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51)
로판 속 공무원 751화(752/945)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너무 즐거워서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나를 반겨준 부인이 그런 말을 할 정도였다.
부인의 말을 듣자마자 슬쩍 입가를 매만졌다. 확실히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입꼬리가 올라간 상태였다.
“이거 조금 민망하구려.계속 이런 얼굴로 퇴근했다는 거잖소.”
“괜찮지 않나요?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던데, 좋은 일이 있다면 웃어야지요.”
부인의 위로 아닌 위로에 픽 웃음을 흘렸다.
맞는 말이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웃고 다니겠나. 그 녀석이 아니었다면 오늘도 지루한 업무에 시달리다가, 피로에 찌든 채로 퇴근했을 거다.
‘고맙다.’
지금쯤 헛된 희망에 허우적거릴 칼 녀석을 떠올렸다. 너 하나만 희생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
네 발버둥을 보는 나도, 네가 파벌로 포섭하려는 신흥 관료들도, 신흥 관료들의 각성에 업무 효율이 상승한 행정부도, 그 행정부를 보며 흡족해하실 황제 폐하도. 전부.
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한 명이 희생하여 다수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마땅히 하나가 희생하는 게 옳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이것이 재무성 장관으로 지내며 깨달은 진리─
“크흫.”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연신 끅끅거렸다.
파벌을 만들기 위해 관료와 접촉한 게 아니라, 티티의 연애를 위해 접촉한 거였다니. 누가 그런 이유로 휴가 중인 감찰성 장관이 움직였다고 예상이나 했을까.
아무도 없을 거다.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나조차 잠깐은 믿지 못했으니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이윽고 칼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형무성 장관, 뭔가 알아내면 말해 달라고 부탁하던 내무성 장관이 떠올랐다.
진실을 알아냈으니 둘에게도 말해주는 것이 옳다. 형무성 장관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내무성 장관에게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슬쩍 말해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말하냐고. 개 한 마리 때문에 제도가 들썩였다는 말을 대체 어떻게.
“끄윽, 끅…”
“여보?”
계속 웃음을 흘리자 부인이 걱정스럽다는 듯 다가왔다.
곤란하다. 이제 멈춰야 하는데 한 번 터진 웃음은 도저히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동안 웃을 일이 없었더니, 그동안 쌓였던 웃음이 한 번에 터졌다.
게다가 내가 웃는 이유는 티티의 연애뿐만이 아니다.
“네가 신흥 관료들을 이끌면 기존 관료들을 갈아치울 수 있지 않겠냐?”
– 그래서요.
“그럼 누군가가 네 자리도 뺏을 텐데?”
– …그런가?
그런가는 개뿔. 그럴 리가 있겠냐.
‘어떤 미친놈이 네 자리를 탐내.’
설령 황제 폐하께서 신흥 관료에게 그 녀석의 자리를 내밀어도, 그 제안을 받은 관료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내저을 거다.
자신에게는 너무 과분한 자리라고. 감히 꿈에서도 노리지 않은 자리라고. 아마 자신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처절하게 거부하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칼 그 녀석은 아직 20대에 불과하고, 황제 폐하의 최측근이자 황태녀 전하의 대부인 녀석이다. 그런 녀석을 밀어내고 감찰성 장관 자리를 차지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참사다.
이 당연한 일을 그 녀석만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이 이해하는 걸 거부한 걸 수도 있다.
‘희망이란 게 이리도 무서운 거였나.’
그 녀석이 조금 괴팍하기는 하지만 지능이 부족한 놈은 아니고, 나름 한 부서의 장관까지 오를 정도로 기본적인 역량은 있는 편이다.
그런 놈이 ‘퇴직’이라는 희망에 눈이 멀어 말도 안 되는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가엽지만 우습고, 기가 막히면서도 유쾌한 일이다.
‘힘내라.’
하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칼의 무의미한 발버둥을 보며 즐기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나는 정말 퇴직할 수도 있으니까.’
