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64)
로판 속 공무원 764화(765/945)
제국 내에 정령들의 놀이터가 늘어나고, 마네와 미네라는 새로운 식구가 생긴 이후로는 별다른 사건 없이 무난하게 시간이 흘렀다.
그나마 특이 사항이 있다면 관측을 시도할 때마다 제도에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하던 슈뢰딩거의 에리히가 완전히 제도로 돌아왔다는 것이며,
“우우…”
“그래! 우리 메리 잘 한다!”
“우우우!”
우리 막내인 메리가 마침내 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로 감동적인 일이다. 다른 남매들이 전부 걷거나 기어다닐 수 있는 와중에, 오직 파릇파릇한 막내인 메리만이 침대에 누워서 생활해야 했다.
다행히 메리는 엄마인 피네를 닮아 침대에 누워서도 조용히 잘 지내는 아이지만, 남매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홀로 누워있는 건 슬픈 일이지 않나. 마치 따돌림당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메리! 대단해! 멋쪄!”
“매리! 이쪽으루와!”
허나 우리 아이들은 막내를 따돌리기는커녕 매우 매우 사랑하는 아이들. 메리가 침대에 누워 눈만 깜빡거리고 있으면 쪼르륵 침대로 달려가기도 했고, 자기들과 놀던 성수들을 메리의 침대로 투하하기도 했다.
지금도 메리가 기어다니자 아이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아니, 이제 메리도 자신들과 함께 놀 수 있으니 자기 일이 맞기는 한가?
“아가씨! 힘내십쇼! 충분히 올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심지어 성수들─ 특히 사슴인 자선과 망아지인 친절이 메리의 기적 같은 움직임에 호들갑을 떨며 온갖 응원을 쏟아냈다.
저 둘은 우리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복도를 달리거나, 꼬리에 보자기를 달고 질주하던 녀석들. 그래서인지 메리의 진화에 더욱 흥분한 모양이다. 메리가 어느 정도 몸을 가눌 수 있어야 태워줄 수 있으니까.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게 낙인 건가?’
꼬리를 광속으로 흔드는 자선과 친절을 보며 픽 웃음을 흘렸다.모든 성수들이 저택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저 둘만큼 빠르고 완벽하게 적응한 성수는 드물다.
악신이었던 시절을 완전히 잊은 것은 물론, 성수라 불리는 것조차 망각한 듯 아이들의 자가용으로 지내는 자선과 친절. 자신들이 아닌 다른 동물의 등에 타면 질투 어린 눈빛으로 동물을 노려보다가, 아이들이 다가오면 다시 기뻐하는 충성스러운 자가용.
덕분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이를 태울 수 있다는 기쁨에 진심으로 환호하는 애완동물이라니. 어디서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을까.
“메리.”
“우-?”
“자. 엄마한테 오렴.”
“우!”
하지만 두 자가용 애완동물의 열렬한 외침과 구애에도 불구하고, 메리는 엄마인 피네를 향해 일직선으로 기어갔다.
사실 당연한 결과다. 아이한테는 엄마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먼저일 수밖에 없잖아. 아빠인 나조차 피네한테는 밀릴 수밖에 없거늘.
“크읏, 아가씨를 태우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 하나…”
“마님이 상대면 어쩔 수 없지.”
이 당연한 결과는 신이었던 존재들도 부정할 수 없었는지, 자선과 친절은 씁쓸히 중얼거렸다.
고개를 들어라, 자가용들. 친모한테 진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나아. 나 탈래애!”
“나두우!”
“좋습니다! 어서 타시죠!”
“오늘은 어디까지 달릴까요?”
그리고 자가용들을 안타깝게 여긴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프리드리히와 알리나의 탑승 신청에 축 처졌던 두 성수의 꼬리가 다시 맹렬하게 돌기 시작했다.
너무 단순할 정도로 빠르게 슬픔을 극복한 것 같지만 뭐 어떤가. 본인들이 좋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지.
메리가 기어다니기 시작했으니 다시 신혼여행을 개시할 때가 되었다.
마르와 함께 제레노 왕국을 다녀오고 약 반 년. 이제는 리제와 함께 해외로 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저번처럼 메리가 아빠를 찾지는 않겠지.’
아이가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체력이 허락하는 모든 곳이 아이의 놀이터가 된다. 아빠가 며칠 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사소한 것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은 채 저택을 돌아다니기 바쁠 터.
뭔가 메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 것 같아 슬프지만, 메리가 아빠 보고 싶다며 펑펑 우는 것보다는 잠시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옳다. 이 아빠는 우리 막내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해…
“발크로스 왕국으로 갈까 하는데, 어때?”
아무튼 유일한 걱정이 해소되었으니, 리제와 함께 신혼 여행장소를 논의했다.
발크로스 왕국. 제레노 왕국 북동부에 위치한 국가로, 대륙에서 손 꼽히는 문화 강국이라 불리는 나라.해양 문화와 대륙 문화가 교차하고, 제국과 신성교국, 유벤의 영향을 짙게 받았으며, 본국 고유의 문화도 화려하게 꽃피운 곳.
심지어 발크로스에서 탄생한 예술가들은 대륙 역사에서도 유명세를 날렸고, 발크로스에서 나온 소설이나 시, 연극은 대륙의 유행을 선도하는 경우가 잦았다. 문화 강국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나라지.
“저는 오라버니랑 같이 가는 거라면 어디든 좋아요.”
