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62)
로판 속 공무원 762화(763/945)
토끼가 우리 가족이 되었다.
게다가 두 마리인 것을 보니, 상황이 배려심 넘치게 수컷 하나와 암컷 하나를 골고루 보낸 모양이다.
‘어쩌지.’
토끼들과 어색한 시선 교환을 하며 고민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토끼의 번식력은 어마어마하다. 동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도 토끼가 번식의 상징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을 정도니까.
허나 그 위엄 넘치는 번식력은 단순히 ‘얘네 새끼 좀 많이 낳음.’ 수준이 아니다. 토끼 몇 쌍을 두고 2, 3년 정도 방치하면 그 일대가 토끼 소굴이 되어버리는 기적을 목도할 수 있다.
‘심하면 대륙 하나가 뒤덮일 정도지.’
심지어 나는 토끼의 흉악함이 실제로 구현된 사례를 알고 있다. 과거 어떤 인간이 토끼가 없는 대륙에 토끼를 방생했었는데, 그 토끼들이 번식을 하고 하고 또 하더니 억 단위로 늘어나지 않았던가. 사냥을 위해 방생한 거라 수시로 토끼를 잡았음에도 말이다.
그렇기에 상황이 보낸 토끼를 심각한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까딱 잘못하면 이 저택 전체가 토끼로 가득 차게 된다.
‘고기로 바꿀 수도 없잖아.’
일단 상황이 보낸 두 마리는 당연히 먹을 수 없고, 이 두 마리가 낳을 새끼들의 처우도 애매하다. 상황이 낳은 하사품이 번식을 하면 그것도 상황의 하사품이라고 봐야 할까?
복잡한 일이다. 혹시 토끼도 중성화 수술이 가능하나? 마음 같아서는 땅콩을 떼고 싶어.
– 뀨웅…
– 뀨잉…
그런 내 고뇌를 눈치챘는지, 두 토끼는 미묘하게 촉촉해진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봤다.
안 돼. 그렇게 봐도 안 봐줘. 너희 번식력은 나도 감당하기 어렵─
– 뀨우웅.
– 뀨잉.
토끼들이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혼란스럽다. 이것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토끼들의 싸움법인가? 아니, 애초에 토끼들이 뀨웅이나 뀨잉 같은 소리를 내면서 울었나?
‘환장하겠네.’
살기 위해 애교를 부리는 토끼들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이윽고 아텔리우스의 동굴에 있던 토끼들까지 떠올라서 갈등은 더욱 커졌다. 이제는 그 동굴 토끼들도 내 얼굴을 익혔기에, 내가 오면 은근히 반겨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록 다른 토끼지만 토끼라는 개체와 정을 쌓은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이 애교를 무시하고 가차 없이 땅콩을 제거하는 건 힘든 일이다.
“일단 인사부터 하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발치에 있던 토끼들을 품에 안았다.
우리 가족이 된 녀석들이니 나 홀로 결정하지 말고, 다른 가족들이나 사용인들과 논의하자.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를 수도 있지.
“가축의 번식을 막는 마법도 존재하는데, 그거라도 써보겠니?”
하지만 이렇게 빨리 좋은 방법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런 마법도 있었어?”
“가축은 번식을 해야 이득이니 모르는 사람이 많은 마법이지만, 지금 같은 경우가 있어서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단다. 개체가 너무 늘어나면 관리하는 사람이 힘들잖니.”
“그렇구나…”
트릭시의 친절한 설명에 쓴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멍청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상황만 해도 토끼를 기르고 있다가 나에게 한 쌍을 하사한 것 아닌가. 만약 상황이 기르는 토끼들이 미친 듯이 번식을 했다면 황궁이 토끼 천국이 되었을 텐데, 아직까지 황궁은 조용하다. 번식을 막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아텔리우스의 동굴 토끼들도 볼 때마다 숫자가 일정했다. 아텔리우스가 주기적으로 토끼들을 먹는 게 아닌 이상, 무조건 늘었어야 함에도.
“그럼 굳이 뗄 필요는 없는 거지?”
