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58)
로판 속 공무원 758화(759/945)
학기중인 아카데미에 높으신 분들이 강림했다.
“아름답군.”
콘스탄티나의 꽃밭을 아카데미에 만들기로 결정한 황제.
“예. 실로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명목상 아카데미의 최고 책임자인 교육성 장관.
“같은 평야일지라도 꽃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게 크군요.”
일단 제국 영토에 이변이 생기면 확인해야 하는 국토성 장관.
‘멋지네.’
마지막으로 겸사겸사 궁금해서 따라온 나까지.
솔직히 나는 ‘휴가 중이니까 이만 집에서 쉬어보겠습니다.’ 라며 빠져도 됐지만, 신이 실시간으로 꽃밭을 만드는 광경을 어떻게 포기하겠나.
그것도 콘스탄티나가 세계수와 비슷한 존재라고 말한 만큼, 이 꽃밭도 시간이 지나면 종교적 상징이자 성지가 될 수 있다. 휴가 잠깐 반납하고 구경할 가치는 충분하다.
“허어.”
그 와중에 난데없이 직장 옆에 드넓은 꽃밭이 생긴, 황제와 장관 셋을 보필하게 생긴 교장은 멍한 얼굴로 탄성을 내뱉었다.
초자연적인 현상과 아름다운 광경에 대한 감탄도 섞여있었으나, 퇴직을 코앞에 둔 말년 공무원의 씁쓸함도 조금이나마 존재했다. 아마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온갖 수난에 시달리는 자기 팔자가 원망스럽겠지.
그래도 타국 왕족과 차기 성자가 3년이나 난리 쳤던 시절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다. 아카데미 근처에 꽃밭이 생긴 것 정도는 재앙이라 할 것도 없잖아.
“응?”
서서히 해탈감 가득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 교장을 측은한 눈빛으로 보다가, 꽃밭 쪽에서 보이는 이변에 고개를 기울였다.
“폐하.”
“왜 그러나, 장관?”
“꽃 쪽에 작은 불빛이 보입니다.”
“불빛?”
내 말에 황제는 눈까지 찌푸리며 최대한 멀리 보고자 했으나,
“짐은 안 보이는군.”
애석하게도 일반인인 황제의 시력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황제가 그렇다면 교육성 장관과 국토성 장관도 마찬가지다. 이 둘도 단련된 무인보다는 순수 행정 관료니까.
“그렇군요. 특이한 불빛이 보입니다.”
그래도 교장은 한때 전장을 누빈 마법사라 그런지 내 말을 듣자마자 불빛을 발견하였다.
비록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교장은 마음은 심란한 상태지 않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붉은빛, 푸른빛, 초록빛, 노란빛. 네 가지로군요.”
“예. 불과 물, 바람과 땅의 색이지요.”
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황제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향했다.
“정령인가?”
그러고는 불빛의 정체를 확인했다. 혹시 정령들이 저 꽃밭에 등장한 거냐고.
“예, 폐하. 그렇사옵니다.”
“호오.”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황제는 턱을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정령은 오직 세계수 주변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 카틀레아처럼 천외천 수준의 정령 친화력을 가지고 있고, 정령왕들의 축복을 받아 걸어 다니는 미니 세계수가 되지 않는 이상─ 그 법칙은 절대불변이다.
헌데 그 진리가 깨졌다. 세계수가 아닌 곳에 정령이 등장했다.
“하긴. 저 꽃밭도 세계수처럼 콘스탄티나의 힘이 깃든 곳이지. 정령이 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실로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과거 아펠스의 만행으로 고통받은 콘스탄티나와 정령들이, 이제는 아펠스의 수도에서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황제도, 두 장관도, 교장도 웃음을 흘렸다.
