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49)
로판 속 공무원 749화(750/945)
아버지께서 산을 타시다가 허리를 다치셨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기함하고 말았다. 남매들은 전부 독립하여 고향에는 연로하신 부모님만 계시고, 이웃으로 지내는 분들 또한 연세가 지긋하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건 어려운 상황.
그렇기에 급히 고향으로 갈 준비를 했다. 어머니께 간병을 맡기면 환자가 하나에서 둘이 되는 것이고, 이웃분들이 나서면 마을 전체가 병원으로 전락할 거다.
“여보. 이거 가져가.”
“웬 돈이에요?”
“장인어른도 연로하셨으니 평범하게 치료하면 오래 누워계실 거야. 사제한테 부탁해야 빨리 낫지.”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그이가 거금을 손에 쥐여줬다.
사제에게 치료를 부탁하고도 넉넉히 남을 수준이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남은 돈은 부모님을 위해, 내 고향을 위해 사용하라는 조용한 배려였으니까.
“이렇게 많이 줄 필요는 없는데…”
“됐어. 과장으로 승진한 덕분에 연봉도 올랐잖아. 게다가 저택까지 사서 더 이상 돈 나갈 곳도 없으니 써야 할 때 마음껏 써도 돼.”
남편의 당당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었다. 평범한 간수였던 남편이 순식간에 사무직이 되고, 팀장이 되고, 과장까지 올랐다. 그러고는 기사작을 받으며 평민의 신분을 벗어던졌다.
덕분에 늘 자랑스럽고 고마운 남편이었는데, 이렇게 자상한 면모도 보여주니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래도 너무 오래 있지는 말고. 최근 교정부에서 큰 거 하나 준비 중이라, 어쩌면 철야로 근무할 수도 있어.”
“헬렌 혼자 심심하겠네요.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요.”
그이의 당부에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나도 자리를 비우고, 그이도 교정부에 붙잡히면 우리 헬렌 혼자 저택에 있어야 한다. 저택을 구매하면서 적지 않은 수의 사용인들도 고용했으나, 아이의 곁에는 10명의 사용인보다 1명의 부모가 필요한 법.
그래서 고향에 가자마자 빠르게 사제를 고용하고, 아버지가 완쾌한 것을 확인하고, 부모님의 집을 새로 단장하고, 남은 돈을 고향 발전을 위해 기부하였다. 그 모든 행동에 20일이 조금 안 걸렸다.
“내가 사위 복이 있는 건 알았는데, 설마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다.”
그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도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못 본 사이에 사위가 높으신 분이 되었다고, 앞으로는 사위가 아니라 사위님이라 불러야겠다고.
사실 진정한 높으신 분들은 따로 있지만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근엄한 모습을 유지하던 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리는 건 보기 드문 광경이었으니.
게다가 높으신 분이 됐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이보다 높은 사람이 많기는 하나, 아래인 사람은 더욱 많다. 기사 작위가 오등작보다는 못해도 평민보다는 명확히 위다.
“아버지. 저랑 그이, 헬렌은 성도 있어요.”
“흐하핫! 높으신 분 맞구만!”
슬쩍 성에 대해 말하자 아버지는 더욱 기뻐하셨다.
민망하면서도 죄송스러웠다. 이렇게 기뻐하실 줄 알았다면 그이가 승진했다는 소식을 전할 때, 성을 하사받았다는 것도 같이 말씀드릴걸. 크게 중요한 정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누락했었는데.
“그럼 이제 가봐라.”
“네?”
“넌 이제 내 딸이 아니라 니덴 가문의 안주인이야! 늙은 아비보다 가문을 더 신경 써야지, 아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누락한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작년부터 알고 계셨다면 ‘가문을 지켜야지 어딜 고향으로 와!’ 라며 내가 오는 걸 반대하셨을 수도 있다.
그렇게 아버지의 반강제 배웅, 어머니의 이런저런 선물을 받으며 제도로 복귀했고,
‘어머나.’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제니! 티티! 손!”
– 멍.
– 멍!
“반대쪽!”
– 멍.
– 멍멍!
“잘해써!”
정원에서 제니는 물론, 처음 보는 개와 놀고 있는 헬렌.
“누나! 티티는 손말고 다른것또 잘해!”
“다른거?”
“티티! 물구나무!”
