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53)
로판 속 공무원 753화(754/945)
오늘따라 소식이 없는 낚싯대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기이한 일이다. 분명 같은 장소에다 비슷한 날씨인데도, 어떨 때는 물고기가 쉬지 않고 잡히며 어떨 때는 하루 종일 소득이 없기도 하다. 낚시의 세계는 신기하기도 하지.
“그러고 보니 빌헬름. 그거 들었나?”
“들었냐니. 무엇을?”
게오르크의 말에 시선은 낚싯대에 고정한 채로 답했다.
원래는 발터까지 셋이서 오려고 했거늘, 하필 개인적인 일이 생겨서 발터는 오지 못했다. 덕분에 친구로도 모자라 사돈이라는 관계까지 얽혀버린 게오르크와 단둘이서 호수에 오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긋지긋한 얼굴이다. 이쯤 되면 부인이나 자식들 다음으로 많이 보는 얼굴 같으니.
아니, 자식들은 테레사를 제외하면 독립한 상태라 이놈이 부인 바로 다음일 수도 있다.
“자네 장남 말이야. 요즘 제도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고 하던데?”
“칼이?”
허나 이어지는 말에 지겨운 게오르크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행정부와 군부의 신입 관료들을 만나는 중이라고 소문이 자자해. 우리야 가끔 낚시만 즐기러 나와서 잘 몰랐지만, 요즘 제도 관료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더군.”
“아니, 갑자기 왜.”
“부친인 자네도 모르는 걸 내가 알겠나.”
어깨를 으쓱이는 게오르크를 보니 조금은 불쾌했다.
궁금증을 유발한 뒤에 발을 빼다니. 음흉하기 짝이 없는 짓이지 않나.
“아무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휴가 중인 감찰성 장관이 신참들을 만나고 다니는데 조용할 수 없지. 폐하께서 행정부의 기강을 잡기 위해서 장관을 움직였다는 말도 있고, 각 부서의 장관들이 감찰이라는 공포를 내세워 열정적인 신참들을 제어하기 위함이라는 말도 있어.”
“둘 다 설득력 없는 이야기로군.”
“원래 이유 모를 사태에는 근거 없는 추측만 가득한 법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 행정부의 기강을 잡기 위해 칼을 움직였다? 폐하께서 행정부를 통제하고자 하신다면 굳이 휴가 중인 장관을 불러들일 필요가 없다. 당장 제국의회의 업무 중에는 행정부 견제와 감시가 존재하니까.
그렇다고 각 부서의 장관들이 칼을 내세워 신참들의 기를 죽이기로 했다?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타인의 능력을 동원해야 신참들을 길들일 수 있다니. 그런 인간은 장관 자리까지 오르지도 못했을 터.
그렇기에 게오르크의 말처럼 이유 모를 사태에 온갖 추측이 달라붙었다. 은퇴한 우리 귀에까지 들려올 정도면 제법 오래전부터 이어진 일일 텐데, 그럼에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궁금하면 직접 물어봐라.”
“매정하기는.”
작게 혀를 차는 게오르크를 흘끗 보다가 다시 낚싯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게오르크가 하려는 말은 뻔하다. 네 아들이 의아한 짓을 하고 있으니, 부친인 네가 한번 진실을 알아봐 달라는 거겠지. 우리처럼 은퇴한 퇴물들에게는 이런 사소한 소식도 즐거움이 될 수 있으니.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나는 칼에게 모든 걸 맡기고 물러났으며, 칼은 내 간섭이 없어도 훌륭히 나아갈 수 있는 귀족이자 가주다. 제국의 기둥으로 군림하고 있는 뛰어난 관료다.
그렇기에 칼의 행동에 의문을 표해서는 안 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의아할 행동일지라도, 칼이 그런 행동을 했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내 아들을─ 제국의 기둥을 믿는다.
‘스스로 흐르는 물줄기를 가로막을 수는 없지.’
