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69)
로판 속 공무원 769화(770/945)
수십 년 동안 작가로 지낸 직업 정신. 수백 년 동안 문화 강국으로 군림한 조국에 대한 자부심.
이 두 가지가 결합돼서 그런지,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제안이 튀어나왔다.
‘일대기라.’
일단 동요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했다.
로맨스 소설 작가인 로데사는 나와 리제의 연애 이야기를 모티브로 새로운 작품을 쓰겠다고 했다. 반면 모험담, 기사도 소설 작가인 알렌은 내 ‘일대기’를 소설로 만들겠다고 했다.
뉘앙스를 들어보니 단순히 모티브로 삼는 수준이 아니다. 역사 소설처럼 내가 겪은 일들을 정말 소설로 쓰겠다는 것 같다.
굳이 비유하자면 삼국지연의처럼. 약간의 변형은 있으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처럼.
“고마운 제안이지만, 내 나이가 고작 스물여섯이다. 썩 긴 인생을 살지 못한 사람의 일대기를 써봤자 얼마나 쓸 수 있겠나. 단편으로 쓰더라도 반 권 분량조차 안 나올 수 있다.”
일단 알렌의 제안에 정중히 난색을 표했다.
사실 로데사의 부탁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리제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알렌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높으신 분들의 신혼 생활이 걸린 아카데미 시절과 달리, 내 인생은 딱히 기밀로 해야 할 것도 없고. 어차피 내 인생은 실시간으로 역사책에 실리고 있잖아.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이야기. 정확히는 6검인 그 녀석들의 이야기가 널리 퍼진다면 오히려 기꺼운 일이다. 재미없고 딱딱한 교과서보다 대문호의 소설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어.
“사람의 인생은 시간으로 가치가 나뉘지 않습니다. 각하의 나이가 젊은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나,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순탄하고 평온하셨습니까?”
반박하는 알렌의 말도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 더욱 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80세, 90세까지 살았음에도 평온한 삶을 살아서 기록에 남지 않는 범부가 있다. 반면 10대, 20대에 죽었음에도 폭풍과 같은 삶을 보냈기에 역사에 남는 위인이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둘 중 후자에 가깝다. 두 차례의 전쟁에 종군하였고, 그 대가로 이 나이에 제국의 핵심 인사가 되었다. 나는 상사를 잘못 만나서 개처럼 구르는 거지, 내 권력 자체는 드높은 편에 속한다. 정작 권력 대신 자유가 더 절실하지만.
“인류 역사상 정주민과 유목민이 하나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 어떠한 검사도 검 한 자루로 하늘을 베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권력자도 신의 총애를 받는 살아있는 복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뭐 이리 많아.’
그 와중에 알렌의 설득은 더욱 길어졌다.
당사자인 내가 들어도 써야 할 명분이 많기는 하다. 전쟁 영웅, 대륙 제일 검, 살아있는 복자. 셋 중 하나만 골라잡아도 장편 소설이 뚝딱 만들어지겠어.
“사실 이 늙은이는 검을 든 무인을 동경하였기에 기사도를 펜으로 만들어나갔습니다. 헌데 제가 죽기 전에 수많은 업적을 세운 대륙 제일 검이 등장하였으니, 실로 신의 인도하심이 아니겠습니까? 제 생의 마지막 불꽃을 각하를 위해 태우고 싶습니다.”
“허어.”
이제는 가불기인 수명까지 언급하는지라 마음이 약해졌다.
부인이 존경하는 작가가, 은퇴를 눈앞에 둔 것 같은 작가가 나를 주제로 마지막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듣고 어찌 매정하게 굴 수 있을까.
“썩 재미있는 인생은 아니나, 그 재미없는 인생이 대문호의 손을 거쳐 명작이 될 거라 생각하니 기대되는군.”
그래서 알렌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까짓것 한번 해보자고.
“헌데 내 이야기를 적으려면 전쟁을 뺄 수 없는데, 그건 하루 이틀 만에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마침 다른 일정도 있어서 하루를 온전히 소모할 수도 없고.”
대신 일생 전달에 다소 난관이 있을 거라는 건 확실히 언급하였다.
신혼여행을 최대한 즐겨야 하고, 로데사와의 협업도 예정된 상태에서 알렌과의 협업까지 이루어진다? 필연적으로 알렌에게 쏟을 시간은 적을 수밖에 없다.
“제가 각하께 부탁드리는 것이니, 당연히 각하의 일정에 맞춰야지요. 언제든지 편할 때 와주십시오.”
물론 알렌은 경우가 없는 사람이 아니기에 당연히 이해해 줬다.
본인이 먼저 부탁해놓고 시간을 안 내준다고 성질을 내면 그게 사람이냐. 짐승 언저리의 무언가지.
“…참, 빈손으로 얼굴을 보기는 민망해서 선물을 하나 준비했다. 부디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군.”
“감사합니다, 각하! 각하의 일대기를 완성하는 날에 기쁜 마음으로 마시겠습니다!”
잠시 기억 속에서 사라져있던 보야르 와인을 알렌에게 건넸다.
하마터면 선물로 들고 왔다가 그대로 가져갈 뻔했다.
내 인생을 소설로 만드는 과정이지만, 보다 원활한 작업을 위해서는 외부인의 협조가 필요했다.
– 장관의 일대기라고?
“예,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제국의 모든 정보를 한 손에 쥐고 있는 황제의 협조가.