그만큼 이 상황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미있는 상황이다. 세계수를 불태운 아펠스 제국은 멸망하고, 정작 아펠스가 짓밟은 콘스탄티나 신앙이 아펠스의 수도에서 꽃처럼 피어났다. 저승에 있을 아펠스 황제들이 보면 무슨 기분일까.
‘처음에는 미친 생각인 것 같았는데.’
나도 픽 웃음을 흘리며 황제를 쳐다봤다.저놈이 아카데미에 꽃밭을 만들자고 할 때는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법 괜찮은 생각이었다. 콘스탄티나 신앙의 완전 부활을 선언하기에 그보다 좋은 장소는 없지.
애초에 아카데미가 아니었으면 마땅한 후보지가 없기도 하다. 트릭시의 영지인 세르베트 공작령도 후보군에 올랐으나, 안 그래도 혼혈 엘프가 다스리는 영지에 콘스탄티나의 은총이 깃든다? 콘스탄티나의 신앙이 미친 듯이 상승할 수 있다. 신앙을 소모하려다 도리어 더 받는 상황이 터지는 거다.
그렇다고 국내가 아닌 국외도 후보지로 고르는 건 아까운 일이다. 아무리 장소를 정하기 어려워도, 이 귀한 기회를 타국에 양보하는 건 좀.
‘머리를 굴리면 답이 나오는구나.’
형형색색의 꽃들, 그 위를 배회하는 정령들을 보며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정한 장소는 아니나, 그래도 머리를 맞댄 끝에 적당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집단 지성의 힘은 위대하─
– 크으, 수백 년 만에 다른 곳을 구경하는군!
‘아.’
꽃밭 위 공간이 일렁이더니 불의 정령왕이 등장했다.
정령왕이 나타날 정도면 정말 세계수와 비슷한 효과를 지닌 꽃밭인 모양이다. 이러다 요정들도 꽃밭에서 태어나겠어.
‘좋네.’
정령과 요정이 살아가는 아카데미라. 우리 카틀레아가 입학하기에 딱인 교육 기관이다.
“흐음.”
“폐하, 혹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그건 아니네만, 저 꽃들 말일세.”
“예. 말씀하시지요.”
“몇 송이 정도 뽑아가면 어떨 것 같나?”
황제의 말에 국토성 장관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수천 송이의 꽃이 모인 꽃밭에서 꽃 몇 송이 뽑아가는 건 별거 아니지만, 하필 그 꽃밭이 신이 만든 꽃밭이다. 그런 꽃밭을 훼손하는 건 해석에 따라 신성 모독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콘스탄티나는 세계수 방화라는 매운맛 신성 모독을 겪은 신이다. 꽃 몇 송이 정도는 웃으며 넘어갈 수 있겠다만, 아무리 그래도 좀 그렇지.
– 가져가도 된다.
그리고 황제의 의문에 답해준 것은 어느새 우리 앞까지 날아온 불의 정령왕이었다.
– 저 꽃밭은 세계수 같은 단일 개체가 아닌 수천 송이가 모인 집합체이지 않나. 게다가 제국에 콘스탄티나의 은총이 깃드는 걸 허락해 줬으니, 이 땅의 주인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으음.”
– 편히 말해도 된다. 나는 이 세계에 온 손님이니 그대의 신하가 아니나, 그대 또한 나를 모셔야 할 집사가 아니다.
“그런가? 배려에 감사하지.”
존대를 해야 할지 하대를 해야 할지 고민하던 황제는 불의 정령왕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서, 어떤 것으로 가져가겠나? 황제에게 주는 선물이니 직접 뽑아주도록 하지.
“백합이면 충분하지. 괜찮겠나?”
– 백합이라. 잠시만 기다려라.
그렇게 말한 불의 정령왕은 그대로 몸을 돌려 날아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백합 열 송이를 뜯어왔다.
온몸이 불인 새가 꽃을 들고 돌아오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
기이하고도 신성한 일이 벌어졌다.