“난 오히려 그 생각이 더 무섭구나. 마법으로 방지할 수 있는데 물리적으로 떼겠다니.”
트릭시의 미묘한 눈빛에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그치만 빙의 전 세계에서는 떼는 게 보편적이었다고. 거기는 마법이 없었단 말이야.
“자, 둘 다 이리 오렴. 마침 우리 아이들이 토끼에도 관심을 보였는데, 때마침 잘 왔단다.”
– 뀨우웅!
– 뀨이이잉!
아무튼 존엄성을 지키는 데 성공한 두 토끼는 트릭시의 부름에 황급히 달려갔다.
아무래도 저 두 녀석은 트릭시를 일생의 은인이자 주인으로 따를 것 같다. 나였어도 내 존엄을 지켜준 사람이 있으면 목숨을 다 바칠 테니까.
“참. 칼?”
“응?”
“이 아이들은 이름이 뭐니?”
그 말에 상황이 토끼들과 함께 보냈던 편지가 생각났다.
타일글레헨 백작이라면, 대부라면 7호와 8호를 잘 길러 줄 거라 믿는다는 편지가.
“아직 없어. 우리가 지으면 될 것 같아.”
차마 그 이름을 말할 수는 없어서 하얀 거짓말을 했다.
솔직히 7호, 8호는 좀 아니지. 어떻게 애완동물 이름이 7호, 8호야. 군견한테도 이름을 그따위로 지으면 바로 물릴 거다.
“그럼 수컷을 마네, 암컷을 미네라고 짓는 게 좋겠어.”
“나야 상관없는데, 무슨 뜻이야?”
“애완동물 이름에 의미가 어디 있니. 어감이 좋으면 짓는 거지.”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덤덤한 대답이라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럼 티티한테 베아티투도라는 이름을 지으려고 했던 나는 뭐가 되는 걸까. 그거 라틴어로 행복이라는 뜻이었는데.
‘그래서 기각된 거였나.’
생각해 보니 베아티투도라는 이름은 부인들의 만장일치로 무시당했었지. 그나마 베아티투도 중에 ‘티’ 한 글자는 건져서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마네, 미네 좋다.’
애써 씁쓸한 마음을 억누르며 새 가족의 새 이름을 받아들였다.
우리 마네랑 미네. 부디 우리 아이들의 새로운 친구가 되어주렴.
너네보다 먼저 들어온 선배들이 있기는 한데, 조금 안쓰러운 애들이니 그럭저럭 선배 대우는 해주고. 솔직히 실질적 서열은 상황의 하사품인 너희가 더 높겠지만.
상황이라는 뒷배를 가진 마네, 미네는 빠른 속도로 저택에 적응했다.
– 뀨웅!
“뭐, 뭐야. 얘 처음 보는 앤데?”
자고 있던 풍요의 털 속으로 파고 들어간 마네.
“내려놔라! 당장 내려놔!”
– 꾸잉?
겸손의 날개를 입에 물고 저택을 활보하기 시작한 미네.
애석하게도 선배들을 대우하기는커녕 장난감처럼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저 녀석들 입장에서는 친해지기 위해 노는 걸 수도 있으나, 인간이 보기에는 상황색 패기를 두른 깡패들의 난동 같다.
“주인! 살려다오! 이것들 좀 말려다오!”
마침 나와 눈이 마주친 겸손은 처절하게 울부짖었고,
“미네야. 걔 괴롭히지 말고 내려줘.”
– 꾸이잉!
“싫다는데?”
“아니, 한 번만 시도하지 말고 여러 번─ 그아아악! 혀로 핥지 마!”
저러다 침으로 목욕을 할 것 같아 미네의 앞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아쉽다는 듯 겸손을 내 손 위에 올려놓는 미네. 아까 땅콩 얘기를 알아들은 것도 그렇고, 트릭시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도 그렇고. 이 녀석들 사람 말은 그럭저럭 알아듣는 것 같다. 아니면 눈치가 훌륭하거나. 상황이 훌륭히 가르친 것 같아.
