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61)
로판 속 공무원 761화(762/945)
땅의 정령왕의 확답은 사흘 만에 무너졌다.
– 국립묘지에서 정령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네.
“예?”
그것도 망자들이 안식을 취해야 하는 국립묘지가 정령들의 놀이터가 되었다는, 다소 좋지 않은 형태로.
당황스러웠다. 다른 존재도 아닌 정령왕의 확답이었기에 믿었고, 확답의 근거도 굉장히 설득력 있었기에 납득했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이런 형태로 무너질 줄 누가 알았을까.
게다가 황제가 가져간 백합은 작고한 전 황비를 위한 선물이었다. 지금쯤 황비의 묘비 앞에 있을 테니, 졸지에 황지의 묘비는 정령들의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안 돼.’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백합을 가져간 것은 황제의 선택이고, 정령들이 나타난 것은 정령들의 의지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개입한 사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황제여도 죽은 친모와 관련된 일이면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울 거다. 정령들이 친모의 안식을 방해했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면 ‘네가 책임지고 수습해.’ 라는 분노 섞인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나는 콘스탄티나, 정령왕들과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니까.
‘다른 꽃들에는 이런 일 없을 거라며.’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원망스럽다. 나를 안심시킨 땅의 정령왕이 원망스러워. 이럴 줄 알았다면 테레사한테 쥐어짜일 때 조금 늦게 말릴 걸 그랬어.
– 듣기로는 타일글레헨 백작성에도 정령이 나타났다고 들었네만.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 그럼 세계수와 아카데미의 꽃밭, 장관의 저택, 타일글레헨 백작성, 국립묘지까지. 이 제국에만 정령들이 지내는 곳은 다섯 곳이로군.
황제는 턱을 매만지며 덤덤하게 말했으나, 내 심장은 결코 덤덤하지 못했다. 저렇게 평온하게 말하다가 ‘이제 두 곳으로 줄이게.’ 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 장관.
“예. 말씀하시지요.”
– 이 이상 늘어나면 정령이 이상한 곳으로 새어나갈 수도 있겠지. 짐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했겠지만, 여섯 번째가 생길 일은 없도록 하게.
“…물론입니다, 폐하. 심려치 마소서.”
생각보다 평범한 명령이라 한 박자 늦게 대답하고 말았다.
황제의 말처럼 나도 새로운 정령 놀이터가 생기는 걸 원하지 않는다. 정령들이 제국, 대륙 곳곳으로 퍼져도 정령들은 불편할 것이 없으나─ 정령이라는 존재를 접하게 된 인간들이 이상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다.애석하게도 새로운 걸 발견하면 이용할 방법을 찾는 것이 인간이지 않나.
그것도 다소 좋지 않은 방향으로.화장실에서 정령들과 어색한 만남을 가지는 것보다 골치 아픈 일이지.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접촉을 통제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우연이라도 내가 부활시킨 세계수잖아. 정령은 철저히 황실과 크라시우스 가문이 통제해야 한다. 이 귀한 걸 다른 쪽으로 유출할 생각은 없다.
“저, 폐하?”
– 말하게.
“땅의 정령왕은 소신의 성을 마지막으로 아무런 이변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사온데, 갑작스레 이런 일이 생기니 당혹스러울 따름입니다. 혹 폐하께서는 국립묘지에 정령이 나타난 이유를 알고 계신지요?”
그렇기에 황제에게 물었다. 혹시 국립묘지에 정령이 튀어나온 이유를 알고 있냐고.
이유를 알아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법이다. 국립묘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어떤 변수가 터졌길래 정령들이 나타났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여섯 번째를 확실히 막을 수 있을 터.
– 그것이.
내 질문에 황제는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고,
– 장관에게 말하기 곤란한 일이나, 오직 국립묘지였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네. 짐이 그건 장담할 수 있어.
웬일로 대답을 회피하며 얼버무렸다.
의외인 일이다. 저놈이 비비 꼬아서 말한 적은 있은 있지만, 업무 관련으로 꼭 필요한 정보를 함구한 적은 없다. 함구하면 자기만 귀찮아진다는 걸 잘 아니까.
그럼에도 입을 다물었다는 건 둘 중 하나다. 밝혀지면 황제나 황실의 권위가 추락하거나, 혹은 누구에게도 유출할 수 없는 기밀이거나.
‘관심 끄자.’
둘 중 어느 쪽이든 이 이상 접근하기에는 곤란한 일이다. 세상에는 몰랐을 때 편한 진실이 있는 법 아니겠나.
– 그래도 짐이 굳이 조언을 주자면, 그냥 꽃을 유출하지 말게. 그게 마음 편해.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진심이 가득한 조언인지라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애초에 꽃이 다른 곳으로 퍼지지만 않는다면 이럴 일도 없겠지.
