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52)
로판 속 공무원 752화(753/945)
장관이 또다시 기행을 저지르고 있다.
휴가 중에는 절대 일을 하지 않겠다는 듯 저택에만 있던 인간이, 내가 부르면 온갖 인상을 쓰며 태양전으로 오던 인간이 스스로 대외 활동에 나섰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교정부의 과장과 접촉한 것은 장관의 말처럼 키우는 개 때문이라고 쳐도, 감찰성의 신참 관료들과 간담회를 진행한다? 바로 아래에 있는 부장들도 잘 안 만나는 주제에 간담회는 무슨 간담회야.
순간 장관의 개─ 티티가 주인을 닮아 온갖 암컷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가 싶었다. 그 암컷들이 전부 감찰성 관료들의 애완견이라 간담회를 진행하는 건가 의심이 들었다.
‘그럴 리가.’
허나 아무리 세상 일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감찰성 신참 관료 전원이 개를 키울 확률. 그리고 그 개들이 티티에게 반했을 확률. 이 두 가지 경우가 중첩되는 것은 얼마나 극악의 확률이겠는가. 논할 가치도 없는 망상이다.
그렇기에 혼란스럽다. 이번에는 애완견의 연애를 위해 접촉한다는 명분도 없다. 저택에 있는 걸 좋아하는 장관이 그 무거운 몸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음?’
만년필을 돌리며 장관의 기행을 해석하던 중, 책상에 올려두었던 통신구가 짧게 진동하였다.
‘허어.’
그리고 통신구를 확인하자 절로 탄식이 나올 내용을 볼 수 있었다.
[ 감찰성 장관이 군부 내 하급 지휘관 및 하급 기사들과 회동. 과거 감찰성 장관의 추천장을 받았던 아카데미 졸업생들이 포함되었음. ]장관의 행보가 감찰성 내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보고.
상상도 못한 보고라 혼란이 가중되었다. 감찰성 신참 관료들과 만나는 것까지는 부서 최고 책임자의 활동이라 보겠는데, 군부와 접촉하는 건 대체.
그러고 보니 대토벌 전쟁 직후, 장관은 감찰부에 남는 게 아니라 군부로 가려고 했었다. 설마 그때의 미련이 아직도 남아있던 건가? 군부의 밑바닥부터 시작하기 위해 하급 지휘관과 기사들을 만나는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제 와서 장관이 부서를 옮기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다. 애초에 장관의 군부 이적은 나도, 제국군 부사령관인 장인어른도 수용하지 않을 미친 짓이다.
‘웃음만 주고 끝낼 것이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장관이 교정부 과장과 접촉한 이유를 알았을 때는 즐거웠다. 거기서 장관의 기행이 멈췄다면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왜 거기서 두 발자국 더 나아가는 걸까.
아쉽기 그지없다. 모두가 행복한 상태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거늘, 장관이 그 기회를 걷어찼다.
이 얼마나 통탄스러운 일인가. 일이 이렇게 되면 나는 장관의 행동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 황제 폐하 만세.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 칼─
“장관. 할 일 없으면 태양전으로 오게.”
– …예, 폐하.
정확히는 장관을 직접 부르고, 요즘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
하는 짓을 찬찬히 살펴보면 나사가 몇 개 정도 풀린 것 같으나, 의외로 물어보면 묻는 대로 순순히 답하는 장관이니까. 반역 준비를 하는 게 아닌 이상 내 의문을 제대로 풀어줄 터.
“신흥 관료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뭐?”
“물이 고이면 썩고, 구르지 않는 돌에는 이끼가 끼는 법 아니겠습니까? 아래에서 올라와야 위에 있는 관료들도 자극을 받겠지요. 그러면 행정부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헌데 해명을 듣고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장관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유능한 인재를 오래 중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하게 승진이라는 카드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래에 있는 관료들에게 위로 갈 수 있다는 희망, 위의 관료들에게는 아래에게 붙잡힐 수 있다는 위기감, 더욱 위의 관료들에게는 탈출하지 못할 족쇄를 다는 것이 용인술의 기본이다.
단체는 적당한 변화를 겪어야 한다. 같은 모습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부작용이 생기고, 새로움이 없는 적폐 집단으로 변한다.
