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50)
로판 속 공무원 750화(751/945)
황제의 호쾌한 비웃음 이후로 여러 일들이 있었다.
아니, 사실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딱히 저택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티티의 연애 사업도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굳이 내가 나설 일이 생기지 않았다.
“잘 진행되는 거 맞지?”
– 왈!
오늘도 온갖 리본과 방울로 치장한 채 제니를 만나고 온 티티. 그런 티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자, 티티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밝게 짖었다.
그래, 잘 진행되는 게 맞겠지. 만약 제니가 강력하게 티티를 밀어냈다면 티티가 우울한 모습을 보였을 텐데, 티티는 날이 갈수록 해맑은 모습만 보이고 있다.
게다가 티티랑 같이 루치아노의 저택으로 갔던 아이들도 ‘띠띠랑 제니랑 잔뜩 노랏써!’ 라는 일관된 증언을 하고 있다. 이렇게 둘의 관계가 아는 사이가 되고, 아는 사이에서 썸이 되고, 썸에서 연인이 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패턴이야.
“들어보니까 제니도 다른 개를 만난 적이 없다더라. 우리 티티가 제니의 첫 개 친구니까, 계속 놀다 보면 좋은 관계로 발전할 거야.”
– 멍멍!
내 응원과 조언에 티티는 격렬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티티에게 제니가 첫 개 친구인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헬렌이 첫 외부인 친구인 것처럼─ 제니에게도 티티가 첫 개 친구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단계다.
그러니 나는 믿는다. 지금은 제니가 수줍음이 많아서 티티에게 다소 시큰둥하더라도, 언젠가는 둘이 사이좋은 부부가 될 거라는 것을.
‘제발.’
나를 위해서라도 제발 그래야 한다. 티티에게 봄날이 찾아왔다는 소식은 우리 본가와 처가 쪽에도 퍼졌으니까. 안 그래도 티티의 총명함을 탐내던 사람들이 티티의 새끼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만 보내 달라는 청탁이 여기저기서 날라오는 중이라고. 타일글레헨에 계시는 부모님은 물론, 우리 저택에 올 때마다 티티를 봤던 장인, 장모님들. 심지어 신혼여행 중인 에리히까지.
물론 새끼가 잔뜩 태어난다면 잘 키울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분양을 보내는 게 좋다. 괜히 무리해서 대형견을 여러 마리 기를 바에는 분산하는 것이 서로에게 편하다.
다만 지금까지 받은 청탁을 종합하면 제니가 10마리를 넘게 낳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쩌면 20마리 넘게 낳아야 할 수도 있지.’
이 10마리 이상이라는 결과도 어디까지나 내가 받은 청탁만 고려한 것이다. 루치아노도 여기저기 분양을 보내거나 직접 기를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20마리를 가뿐히 넘는 어지러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새끼가 20마리… 그것도 여러 암컷이 낳은 게 아니라 혼자서 20마리…
‘가능한가?’
아무리 개가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더라도, 20마리라는 경이로운 숫자가 가능할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티티가 나처럼 여러 번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 힘든 일이다.
– 멍?
복잡한 심정으로 티티를 바라보니, 티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짧게 짖었다.
이걸 애석하다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티티가 나처럼 중혼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 티티. 요즘 보여주는 모습만 보면 일편단심도 그런 일편단심이 없어.
“힘내.”
– 멍!
그래서 그저 의례적인 응원만 내뱉었다.
힘내라 티티. 힘내라 제니.
***
내무성 장관과 식사를 하던 중, 난데없이 심상치 않은 화두가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어떤 얘기 말씀이십니까?”
장관이 장관을 향해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라고 하는 건 ‘너 이 얘기 꼭 알고 있어야 한다.’ 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말. 덕분에 포크를 움직이던 손까지 멈춰 내무성 장관을 바라봤고,
“감찰성 장관이 신흥 관료들과 접촉하여 세력을 만드는 중이라고 합니다.”
“감찰성 장관이요?”