– 멍!
“와아아아!”
‘와아…’
처음 보는 개에게 처음 보는 명령을 내리는 처음 보는 아이.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했다. 제니처럼 커다란 개가 물구나무를 서다니. 뒷발로만 서도 신기한 광경인데 앞발로만 서다니.
“이런 건 또 언제 가르쳤니…”
“안가르쳣서! 티티가 혼쟈서 배운거야!”
“그렇구나…”
자세히 보니 헬렌과 제니, 처음 보는 아이와 처음 보는 개 근처에는 처음 보는 손님도 있었다.
흑발에 흑안이 인상적인 남성. 외견만 보면 우리 그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아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손님.
‘누구지?’
뒤늦게 외부인이 우리 헬렌 옆에 있다는 걸 깨달았으나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경비병들이 정문을 지키고 있었고, 헬렌을 끔찍이 아끼는 제니가 잠잠하다. 우리 가족에게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새로 고용한 사용인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가능성은 낮다.
이미 사용인은 충분하게 고용했고, 설령 추가로 고용한다 치더라도 그이가 내 상의 없이 홀로 결정할 리가 없다. 내가 가문의 안주인이라며 사용인들의 관리는 나에게 맡기고 있으니까.
게다가 사용인이라면 저 처음 보는 아이와 개를 설명할 수 없다. 설마 아이와 개도 고용한 건 아닐 테니.
‘손님인가 보네.’
짧은 고민 끝에 첫인상처럼 손님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 경비병들도 저 손님을 정원으로 들인 거겠지.
“마님!”
“마님 오셨습니까!”
“네. 다들 걱정해 준 덕에 무사히 다녀왔어요.”
구경을 멈추고 대문으로 다가가자, 경비병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반겨주었다.
“엄마아아아!”
이윽고 처음 보는 개의 물구나무를 구경하던 헬렌도 나를 향해 쪼르륵 달려왔다.
“우리 헬렌. 잘 지냈니? 엄마가 늦어서 미안해.”
“아냐! 친구 잔뜩 생겨서 괜차낫서!”
“친구라.”
그 말에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손님으로 온 분이 맞았구나.
“제가 없는 동안 헬렌을 보살펴주셔서 감사해요. 그이가 출근 중이라 돌아오려면 멀었지만─”
“저, 마님. 잠시만.”
손님께 인사를 드리려던 찰나, 경비병이 빠르게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저분, 타일글레헨 백작 각하십니다.”
“…네?”
머리가 한순간에 굳어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이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 저택에 계셨다.
***
티티의 장인어른에 이어 장모님과도 만나는 것에 성공했다.
급히 고향에 내려갔다고 해서 언제 오나 싶었는데, 결국 만나기는 만나는구나. 역시 존버가 인생의 답이다.
“그이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각하께서 베푸신 은혜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그이도, 저도, 헬렌도 없었겠죠. 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각하를 뵐 용기가 없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티티의 장모─ 아니, 아직은 루치아노의 부인이라 불러야 할 사람은 내 정체를 알자마자 광속으로 감사 인사를 쏟아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어도 루치아노 경은 언젠가 그 자리에 올랐을 사람이다. 그 시기를 다소 앞당겨준 것에 불과하니, 은혜라고 할 것도 없지.”
“그런 말씀은 말아주세요. 사실 그이, 각하를 뵙기 전에는 사직서를 품고 다녔어요.”
“뭣.”
부인의 말에 흠칫하고 말았다.
‘뭘… 품고 다녀?’
사직서를… 품고 다녔다고?
‘위험했다.’
무심코 침을 삼킬 뻔했다. 내가 루치아노를 만났을 때, 루치아노는 온갖 면회객들에게 시달리고 있었지. 만약 그런 루치아노에게 감사와 사과의 의미로 추천장을 주지 않았다면 루치아노는 정말 퇴직했을 수도 있다.
소름이 절로 돋는 일이다. 내 도움이 있었어도 4년 만에 과장이 된 인재다. 까딱 잘못했으면 그런 인재가 날아갈 뻔했어.
“그러니 다시 감사드려요, 각하. 그이가 웃으면서 출근할 수 있는 것도 각하 덕분이니까요.”
“…그래. 그거 기쁜 일이군.”
웃으며 출근한다는 말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솟구쳤다.