칼이 신흥 관료를 보듬고 키워낸다면, 그중에서 내 자리를 노릴 녀석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내 나이도 어느덧 60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황족과 큰 연이 없기에 평범한 귀족 중 하나에 불과하다. 덕분에 내 아래에 있는 녀석들 입장에서 나는 ‘노력하면 밀어낼 수 있을만한 늙은이’ 같은 인간이다.
신흥 관료들이 쭉쭉 올라오고, 신흥 관료들의 질주에 자극을 받은 부장, 과장급도 이를 악물며 위를 노린다? 그렇다면 10년 안에 퇴직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20대, 30대에 불과한 장관이 퇴직하는 건 양심 없는 짓이지만, 60대 장관이 퇴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부인.”
“네. 말씀하세요.”
“한 10년 정도 후면 느긋하게 여행이나 다니는 건 어떻겠소? 북쪽 끝부터 남쪽 끝까지, 동쪽 끝부터 서쪽 끝까지 전부 말이오.”
그러자 부인의 눈이 잠깐 커지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만 커지는 법이에요.”
“…그건 그렇지.”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에 조금 머쓱해졌다.
사실 10년 후에 내가 퇴직할 확률보다 여전히 장관일 확률이 더 높기는 하다. 벌써부터 10년 후 퇴직이니, 여행이니 하는 건 과대망상 수준일 정도로.
그래도 0인 누군가보다는 적게나마 확률이 존재하는 게 더 좋다.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고 보니 부인. 그 녀석의 저택에 있는 개, 기억하시오?”
“티티 말하는 건가요? 당연히 기억하죠. 반백 년이 넘게 살아왔지만 티티처럼 총명한 개는 처음 봤으니까요.”
“그 아이가 새끼를 볼 수도 있다 하더군.”
“어머나.”
아무튼 머쓱함을 지우기 위해 화제를 돌리자, 부인은 놀랐다는 듯 작게 탄성을 흘렸다.
“많이 낳았으면 좋겠네요. 노후에 동물을 키우는 일도 즐거울 것 같아요.”
“내가 한 마리 부탁해 볼 테니 기대하시오.”
무려 감찰성 장관 자리에서 퇴직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는데, 설마 강아지 한 마리도 안 줄까.
물론 희망만 줬다는 게 문제지만, 받아들인 건 결국 그놈이니까 내 잘못은 아니다.
***
장관의 말에 잠을 설쳤다.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아침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신참 공무원들을 이끌면 그 신참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언젠가는 내 자리를 넘볼 거라는 말.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편히 잠들겠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덜덜 떨리는 말이었다. 잠깐 상상만 했음에도 너무 행복하다.
‘가능성이… 있어!’
심지어 딱히 불가능한 미래도 아니다. 당장 루치아노만 해도 광속으로 과장까지 승진하고, 부장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단순히 내 추천장만 받았음에도 그런 위업이 가능했다.
그런데 능력이 있는 인재를 내가 성심성의껏 보살핀다면? 추천장에서 끝나지 않고 은근히 밀어준다면?
‘순식간에 부장, 차장급 인재가 생긴다.’
그리고 부장, 차장급이 늘어나면 장관 후보도 늘어나고, 장관 후보가 늘어나면 같은 인물이 계속 장관 자리에 있기 부담스러워진다.
한 부서에 한 자리밖에 없는 장관. 그 영광스럽고 탐스러운 자리를 한 사람이 독점 중이라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죄스러운 일인가. 만일 장관 후보가 증식한다면 대의와 공익을 위해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
반드시 그럴 거다. 아무튼 그럴 거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후배를 위해 물러나는 선배.’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명분이라 눈물이 다 나올 것 같다.
능력과 열정 넘치는 후배나 부하들을 찍어누르는 것도 아니고, 출세를 위해 도와주는 거잖아. 이렇게 마음씨 좋은 선배가 어디 있을까.
‘좋아.’
흡족한 마음으로 협탁에 있던 통신구를 잡았다.
