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55)
로판 속 공무원 755화(756/945)
문화성과 해양성 신참 간담회를 끝으로 대외 활동을 중단했다.
마음 같아서는 도중에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내가 먼저 잡은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인성 파탄자가 될 수는 없어서 버티고 버텼다.
심지어 절묘하게도 문화성과 해양성은 행정부 내에서 서열이 낮은 부서에 속한다. 그런 부서들과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을 보이면 무슨 이야기가 나오겠나.
‘감찰성 장관은 문화도, 바다도 우습게 보는 놈이라 하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문화성은 국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서라고 하기 어려우나, 역사와 전통문화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소위 ‘진짜’ 학자들이 몰려있다. 진짜들의 분노와 원망만큼 두려운 건 없다.
해양성은 바다 관련인 업무 특성상 황금공과 밀접한 인물들이 포진 중이다. 당장 해양성 장관은 황금공의 장인 중 하나이며, 부장 중에는 사돈이 있을 정도지. 부서 서열과 별개로 척을 지면 곤란한 부서다.
‘이제 저택에만 있자.’
그렇기에 두 폭탄을 피했다는 안도감을 만끽하며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었다.
능력 있는 신참들을 비호해?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면 위도 자극을 받아? 틀린 생각은 아니나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각 부서의 장관이나 부장들도 젊고 유능한 인재를 원하니까.내가 나서지 않아도 부장들이 싹수가 보이는 신참들을 밀어주고, 장관들이 비호했을 거다.
‘내다 버린 시간…’
순간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내가 더위와 귀찮음을 감수하고 저택 밖을 뽈뽈뽈 돌아다닌 이유는 뭘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니 아무 의미도 없었거늘.
그래도 만약, 만약 각 부서의 신참들이 수뇌들의 비호를 받아 장관까지 치고 올라가면 ‘한 부서라도 이변이 일어나면 행정부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라는 대계가 이루어지겠지만,
‘그럴 리가 있겠나.’
솔직히 신참들이 날고 기어봐야 장관은커녕 부장직도 아슬아슬하다.
그야 그 신참들을 키워줄 사람들이 장관이고 부장이잖아. 키워준 사람을 잡아먹고 빈자리를 차지하면 절대 좋은 얘기 못 듣지. 은혜도 모르는 머리 검은 짐승 취급을 당할 거다.
“감찰성에는 머리 검은 놈 없나?”
나도 모르게 본심을 중얼거렸다. 키워준 은혜고 나발이고 화끈하게 통수치는 미친놈 하나 있었으, 면…?
‘…어?’
부질없는 꿈을 꾸다가 슬쩍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은인의 자리를 먹은 신참. 화끈하게 미친 머리 검은 짐승.
‘나잖아.’
놀랍게도 내가 그 미친놈이었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내 직속상관이 죽어서 팀장 자리를 꿰찼고, 새롭게 직속상관이 된 당시 4과장도 감찰부장이 되자마자 나에게 부장 자리를 넘겨야 했다.
물론 내가 의도해서 그런 건 아니나,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야심에 미친 괴물일 수 있다.
‘망할.’
나 자신이 머리 검은 짐승이었다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일까…
동시에 재무성에 있을 모 장관이 부러웠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머리 검은 부하가 장관한테는 있었잖아.
그 부하가 재무성에서 독립해버린 건 넘어가자.
***
사람은 처음부터 없을 때보다, 있었다가 사라졌을 때 더욱 큰 상심을 느낀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없었다면 그것이 소중한 것을 모르니까. 없이 사는 것이 익숙한 거고 일상인 일이니까.
헌데 ‘무언가’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것이 없으면 곤란할 정도로 익숙해지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사라지면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유감스럽게도 없다. 더욱 유감스러운 점은 내가 그 버틸 수 없는 사람의 기분을 절절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하루의 시작을 장관으로 보내지 못하다니.’
씁쓸하다. 제국의 온갖 정보가 몰리는 태양전이기에 잠시도 쉴 수 없으나, 요 근래에는 아침이 되자마자 행정부로 움직이는 장관의 소식을 듣고 웃을 수 있었다.
