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56)
로판 속 공무원 756화(757/945)
세계수의 부활 이후로 외조모님의 자택은 외조모님 혼자만의 공간이 아닌 모두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세계수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령들, 세계수라는 집이 생겨 이전보다 몇 배는 늘어난 요정들, 종족의 상징이 부활했기에 세계수까지 걸어와 기도를 드리고 가는 엘프들. 엘프 주거 지구의 모든 생명들이 집결하는데 어찌 혼자만의 공간으로 쓸 수 있을까.
그렇게 안 그래도 활기가 넘치던 외조모님의 자택─ 정확히 말하면 세계수 근처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와아! 와아!”
“빤짝이들! 잔뜩!”
“잔뜩~”
“짝은 애들도 많아!”
“웅! 많아!”
“신기해애애.”
나랑 트릭시와 함께 엘프 주거 지구에 도착한 세쌍둥이는 세계수 놀이터를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더니, 여기로 쪼르르르 저기로 우다다다 달려가며 놀기 바빴다.
이상하다. 우리 애들을 여기 처음 데려오는 것도 아닌데, 왜 매번 올수록 처음 오는 것 같은 반응을 하는 거지? 이러면 내가 외조모님과 우리 아이들을 몇 번 만나지도 못하게 한 불효막심한 놈 같잖아.
‘더 자주 데려와야 하나…’
– 마침 콘스탄티나의 거처인 세계수는 엘프 주거 지구에 있지 않나. 짐이 엘프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으니, 이왕 가는 김에 같이 가지고 가게. 외손녀 사위가 아내의 외조모님께 잘 보일 기회야.
“소신은 이미 잘 보이고 있습니다만.”
– 그럼 더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게.
문득 황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안타까운 과거를 지닌 외조모님을 위하여 최고의 외손녀 사위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었는데, 감히 황제 따위가 잘 보일 기회 운운해서 불쾌했었지.
그런데 황제의 말이 맞았다. 나는 더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했어.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더니.’
하필 이럴 때 맞을 줄 누가 알았겠나. 고장 난 시계 아니랄까 봐 제멋대로다.
“세상에. 어디서 이런 귀한 물건을.”
“폐하께서 제국의 친우인 엘프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라고 합니다. 저희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제국의 성의이기도 하니 부디 받아주세요.”
“그래, 당연히 받아야지. 친우가 찾아준 귀한 물건이니까.”
그 와중에 황제가 준비한 선물을 받은 외조모님은 흐뭇한 표정으로 트릭시와 선물을 번갈아봤다.
처음에는 몸에 좋은 보약이라도 준비했나 싶었으나, 황제가 황실 시종을 시켜 보낸 물건은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팔찌였다. 설마 황태녀가 만든 건가 싶을 정도로 푸릇푸릇하고 아기자기한 팔찌.
“설마 예전 세계수의 흔적이 제국에 남아 있었을 줄이야.”
그런데 그게 세계수의 잎으로 만들어진 팔찌일 줄 누가 알았을까. 그것도 아펠스가 불태워 더 이상 볼 수 없는, 이제는 첫 번째 세계수라 부르는 것의 유산이었다니.
원래부터 황실이 숨겨두고 있던 건 아니고, 최근에 아카데미에서 고고학 동아리가 땅을 파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아카데미의 위치가 아펠스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니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
다만 크펠로펜 건국 이후로 300년 동안 찾지 못한 걸 일개 동아리가 찾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동아리에 누가 소속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졸업만 하면 문화성이 업어서 데려가겠어.
“칼.”
“예, 외조모님.”
그렇게 기쁨과 아련함이 공존하는 표정으로 팔찌를 매만지던 외조모님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셨다.
“너를 보면 엘프들을 위해 콘스탄티나께서 보낸 사도라는 생각이 든단다. 네가 나타난 이후로 나는 외손녀를 만났고, 잃어버린 우리의 어머니와 상징을 되찾았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지.”
듣는 사람이 절로 뭉클해질 만큼 따스한 목소리라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순순히 ‘제가 좀 대단하긴 하죠.’ 라고 하기는 많이 부끄러운 칭찬이니까. 외조모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내가 의도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물들이었으니까.
“게다가 이 보물도 얻고, 저 보물들도 얻었어.”
저 보물이라는 말에 나와 외조모님, 트릭시의 시선이 동시에 한곳으로 향했다.
“불 아저씨 안녕! 잘 지냈어?”
– 음. 너희가 와서 그런지 잘 지낸 것 같군.
“땅 아쥼마는 오늘두 자?”
– 어제도 요정들과 놀아주느라 바빴다. 이해해 주거라.
“땅 아줌마~ 맨날 자아~”
어느새 불의 정령왕에게 다가가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세쌍둥이.
이번에는 부끄러움 대신 뿌듯함이 치솟았다. 저 아이들은 우연의 결과물이 아닌, 나와 트릭시가 절실하게 바라고 만들어낸 예술품이기에.
“날이 갈수록 더욱 아름다워질 보물들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내 말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외조모님의 눈빛이 더욱 부드러워졌다.
고작 3살인 우리 세쌍둥이들. 비록 쿼터지만 엘프의 피가 흐른다는 걸 고려하면, 앞으로 200년 정도는 살아갈 아이들이지. 외조모님 입장에서는 그 시간 동안 보물들이 자라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외조모님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행복일 거다. 약 100년 전에 딸을 잃고, 외손녀가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한 외조모님께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니?”
“예?”