이 세상에 웃으면서 출근할 수 있는 사람도 있구나. 경이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루치아노의 부인과 만난 뒤로는 루치아노의 저택에 가는 걸 자제했다.
티티의 봄날을 위해 만나야 할 사람도 다 만났고, 나와 루치아노의 관계가 긴밀하다는 것도 퍼질 만큼 퍼졌다. 이 이상 방문하는 건 도리어 루치아노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사실 이미 줄 만큼 준 것 같기는 한데, 이제라도 자제를 해야 루치아노의 스트레스성 돌연사를 막을 수 있지 않겠나. 퇴근하고 돌아온 저택에 까마득한 상급자가 있으면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냐고.
물론 티티는 매일매일 출석 이벤트를 하듯이 저택에 방문 중이다. 티티가 방문하는 건 누구에게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니까.
“장관.”
“예, 폐하.”
“근래 장관의 아이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들었네만.”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덤으로 우리 아이들도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헬렌과 놀기 위해 위풍당당한 여정을 떠났다. 그 소식이 기어코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황태녀가 서운해하고 있다네. 페디랑 놀기 위해 갔는데, 정작 페디가 없으면 얼마나 당혹스럽겠나?”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전하와 즐겁게 놀고 있습니다만…”
“그건 그렇지만, 페디는 황태녀에게 있어 첫 번째 동생이지 않나. 모든 동생들을 사랑해도 유독 각별할 수밖에 없지.”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황제의 모습에 픽 웃음이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아이들을 공평하게 사랑하고자 하는 나조차 첫째인 페디를 미묘하게 더 신경 쓰는데, 감정 조절이 서툰 황태녀는 오죽할까. 페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주체할 수 없을 거다.
“페디가 밖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전하께서 오시지 않는 날을 골라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것까지는 없지. 황태녀가 페디와 함께 놀러 가면 되니까.”
“…예?”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 절로 반문이 나왔다.
이 새끼가 드디어 미친 건가? 페디가 일개 기사 가문의 저택에 방문한다는 걸 알면서도, 황태녀도 같이 가라는 말을 꺼내?
‘어딜 감히 우리 개 사돈을 죽이려고.’
적어도 나는 ‘추천장으로 이어진 은인.’ 이라는 타이틀이라도 있지, 다짜고짜 황족이 루치아노와 이어지면 루치아노는 루복치로 전환되고 만다. 난 우리 개 사돈을 이렇게 잃을 수 없어.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페디의 친우는 일개 기사의 여식이옵니다. 귀족과 기사의 격차가 좁지는 않으나, 황족과 기사의 격차는 헤아릴 수조차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귀족이 될 텐데 무슨 상관인가.”
“예?”
“나이도 젊고, 능력도 출중하고, 장관과 친밀하기도 하니 교정부장으로 승진하는 건 예정된 일이지. 본인이 노력하면 늘그막에 장관에 오를 수도 있고. 그러면 루치아노 경도 귀족의 반열에 오를 터이니, 미리 만나는 것쯤이야.”
정신 나간 명분이라 입을 열 수 없었다.
어차피 예정된 일이니 미리 만나는 건 상관없어? 어차피 나나 너나 뒤지면 화장해서 재만 남을 텐데, 미리 말 놔도 되냐?
“그러니 장관. 하나만 묻도록 하지.”
“…말씀하소서.”
“아무리 장관과 루치아노 경이 감옥에서 맺은 연이 있다고 해도, 지금 장관이 보이는 호의는 과도해. 둘 사이에 짐이 모르는 다른 사건이라도 있었나?”
상당히 직설적인 질문에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
이 새끼한테 ‘우리 개 사돈인데요?’ 라는 말을 해도 괜찮을까? 괜히 나를 놀리지 못해 안달인 놈에게 새로운 건수를 던져주는 건 아닐까?
하지만 진실을 숨기려고 하면 이 놈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려 할 거다. 괜히 황제의 눈과 귀가 루치아노와 그 가족들에게 향할 터.
“티티가 루치아노 경의 개에게 반했습니다.”
“뭐?”
“아침이 되자마자 나갔다가, 해가 지기 직전에야 돌아오더군요. 덕분에 주인인 저도 루치아노 경과 친해졌습니다.”
내 말에 황제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윽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호쾌한 웃음이라 기분이 언짢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