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48)
로판 속 공무원 748화(749/945)
우리 아이들은 자급자족 놀이 생활이 가능했다.
굳이 저택을 벗어나지 않아도 8남매가 시끌벅적하게 놀 수 있으며, 외부에서 황태녀와 황자라는 소꿉친구가 유입된다. 심지어 티티와 열하나의 성수들, 여러 정령들도 놀이 상대로 버티고 있으니─ 딱히 저택 바깥으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
다만 이 완벽한 자급자족 생활은 늘 보던 얼굴만 본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었고,
“누나 안녕!”
“웅! 안녕!”
헬렌과 만남으로서 그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헬렌이 우리 아이들의 첫 친구나 마찬가지다. 황태녀는 내 대녀라 남매처럼 지내는 느낌이 있었고, 황자는 대녀의 동생이니 아무튼 남매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제3자 친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헬렌이 다섯 살이라고 했었나?”
“예, 각하. 각하의 은혜를 받았을 때 저희 곁으로 찾아온 보물 같은 아이입니다.”
루치아노의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확실히 올해로 다섯 살이 된 아이라면 내가 추천장을 줬을 때 루치아노 곁에 찾아오고, 그다음 해에 태어난 아이다. 실로 경이로운 우연이다.
“우리 페디는 네 살이니 헬렌이 누나로군.”
“화, 황송한 말씀─”
“아이들 사이에 황송이고 뭐고 할 게 어디 있나. 우리 아이들이 헬렌과 좋은 친구로 지냈으면 하는 게 아비의 마음이다.”
허리를 숙이려던 루치아노를 가볍게 토닥였다.
부모 사이에는 서열이 있을 수 있으나, 어린아이들 사이에는 그런 게 있으면 안 된다. 언젠가 서열이 생길지라도 그건 성인이 된 이후, 사회인이 된 이후여야 한다. 그것도 핏줄 여부가 아니라 직급 여부로 갈려야 하지.
그러니 지금의 헬렌은 우리 아이들의 친구이자 누나이고 언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소꿉친구로서 10년이 넘게 울고 웃은 소중한 인연이 될 것이다.
“저기 마리아, 세실리아, 카틀레아는 세 살이고, 옆에 있는 프리드리히도 세 살이다.”
“저 중 마리아 공녀님이 차기 세르베트 공작이시군요.”
“그렇지. 마리아가 카토반의 피를 이은 아이들 중 첫째니까.”
차기 세르베트 공작이라는 말에 조금은 씁쓸했다. 저 작고 순수한 아이가 언젠가 공작이라는 짐을 짊어질 테니까. 그것도 트릭시처럼 최소 수십 년에서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알리나와 페렌츠는 두 살. 아직 기어다니지 못해서 저택에 있는 메리가 한 살이다. 메리도 움직일 수 있게 되면 같이 오도록 하지.”
애써 씁쓸함을 밀어내며 활기차게 설명을 이어갔다.
이 자리는 어린아이들이 친구가 되는 경사스러운 자리. 어른의 사정으로 우울해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지금은 휴가 중이어서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지만, 휴가가 끝나면 사용인들이 아이들과 함께 올 거다. 부디 아이들을 조카처럼 여겨 귀엽게 봐줬으면 하는군.”
“물론입니다, 각하. 헬렌의 친구면 저에게도 소중한 아이들이지 않겠습니까? 설령 제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제 부인과 사용인들이 각별히 보살필 겁니다.”
“그래. 부탁하지.”
그 말을 끝으로 헬렌과 인사를 나누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처음 보는 또래 아이가 신기한지, 너도나도 헬렌에게 달라붙은 모습. 다행히 헬렌도 인간 친구의 등장에 히히 웃으며 일곱 명의 동생들을 반겨줬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광경이다. 부디 이 만남을 계기로 우리 아이들에게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잔뜩 생기기를.
‘이 아빠는 친구가 없었어.’
빙의 전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에서도 친구라고 할 존재가 없다. 그나마 사귄 친구들도 먼저 천국에 자리를 잡아두겠다며 떠났지.
너희는 이 아빠처럼 살면 안 된다… 친구가 없어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그래도 있는 게 좋은 것 같더라고…
– 멍멍!