‘그걸 왜 네가.’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장관이 할 생각은 아니다. 설마 장관이 감찰성이 아니라 인사성 장관이었나.
“장관.”
“예, 폐하.”
“실로 아름답고 숭고한 뜻이나, 휴가 중인 장관이 직접 나서서 처리할 일은 아닌 것 같네만.”
그러자 장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역시 다른 속내가 있었다. 장관이 건강한 행정부 운운하며 신참 관료들을 다독일 성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뻔히 아는데. 어딜 감히 본심을 숨기려 들어.
“…사실 소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장관을 위한 일?”
“예, 폐하. 유능한 부하들이 활약한다면 가장 위에 있는 소신도 자극을 받지 않겠습니까? 젊은 나이에 과분한 자리에 오른 소신이 교만에 빠지지 않게, 장관의 자리가 언제나 소신의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게 신참 관료들을 만났습니다.”
순간 ‘그거 영원히 네 자리 맞다.’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치솟았다.
그래도 참았다. 장관이 무슨 심정으로 기행을 벌였는지 깨달았으니까.
‘오지 않을 미래를 꿈꾸는구나.’
아래에 있는 관료들이 위로 치고 올라와, 언젠가는 자신의 자리도 차지해 주기를 바라는 부질없는 희망. 솔직하게 말하면 희망이 아니라 미련.
장관은 그 미련에 눈이 멀었다. 희박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가능성에 현재를 걸고 말았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입 다물고 있자.’
어느새 꿈틀거리기 시작한 입가를 조용히 매만졌다.
그래, 장관을 위해서 내 생각은 그저 가슴에 묻어두자.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꿈이 필요한 법인데, 장관의 꿈은 영원히 이루지 못할 평생의 꿈 아닌가. 장관이 인생 내내 달려가게 만들 아름다운 꿈.
“크읍.”
“폐하?”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빠르게 수습했다.
장관은 나보다 동생이지 않나. 형으로서 동생의 꿈을 짓밟을 수는 없다.
‘…100명을 모으면 퇴직을 고려하겠다는 말, 아직도 믿는 건가?’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26살인 주제에 왜 퇴직만 걸리면 6살 지능으로 회귀하는 건지 모르겠다.
***
황제의 격려를 받으며 태양전에서 물러났다.
그 격려에 희망은 더욱 커졌다. 내가 열심히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려도 황제가 ‘개수작 부리고 말고 종신 장관이나 해.’ 라는 말을 내뱉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헌데 황제는 그런 핀잔 없이 순수하게 힘내라는 격려를 줬다.
이는 황제도 내 마음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뜻이다. 늘 보는 얼굴이라 지겨운 나 대신, 새로운 인재가 등장하면 기꺼이 장관으로 삼겠다는 표현이다. 확실하다.
‘고맙다…’
태양전 방향으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역시 황제가 개새끼기는 하지만 느그 개새끼가 아닌 우리 개새끼였다. 어쩌다 가끔은 유용한 모습을 보이는 개새끼였어.
‘다음은 어디로 갈까.’
그렇게 짧은 목례를 마친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를 고민했다.
지금까지 내 본거지인 감찰성, 마음의 고향인 군부를 방문했다. 두 곳 모두 열렬하게 나를 반겨주었고, 제법 싹수가 보이는 뉴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재무성이 좋겠지?’
이 긍정적인 기세를 몰아 세 번째 방문지는 재무성으로 결정했다.
감찰성은 본래 재무성 소속이었던 부서. 재무성 내에는 아직 내 인맥이 남아있으니, 싱싱한 뉴비들 좀 보자고 하면 기꺼이 들어줄 거다.
그다음은 특무성으로 가자. 감찰성 휘하의 정보부와 특임부에는 구 특무성 소속 녀석들이 많으니까. 그 녀석들을 통해 부탁하면 어떻게든 될 거다.
‘행정부도 물갈이할 때가 됐지.’
사실 나만의 탈주를 바란다면 감찰성만 챙기면 그만이다. 다른 부서 신참 공무원들을 챙겨봤자 나에게는 득이 될 것이 없다.
