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5)
공명정대하시며 존경받아 마땅한 경애하는 황금공 각하께서 이르시길, 감찰부에 꽂힐 지원금이 5할 늘어날 것이라 하셨다.
‘투창 한 번에 5할.’
순간 세 자루 다 던졌으면 150% 상승이라는 기적의 계산법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물론 입 밖으로 냈다가는 감찰부장의 지능 부족 의혹이 사교계를 뒤엎겠지만.
아무튼 들인 노력에 비해 어마어마한 보상이다. 이 정도면 수학여행 기간 내내 배에 탔어도 감수할 수 있을 정도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토벌에 성공했다. 그동안 고생만 한 나를 위해 하늘이 내린 선물인가?
그 과정에서 한 여학생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았지만 그래도 몸이 다친 건 아니니까.
– 마음에 든 것 같아 다행일세.
“과분한 배려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너털웃음을 짓는 황금공의 모습은 실로 대장부의 호방함이고 선인의 관대함이었다. 역시 힘들고 고달플 때는 금융 치료가 최고야. 이렇게 세상이 다르게 보이네.
– 편할 때 카지노로 오게. 전부 감찰부로 보내기는 번거로우니 일부는 자네가 가져 가야지.
‘아.’
카지노로 와서 수령하라는 말에 뒤늦게 아차 싶었다. 5할 상승이라는 깜짝 이벤트에 정작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하나만 약속해 줄 수 있을까요?”
조심스레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마르게타. 당시 약속을 할 때는 들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들키지 않고 버티는 건 곤란한 일이다.
이미 외딴 해변가에 이리나가 있던 정신 나간 확률이 터져서 내 운을 못 믿겠다. 그리고 아카데미 학생 전부가 카지노에 들리지 않는 성실한 아이들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내가 카지노에 들렸다는 소식이 건너 건너 마르게타의 귀로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
마르게타라면 화를 내면서도 결국 용서해주기는 하겠지. 그래도 실망시키고 싶지가 않다. 마르게타의 호의를 이용하는 것 같으니까.
“각하, 실례지만 전액 감찰부로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적은 금액은 아니라 카지노를 거치지 않으면 오래 걸린다네. 그래도 괜찮겠나?
“각하께서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문 황금공이 작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 자네, 벌써부터 잡혀 살면 어쩌나. 아직 약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황금공의 말에 이번에는 내 입이 다물어졌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머리가 잠시 굳어버렸다.
‘뭔 말을 못하겠네.’
생각해보니 마르게타와 약속을 한 장소도 리조트 로비였지. 황금공의 눈과 귀가 이리저리 깔려있을 장소니 이미 알고 있기에는 충분하다.
– 부부의 원만한 관계는 중요한 법이지. 하지만 너무 잡혀 사는 것도 곤란하다네. 부부라도 자율성은 보장 받아야 하지 않겠나?
“새겨듣겠습니다.”
부인이 12명인 사람에게 들으니 묘하게 설득력이 미쳐 날뛴다.
– 뭐, 자네 사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 도중에 생각이 바뀌면 말하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각하.”
결국 황금공이 약간의 귀찮음을 부담하여 전부 감찰부로 보내기로 했다. 이런 부탁도 들어주는 걸 보면 크라켄 토벌에 대한 거스름돈이 조금은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연락이 끊긴 통신구를 한쪽으로 치우며 침대에 누웠다. 그래, 이번만 넘기면 되는 거지. 지금까지 카지노를 방문한 적은 여러 번이지만 마르게타에게 들킨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이번에 들킨 것도 같이 보야르에 있던 것과 타니안이라는 변수 때문이다. 다음 방문 때는 이렇게 마음 졸일 필요 없겠지. 내가 마르게타와 보야르까지 올 일은 없을 테니까. 타니안 그 새끼와는 더더욱.
‘이제 좀 쉬겠네.’