– 감찰성 장관 비서, 데이라스 크로튼입니다.
“어, 나야.”
그러고는 곧장 비서에게 연락을 걸었다.
“부탁할 게 있어서 연락했는데, 시간 괜찮아?”
– 물론입니다, 각하. 편히 말씀하십시오.
비서가 슬쩍 밀어내는 서류가 보였지만 애써 못 본 척했다.
미안해. 비서를 돕지는 못할망정, 일거리나 투하하는 장관이라 미안해.
하지만 퇴직 가능성이 눈앞에 아른거리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어…
“내가 감찰성이 출범한 후로 쭉 휴가 상태였잖아. 나름 경력이 쌓인 녀석들은 괜찮지만, 신참 관료들은 내 얼굴도 잘 모를 것 같더라고.”
그러니까 장관과 신참 관료들의 간담회라도 갖자.
그래야 내가 밀어줘야 할 녀석들을 파악할 수 있을 테니.
***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감찰성 청사 내에 있는 대회의실. 발 디딜 틈도 없이─ 라는 말은 과장이지만, 나름 오밀조밀하게 모여 정자세로 앉아있는 신참 관료들.
그리고 이 딱딱한 분위기 속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나까지.
‘나는 왜.’
당혹스러운 심정에 눈을 깜빡이다가, 나와 비슷한 심정인지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던 시리와 눈이 마주쳤다.
‘너도?’
‘나도.’
빠른 눈빛 대화 끝에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 그래도 신참으로 가득한 장소에서 경력이 쌓인 우리가 눈빛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괜히 신참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저 망할 선배라는 것들이 무언으로 우리를 평가 중인 게 아닌가, 라는 부담을.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준은 아닌데.’
순간 쓴웃음이 나올 뻔했다. 장관 각하의 은혜로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감찰부에 들어왔으니 나도 어느덧 5년 차에 접어든 관료다. 능숙하고 노련하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수준 또한 벗어났다.
헌데 그런 내가 풋내기 관료들과 나란히 앉아있다니. 이건 대체 무슨 일일까. 일을 합법적으로 쉴 수 있으니 좋기는 하다만.
“다들 모인 것 같군.”
그런 생각을 하며 천장의 무늬를 관측하려던 찰나, 장관 비서실의 선배 한 분이 들어왔다.
“곧 장관 각하께서 오실 예정이다. 각하께옵선 휴가 중이시나, 감찰성을 가장 아래에서 지탱하고 있는 너희를 위해 직접 시간을 내신 거다. 감사한 마음으로 각하를 맞이하며, 절대 실례되는 행동을 하지 말도록.”
선배의 조언에 신참 녀석들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선배의 말이 없었어도 장관 각하께 실례를 저지를 놈이면 이 감찰성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거다.
“데미안.”
“아, 예.”
“이 중에서는 네가 제일 선임이다. 각하께서 친히 너를 지명하신 거니, 각하의 신뢰에 반드시 부응해라.”
“…예?”
“그럼 이만.”
충격적인 선언을 남긴 선배는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각하께서… 나를 지목하셨어? 한동안 각하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목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각하의 기대.’
은근히 풀어졌던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각하께서 왜 나를 지목하신 건지는 알 수 없다. 허나 각하께서 나를 필요로 하신다면 몸과 영혼을 불살라서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각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자세이니.
‘너도?’
‘나도.’
이번에도 시리와 눈을 마주쳤다가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리 또한 각하의 은혜를 받은 입장이다. 나처럼 각하를 위한 마음이 뜨거울 터이니, 시리와 힘을 합쳐 완벽하게 각하를 맞이해야 한다.
***
대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각이 잡힌 신입들이 보였다.
‘좋구만.’
아주 흡족한 첫인상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과연 이 중에서 얼마나 내 자리를 노리게 될까. 많이는 안 바라고 한 셋 정도만 나오면 좋겠는데.
‘장관 후보가 셋이라.’
입꼬리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