그 와중에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 슬쩍 고개를 돌리니, 티티가 반짝이는 눈으로 제니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 멍.
그리고 제니는 그런 티티에게 짧게 한 번 짖으며 심드렁히 바라봤다.
티티에 비하면 무뚝뚝한 반응이지만, 그럼에도 티티는 그 짧은 짖음으로도 격렬하게 기뻐했다. 어제는 제니가 티티에게 시선도 제대로 주지 않았으니까.
그래, 힘내라 우리 티티. 어제는 시선도 받지 못했으나, 오늘은 서로 멍멍 소리를 주고받았다. 이러면 내일은 더 긴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어.
“아. 쟤가 쩨니인가바!”
“웅! 쟤가 제니야!”
“만져바도대?”
“웅!”
이윽고 아이들의 관심도 티티의 그녀, 새로운 동물 친구인 제니에게 향했다.
졸지에 여덟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제니는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골든 리트리버의 온화함은 무뚝뚝한 제니도 가지고 있던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의 격한 핸들링과 관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제니도 온순한 편이로군. 티티에게도 저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제니가 다른 개와 어울리는 건 처음이니, 익숙해지면 밝은 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딱히 근거는 없지만 주인인 루치아노의 말이니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해지면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라. 그러면 티티의 열정적인 방문도 언젠가는 빛을 볼 터.
‘힘내라.’
당분간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건 성수들한테 맡기자.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건 티티가 없어도 할 수 있지만, 제니를 놓치면 언제 티티에게 봄이 찾아올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
3일 동안의 달콤한 휴가가 끝났다.
아쉽기는 하지만 미련이 남지는 않았다. 10일이나 철야를 하며 급한 업무는 전부 끝냈으니, 당분간은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나날이 이어질 거다. 그 정도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
게다가 의무감으로 출근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즐거움과 책임감을 품은 채 출근하고 있다. 내가 노력한 대가로 신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으니까.
‘평민에서 기사가 되었으니, 기사에서 남작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물론 일개 평민인 내가 기사가 된 것도 기적적인 일이다. 허나 아직 나는 젊지 않나. 10년, 20년, 혹은 그 이상을 노력하면 막판에 부장에 오를 수도 있고, 부장이 되면 오등작에 오를 수 있다.
즉,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헬렌의 신분이 변하는 거다. 아이의 미래가 걸렸는데 여유를 부릴 아비는 없다.
다만 오늘은 그 두근거림과 열정이 잠깐 흔들릴 뻔했다.
“과장님 오셨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과장님!”
“아, 음. 그래.”
집무실 문을 열자마자 우렁찬 목소리로 반겨주는 팀장들. 평소에는 업무에 치여서 다 죽어가던 목소리로 반기던 것들인데, 내가 쉬는 동안 약이라도 먹었는지 기력이 넘쳐났다.
당혹스럽다. 이것들이 갑자기 왜 이러지?
“2과장 왔나?”
“1과장님?”
혹시 내가 없는 사이 대형 사고를 터뜨려서 저러는 건가 고민하는 사이, 등 뒤에서 1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2과는 기운이 넘치는구먼. 하긴, 과장부터가 근면하고 유능하니 부하들도 영향을 받는 거겠지.”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무슨. 당연한 말을 한 건데.”
과장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인 1과장은 그대로 복도 저 너머로 사라졌다.
더더욱 혼란스럽다. 1과장은 내가 과장이 된 이후로 나를 언짢게 본 대표적인 인물이다. 내가 장관 각하의 추천장을 받고 젊은 나이에, 빠른 기간 내에 과장까지 올라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지.
심지어 아직 젊은 내가 부장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기 시작했으니, 과장 중 가장 연장자이자 유력한 차기 부장인 1과장으로서는 불편을 넘어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나에게 추천장을 준 것이 장관 각하가 아니셨다면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실질적인 견제가 날아왔을 정도로.
…
‘아.’