유일한 업무였던 크라켄 토벌도 끝나고 보상 문제도 해결했다. 어디로 튈지 불안한 부원들도 빌라르를 위시한 삼국 전력이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할 거고.
와, 진짜 얼마 만에 마음 편히 쉬는 거냐. 처음 보야르로 간다고 할 때는 미치는 줄 알았지만 막상 오고 나니 여기만 한 곳이 없네.
하나의 동아리를 지배하는 남자는 마음은 편하더라도 몸이 편하지 못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슬픈 숙명이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막 마차에서 내린 루이제가 활짝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미로처럼 꾸며진 숲이래요. 꽃도 계절에 맞게 조성해서 예쁘다 하고요.”
“그거 기대되네. 용케 그런 데를 찾았어.”
“헤헤, 직원 분이 알려주셨어요.”
저녁이 조금 지나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루이제가 들어왔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같이 놀러 갈 곳을 찾아뒀다나. 두 눈을 반짝이며 정말 좋은 곳들만 골라서 만족할 거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자식을 가지기는커녕 결혼한 적도 없지만, 어린이날에 아빠와 같이 놀이공원에 가는 걸 기대하는 아이의 모습이 딱 저럴 것 같았다. 거절하면 얼마나 풀이 죽을지. 동아리를 위한 일에 몰두하다가 정작 부원을 챙기지 못하는 안타까운 고문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 기껏 보야르까지 왔으니 여기저기 놀러 다니면 좋긴 하겠지. 미로 숲이라는 건 나도 처음 들어봤고. 최근에 만든 건가?
“가끔 출구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흉악한 곳이네.”
대체 얼마나 작정하고 만들었길래 나오지도 못하고 갇히는 건데.
다행히 숲에 들어가기 전에 지도와 함께 쥐어주는 신호탄을 쏘면 구출팀이 온다고는 하지만, 다행… 맞나? 그거 하나 탈출 못해서 구출팀까지 부르면 많이 창피할 것 같은데.
“바다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별게 다 있네.”
어느새 루이제의 뒤를 이어 마차에서 내린 에리히가 다가왔다. 배도 채워서 방 안에 늘어지고 있던 놈이 루이제가 가자는 말에 어찌나 빠르게 내려오던지. 그건 다른 네 명도 마찬가지지만.
“공작령이 워낙 커야지. 내륙 지역도 넓어서 해변 말고 이래저래 관광지는 많아.”
오죽하면 제국에서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와인도 보야르에서 생산된다. 보야르 특산품 중 하나지. 사실 황금공은 와인을 만들지 못했어도 ‘이게 에메랄드 물이다!’ 라면서 바닷물도 팔 것 같은 양반이긴 하지만.
아무튼 살짝 걸음을 옮겨서 루이제 옆 자리를 비우니 에리히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이제 제법 눈치가 늘었구나. 제발 그거의 5배 정도만 더 빨리 성장해다오. 보는 내가 미칠 것 같아.
“해가 길기는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어두워지겠군요.”
악마의 주둥, 아니 타니안이 주변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확실히 여름에 가까워지면서 해가 뜨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너무 정신없이 놀면 그새 어두워질 수도 있으니까. 밤 중에 미로를 돌아다니기는 좀 그렇지.
“이왕 왔으니 구경은 좀 해야 하지 않나?”
“애초에 관광지 아닙니까. 적당히 둘러볼 수 있게 조성되어 있을 겁니다. 아니다 싶으면 그때 속도를 높이면 되겠죠.”
류티스와 아인테르는 느긋하게 둘러보자는 입장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루이제와 더 붙어있을 수 있으니까. 낮 동안에도 실컷 놀았을 텐데 욕심이 많구나.
“그건 그렇지요.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타니안마저 금방 의견을 접고 장기 관광에 힘을 실었다. 아무래도 리조트로 돌아갈 때는 별을 보면서 갈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이 신호탄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만지며 살피는 루이제를 뒤로 하고, 지도는 라테르의 손에 들렸다. 본인 말로는 최적의 길을 찾아서 안내하겠다고 하니 뭐, 알아서 잘할 거다.