고고하게 흐르는 물줄기는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홀로 나아갈 수 있다. 흐르고 흘러 염원하는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고고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빠르게 흐르는 물줄기를 돌로 가로막는다면 알아서 바다까지 흐를 물줄기가 사방팔방으로 흩날리지 않겠나. 내가 칼에게 연락을 거는 것이 딱 그런 상황이다. 아비로서 자식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만 되는 상황이다.
“내가 그래도 크라시우스 가문과 남도 아닌데! 사위의 형이 특이한 일을 하고 있다면 알 권리가 있지!”
“권리가 있으니 직접 물어보라는 거 아닌가. 남도 아닌데 못 할 게 어디 있나.”
“하여간 말이라도 못 하면.”
구시렁거리는 게오르크를 무시하며 호수를 바라봤다.
잔잔한 저 호수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면 수면이 요동치는 것처럼, 평온했던 일상도 작은 변수로 인해 흔들리는 법이다. 지금은그 작은 변수가 칼의 대외 활동이겠지.
부디 칼의 행보가 묵직하되, 일상까지 격렬하게 흔들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칼에게도 생각이 있겠지만 휴가 중인 아들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고생하는 건 썩 달갑지 않은 일이니까.
“…정말 안 되겠나? 나 궁금해서 잠도 못 잘 것 같은데.”
“나는 생각 없으니 자네 사위한테 부탁하든가.”
“책임자를 돌리는 걸 보면 자네도 아직 의원 물이 덜 빠졌어.”
당연한 말이기에 침묵으로 대꾸했다.
내가 제국의회 의원으로 지낸 세월이 몇인데, 벌써 그때 버릇이 사라졌겠나.
***
칼이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꺼웠다. 사랑하는 칼에게 이런 비유를 하는 건 미안하고 가슴 아프지만, 덥다는 이유로 저택에만 있던 칼은 구석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처럼 굳건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저러다 침대와 하나가 되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걱정될 정도로.
하지만 그랬던 칼이 누구의 독촉 없이 스스로의 결단으로 외출에 나섰다. 티티의 봄날을 위한 외출도 아닌, 우리 아이들을 헬렌에게 데려다주기 위해서도 아닌─ 순전히 자신만의 이유로.
“당분간 계속 나갔다 올 것 같아. 그래도 식사는 저택에서 할 거니까 걱정 말고.”
“무리해서 저택으로 오지 말고, 점심 정도는 밖에서 드세요. 대신 저녁까지는 돌아와야 돼요?”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저녁 넘어서까지 돌아다니기는 싫어.”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기뻤다. 사람에게는 적절한 휴식이 중요하지만, 반대로 너무 할 일 없이 지내도 조금씩 망가진다고 하잖아. 나는 사랑하는 칼이 망가지는 걸 보기 싫었다.
다만 그 염원과 소망이 에넨께 강렬하게 닿은 모양이다.
“마르, 오늘도 다녀올게.”
“네. 잘 다녀오세요.”
꾸준히 외출에 나선 칼은 사흘 전에도.
“이번에는 점심 먹고 올 것 같아.”
“네, 주방에는 그렇게 말해둘게요.”
이틀 전에도.
“아침은 간단하게 먹을게. 빨리 가야 돼서.”
“아, 네.”
어제도 저택을 벗어났다. 마치 그동안 저택에서 소모한 시간을 밖에서 벌어오겠다는 기세였다.
이쯤 되니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연이어서 나갈 일이 어디 있지? 며칠에 한 번 나가는 게 아니라, 1주 넘게 매일매일 나갈 일이 있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당혹감은 이내 불안감으로 변했다.
지금까지는 칼에게 무슨 이유로 나가는 건지 묻지 않았다. 칼이 나를 크라시우스 가문의 안주인으로 인정하여 가문 살림과 저택 관리를 일임하는 것처럼, 나도 칼이 가주인 것을 존중하여 가주의 행보를 세세히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흘러가면 아무리 존중을 내세워도 궁금할 수밖에 없다.
‘물어보자.’
그래, 이건 무슨 일인지 확인해야 돼. 가주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편의 일을 궁금해하는 건 아내로서 당연하잖아.
오히려 내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으면 칼이 서운해할 수도 있다. 뱃속의 나르도 엄마는 왜 이리 매정하냐며 놀랄 수 있어.