장관 각하의 은혜를 떠올리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저택에서 쉬는 동안 장관 각하께서는 내 저택에 친히 방문해 주셨다. 나에게 추천장을 하사한 수준을 넘어,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그 영광이 무려 3일이나 이어졌다. 외진 곳에서 일회성 회동을 하는 것이 아닌, 저택에서 3일 동안이나 만난다? 그것도 각하의 자제분들과 함께? 소문이 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게 더 양심 없는 짓이다.
‘항복 선언… 이군.’
1과장이 사라진 방향을 보다가 턱을 매만졌다. 아무래도 나와 장관 각하의 사이가 단순히 추천장을 주고받은 수준이 아니라고 퍼진 듯하다.
그래서 팀장들의 기세가 더욱 강렬해졌고, 나를 싫어하던 1과장은 우호적인 태도로 선회한 것이다. 장관 각하가 내 뒤에 계시다면 1과장의 능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으니까.
‘웃으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억눌렀다.
솔직히 통쾌하기는 하다. 툭하면 시비를 걸고 비아냥거리던 인간이 저렇게 꼬리를 말다니. 저 광경을 보고 아무 감정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래도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건 곤란하다. 1과장과의 사적 관계는 둘째치더라도, 1과장의 연륜과 능력, 인맥만큼은 교정부 내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그런 사람의 자존심을 필요 이상으로 누르는 건 지양해야 한다.
‘차기 부장은 저 인간이 하라지.’
1과장이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니까, 난 차차기 부장을 노리면 돼.
그러니 1과장의 항복 선언을 받되, 나 또한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자. 겸사겸사 은근히 1과장의 부장 승진을 지지하면 나를 싫어하던 간부를 좋아하는 간부로 만들 수 있다.
‘각하 만세.’
속으로 각하를 향한 상습 숭배를 시작했다.
각하 덕분에 승진도 하고, 관료 생활도 편해지고…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
‘음?’
갑자기 품속에 있던 통신구가 진동하여 내용을 확인했다.
[ 3일 후 점심, 장관과 과장들의 간담회 진행 예정. 모든 과장들은 1급 업무를 진행 중인 게 아닌 이상 최우선적으로 참여할 것. ]그리고 장관 비서가 보낸 지시사항을 보자마자 픽 웃음이 나왔다.
내가 감찰성 장관 각하와 연이 있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이런 지시가 떨어진 걸 보면, 누구를 겨냥한 지시인지는 뻔하다. 나만 지목하기는 민망하니 과장 간담회라는 명목을 동원한 거겠지.
‘형무성 장관이 행정부 서열 10위였던가.’
감찰성 장관은 7위였고.
물론 장관 각하의 진정한 권위는 장관이라는 직책에서 오지 않지만, 각하의 많고 많은 권위 중 하나로도 우리 형무성의 우두머리를 능가한다. 우리 대장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당연하다.
‘헬렌 남작.’
결국 애써 억누르던 입꼬리가 귀에 걸리고 말았다.
이제 시기가 관건이지, 내가 부장이 되는 건 확실해졌다.
‘각하 만세.’
난 이제 모가지가 잘려도 각하의 충복이다.
***
장관이 형무성 소속 관료를 포섭했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과장?’
그것도 장관이나 부장이 아닌, 일개 과장급 관료를.
기이한 일이다. 세력 확장에 큰 관심이 없는 장관이 직접 누군가를 포섭한 것도 신기한데, 그 관료가 고작 과장이라.
“…핫.”
혹시 휴가 중에 체력이 남아돌아서 이상한 짓을 하는 건가 싶었으나, 포섭했다는 2과장의 인적 사항을 살펴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관료. 장관이 구금되었을 때 간수였던 관료다.
“하하하!”
실로 기이하고도 신박한 인연이라 계속 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치욕적인 모습을 직관한 관료를 품에 안다니. 하여간 장관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치욕적인 상황을 지시한 건 나였지만, 그러게 누가 시말서를 가득가득 쌓아두라 했나.
‘미리 영지 하나 준비해둬야겠어.’
아무튼 장관의 지지와 관심을 받는 과장이면 능히 부장에도 오를 수 있다. 차기는 나이와 경력 때문에 힘들지만, 그 이후는 충분히 가능하지.
어떤 영지를 남작령으로 떼어줄지 미리 생각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