“마법사가 똑똑하긴 하지!”
웃으며 말하는 류티스의 목소리는 오늘도 우렁찼다. 그런데 지도는 마법사고 뭐고를 떠나서 누구나 볼 수 있는 물건 아닌가.
‘신경 써봤자 손해지.’
고민은 짧고 판단은 빨랐다. 그래, 지도가 의외로 보기 어려우니까. 류티스는 행동파니 독도법에 약할 수도 있다. 관광지 미로 지도에 독도법까지 쓸 필요는 없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당연스럽게도 해는 금방 졌다. 애초에 저녁도 지난 시간에다 작정하고 시간을 끌려는 놈만 다섯이니 버틸 수가 있나.
‘못난 놈들.’
이상한 곳에서 단합이 잘되는 놈들이다. 서로 견제가 난무하는 사이면서 왜 이런 건 마음이 통하는지.
“시원하고 좋다!”
경쾌한 발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루이제가 보였다. 어두운 숲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겁을 먹기는커녕 더 활발해진 모습. 카피바라가 야행성이었나? 그래도 해가 지니까 더 시원하기는 하다.
“정작 꽃은 얼마 못 봤는데.”
유감스러운 일이라면 미로 숲의 자랑이라는 꽃들은 어두워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괜찮아요. 꽃은 평소에도 자주 보잖아요.”
“그럴 거면 여기 왜 온 거야.”
해맑은 대답에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긴 아카데미에서도 화단을 뻔질나게 돌아다니는 루이제다. 황금으로 조각한 꽃을 숲에 깔아둔 것이 아닌 이상 딱히 신기한 경치도 아니겠지. 그냥 사람들하고 같이 돌아다니는 게 마냥 좋은 모양이다.
“뭔가 귀신 나오기 딱 좋은 분위기네.”
“귀신이라. 차기 성자님이 계신데 있어도 못 나오겠지.”
“하하, 그래도 나왔으면 하는군요. 귀신을 본 적은 없어서.”
어두운 숲이 혈기왕성한 10대의 감성을 자극했는지 슬슬 이상한 잡담이 나오기 시작했다. 적당히 내버려두자 서로 주워들은 괴담을 꺼내는 것이 이 자리에서 납량특집이라도 찍으려는 모양.
“─그래서 압도적인 물리로 저주를 내릴 시간도 없이 밀어버리는 게 답이라 하더라고.”
“과연, 이렇게 배워가는군.”
너네 진짜 뭔 얘기 하냐.
“…….”
“루이제?”
한밤의 괴담 공유라는 미친 수학여행 고증을 보이는 부원들을 보니, 어느새 루이제가 슬쩍 옆에 달라붙었다.
아, 표정 굳었네. 이런 얘기 약하구나.
“라테르는 뭐 아는 거 없어?”
“하나씩 풀어보자고. 누구 얘기가 1위인지나 정하게.”
그러거나 말거나 괴담에 꽂힌 10대들의 다음 타깃은 라테르가 되었다. 아까부터 지도만 보고 걸어 다녀서 말이 없기는 했지.
“경험담도 괜찮나?”
“오, 더 좋지.”
그제서야 지도에서 눈을 뗀 라테르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길을 잃었다.”
“뭣.”
“아까부터 계속 같은 곳만 돌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군.”
루이제의 표정이 더욱 창백해졌다. 아무리 구출팀이 있다지만 시꺼먼 숲 속에서 길을 잃고 괴담에 시달릴 생각을 하니 아찔한 모양.
잠시 숨 막히는 침묵이 우리 사이에 내려 앉았고, 라테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이었다.”
“…네가 이겼다.”
괴담 1위는 만장일치로 라테르로 정해졌다.
그리고 루이제는 리조트로 돌아가기까지 은근히 라테르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