나 주요 전력이 거주하는 곳이었나.’
게다가 티티가 뿌리박은 지역은 제도에 위치한 거주 구역 중, 행정부의 중견 간부나 기사, 마법사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다. 귀족의 반열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평민이라고 하기에는 가진 게 많은 제도의 척추들.
그리고 티티는 그 척추들과 큰 연이 없다. 차라리 귀족 거주 구역에 머물렀으면 내 지인이 티티하고 놀아줬나 싶었을 텐데.
‘납치라도 당한 건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미치광이 하나가 뽈뽈뽈 돌아다니던 티티를 납치한 건 아닐까, 라고.
하지만 납치라고 하기에는 티티의 이동 경로가 너무 평온했고, 해가 지기 전에 자기 발로 복귀했으며, 돌아온 티티의 표정도 해맑기 그지없었다. 납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별일 아니겠지.’
한참이나 지도를 보다가 슬며시 지도를 접었다.이상한 경로지만 문제가 있는 경로는 아니다.
애초에 티티한테 아무런 피해가 없다면 굳이 개입할 필요도 없고, 티티 혼자 떠난 산책은 처음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것이 옳다. 주인이라는 놈은 나가기 귀찮아서 집 안에만 있었는데, 홀로 산책을 다녀온 개에게 ‘너 여기 왜 갔어?’ 라고 추궁하는 것도 웃기잖아.
그래, 그러니 그냥 두자. 티티에게도 자유로운 산책의 권리가 있으니까.
라고 넘어가기에는 티티의 이상 행동이 일주일이나 지속됐다.
‘대체 뭐지.’
혼란스럽다. 분명 산책 첫날에는 다른 지역을 구경하다가 척추들의 거주 지역으로 향했는데, 둘째 날부터는 산책과 동시에 척추 거주 지역으로 직행했다.
그러고는 넓은 거주 지역 중에서도 같은 곳에만 머물렀다. 일주일 내내 같은 저택 앞에서만.
‘거의 10시간…’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제도의 태양은 일찍 뜨고 늦게 저문다. 티티는 거의 해가 뜨자마자 제도 산책을 개시하니, 과장 좀 보태면 10시간이나 이 정체 모를 집 앞에 머무는 것이다.
실로 기이한 일이다. 우리 사랑스러운 티티가 남의 집에 10시간이나 있어? 아무리 티티가 해가 지기 전에 복귀해도 그냥 넘어가기 애매한 사안이다. 대체 무슨 사특한 방법으로 우리 티티를 홀린 거야.
그렇기에 티티의 자율에 맡긴다던 생각은 슬그머니 철회하였고,
“냄새를 막는 마법이란다. 티티는 후각이 좋으니까, 아무리 숨어도 냄새를 막지 못하면 금방 들키겠지.”
“좋아. 이러면 들킬 일은 없겠네.”
트릭시의 도움을 받아 티티를 미행하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민망하기는 하다. 나가기 귀찮아서 자동 산책이라는 기괴한 방식을 택했으면서, 이제는 티티의 뒤를 밟기 위해 마법까지 쓰고 있다. 티티가 이런 주인의 모습을 본다면 경멸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민망함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우리 티티가 나도 모르는 곳에서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는 않았나, 저 정체 모를 저택의 주인이 티티를 홀린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애완동물을 지키는 게 주인의 의무.’
막 정문을 통과한 티티를 보며 다짐했다.
티티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내 자그마한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기르는 애완동물에게 이상한 수작을 부렸다면, 그건 내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한 번 정도는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명분이라도 있어야 덜 민망할 것 같아.
***
오늘도 산책을 나왔어요!
그치만 지금 중요한 건 산책을 즐기는 게 아니에요! 산책보다 10배! 100배는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 멍!
주인님의 집에서 나오자마자 열심히 달려갔어요!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조금이라도 더 그 친구를 볼 수 있어요!
윤기가 흐르는 털과 까만 눈동자가 아름다운 친구! 나한테 큰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친구!
– 멍멍!
내 친구 제니! 오늘도 제니를 보러 왔어요!
“너 또 왔니?”
“제니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 우리 제니 인기 많다.”
그리고 제니가 있는 집에 도착하자 집을 지키던 사람들이 반겨줬어요!
이 사람들도 우리 주인님 집을 지키는 분들처럼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겠죠? 이 집을 지키고, 제니도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에요!
반가워요! 고마워요! 앞으로도 자주 봐요!
– 멍멍! 멍!
“하하. 그러다 꼬리 떨어지겠다.”
“제니가 네 반만 닮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니는 너무 새침해서 우리가 인사를 해도 반응이 없는데.”
그건 이상한 말이에요! 제니는 새침하고 무심한 게 매력적이에요! 나는 제니의 모든 모습을 좋아해요! 저를 닮지 않아도 돼요!
물론 제니가 나를 반겨주면 주인님이 안아주는 것만큼, 주인님이 칭찬해 주는 것만큼 기쁘겠지만!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제니는 제니인 것 자체로 좋으니까!
그러니 제니가 엎드려 있는 것도, 나를 힐끔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은 것도 괜찮아요! 나를 무시해도 상관없어요! 난 제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아, 타일이 왓따!”
“아가씨?”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씨.”
“웅! 조은 아침!”
그렇게 제니의 집을 지켜주는 사람들과 계속 놀고, 엎드려 있던 제니를 계속 보던 중. 제니의 집에서 작은 주인님 크기의 작은 사람이 나왔어요.
작은 주인님들 중에서도 가장 큰 작은 주인님과 비슷했어요! 어쩌면 가장 큰 작은 주인님보다 살짝 큰 것 같기도 해요! 주인님 집에 자주 놀러 오는 작은 사람 정도 크기였어요!
“타일이! 안녕!”