아카데미 인근에 거대한 꽃밭이 생긴 기이한 사건. 헌데 그것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꽃밭이 아닌, 초목의 신이자 엘프들의 어머니인 콘스탄티나의 작품이라는 신성한 사건.
그리고 그 소식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황실과 제국의 이득을 계산하게 되었다.
‘습관이라는 건 무서운 법이군.’
닭들에게 모이를 뿌려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 나는 황제가 아닌 은퇴한 늙은이에 불과하다. 황실과 제국을 이끌어나가는 건 내가 아닌 나의 아들, 나의 후계자다. 내가 나라의 일에 신경 쓰는 건 황제의 권위를 뒤흔드는 일이다.
그렇기에 구 아펠스 제국의 수도에서 콘스탄티나 신앙이 꽃 피든 말든, 콘스탄티나의 작품이면 세계수와 유사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상황 폐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폐하.”
길버트가 먼저 나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강녕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가축들도… 며칠 전보다 늘어난 것 같군요.”
“마침 얼마 전에 부화한 병아리들이 있었습니다. 어제는 망아지도 한 마리 태어났지요.”
“그렇군요.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 길버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아카데미 인근에 신의 은총이 깃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아펠스에게 짓밟힌 콘스탄티나 신앙이 크펠로펜 대에 이르러 다시 꽃을 피웠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예. 상황 폐하의 말씀처럼 기쁜 일이지만, 신이 하사한 꽃밭이라 그런지 아름답고도 경이로웠습니다.”
그렇게 말한 길버트는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나에게 건넸다.
옆으로 길쭉한, 마치 만년필이나 검을 보관할 것 같은 상자를.
“저 홀로 보기에는 아까워 가져왔습니다. 부디 두 분께도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두 분이라는 말에 조용히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열 송이의 백합이, 땅에서 떨어져 나왔음에도 여전히 싱그러운 백합이 나를 반겨주었다.
“백합, 이군요.”
“예. 백합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도, 길버트도 말없이 백합만을 바라봤다.
그래, 이런 것이라면 실로 좋은 선물이 되겠지.
***
아카데미에서 꽃 구경을 마친 후, 제도의 저택이 아닌 타일글레헨 백작령으로 향했다.
“칼? 이게 뭐니?”
“어머니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최대한 예쁜 것들로 골랐는데, 마음에 드십니까?”
그리고 테레사와 놀아주고 계시던 어머니에게 데이지 꽃다발을 건네자, 어머니는 눈을 몇 번 깜빡이시더니 배시시 미소를 지으셨다.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쁘구나.”
품에 있던 테레사를 잠시 내려놓으신 뒤에 꽃다발을 안으셨으니, 아무래도 어머니의 말씀은 진심인 것 같았다.
민망했다. 고작 꽃다발 하나로도 저렇게 기뻐하시는데 진작 드리지 못한 것이. 이 선물을 내 의지가 아닌, 황제의 영향을 받아 준비했다는 것이.
‘고장 난 시계 같으니.’
그래도 어쩌겠나. 꽃밭에서 황제가 한 말을 듣고도 꽃다발을 준비하지 않으면 희대의 불효자 새끼가 될 판이었는데. 오죽하면 교육성 장관과 국토성 장관, 교장도 꽃밭에서 주섬주섬 꽃을 챙겼겠나.
“폐하. 백합은 어인 일로…?”
“짐의 어머니께서 백합을 좋아하셨지. 황비가 되기 전에도, 된 이후에도 말이야.”
무려 황제가 하늘로 돌아간 어머니를 위해 준비하는 꽃. 그 얘기를 듣자마자 불의 정령왕은 다시 꽃밭으로 몸을 돌리더니, 문외한인 내가 봐도 감탄이 나올 백합들만 골라왔었다.
‘신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꽃.’
게다가 정령왕이 심혈을 기울여 선별한 꽃.
그런 꽃을 바친다면 하늘에 있을 황비도 기뻐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