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68)
로판 속 공무원 768화(769/945)
나와 리제의 연애 이야기를 소설로 만드는 것. 당시에는 나도 리제도 눈치와 용기가 없어서 부끄러운 삽질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결혼하는 데 성공했으니 딱히 공개하지 못할 것도 없다.
둘만이 아니라 다른 부인들의 이야기도 소설에 넣는 것. 내용이 상당히 복잡해지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등장인물의 다각화다. 잘만 다듬는다면 오히려 좋다.
그런데 제과 동아리 부원들도 소설에 포함한다?
‘안 돼.’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안 된다. 상대의 신분이 자국 황족, 타국 왕족, 여명 교단 차기 성자라는 걸 떠나서 내 멘탈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솔직히 그 미치광이들이라면 ‘저희의 학창 시절이 소설로 남으면 기쁜 일이지요.’ 같은 반응을 보일 거다. 저작권이나 초상권을 허락받는 건 어렵지 않지.
귀하신 분들의 삽질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추락할 권위? 애초에 권위를 신경 쓸 놈들이면 제국 아카데미에 오지도 않았다. 그 녀석들은 탈권위를 넘어서 무권위주의자니까.
하지만 하나. 딱 하나의 문제가 치명적인 난관으로 존재한다.
‘걔네도 이제 기혼이잖아.’
에리히와 아인테르는 신혼이고, 류티스와 라테르, 타니안은 결혼 예정이다. 이미 제 짝을 찾은 녀석들의 첫사랑을 대륙에 공개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첫사랑 상대인 리제를 생각해서라도 안 될 일이다.
안 그래도 에리히의 첫사랑이 리제라는 건 제노비아와 세라도 모른다. 만약 그 사실이 밝혀지면 크라시우스 가문 며느리들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를 것 같아 필사적으로 숨기는 중이다. 다른 녀석들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사정은 비슷하겠지.
아니, 사실 비슷하든 말든 에리히가 첫사랑을 숨기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함부로 밝히면 자다가 칼에 꽂힌다.’
꽂혀도 죽지는 않겠지만 한동안 에리히와 어색한 관계가 지속될 거다. 그건 곤란해.
그리고 내 부인이자 마종공의 제자로서 주목받던 리제에게 ‘고귀한 핏줄을 홀린 여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어버린다. 내가 자다가 습격을 받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야.
“살레리아에 있는 동안 고민하겠다고 했지만.”
그렇기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의 이야기면 얽힌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야. 아무래도 동의를 구하는 것이 문제고,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것도 문제가 될 것 같다.”
유감스럽지만 그 제안은 거절해야 할 것 같─
“아, 그게 걱정이시라면 괜찮아요. 어디까지나 두 분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는 거지, 그대로 쓰는 건 아니거든요.”
“뭐?”
“그대로 적으면 그건 소설이 아니라 일기 아니겠어요? 오늘 보신 연극도 빌헬미나 1세의 비극적 사랑만 영감으로 삼은 거예요. 실제 역사하고는 많이 다르죠.”
그 말에 다시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오늘 본 연극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물론, 지명이나 사건의 서순까지 손 본 느낌이 강했지.
그 연극처럼 우리 이야기도 단순히 모티브로 삼는 거라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외견이 다르면,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다르면 그 모티브가 황족일지 왕족일지 어떻게 알겠나.
“두 분이 성인이 된 이후에 만나셨더라도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로 만들 수 있어요. 반대로 중년이 되어서야 뜨겁게 타오른 연인으로 만들 수도 있고요!”
“오.”
썩 나쁘지 않은 이야기인지라 마음이 수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리제가 동경하는 작가가 우리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소설을 써준다. 리제는 그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고, 비밀로 해야 할 사생활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다.
‘해볼까?’
어차피 글을 쓰는 건 로데사지 우리가 아니잖아. 각색은 로데사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런 내용도 심사를 통과할 수 있게 만든 능력자니까.’
역사 기반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푸른 피의 모가지를 따는 연극을 개봉할 만큼 선 타는 실력이 예술인 로데사다. 세상에 공개하면 곤란할 내용 정도는 어련히 조절할 터.
난 믿는다. 리제가 좋아하는 작가를, 발크로스의 괴물 후기지수를 믿어.
그날 밤, 저택에 있는 부인들에게도 동의를 받는 것에 성공했다. 단순히 모티브로만 삼겠다고 하니 흔쾌히 수락하더라.
동아리 부원들에게는 당연히 연락하지 않았다. 그 녀석들과 접촉하는 것 자체로도 ‘이 소설에 나오는 머저리들이 너희임 ㅎ’ 라고 자백하는 꼴이지 않나. 서로의 명예와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모른 척 넘어가는 게 옳다.
로데사가 쓸 소설은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사건이 아니니까. 그저 새로운 시간, 새로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사랑이니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반박하는 놈은 제국 황족과 아르메인과 유벤의 왕족, 차기 성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오라버니.”
“응?”
“고마워요.”
그렇게 허락을 받고 통신구를 내려놓으니, 리제가 배시시 웃으며 나를 껴안았다.
“로데사 님을 만난 것도 기쁜데, 설마 이런 선물까지 받을 줄은 몰랐어요. 좋아하던 작가가 제 이야기를 써주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무슨 말이야? 우리 일이 아니라 작가의 창작인데.”
“참. 그랬었죠?”
내 정정에 리제는 히히 웃으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럼 로데사 님의 신작 저술 선언을 지켜본 것. 이걸 기뻐하면 되는 거겠죠?”
“그건 괜찮지.”