다른 놈도 아닌 그놈이 파벌을 형성 중이라는 말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감찰 권한을 지닌 장관이 파벌을 형성 중이라서? 기존 귀족들이나 관료가 아닌 신흥 관료들과 접촉해서? 무려 파벌을 만드는 거대한 작업을 진행 중임에도 나에게 아무 언질이 없어서?
‘그럴 놈이 아닌데?’
셋 중 무엇도 아니었다. 단순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어서 혼란이 찾아왔을 뿐이다.
내가 그놈을 몇 년이나 봤는데. 그놈은 자기가 속해있던 파벌에서 도망치면 도망쳤지, 자기 스스로 새로운 파벌을 만들 놈이 아니다.
황제 폐하께서 막 황태자로 책봉되셨을 무렵, 그놈이 황태자 파벌에 속한 과정도 자발적인 합류가 아니었다. 전대 감찰부장을 처 죽이는 과정에서 황태자 전하의 권위를 빌렸고, 어쩌다 보니 황태자 전하의 심복이라 불리게 된 거였지.
현재 북방 파벌의 장으로 군림하는 것 또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놈이 야심을 가져서 파벌장이 된 게 아니라, 폐하의 암묵적인 압박이 있었기 때문 아닌가. 순순히 북방 파벌을 이끌라는 미묘한 압박이.
‘파벌은 개뿔.’
그렇기에 찌푸려졌던 미간은 도로 펴졌고,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그놈이 자발적으로 파벌을 만들 확률? 아무리 높게 잡아도 그놈이 사직을 포기할 확률보다 낮다. 그만큼 터무니없는 소문이다.
“크흐, 역시 재무성 장관께서도 믿지 않으시는군요.”
“장관 중에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저희가 그 녀석을 얼마 봤는데요.”
“그건 그렇지요. 저도 재미있는 소문이라 말씀드린 거지, 믿으라고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확실히 재밌기는 했습니다.”
웃음을 터뜨린 내무성 장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한참이나 웃던 내무성 장관은 상체를 슬쩍 앞으로 기울였다.
“그런데 형무성 장관께서는 믿는 눈치였습니다.”
“형무성 장관께서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 다시 미간이 찌푸려졌다.
형무성 장관이 막 장관 자리에 오른 신참인 것도 아니고, 칼 그 녀석에 대해 무지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감찰 권한을 휘두르는 감찰부-감찰성의 특성상 칼과 자주 얽힐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감찰에 걸린 놈들은 사법성을 거쳐 형무성으로 날아가니까.
그런데 그런 형무성 장관이 칼이 파벌 형성 중이라는 기이한 소문을 믿어? 그렇게 순박한 사람이 아닌데?
“저도 처음에는 형무성 장관께서 노망이라도 났나 싶었는데, 이게 조금 복잡하게 얽혔습니다.”
“복잡이라면.”
“감찰성 장관이 형무성 소속 과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 중입니다.”
“저런.”
그 말을 듣자마자 탄식이 나왔다.
하필 자기 부서의 관료가, 그것도 부장급이 아닌 과장급 간부가 칼 녀석과 접촉 중이면 나라도 신경이 쓰였을 거다. 적어도 부장급과 접촉 중이면 업무 목적이구나─ 싶을 텐데, 과장은 연관점이 없잖아. 그러니 형무성 장관이 새로운 파벌 결성이라는 말에 동요하는 것도 당연하다.
‘진짜 뭔가 있나?’
괜히 찝찝해졌다. 그놈이 파벌을 만들 확률은 극히 희박하지만, 자발적으로 인맥을 쌓고 다닐 확률 역시 만만치 않게 낮다. 그냥저냥 안면을 트고 다니는 거라면 모를까 ‘친밀한 관계’라는 말이 나올 만큼 남에게 살가운 녀석이 아니다.
헌데 그 낮은 확률이 터지고 말았다. 결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내무성 장관.”
“예, 말씀하시지요.”
