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57)
로판 속 공무원 757화(758/945)
상상도 못 한 제안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사실 세계수가 하나만 존재해야 한다는 건 편협한 생각일 수 있다. 세계수를 만드는 과정이 어렵다는 것도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다. 막말로 콘스탄티나가 세계수는 오직 하나만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 적도,세계수 제작이 힘들다고 한 적도없지 않나.
아니, 물론 세계수를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지금은 신앙이 갑작스레 늘어난 특이 상황이라 세계수를 만들 수 있는 거겠지. 결코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 세계수는 엘프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 아닙니까? 그걸 더 만들어도 되는 겁니까?’
그렇기에 겨우 혼란을 억누르며 물었다. 세계수는 엘프들의 보물이자 자긍심이나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만들 수 있어도 새로 만들어도 되겠냐고.
– 은인의 말이 맞습니다. 세계수는 엘프들을 보듬는 요람이나 다름없는 것. 제 친우들인 정령들이, 자식들인 요정들이 머무는 거처와도 같은 곳. 그런 세계수가 하나 더 생긴다면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 그래서 세계수 같은 것이라고 말한 겁니다. 세계수를 그대로 만들 생각은 없어요.
‘아.’
콘스탄티나의 말에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그건 그렇네. 확실히 콘스탄티나는 세계수 ‘같은’ 거라고 했지, 세계수라고 한 적은 없다.
조금 부끄럽다. 나름 장관까지 오른 놈이 이런 간단한 표현도 인식하지 못하다니. 두 번째 세계수 탄생 가능성에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 나무는 세계수가 있으니 이번에 만들게 된다면 꽃을 만들 생각입니다. 수백, 수천 송이의 꽃이 어우러진 거대한 꽃밭을 말이지요.
‘듣기만 해도 기대되는군요. 초목의 신이 만든 꽃밭이라면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가 될 겁니다.’
아까보다 마음이 편해졌기에 순순히 공감을 표해줬다.
그래, 세계수가 아니라면 뭘 만들든 무슨 상관일까. 오히려 보기 좋은 관광지가 하나 더 생기는 바람직한 상황이다.
당장 린의 고향인 플란벨 백작령 내에도 튤립 동산이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지 않나. 콘스탄티나가 직접 만든 꽃밭이 생긴다면 대륙적인 관광지로 각광받을 터.
‘제가 황제 폐하의 뜻을 확신할 수는 없으나, 꽃밭 정도면 폐하께서도 기꺼이 받아들이실 겁니다. 이종족 보호 구역 내에 만들면 딱 좋겠군요.’
이미 관광지로 유명한 이종족 보호 구역 내에 새로운 관광지를 만든다. 뭔가 특정 지역 편애 같지만, 이종족의 신이 이종족 보호 구역 내에 자기 힘을 발휘하는 거다. 무엇이 문제일까.
게다가 현명공의 능력이면 갑작스레 생긴 신의 작품도 무난히 관리할 수 있을 거다. 주량과 별개로 행정 능력은 제국 제일인 사람이니까.
– 이종족 보호 구역 내에 만드는 건 무리입니다.
‘예?’
허나 콘스탄티나가 가장 적절한 장소를 거절했다.
– 세계수는 저를 향한 신앙이 모이는 곳이고, 제 신성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아, 예. 그건 알고 있습니다.’
– 그런 세계수 옆에 새로운 신성 덩어리를 만들면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힘이 과도하게 폭주할 수도 있지요.
그건 조금 곤란한 일이다. 안 그래도 신앙이 넘쳐서 고의로 신앙을 소모 중인 콘스탄티나인데, 도리어 힘이 폭주하면 소모한 의미가 없어지잖아.
결정적으로 초목의 신인 콘스탄티나의 힘이 폭주하면 이종족 보호 구역 전체가 수풀로 뒤덮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재수가 없으면 체네스 공작령 일부가 잠식될 수도 있고.
– 그래서 부끄럽지만, 은인에게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 은인이 황제와 의논하여 적당한 곳을 찾아주지 않겠습니까? 이종족 보호 구역과 거리가 있고, 저를 향한 신앙이 약한 지역이면 됩니다.
그 말에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졸지에 대륙 단위의 관광지, 혹은 엘프들의 새로운 성지가 될 곳을 정하게 생겼다.
‘그냥 북방으로 보내버릴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빠르게 털어냈다.
북방이 이종족 보호 구역에서 멀리 있는 지역인 건 맞고, 콘스탄티나를 향한 신앙이 약한 지역인 것도 맞다. 허나 영원한 푸른 하늘의 본거지인 북방에 콘스탄티나의 흔적이 생기면 그 후환이 두렵다.
아마 하루 중 20시간, 1년 중 360일 정도는 어느 신의 하소연을 들어야 하겠지. 상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지네.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여 슬쩍 통신구를 꺼냈다.지금 이 순간에도 콘스탄티나의 신앙이 쌓여가는 만큼, 굳이 태양전까지 갈 필요 없이 통신구로 의논하는 것이 이롭다.
물론 텔레포트를 이용하면 태양전까지 금방 갈 수 있으나, 기껏 세쌍둥이를 외조모님 앞에 대령했는데 ‘저 바쁘니 먼저 가볼게요.’ 라고 하는 건 좀 그렇잖아. 외조모님께 괜히 마음의 부담을 줄 수 있다.
– 세계수를 새로 만든다고?
“정확히는 세계수와 유사한 식물입니다. 이번에는 나무가 아닌 꽃을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그 대가로 황제의 마음에 어마어마한 부담이 생긴 것 같지만, 솔직히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오히려 즐거운 일이지.