어떻게 웃지 않겠나. 휴가 중인 장관이, 일하는 걸 싫어하는 장관이 이룰 수 없는 꿈을 품은 채 자발적인 업무를 수행했다. 그런 보고를 듣고 웃지 말라는 건 가혹한 일이지.
그리고 더 이상 그런 보고를 듣지 못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고.
‘이제 누가 나한테 웃음을 주나.’
당연히 황후와 황태녀, 황자도 나를 웃게 하지만, 가족이 주는 웃음과 장관이 주는 웃음은 성격이 다르다. 절대 같을 수가 없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집었다. 이럴 때 보면 장관이 휴가 중인 게 아쉬우나, 막상 업무에 복귀하면 온갖 사고를 칠 것 같단 말이지. 실로 난감한 일이다.
“음?”
그런 생각을 하며 막 잡은 서류를 읽자, 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트리카 제국의 수도였던 크로이타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국토성과 문화성에서 올린 서류. 안 그래도 땅만 팠다 하면 온갖 유물이 나오는 크로이타기에 관련 서류는 자주 올라온다. 특히 베히모스가 등장한 이후로는 더더욱.
이번에도 베히모스와 연관된 내용이었으나, 다소- 아니, 매우 특이한 내용이었다.
[ 베히모스를 주변으로 수 km에 이르는 지역이 초목으로 뒤덮임. 본래 목초지였던 곳은 더욱 풍성해졌으며, 일반 모래 위에서도 풀이 자라기 시작함. ] [ 수십 km 밖에 있던 야생의 짐승들조차 베히모스 주변으로 집결. 분명 육식 동물임에도 소나 양을 노리지 않고 풀을 뜯는 기이한 모습을 보임. ] [ 베히모스 주변으로 형성된 풀을 먹은 경우, 다른 목초지의 풀을 꺼리는 모습을 보임.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경우 먹기는 먹으나 선호 순위가 생긴 것으로 추정. ]‘허어.’
순간 잘못 본 건가 싶어 다시 서류를 읽었다.
도대체 어느 부분부터 트집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갑자기 베히모스를 중심으로 지형이 바뀐 것에 놀라야 할지, 육식 동물들이 가축을 눈앞에 두고 채식을 택한 것에 놀라야 할지.
그도 아니라면 주는 대로 먹던 가축들이 반찬 투정을 부린 것에 놀라야 할지 말이다.
‘트리카는 대체.’
트리카의 저력에 이번에도 감탄했다. 거의 2천 년 전의 국가가 이런 어마어마한 존재를 만들 줄이야.
정작 이런 걸 가지고도 제대로 써먹지 못한 채 멸망했지만.
[ 목초지가 현시점에서도 넓어지고 있음. 과거 크로이타 인근에는 거대한 초원이 펼쳐졌었다고 하니 역사적 모습을 되찾는 고무적인 과정이나, 어디까지 초목으로 덮일지 추측 불가. ]아무튼 서류의 마지막 문장을 본 후, 조용히 서류를 내려놓았다.
베히모스 덕에 크로이타로 향하는 관광객들이 늘어난 것도, 황실의 가축들이 건강히 자라는 것도 기쁜 일이다. 목초지가 늘어나는 것도 썩 긍정적인 일이다.
다만 목초지가 개발지, 혹은 도로까지 침범한다면 곤란해진다. 모든 일에는 적당히가 있어야 하는 법.
‘이제 멈추라고 해야겠어.’
그동안의 경험상 베히모스는 온순하고 대화가 통하는 상대다. 게다가 로이가스 황가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고 하니, 무작정 목초지가 넓어지면 곤란하다는 것도 알고 있을 터.
그러니 목초지를 넓혀준 것에는 고맙다는 말을 하되, 추가적인 확장은 정중하게 제지하자. 베히모스는 리브노만의 신하가 아닌 손님이니까.