***
때부의 집애서 봣던 반짝이들. 엄청 큰 나무에서 봤던 더 많은 반쨕이들.
그 반짝이들이 다른곳애도 나타났다.
“엄마! 엄마!”
“왜 그러니?”
“궁님묘지가 뭐야?”
궁님묘지라는 곳애도 반짝이들이 나타났다고 했다. 시녀들이 분명 그러케 말햇엇서.
때부는 때부의 집이랑 큰 나무가 아니면 반짝이들을 볼쑤 업다고 했는데, 때부 말이 틀렷다. 다른곳애서도 반짝이들이 잇잖아!
“우리 샤를로테. 국립묘지에 가고 싶은 거니?”
“웅! 거기 빤짝이들 있대! 보고시퍼!”
“그렇구나.”
나를 안아준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줫따.
역시 엄마 손은 따뜻해! 아빠랑 때부 손도 좋치만, 엄마 손이 쩨일 조아!
“곤란하네. 벌써 묘지에 가도 괜찮을지…”
엄마가 뭐라고 말햇지만 짝아서 잘 안들렷다.
“샤를로테.”
“웅!”
“꼭 가고 싶니?”
“가고 시퍼! 반짝이들 보고십고, 궁님묘지라는데도 궁금해!”
“그럼 할아버지랑 같이 갈래?”
“하라버지?”
엄마 말애 쟘깐 눈을 깜빡엿다.
하라부지. 우리랑 쬬끔 먼곳애 지내는 하라버지. 동물 친구들을 잔뜩 기르는 하라부지.
내가 가면 엄마몰래 쪼꼴렛을 쥬는 하라버지.
“갈래!”
“그럼 할아버지가 묘지에 가실 때 같이 가자꾸나. 엄마도 같이 갈게?”
“와! 죠아!”
나랑 엄마랑 하라버지! 다 가치가면 죠아!
“그럼 아빠는!?”
“아빠는 바쁘셔서 힘들단다.”
“히잉…”
아쉽따. 다가치 가면 좋은뎅…
궁님묘지에 엄마랑 하라버지랑 가치 갓따.
신기한 곳이엇따! 처음보는 돌들도 잔뜩 있엇꼬, 반짝이들도 잔뜩 잇었어! 때부 집에서 봣던 작은애들만 있는개 아니라, 더 큰애들도 잇엇어!
큰 나무가 이랬엇어! 여기도 큰 나무가 있는것가타!
“황태녀. 넘어지면 위험하니 뛰지 말거라.”
“우웅!”
하라버지에 말애 엄마랑 가치 걸엇다.
하라버지 말처럼 넘어지면 아플것가타! 여기는 때부집처럼 푹신하지도 않구, 돌들도 잔뜩잇서! 아픈건 시러!
“상황 폐하.”
그러케 엄마랑 가치 걷따가 쳐음보는 사람이 나왓다.
아빠랑 똑갓튼 머리인 언니. 엄마랑 이모들쳐럼 얘쁜 언니.
“황비 전하를 보러 오셨습니까?”
“그렇다. 이번에는 며느리와 손녀도 같이 왔으니, 황비도 기뻐할 터.”
“그렇군요.”
하라버지랑 얘기하던 금색언니는 나랑 엄마한태 고개를숙엿다.
“황후 폐하와 황태녀 전하를 뵙습니다. 국립묘지 관리인, 리네라고 합니다.”
“고개를 들게. 제국을 위해 헌신한 망자들이 그대 덕에 안식을 취할 수 있으니, 오히려 우리가 그대에게 감사를 표해야겠지.”
“황송한 말씀이옵니다.”
“자, 황태녀도 인사하렴. 고마운 사람이란다.”
“우웅?”
엄마가 인사하라고해서 금색언니를 쳐다봣다.
우웅, 우우우우웅?
“언니!”
“언니라니요. 편히 리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전하.”
“혹씨 아텔 아죠씨 아라?”
“…예?”
쳐음보는 금색언니인대 아텔 아져씨가 생각낫다.
이상해! 젼혀 안닮앗는대 아져씨가 생각나! 혹씨 이 언니랑 아죠씨랑 가족인건가?
“그을- 쎄요. 그게 누구인지요?”
“엄쳥 크고! 엄쳥 멋지고! 엄쳥 까만 아져씨야!”
“모르겠군요. 전하가 보시기에 멋진 아저씨면 저와 만날 일이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 아무래도 황태녀가 착각한 것 같구나.”
“그릉가아?”
언니랑 하라버지가 그러타고 하니 그런거갯지!