이번에는 내가 웃음을 흘렸다. 리제도 점점 성숙해져서 그런지, 아카데미 때와는 달리 은근 능청스러운 모습이 생겼다.
순수함 100%의 리제도 좋지만 이런 리제도 매력적이다. 어떤 리제든 리제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묻는 것도 웃기지만 괜찮겠어? 로데사한테 우리 이야기만 해주다가 귀국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색다른 경험을 쌓기 위해서 여행을 즐기는 건데, 이보다 색다른 경험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논리적으로 완벽한 말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리제의 말처럼 이런 경험은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다. 마르도, 트릭시도, 린도, 에리도, 피네도 겪지 못할 나와 리제만의 추억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연애 이야기만 할 건 아니잖아요. 오전에는 놀고, 오후에는 로데사 님의 저택에 가고. 그러면 되겠네요.”
그 말에 잠깐 움찔하고 말았다.
미안해. 당연히 24시간 내내 로데사랑 같이 있을 줄 알았어. 일이 생기면 해결할 때까지 붙들고 있던 공무원의 버릇이 그만…
‘알렌도 만나야 하지 참.’
게다가 문화성 장관의 힘을 빌려서 약속을 잡은 작가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로데사는 우연히 첫날부터 만났지만, 두 번이나 그런 요행을 바랄 수는 없으니 알렌은 직접 찾아가야 한다.
‘…알렌은 정상적이겠지?’
잠깐 불안감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로맨스 소설 작가인 로데사는 우리들의 대혁명을 찍었는데, 모험담과 기사도 소설 작가인 알렌은 어떨까? 로데사가 국내 대혁명이라면 알렌은 타국과의 혁명전쟁 연극을 쓰는 건 아닐까?
물론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럴 가능성은 없다. 로데사는 역사 기반이라는 핑계가 존재하지만, 대륙 역사에 혁명전쟁 같은 미친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알렌이 진짜배기 공화주의자, 명예 붉은 파도가 아닌 이상 그런 연극은 쓸 수 없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솟구치는 건 그만큼 로데사의 연극이 인상적이라는 거겠지.
아마 내가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할 거다…
***
은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제는 젊었을 때처럼 사흘 동안 잠도 자지 않으며 글을 쓸 체력도, 한자리에 계속 앉아있을 의지도, 빠르게 이야기를 짤 창의력도 희미해지는 중이니까. 잘 쳐줘도 3년 정도가 흐르면 작가라 자칭할 수도 없을 거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수십 년 동안 할 만큼 했고, 쓰고 싶은 것들도 전부 썼다. 이룰 것은 다 이루었으니 박수를 받으며 물러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라고, 몇 년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륙 제일 검이라.’
제국의 무인이 대륙 제일 검이라 불리기 전까지는.
대륙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압도적인 정점이 존재한다. 마도 강국이라 불리는 유벤 연합왕국조차 마종공의 위엄을 인정하니, 대륙 마법계의 위계질서는 철저했다.
반면 검사들의 세계는 달랐다. 대륙 최강국인 제국과 기사 왕국인 아르메인. 양국의 자존심 대결이 치열했기에 명확한 검의 정점이 등장하지 못했다. 솔직히 제3자 입장에서는 제국의 검사들이 더 강해보이지만, 압도적 우위는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의 타일글레헨 백작이 만인의 인정을 받는 정점이 되었다. 기사의 정점, 검의 정점이 내 생전에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젊은 나이에 종군 경험도 있다.’
작가로서 이걸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검사 이야기를 자주 쓴 나에게 이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꺼져 가던 의욕이 다시금 타올랐다. 제일 검의 인생을 소설로 쓰고 싶다고. 정점의 전쟁을 내가 기록하고 싶다고.
– 타일글레헨 백작이 조만간 발크로스 왕국으로 갈 예정인데, 자네에게 관심이 있더군.
“나한테?”
– 정확히는 자네하고 로데사 양한테.
그래서 제국에서 장관으로 지내는 친구 놈이 연락을 걸었을 때, 처음으로 인맥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놈이 난데없이 장관으로 승진할 때는 그런 중책에 적응할 수 있겠냐고 놀렸는데 말이야. 지금 보니 누구보다 훌륭하게 적응했어.
고맙다, 내 친구. 만약 장관 자리에서 쫓겨나도 너는 내가 먹여살린다.
‘이미 귀족이니 내 도움은 필요 없겠지만.’
아무튼 두근거린다. 며칠 내로 제일 검을 볼 거라는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제일 검이 오면 바닥에 엎드리는 한이 있더라도 부탁하자. 제발 당신의 인생을 소설로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내 마지막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달라고.
나를 만나러 올 정도로 관심이 있는 상황이라면─ 불쌍해서 조금이나마 고민해 주겠지.
***
다행히 혁명전쟁은 피했다.
“각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각하의 영광스러운 일대기를 적어보고 싶습니다!”
다만 혁명전쟁과는 다른 의미로 골치 아픈 부탁을 받았다.
‘이게 뭔.’
로데사는 리제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알렌은 내가 검을 휘두른 이야기.
둘 다 원하는 장르가 명확한 것이, 확실히 오랜 기간 활동한 작가답다.
‘환장하겠네.’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알렌의 부탁을 거절하기에는 이미 로데사의 부탁을 받아준 상황이라, 둘 중 한 명만 편애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게다가 리제의 눈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의 일대기를 존경하는 작가가 써주는 것에 감동한 것처럼.
‘문화 강국 맞네.’
손님이 오면 소설로 대접하는 기적의 국가.
문화 강국이라는 이름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