“그 과장이 누군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이번 일은 조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결과가 나오면 저한테도 알려주십쇼. 감찰성 장관의 뒤를 조사하는 건 좀 무서워서요.”
“저도 감찰은 꺼려집니다만.”
“흐흐, 감찰성 장관이 재무성 장관은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그게 무서워하는 거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무섭게 생각하지 않으면 얼마나 막 나가겠냐고.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혼란만 가중되었다.
칼 녀석과 연을 맺은 관료는 교정부 2과장인 루치아노 니덴. 이제 막 30대가 된 젊은 관료이자, 불과 5년 전까지는 평범한 간수였던 평민 관료.
그리고 간수로 지낸 기간을 계산해 볼 때, 나와 칼이 구금되었을 때도 간수로 지냈던 관료.
‘기묘한 인연이로군.’
죄수와 간수였던 관계가 5년이 지나서 파벌장과 파벌원으로 만났다라.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을까.
아직 정식 파벌은 아니지만 파벌 의심을 받을 만큼 친밀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휴가 중인 그 녀석이 과장의 저택에 방문했고,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재차 방문했을 정도다. 절대 평범한 관계는 아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루치아노 니덴이라는 관료가 칼의 추천장을 받고 승진을 거듭한 것? 이해할 수 있다. 그 녀석은 아카데미에서도 졸업생들을 긁어모은 녀석이지 않나. 감옥에서 사람을 주워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추천을 넘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 몇 번을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대체 감옥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건지. 혹시 감옥에 있는 동안 간수가 몇 번 밖으로 꺼내주기라도 했나?
‘…직접 확인해야지.’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통신구를 집었다.
이해할 수 없다면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어차피 소문이 퍼질 정도면 그 녀석도 숨길 생각이 없다는 뜻이니, 물어보면 순순히 답해주겠지.
***
– 프흐하하하하핳!
빵 터진 장관의 얼굴을 씁쓸히 바라봤다.
망할 인간. 내가 생각해도 평범한 사유는 아니지만, 그게 저렇게까지 웃을 일인가.
– 티티 덕분에 이어진 인연이라니! 형무성 장관이 알면 뒷목을 잡겠어!
“이왕이면 서로 어려울 때 만난 인연이라고 해주십쇼.”
나는 감옥에 있을 때, 루치아노는 사직을 고민할 때 만난 거잖아. 우리는 서로 고통스러울 때 만나고, 아픈 곳을 어루만져 준 동지다.
그러니 티티가 이어준 인연이라는 건 다소 과장된 감이 있다. 티티가 나서기 전에도 우리는 추천장으로─ 감옥으로 이어진 인연이기에.
– 그래서 출소한 이후로 한 번이라도 만난 적 있었냐?
“…그건 아니죠.”
– 그럼 티티 덕분에 이어진 인연이 맞지.
차마 반박할 수 없는 말이라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분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저 근육 괴물에게 논리로 밀린다는 게 너무 분해…!
– 아무튼 뭐, 알겠다. 파벌을 결성하려는 게 아니라 애완견의 짝을 찾아주려고 만난 거였어.
“제가 파벌 같은 걸 왜 만듭니까. 대가리에 화살 맞은 것도 아니고.”
– 네가 형무성 장관 입장이 돼봐라. 평소에 조용히 지내던 놈이 갑자기 신흥 관료와 접촉 중인데, 파벌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이번에도 반박할 수 없었다. 나였어도 다른 부서 장관이 감찰성 소속 과장과 사적으로 접촉했다고 하면 신경 쓰였을 테니까.
– 그런데 이렇게 된 거, 진짜 파벌 하나 만드는 거 어떠냐?
“뭔 개소리입니까.”
순간 진지하게 울컥하고 말았다.내가 그딴 걸 왜 만들어.
– 네가 신흥 관료들을 이끌면 기존 관료들을 갈아치울 수 있지 않겠냐?
“그래서요.”
– 그럼 누군가가 네 자리도 뺏을 텐데?
그 말에 마음이 급격히 편해졌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