헤헤 웃는 리제의 모습에 나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 여보를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오라버니로 호칭이 정착한 건 둘째 치고, 2년 만에 찾아온 신혼여행 기회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 너무 리제스러워서 괜히 미소만 지어졌다.
“어디든 좋은 건 안 돼. 리제를 위한 여행인데 리제가 원하는 곳으로 가야지.”
하지만 리제스러운 건 리제스러운 거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오직 리제만을 위한 여행을 ‘오라버니가 원하는 것.’ 이라는 가벼운 이유로 대충 넘어갈 생각은 없다.
솔직히 이 시기가 지나가면 언제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나나 리제나 70대, 80대에 도달하고 나서야 황혼 여행을 떠날 수도 있어.
“그, 그런가요?”
내 단호한 선 긋기에 리제는 고심에 빠진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발크로스가 좋을 것 같은데.”
썩 긴 고심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 사실 어렸을 때는 방에서 책을 자주 읽었었거든요. 그중에는 발크로스에서 쓴 소설도 많아서,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었어요.”
“당장 가자.”
차마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명분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는 몸이 좋지 않았던 리제. 그런 리제의 유년 시절을 발크로스의 문화가 채워주었다면, 당연히 발크로스로 찾아가 본토의 맛을 느껴야 한다. 만약 발크로스가 국경을 닫은 상태라면 억지로 뚫어서라도 가야 한다.
***
사위에게서 연락이 왔다.
평소에도 꼬박꼬박 안부 연락을 한 사위였지만, 내가 귀찮을 수도 있다며 일정 주기마다 연락을 하던 사위다. 최근 연락은 이틀 전이었으니, 닷새는 지나야 다음 연락을 할 시기인데?
– 갑작스레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사위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기쁘기만 한데.”
그래도 사위는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인 존재. 그런 사위가 갑자기 연락을 준다면 오히려 기분 좋은 깜짝파티라고 할 수 있다.
– 사실 장인어른께 여쭈어볼 게 있어서 말입니다.
“나한테?”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유로 연락을 걸었던 것이라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사위가 레온 왕국에서 영지를 가져온 덕에 고위 귀족이 되었으나, 제국 안에서 나는 여전히 남작에 불과하다. 아티니 남작령에서 평온히 지내고 있기에 사위가 모를 법한 고급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내가 사위에게 물어볼 것이 많겠지. 사위는 제국백이자 장관이니까.
– 그게, 리제가 어릴 적에 자주 읽은 소설이 있다고 하던데…
“아.”
이어지는 말에 납득했다. 그런 정보라면 사위가 모를 수밖에 없는 정보다.
“맞아. 리제가 손에서 놓지 않은 책이 있었어. 펠론 경의 이야기라고, 여기사의 영웅담을 적은 소설이었지.”
– 펠론 경의 이야기요?
“그래. 몰락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 기사도를 실천하는 내용이었는데, 어른이 보기에도 괜찮은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말에 사위는 쓴웃음을 지었다.
– 여기사의 이야기라.
짧은 중얼거림이었지만 사위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나도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몸이 아파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리제. 언니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리제. 그런 리제에게 있어 가문을 위해 검을 휘두르는 여기사는 매력적인 주인공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리제도 건강을 되찾아 과거의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거지, 지금까지 리제의 몸이 불편했다면 얼마나 가슴 아팠을 일인가.
– 혹시 다른 소설은 없습니까?
“바람과 꽃이라는 로맨스 소설이 있기는 한데, 훌륭한 남편을 얻은 리제가 어릴 때 읽은 로맨스 소설을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구나.”
– 과찬이십니다.
기습적인 칭찬에 사위가 멋쩍게 웃음을 흘렸다.
조금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
신입 관료들과의 간담회를 요청했던 감찰성 장관이 다시 특이한 부탁을 해왔다.
“발크로스의 작가와 접촉을 하고 싶다고요?”
“예, 장관. 사적인 부탁을 하여 죄송스러울 따름이지만, 이런 부탁을 드릴만한 사람이 장관밖에 없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감찰성 장관의 말에 잠시 찻잔을 매만졌다.
확실히 감찰성 장관의 말처럼 타국의 작가와 접촉하는 건 17명의 장관 중 나만이 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타국’ 접촉이라면 외무성이 할 일이나, 타국의 ‘작가’가 대상이라면 문화성이 나서야 하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지.’
문화성의 주된 업무는 역사 연구지만, 여러 문학이나 예술도 관장하는 부서. 나 또한 역사 계열보다는 문학 계열에서 활동한 관료인지라 타국의 문학가, 예술가들하고는 이런저런 연이 있다. 문화 강국인 발크로스 왕국의 인맥은 말할 것도 없는 수준.
그렇기에 장관의 부탁은 딱히 어려운 부탁이 아니다. 펠론 경의 이야기와 바람과 꽃의 작가들은 아직도 현역이기도 하고.
“실례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마침 장관께서 찾으시는 작가들은 제 친우이기도 합니다. 친우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줄 기회이니,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이지요.”
빠른 고민 끝에 기꺼이 장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고작 이런 일로 장관에게 빚을 지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들어줄 의향이 있다. 당장 교육성과 함께 진행하는 북방 연구에서도, 장관의 협조를 받는다면 많은 걸 할 수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장관.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 별말씀을. 부디 제 친우와 좋은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살며시 고개를 숙이는 장관을 향해 웃음을 흘렸다.
장관의 말을 들어보면 조만간 발크로스 왕국으로 입국할 예정 같지만, 솔직히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고생을 한다면 외무성이 고생할 일이지.
난 장관에게 빚만 지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