“주인. 난 오늘부터 토끼가 싫어질 것 같다.”
“같이 놀자는 걸 테니 너무 싫어하지는 말고.”
겸손의 처절한 중얼거림에 슬며시 위로를 건네줬다.
성수들의 내구도를 생각하면 이 정도로 잘못될 일은 없으나, 너무 고난 속에 방치하면 빈정이 상할 수도 있다. 도와줄 때는 도와주고, 다독일 때는 다독여줘야 성수들의 멘탈이 건강해질 터.
“안 그래도 정령들 때문에 피곤한데, 이게 무슨 일인지.”
‘음?’
허나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기울이고 말았다.
정령들 때문에 피곤하다니. 우리 저택에 정령들이 서식한 지는 제법 시간이 흘렀고, 겸손은 정령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새삼스레 겸손이 피곤을 토로할 일은 없다.
“정령들이 어떻길래 그래? 자는데 방해라도 했어?”
“아. 주인은 아직 모르겠군.”
내 질문에 겸손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미네의 침을 털어내더니,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채 말했다.
“최근 저택 내에 중급 정령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급과 달리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생물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녀석들이지.”
“뭣.”
정말 처음 듣는 말이라 당황했다.
저택 출몰 개체가 하급 정령에서 중급 정령으로 업그레이드되다니. 저택 내의 정령들은 카틀레아를 중심으로 모이는 녀석들이라, 매일매일 카틀레아를 돌보는 내가 모를 수 없는데?
“호기심이 왕성하지만 경계심도 많은 게 중급 정령들이다. 처음 오는 곳이니 저택 이곳저곳을 누비지만, 정작 인간은 피해 다니지. 그래서 주인도 못 봤을 거야.”
“인간들은 피해?”
“정령 입장에서는 인간보다 엘프를 더 자주 보니까. 엘프의 피를 이은 주인의 부인이나 딸들은 익숙해도, 순혈 인간들은 아직 무서운 모양이지.”
인간만 무섭지 동물은 만만한 모양이지만.
그렇게 덧붙인 겸손은 치가 떨린다는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런.’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아 겸손을 측은히 바라봤다. 작디작은 병아리인 겸손은 겁 많고 경계심 강한 중급 정령들이 보기에도 만만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인간들의 눈을 피해 겸손에게 들러붙은 것 같고.
말 못 하는 반딧불이인 하급 정령들도 간혹 귀찮을 때가 있는데, 의사소통이 가능한 중급 정령은 오죽할까. 대충 요정들의 습격과 유사한 고통이겠지.
“그래도 익숙해지면 인간 앞에도 나오지 않겠냐?”
“뭐어… 주인은 정령들의 은인이기도 하니 빨리 익숙해지기는 하겠다만, 정령의 시간 감각은 인간과 다르니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재수가 없으면 주인이 죽을 때까지 잠잠할 수도 있어.”
“저런.”
한 500년 동안 겸손이 시달릴 거라 생각하니 측은함은 더욱 커졌다. 그 정도면 겸손이 이 저택을 탈출하는 게 더 빠르겠어.
“아무튼 그렇다. 이 저택은 주인의 것이니 손님이 숨어있다는 건 알고 있어야겠지. 갑자기 처음 보는 정령이 나타나도 놀라지 말고.”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야 덜 놀라지.”
“아까 말한 것처럼 생물의 형태를 가진 것들이다. 보통 개나 고양이 같은 모습이지. 크기는 주먹보다도 작지만 말이야.”
겸손의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려 복도 너머를 바라봤다.
“…저렇게?”
내 떨떠름한 반응에 겸손은 움찔하더니, 내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 비켜줘! 비켜줘!
– 뀨잉!
나와 겸손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미네의 몸에 깔려 버둥거리는 녹색 개가 하나 있었다.
겸손이 말한 것처럼 주먹보다 작은 개였다.
“주인.”
“어. 말해.”
“대체 어디서 저런 깡패들을 주워온 건가.”
나도 주워온 게 아니라 분양 당한 거야.
설마 정령도 제압하는 미친 깡패일 줄은 몰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