– 멍! 멍!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제니도 잘 잣서?”
– 멍.
작은 사람이 나오자 엎드려있던 제니도 일어났어요! 심지어 작은 사람에게 다가가 볼을 핥아주기도 했어요!
역시 제니는 예쁘고 매력적이에요! 무심해도 작은 사람한테는 친절하잖아요!
“히히, 간지러~”
그러자 제니는 더 빠르게 작은 사람을 핥아줬어요!
맞아요! 작은 사람들은 저렇게 하면 좋아해요! 우리 작은 주인님들도 그러니까요!
“맞따. 타일이도 안으로 드러와!”
작은 사람의 말에 집을 지키던 사람들이 문을 열어줬어요.
주인님의 집보다는 작지만, 문 뒤로는 뛰어놀 수 있는 정원이 있었어요! 제니는 여기서 생활을 해서, 저도 이 정원이 마음에 들어요!
아, 당연히 주인님의 집이랑 주인님의 정원이 최고지만!
“타일이도 간식 머글랭?”
“저기, 아가씨.”
“웅?”
“타일이라는 이름은 조금… 차라리 멍멍이라고 하시는 건…”
“멍멍이는 별루야! 여기 타일이한태도 타일이라고 적혀잇잔아!”
작은 사람의 말에 집을 지키던 사람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어요.
“아가씨. 이건 타일이가 아니라 타일글레헨… 아니, 아닙니다. 그냥 타일이라고 하죠.”
그리고 주인님이 준 선물도 만졌어요!
아마 집을 지키는 사람들도 이게 부러운 모양이에요! 보는 사람들마다 놀라니까 당연해요!
“주인님이 안다면 기겁을 하시겠지?”
“요즘 퇴근을 못 하시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집을 지키던 사람들이 작게 속삭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저 사람들만 알아야 하는 중요한 얘기가 있나 보죠!
“자! 제니랑 타일이! 간식 먹어!”
– 멍멍!
– 멍.
아무튼 작은 사람이 건네주는 간식을 입에 물었어요!
내가 먹을 생각은 없어요! 제니가 자기 걸 다 먹으면 제가 문 걸 줄 거예요! 전 주인님의 집에서도 맛있는 걸 잔뜩 먹으니까요!
***
적당히 거리를 벌린 채 티티를 지켜봤다.
오늘도 늘 가던 저택 앞에 도착한 티티. 벌써 8일째 방문이라 저택의 경비병들도 익숙한 듯 반응했고, 아예 저택의 일원으로 보이는 꼬마 아이는 티티를 정원으로 들였다.
티티가 야생의 들개가 아닌 신원이 확실한 개라 저러는 걸 수도 있지만, 오히려 신원이 확실하기에 정원으로 들이는 걸 꺼리는 것이 정상이다. 만약 티티가 누군가의 저택에서 잘못된다? 그것이 우연이라도 저택의 주인에게 책임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저 꼬마 아이는 티티를 안으로 들였다. 아직 아이라서 타일글레헨 백작이라는 이름을 잘 모르는 걸 수도─
‘경비병들은 모를 리가 없는데?’
생각해 보니 아이는 모를 수 있지만 다 큰 성인이 타일글레헨 백작이란 이름을 모를 수 없다.
‘고집이 센 편인가?’
히히 웃고 있는 꼬마 아이를 바라봤다. 저 아이의 고집이 엄청나다면 경비병들도 모시는 아가씨를 막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티티를 들인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아가씨의 고집이 경비병들을 이겼다면, 현재 저택의 주인은 부재중이라는 뜻이겠지.
‘누구 집이지?’
꼬마 아이와 티티에게 향했던 시선을 저택 전체로 돌렸다.
귀족의 저택은 아니기에 나름 아담하지만, 평민들의 집과 비교하는 건 실례인 규모.
1층만 있는 저택도 아니고, 작게나마 별채도 있고, 정원도 그럭저럭 양호하여 무난한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저택. 이 정도면 행정부 내에서도 과장급 인사가 지낼 저택이다.
‘과장이라.’
과장이라는 구체적인 직함을 파악한 건 좋으나, 애석하게도 행정부에 과장급 인사는 많고도 많다. 막말로 부장 숫자만 해도 백에 가까운데 그 아래 과장은 오죽하겠어.
직접 저택으로 가서 확인할까? 아니, 그건 곤란하다. 주인도 없는 저택에 가봤자 경비병들만 기겁을 하겠지. 저 꼬마 아이가 나를 상대하기를 바라는 건 너무한 일이고.
그러면 그냥 돌아갈까? 티티가 왜 이 저택에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 좋은 일에 휘말린 것 같지는 않은데?
“자, 장관 각하?”
그렇게 한참이나 고민하는 사이, 뒤에서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
고개를 돌리자 목소리처럼 묘하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뭐지.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대체 누구지?
“설마 여기서 장관 각하를 뵐 줄이야!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각하!”
“아. 그래, 반갑군.”
허나 상대가 너무 반가워하기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힘내라, 내 머리야. 반응을 보니까 스쳐 지나간 수준의 인연은 아니야. 내가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사람이야.
“각하의 배려와 자비 덕에 이 루치아노, 과분한 자리에 올라 과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라도 각하를 직접 뵙게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아.’
이름을 듣고 나니 생각났다.
내 배려와 자비. 과분한 자리. 루치아노.
‘간수구나.’
아카데미 감찰관 시절, 여차저차 감옥에 구금되었을 때 나를 보살펴줬던 간수. 분명 그 간수의 이름이 루치아노였지.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과 마주쳤다.
“하온데 각하. 제 저택에는 어인 일로…?”
‘네 집이었냐.’
루치아노의 말에 실소가 나올 뻔했다.
설마 인연이 이런 식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