아무튼 내 보고에 황제의 표정은 복잡하게 변했다. 이게 이득인지 손해인지, 이득이라면 어떤 방향으로 제국과 황실의 권위가 올라갈지, 물질적인 이득이 있다면 얼마나 지갑이 두둑해질지 계산 중일 터.
그런 황제의 모습을 느긋하게 구경했다. 내 역할은 콘스탄티나의 뜻을 전달하는 걸로 끝났다.
황제와 의논하여 꽃밭 장소를 정하는 거? 내가 그 정도는 기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 그깟 장소 정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 장관.
“예, 폐하. 말씀하소서.”
– 이종족 보호 구역은 안 된다고 했나?
“예.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통신구 너머의 황제가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입꼬리가 미친 듯이 씰룩거렸다. 저택에서 쉬고 있던 사람을 냅다 이종족 보호 구역으로 보내더니. 그 업보를 그대로 돌려받는구나.
– 가장 무난한 곳은 이종족 보호 구역인데, 그곳을 제외하면 마땅한 장소를 생각하기 어렵군.
“황궁은 어떻습니까? 나무도 아닌 꽃밭이라면 황궁 구석을 제공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 진심인가?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요.”
개소리 말라는 듯한 대답이라 빠르게 물러났다.한 번 찔러봤지만 예상한 대로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리브노만 황실은 여명 교단,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다. 특정 신의 흔적만 황궁에 있는 건 곤란한 일.
– 오히려 짐은 콘스탄티나의 은인인 장관의 저택이 좋을 것 같네만.
“소신은 꽃을 기르는 데 재능이 없습니다.”
문득 제과 동아리 고문 시절, 린이 줬던 화분이 생각났지만 애써 머리에서 지웠다.
그건 하나고 꽃밭은 수백, 수천 송이잖아. 비교 대상이 아니다.
“베히모스가 있는 곳은 어떻습니까?”
– 이미 초목으로 뒤덮인 곳에 꽃밭도 추가되면 도로가 잠식될 수도 있네. 차라리 뮤노 제국의 수도는 어떤가? 어차피 사람도 없는 유적지니 꽃 좀 생겨도 무방해.
“그건 그렇습니다만, 뮤노 제국의 수도는 체네스 공작령과 가깝지 않습니까?”
– 하긴. 그런 감이 없잖아 있지.
순식간에 여러 지역이 후보로 올랐다가 낙마하기를 반복했다.
곤란하네 이거. 드넓은 영토를 자랑하는 제국이니 금방 적당한 곳을 찾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은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이 하사한 꽃밭을 아무 곳에 박아둘 수도 없다. 이왕 받는 선물이면 최대한 알차게 사용해야지.
– 아.
“폐하?”
그렇게 한참이나 고민하던 중, 황제가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거긴 좀 아닌 것 같군.
“아, 예.”
그러고는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아이디어를 내뱉기도 전에 폐기했다.
아쉽다. 괜찮은 곳이 나왔나 싶어서 기대했는─
– 아니지. 오히려 그곳이라 괜찮은 건가?
‘아니 이 새끼가.’
혼자 오락가락하는 모습에 잠시 울컥하고 말았다.
나하고 밀당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야. 너 나 하고 연애하냐?
“폐하. 소신에게도 폐하의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개지랄 말고 네 대가리에 있는 걸 말해라, 라는 문장을 최대한 순화하여 말했다.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는 혼자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일단 장소부터 들어야 황제의 의견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할 것 아닌가.
– 장관. 장관이 생각하기에 아카데미는 어떠한가?
“예?”
허나 예상치 못한 지명이라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세계수를 불태웠던 미친 새끼들의 본거지에… 콘스탄티나의 신성을 때려 박자고?
‘미친 건가?’
원래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저 나이에 이 정도로 미친 건 곤란한데?
***
다사다난했던 아카데미 생활도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흐릿했던 끝이 보이니 기쁘면서도 허전하고, 공허하면서도 흐뭇했다. 이 늙은이의 욕심이 결국 빛을 보았으니까.
‘변덕으로 걷게 된 길이 이리도 아름다울 줄이야.’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투신하여 전투 마법사로서 살았다. 현재의 제국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걸 꺼리지 않았다.
허나 그 길을 걷고 나니 공허감만 남았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으나, 이렇게 인생을 끝내도 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택했다. 군의 원로로 남는 길이 아닌, 교육자라는 제2의 길을 택했다. 현재가 아닌 미래의 제국을 위해 젊은 새싹들을 돌보고 싶었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전장을 구르고 굴렀던 늙은이가 새로운 길을 택했으니, 죽기 전에 교단에 설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해냈지.’
그 장담할 수 없는 미래를 손에 넣었고, 아카데미 교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도 올랐다. 마법사로서도, 군인으로서도, 교육자로서도 성공했으니 내 생에 어찌 후회가 있으랴.
다만 말년에 타국의 왕족과 차기 성자가 입학한 어마어마한 사건이 벌어지기는 했으나, 그 사건도 무사히 지나갔다. 이제는 웃으며 ‘그때는 그랬지.’ 라고 넘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 덕분에 어지간한 일로는 동요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 고고학 동아리에서 고대의 유물을 발견했음에도 덤덤할 수 있지 않았나.
연륜과 경험이 쌓여서 만들어진 강인한 정신력. 몇 개월 후면 교장 자리에서 물러날 내가 아카데미에서 얻은 최고의 보물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 아카데미 인근에 거대한 꽃밭이 형성될 예정. 콘스탄티나의 흔적이니 동요하지 말 것. ]교육성에서 기이한 전달 사항을 보내기 전까지는.
‘이게 무슨.’
형형색색의 꽃들이 성벽 너머의 벌판을 뒤덮기 전까지는.
은퇴까지 고작 몇 개월이 남은 상황에서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