허나 이렇게 여기저기 씨앗을 뿌려야 장관 교체라는 기적이 꽃을 피울 테고, 다른 부서에서 장관이 교체되어야 나도 물러날 명분이 생긴다. 당장은 이득이 없어도 언젠가는 빛을 볼 백년대계다.
아니. 백년대계라고 하면 불안하니 십년대계라고 하자.
– 푸르릉.
“산책 중이냐?”
– 푸릉.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황궁을 걷던 중, 상황이 키우는 흑마와 눈이 마주쳤다.
상황이 마련한 마구간에 얽매이지 않고, 황궁이라는 넓은 세계로 나온 흑마. 마치 내 품을 벗어나 감찰성의 정점이 될 미래의 인재들을 보는 것 같아 뿌듯했다.
‘감찰성 제복도 검은색이지.’
내 앞에 있는 흑마도 검은색이고.
이건 에넨과 영원한 푸른 하늘과 콘스탄티나가 내 미래를 축복하는 것일 거다.
***
사람들은 이상하게 추위는 두려워하지만 더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추위를 이길 수 있는 불은 두려워하지만 더위를 이길 수 있는 물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실 추위는 최대한 몸을 감싸 매면 극복할 수 있다. 덕분에 추위로 죽는 사람은 줄일 수 있다.
허나 더위는 아무리 벗어도 해소할 수 없다. 때문에 더위로 죽는 사람은 막을 수 없다.
‘물을 잘못 마시면 불보다 치명적이지.’
또한 불은 뜨겁다는 즉각적인 고통 때문에 사람들이 피한다. 반면 물은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일단 마시며, 몸속에서 탈을 내고 나서야 고통스러운 것을 안다.
그렇기에 구휼성을 이끄는 자로서, 한때 구휼성의 보살핌을 받던 자로서 겨울보다는 여름이 무섭다. 내가 일을 소홀히 하면 죽어나갈 백성들이 생각나 두렵다. 그 공포로 인해 봄이 되었을 때부터 여름을 무사히 넘기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다행히 효과는 있었지만, 그 대가로 상당한 양의 서류가 쌓이고 말았다.
‘뭐 하나 그냥 얻는 법이 없군.’
작게 혀를 차며 서류를 훑어봤다.
얼마나 일이 밀렸으면 하반기에 구휼성으로 들어온 신입 관료들과 면담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장관이 말단 관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나, 부장급과 과장급까지 업무에 몰두하는 중이라 아직까지 면담을 진행하지 못했다.
곤란한 일이다. 그렇다고 팀장급에게 이런 일을 맡길 수도 없…
…
‘마침 노는 인력이 있군.’
슬쩍 품속에 있던 통신구를 꺼냈다.
딱 한 명이 있다. 관료들을 다독일 권위와 능력이 있으며, 딱히 업무도 없어서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
‘감찰성 장관.’
분명 휴가 중이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있는 사람. 각 부서를 돌아다니며 신입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던 사람.
감찰성을 시작으로 군부, 재무성, 특무성, 교육성, 형무성에 방문한 감찰성 장관이다. 여기에 구휼성 하나가 추가돼도 아무 문제가 없을 터.
‘좋아.’
결정했다. 신입 면담은 감찰성 장관에게 맡기자.
타 부서 장관에게 내 부서 면담을 맡기는 건 기이한 일이나, 자발적으로 기이한 일을 하고 다닌 장관이다. 내가 먼저 부탁하느냐 장관이 먼저 부탁하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비서.”
– 예, 각하. 말씀하십시오.
“감찰성 장관에게 신입 관료들과의 면담을 맡길 예정이니, 준비해두도록.”
– …감찰성 장관에게, 말씀이십니까?
“그래. 문제라도 있나?”
– 그, 타 부서 장관에게 면담을 맡기면… 관료들을 향한 각하의 통제력이─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다.”
비서의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고작 면담 한 번 양보했다고 통제력을 잃는다? 그런 머저리 같은 놈은 장관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그따위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장관 행세를 했다면 혀 깨물고 죽어야지.
‘덕분에 살았군.’
아무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찰성 장관이 기행을 저지르는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복받을 거다. 선행에는 그만한 대가가 돌아오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