“너희가 준비한 선물이 아니라 제국이 준비한 선물이라면 제국의 뜻으로 온 거겠지.”
명치 쪽으로 날아오는 강한 팩트에 괜히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외조모님의 말씀이 맞지만 차마 긍정할 수 없었다. 여기서 긍정하면 일이 있어야 외조모님을 찾아오는 불효 자식 같잖아.
아니, 불효라는 말로도 부족한 쁄효 자식이다. 황제의 명령이 없었어도 조만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그런 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편히 말하려무나. 혼자 올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으니, 너는 제국의 뜻으로 왔을지라도 나를 위해 온 거야.”
그러나 외조모님은 눈치를 살피는 나를 다독여주셨다.
순간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렇게 자비심 넘치는 사람을 인간 배척론자로 만들다니. 도대체 아펠스 새끼들은…
“그, 사실 콘스탄티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여쭐 것이라.”
내 말에 외조모님은 가볍게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신과 대화하겠다는 말을 이렇게 편히 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란다.”
이번에도 부정하기 어려운 말이라 머쓱히 미소만 지었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 이 세상 어느 인간이 신과 대화하고 싶다고 대화할 수 있으며, 그 행동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 여기겠나. 여명 교단의 교황조차 에넨의 음성은 몇 번 듣지 못했을 거다.
‘귀족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다.’
귀족으로 태어난 지금도 이런데, 만약 사제 가문에서 태어나 사제의 길을 걸었다면 무슨 꼴을 겪었을까.
상상만 해도 손발이 덜덜 떨리는 가능성이다.
세계수 앞으로 다가가 기도를 올렸다.
기도 과정에서 요정들이 옷자락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해프닝이 있었으나, 정령왕들이 요정들의 관심을 끌어주었기에 금방 떨어졌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옛날이었다면 여기저기 달라붙은 작은 아이들이 거슬렸을 텐데, 요즘은 요정들이 스스로 떨어지면 괜히 서운하다.
‘아빠가 돼서 그런가?’
작은 덩치와 어린아이 같은 성격 덕분에 나이와 별개로 천진난만한 요정들. 그 요정들이 나를 멀리하면, 뭔가 아이들이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아저씨가 된 것 같았다.
실로 기이한 일이다. 아빠가 되면 인생과 가치관의 절반이 바뀌는 수준이구나.
– 오랜만이군요, 은인.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콘스탄티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 물론이지요.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친우들이 제 곁에 있는데, 어찌 불편할 것이 있을까요.
‘그거 다행입─’
– 제 거처에서 신세를 지던 인연도 자신만의 거처를 얻었으니 더욱 기쁘고요.
묘하게 후련함이 담긴 목소리라 잠시 말을 멈추고 말았다.
세계수에 빌붙어 살아가다가 북방으로 터전을 옮긴 영원한 푸른 하늘. 콘스탄티나 입장에서는 무단 세입자가 드디어 나간 기분일 터.
– 그보다 은인이 저를 찾아오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예. 실례지만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 알 것 같군요. 베히모스가 전부 말했나 봅니다.
다 안다는 듯 말한 콘스탄티나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 베히모스는 신이었던 시절, 저와 작은 인연이 있던 친우입니다. 그 친우가 다시 눈을 뜬 것이 반가워 작은 선물을 준 것인데, 역시 고지식한 친우답게 거절했군요.
‘거절이라 하시면…?’
– 사실 베히모스가 지내고 있는 곳을 목초지로 바꾼 건, 제가 아닌 베히모스의 능력이라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제국에서도 베히모스를 더욱 귀중히 대할 테니까요.
목초지를 넓힐 일이 있다면 제가 몰래 힘을 쓰면 되고요.
그렇게 덧붙인 콘스탄티나의 말에 대략적인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콘스탄티나가 베히모스에게 공적 몰아주기를 하려다 베히모스가 자백한 거였구나.
생긴 것도, 하는 짓도 순박한 것이 그야말로 소 그 자체다. 어딘가에 있는 독수리가 보고 배워야 할 텐데.
‘허면 베히모스가 당신의 선물을 거절하였으니, 더 이상 목초지가 넓어질 일은 없는 겁니까?’
– 아, 그것이.
내 말에 콘스탄티나는 난감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 사실 베히모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하여 목초지를 만든 게 아니라, 만든 김에 선물을 주려고 했던 겁니다.
원인과 결과가 반대라는 말이기에 흠칫 몸을 떨었다.
– 세계수가 부활하고, 에넨의 아이들이 저의 존재를 공인한 이후─ 저에게 향하는 신앙은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실로 기쁜 일이군요.’
– 다만 너무 단기간에 과도한 신앙이 들어오는 중이라, 제 그릇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래서 급한 대로 힘을 소모하여 초목으로 대지를 덮었지요.
그 말을 듣자마자 뒤이어질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수백 년 동안 밀렸던 신앙이 일시에 쏟아지듯, 막대한 신앙을 얻게 된 콘스탄티나는 균형과 조화를 위해 고의적으로 신앙을 소모했다. 허나 고작 일회성으로 소모될 신앙이라면 콘스탄티나가 난색을 보이지도 않았을 터.
– 은인.
‘예, 말씀하시지요.’
– 혹시 세계수 같은 걸 하나 더 만들어준다면, 제국의 황제가 받아들일 것 같나요?
‘예?”
콘스탄티나의 경이로운 제안에 절로 반문이 나왔다.
세계수라는 게…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거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