“저기, 칼?”
“응?”
“요즘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그래서 칼이 돌아오자마자 직설적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냐고. 혹시 안 좋은 일이 있는 거라면 같이 고민하고, 같이 짊어지자고.
“일이 있기는 하지.”
칼의 대답에 가슴이 철렁였다.
무언가 있다는 걸 짐작하기는 했으나, 동시에 칼이 별일 아니라고 부정해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칼은 일이 있다고 시인했다.
뭘까. 대체 무슨 일일까. 어떤 일이 있길래 휴가 중인 장관이 몇 날 며칠을 돌아다녀야 하는 걸까?
“중요한, 일인가요?”
“중요하지. 내 은퇴가 걸린 일이니까.”
?
“네?”
은퇴라는 말에 절로 반문이 나왔다.
내가 칼과 함께 지낸 세월도 수 년인지라, 칼이 일하기 싫어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정작 일이 생기면 성실하게 수행하지만, 아무튼 장관이라는 자리에 큰 미련이 없다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칼의 나이는 스물여섯에 불과하다. 은퇴를 논하기는커녕, 칼 또래 중에는 이제야 관료가 된 사람도 존재하는 수준이다.
“아, 당장 은퇴한다는 건 아냐. 나도 양심이 있지.”
‘양심?’
순간 흠칫하고 말았다. 솔직히 칼의 신분과 입지, 황제 폐하와의 굳건한 신뢰 관계와 다른 귀족들과의 인맥 등을 고려하면 칼은 은퇴를 생각하는 것 자체로도 양심이 없는 거다. 훗날 은퇴하겠다는 생각도 불충의 범위다.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칼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
“내가 요즘 각 부서의 신참 관료들하고 만나는 중이거든?”
이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려는 듯한 기세라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지금은 신참이지만 언젠가는 노련한 관료가 되고, 중견 간부가 되고, 고위 간부가 되겠지. 누구나 시작은 신참이니까.”
“그, 렇죠? 칼도 팀원부터 시작했었으니까요.”
“맞아. 그리고 팀원인 내가 장관까지 오른 것처럼, 내가 만나는 신참들 중에서도 장관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어.”
그 말에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있기야 하겠죠. 그 사람이 칼처럼 경이로운 승진 속도를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런데 안 그래도 자질이 있고, 의욕도 넘칠 신참들을 내가 비호한다면 더 빠르게 승진하겠지. 그러면 행정부 내의 승진 속도가 더 빨라질 거야.”
‘설마.’
칼의 설명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빠른 승진. 행정부 전체의 승진 속도 향상. 관료가 아닌 내가 들어도 심상치 않은 단어고, 곧바로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위로 치고 올라오는 빈도가 늘어나면, 언젠가는 나도 물러날 때가 오겠지.”
‘아.’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내 예상이 맞았다.
***
이상하다. 마르의 반응이 내 예상을 벗어났다.
내 위대한 십년대계를 듣는다면 마르도 기뻐할 줄 알았다. 내가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가정에 전념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좋아할 줄 알았다.
“칼. 저는 언제나 칼을 응원하고 사랑해요.”
“어, 응.”
“칼도 조금은 힘들 수 있어요.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겠죠. 그래도 칼의 곁에는 언제나 저와 다른 부인들, 아이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당연히 안 잊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주는 마르. 묘하게 목소리에 물기가 섞여있는 마르.
어째서지. 어째서 날 동정하는 거지? 분명 내 계획은 모두가 감탄할 지성이었는데?
“칼.”
“응.”
“저는 관료가 아니니 칼에게 감히 조언을 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큼은 말할 수 있어요.”
더욱 강하게 나를 끌어안은 마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칼 같은 인재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그 말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상한 일이다. 그냥 평범한 칭찬인데, 마르의 사랑스러운 칭찬인데 가슴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머리는 차갑게 식어가고, 몸은 딱딱하게 굳었다.
‘망할.’
눈을 가리고 있던 장막이 사라진 기분이다.
마르의 한마디 덕에 애써 외면했던 진실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