카간의 모가지를 딴 대토벌 전쟁, 북방을 제국의 영토로 만든 북방 정벌. 두 차례의 전쟁에서 나는 사령관이나 지휘관 같은 지휘부 소속이 아닌, 전투를 위해 투입된 조커 같은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굳이 정보에 접근하는 게 아닌 이상 전쟁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반면 황제는 전쟁 현황은 물론, 후방인 본토의 상황도 빠삭하게 알 수밖에 없다. 황제가 정보를 모르면 누가 알겠어.
“수천 년 동안 정주민과 대립한 유목민들이 제국에 고개 숙인 영광스러운 순간입니다. 그 영광을 소설이라는 형태로 온 대륙에 알릴 기회이니, 이왕이면 보다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 흐음.
내 제안에 황제는 턱을 매만지며 고심에 빠졌다.
이미 제국은 정주민과 유목민의 결합을 위해, 제국의 위대한 승리를 과시하기 위해, 제국이 북방을 지배하는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두 차례의 전쟁을 교육 과정에 싣고 있다. 당장 내가 아카데미 감찰관으로 지내던 시절에도 6검 이야기가 역사 교과서에 있지 않았던가.
심지어 제국의 완벽한 승리로 끝난 북방 정벌과 달리, 카간에게 미친 듯이 시달렸던 대토벌 전쟁은 뒷맛이 씁쓸한 전쟁이었다. 그 전쟁 때문에 한동안 다른 국가들이 ‘제국이 유목민 따위한테 고전했다고?’ 라는 시선을 받았을 정도로.
그런 상황에서 당사자인 제국이 아닌 제3자인 발크로스가 대토벌 전쟁에 대해 서술한다? 그것도 지루한 교과서가 아닌 대문호의 소설로?
– 나쁘지 않겠군.
카간의 괴물 같은 면모를 온 대륙에 알릴 기회다. 동시에 그런 괴물을 상대로 승리한 제국의 위엄을 알릴 기회기도 하다.
그것도 제국이 먼저 의뢰를 넣어서가 아니라, 문화 강국의 대표 작가가 자청해서 말이다. 이러면 중립성과 객관성을 의심하는 눈빛이 줄어들고, 작품 퀄리티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 장관의 뜻은 잘 알겠네. 그래서, 짐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전쟁성과 제국군이 보관 중인 대토벌 전쟁, 북방 정벌에 관한 기록이 필요합니다. 물론 공개하는 게 곤란한 기밀은 제외하더라도, 보다 자세한 정보가 있어야 저술 활동이 수월할 겁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정보, 내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정보. 그런 정보들까지 알렌에게 알려줘야 저술 활동이 편해지지 않겠나.
그리고 문서가 있어야 내가 조금이라도 덜 떠들 수 있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해.
– 안 될 것은 없지만.
허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황제가 다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 군의 정보를 타국 민간인에게 함부로 넘길 수는 없지. 어차피 소설로 남길 예정이라도, 한차례 가공한 내용과 있는 그대로의 정보는 다른 법이니까.
“하오면…?”
– 알렌에게 기밀 유지 서약을 받도록.
당연한 말이라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적으로 황제의 요구는 당연한 요구다.
– 그리고 소설을 발매하면서 얻을 수익 말인데. 장관과 제국의 지분도 확실히 요구하게나. 장관의 일생과 제국의 정보를 제공해 주는 건데, 대가는 받아야지.
뒤이어 물질적 보상까지 챙기는 알뜰함에 잠깐 움찔하고 말았다.
난 단순히 그 녀석들의 이름을, 제국의 명예를 널리 퍼뜨리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상업적 이득은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돈은 중대 사항이지.’
부끄러운 일이다. 책을 판다면 당연히 수익이 나올 수밖에 없거늘. 명예에 눈이 멀어서 당연한 이득을 놓칠 뻔했다.
– 그 두 가지만 지키면 정보 제공을 진행하도록 하지.
“관대한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 무얼. 제국이 아닌 타국의 작가가 스스로 제국의 위엄을 드높이겠다는데, 이 정도 배려는 얼마든지 해야 하지 않겠나.
***
다음날, 다시 타일글레헨 백작이 방문했다.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해서 한 3일 후에 올 줄 알았는데 바로 오다니. 백작도 이 저술에 흥미를 가지는 것 같아 기뻤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합의를 봐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소설을 출판하게 되면 수익 분배는 어떻게 되는가?”
“수익… 말씀이십니까?”
허나 정보 전달이 아닌 수익 얘기라 조금은 김이 샜다.
그래도 수익 분배는 중요한 안건이지. 차라리 수익이 얽혀있다면 장관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거라는 믿음이─
“폐하께옵선 적절한 수익을 제국에 양도한다면, 보다 원활한 저술 활동을 위해 전쟁성과 제국군의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타인에게 유출하는 걸 금지한다는 조건이지.”
“전부 각하와 제국에게 바치겠습니다.”
“…음?”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는 백작의 모습에 더욱 단호히 말했다.
“판매 수익 전부. 각하와 제국께 5 대 5로 바치겠습니다. 저는 각하의 일대기를 쓰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원래는 내가 3, 나머지를 장관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뭐? 단순히 당사자에게 구두로 듣는 것을 넘어서 제국이 공식적으로 정리한 정보도 받는다고?
‘내가 돈을 줘도 부족하다.’
그깟 수익 따위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오히려 그동안 쌓은 재산의 일부도 바쳐야 할 수준이다.
‘최고다.’
안 그래도 두근거리던 심장이 더욱 거세게 요동쳤다.
내 작가 인생 마지막 불꽃. 이 불꽃은 대륙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뜨겁게 타오를 거라는 확신이 섰다.
본래 역사 소설이나 일대기는 고증만 철저해도 반은 먹는 법. 가장 중요한 고증을 완벽하게 지키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