그날 저녁, 다시 국토성과 문화성의 공동 보고가 올라왔다.
[ 목초지의 확장과 가축들의 번성에 감사를 표하자, 베히모스는 가축들의 번성이라는 말에 기쁜 기색을 보였음. 반면 목초지 확장에 대해서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임. ] [ 확인 결과, 목초지 확장은 베히모스가 관여한 것이 아닌 걸로 판정. 베히모스는 초목의 신인 콘스탄티나의 영향이라 증언. ]이번에도 잘못 본 건가 의심스러운 내용과 함께.
베히모스가 목초지를 넓혔다는 것도 겨우 이해하며 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베히모스가 아닌 신이 나섰다고 한다. 그것도 인간의 신이라기보다는 엘프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콘스탄티나가.
물론 엘프 주거 지구가 있는 체네스 공작령과 크로이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기껏해야 대영지 한두 개가 가로막고 있는 수준이니까. 적어도 제도까지의 거리보다는 가깝지.
그래도 세계수의 부활 이후로 잠잠한 콘스탄티나가 갑자기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그것도 굳이 베히모스 근처에서.
‘대체 무슨 일이지?’
혹시 황실에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한 과시인가?
아니, 진정 콘스탄티나나 엘프들이 원하는 게 있다면 이런 방법을 쓸 필요가 없다. 엘프를 포함한 이종족들은 황제의 친우이며, 당장 제국의 기둥인 마종공은 엘프 장로의 외손녀이지 않나. 신이 나설 것도 없이 엘프들 선에서 황실에 요청할 수 있다.
그럼에도 침묵을 지키던 신이 직접 움직였다. 목초지를 넓힌다는 눈에 띄는 방법을 통해.
‘초목의 신, 엘프의 신…’
팔짱을 끼며 생각을 정리하다가 슬쩍 통신구로 시선을 돌렸다.
‘이왕 고생한 김에 하루만 더 고생해 주게.’
속으로 장관에게 사과를 하며 통신구를 집었다.
솔직히 신과 관련된 일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지 않나.
***
이 새끼는 진짜 인생에 도움이 안 돼.
속으로 황제를 욕하며 저택 정문에 몸을 기댔다.
행정부 순례를 마친 것이 고작 이틀 전의 일이다. 침대와 하나로 살겠다고 다짐한 것은 어제의 일이다. 헌데 그 다짐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 장관. 자네가 세계수 부활에 일조하여 콘스탄티나에게 은인이라는 말을 듣고 있었지?
“과분하게도 그렇습니다.”
– 최근 콘스탄티나가 대륙에 개입했더군. 물론 인간이나 이종족에 직접적인 지시를 내리거나 한 건 아니나, 크로이타 인근을 초목으로 뒤덮었어.
“…그걸 왜 소신에게?”
– 알면서 왜 물어보는가?
오늘 아침에 갑작스레 날아온 연락. 콘스탄티나가 특이한 행동을 했으니, 신과 친한 네가 직접 가서 알아보라는 요구.
눈물이 절로 나왔다. 이 새끼는 내가 쉬는 꼴을 보기 싫은 건가?
– 마침 콘스탄티나의 거처인 세계수는 엘프 주거 지구에 있지 않나. 짐이 엘프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으니, 이왕 가는 김에 같이 가지고 가게. 외손녀 사위가 아내의 외조모님께 잘 보일 기회야.
“소신은 이미 잘 보이고 있습니다만.”
– 그럼 더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게.
하지만 ‘너 네 아내 외조모님이 멀쩡히 살아계신데, 평소에 자주 인사드리기는 하냐?’ 라는 기적의 명분이 튀어나왔다. 이 명분에 반박하면 삽시간에 쓰레기가 되는 거야.
‘갈 때가 되기는 했지.’
더욱 미치겠는 점은 정말 조만간 외조모님께 갈 예정이었다는 거다. 그것도 우리 세쌍둥이와 함께.
황제 이 새끼. 혹시 우리 집에 CCTV라도 설치했나? 실로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