“우선 황비 전하가 계신 곳으로 가시지요. 정령들이 제법 많으나, 그들도 고인의 안식을 위해 묘비 근처에서는 자중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로군. 정령의 마음은 사람과 다르지 않을까 염려했었다.”
먼져 앞으로 가는 하라부지랑 금색언니. 나랑 엄마도 하라부지를 따라 항비라는사람이 있는곳으루 갓다.
“엄마. 엄마.”
“왜 그러니?”
“항비가 누구야?”
항제, 항후는 아는대 항비는 처음드러!
“우리 샤를로테 할머니란다.”
“할-무니?”
“그래. 할머니.”
할무니를 보러간다구 생각하니 기분이 죠아졋다! 아빠는 엄마가 있는대, 하라버지는 왜 혼자인지 궁금햇는대!
할무니는 신기한 돌이엇따.
“자, 샤를로테. 할머니한테 인사해 보렴.”
“어떳케?”
돌한태 어떠케 인사하는거야? 잘 모르겟서…
“할머니는 이 돌 위에 계신단다. 하늘에서 우리 샤를로테를 보고 계시지.”
“하늘? 진쨔?”
“그럼. 이 돌은 할머니가 하늘로 올라가실 때, 그 자리를 표시해둔 거란다. 그래야 우리 샤를로테가 할머니가 보기 편한 곳으로 오니까.”
엄마말애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봣다.
“할무니 안녕!”
그리구 하늘을 향해 손을흔들엇다.
할무니! 안녕! 나 보고잇찌!?
“후후, 그래. 잘 했단다.”
“웅! 나 인사잘해!”
엄마가 잘했따고 해쓰니 할무니도 내 인사를 봣을거야!
“이게 다 정령들인 건가.”
“예, 상황 폐하. 붉은색은 불, 푸른색은 물, 초록색은 바람, 노란색은 땅의 정령입니다.”
“마치 황비를 호위하는 것 같군.”
“정령들도 귀한 분을 알아본다는 것이겠지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대우받아 마땅한 분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라부지도 할무니랑 인사하려는것쳐럼 돌을 만졋따.
이상해. 엄마는 할무니가 하늘에 잇따고 했는대? 저 돌은 할무니가 남긴 표시랬는대?
‘하라부지도 하늘로 가는건가?’
치사해! 나도 가고시픈데 하라부지만 가고!
‘우웅?’
나두 하라버지처럼 돌을 만지려햇지만, 돌 앞애잇던 꽃이 보엿다.
‘엄청 하얘!’
엄청 예뻐!
“엄마! 저 꽃! 나도 가져두대?”
그러자 엄마가 내머리를 쓰다듬어줫따.
“저건 할머니가 기르는 꽃이란다. 할머니 걸 뺏으면 안 되겠지?”
“히잉…”
할무니꺼라면 나는 못가진다. 아빠랑 엄마랑 때부는 다른사람걸 가지지 말라고햇서.
“진쨔 할무니거야?”
“그렇단다. 그러니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안 돼. 알겠니?”
“웅…”
이번애는 엄마가 나를 안아줫다.
엄마가 안아줫으니 이제 안아쉬워! 그리고 저게 할머니꺼면 오히려 죠아!
“엄마.”
“왜 그러니?”
“할무니. 엄청 얘쁜 사람이었지?”
내 말애 하라부지가 나를 쳐다밧다.
하라부지가 쳐다봣으면 내말이 마자! 역시 할무니는 얘쁜사람이었을꺼야!
“때부가 그랫서! 쥬인이 얘쁘면 물건도 얘쁘대! 물건을 얘쁘게 가지구 잇스면 쥬인이 얘쁜거랬어!”
“…대부가 그런 말을 했더냐?”
“웅!”
“대부가 좋은 말을 했구나. 대부의 말이 맞다. 황비는 예쁜 사람이었지.”
하라부지 웃엇따!
***
자고 일어나니 황궁에서 선물이 왔다.
정확히는 황궁 변두리에서 두덕리 온라인 중인 상황 명의로 선물이 왔다.
‘뭔데 이거.’
무려 토끼라는 기묘한 선물이.
이거 키우… 라는 건가? 설마 먹으라고 보낸 선물은 아닐 거잖아.
‘정원에 풀어두면 될 것 같긴 한데.’
나를 올려다보며 귀를 쫑긋거리는 토끼들의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선물이 토끼라는 것도 이상한 일이나, 상황이 갑자기 선물을 보낸 것도 기이한 일이다.
‘좋은 꿈이라도 꿨나?’
혹시 내가 개처럼 구르는 꿈이라도 꾼 건가? 그럼 흡족해서 선물을 던져줬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