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70)
로판 속 공무원 770화(771/945)
제국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타일글레헨 백작 각하를 뵙습니다. 전쟁성 참모부 3과 소속, 프리드리히 델미온입니다.”
그것도 우리 차남과 같은 이름의 손님이.
“프리드리히라.”
“예, 각하. 영광스럽게도 각하의 자제분과 같은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손님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당사자도 우리 차남과 동명이인이라는 걸 아는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반가움을 숨길 수 없었다. 나이, 외견이 전부 다르더라도 동명이인을 만나면 괜히 시선이 가지 않던가. 그것도 내 아들과 같은 이름이라면 더더욱.
“좋은 이름이네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영광입니다, 부인.”
리제도 같은 마음인지 해맑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그래, 좋은 이름이다. 프리드리히는 나와 리제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머리를 맞대서 지은 훌륭한 이름이다. 그런 이름을 이미 다른 사람이 쓰고 있다는 건, 그만큼 좋은 이름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 아닌가. 남들이 안 쓰는 이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자, 우선 자리에 앉지. 먼 곳에서 오느라 고생이 많았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각하.”
아무튼 손님─ 프리드리히 프로토타입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무리 텔레포트의 힘을 빌렸다지만 제국에서 발크로스까지 날아온 사람이다. 심지어 내 요청이 없었다면 오지 않았을 사람이니, 원흉으로서 각별히 대접하는 게 옳다.
“헌데 본작의 예상보다 빠르게 왔어. 관료가 국경을 넘는 일이니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발크로스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문화 강국이라 그런지, 저술 활동과 연관된 일에는 상당히 너그럽더군요.”
“과연. 이름값은 확실히 하는군.”
프리드리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처럼 휴가 중인 개인도 아니고, 현직 관료가 어떻게 벌써 왔나 의문이었는데 말이야. 문화와 연관된 일이라면 발크로스의 국경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게다가 여럿이 아니라 저 홀로 국경을 넘었으니 경계할 것도 없었을 겁니다. 이럴 때는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게 어찌나 자랑스러운지.”
그렇게 말한 프리드리히는 작게 웃음을 흘리더니, 제법 큰 가방을 하나 건넸다.
“각하께서 요청하신 대토벌 전쟁, 북방 정벌과 관련된 자료입니다.공개할 수 없는 기밀은 제외했지만,전선의 상황뿐만 아니라 후방의 보급 현황, 중앙의 회의 과정을 전부 포함한지라 결코 적은 양은 아닙니다.”
“그래 보이는군. 오히려 가방 하나로 끝난 게 다행이야.”
“마도구라 보시는 것보다 용량이 큽니다.”
“저런.”
마법의 힘을 빌렸다면 실제 용량은 외견보다 4배, 5배는 많을 터. 알렌의 마지막 불꽃이 자료만 읽다가 끝날 것 같아 무섭다.
“또한 자료에 없는 내용이 궁금하다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전승공 각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흥미롭다고 하시더군요.”
“그분이 자서전을 쓰신다면 성 하나는 지으실 텐데. 한참 어린 후배의 일대기에 관심을 가지실 필요가 있을는지.”
“자서전은 직접 쓰셔야 하지 않습니까? 업무로 바쁘시니 시간이 없으시겠지요.”
“그도 그렇군.”
상당히 설득력 넘치는 말이라 무심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맞는 말이지. 사실상 은퇴하여 백수로 지내는 첫째 장인어른이라면 모를까, 제국군 부사령관인 전승공이 자서전을 쓰려면 몸이 두 개여야 가능한 일이지.
“이거 각하의 이야기도 많이 써달라 부탁해야겠어.”
“백작 각하의 배려에 전승공 각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순간 전승공한테도 수익을 분배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딱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바로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공작이나 되는 사람이 어린애의 코 묻은 일대기 수익을 바라겠나.
그냥 명예 아들의 인생이 소설로 나온다고 하니 이름이나 비치고 싶은 거겠지. 마치 자기가 즐겨보던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무료로 출현해 주는 열혈팬들처럼.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음? 벌써?”
“신혼여행을 방해하는 것만큼 몰상식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달해야 할 것은 전부 전달했으니, 두 분의 즐거운 여행을 기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길래, 프리드리히보다 먼저 일어나 어깨를 눌렀다.
“본작의 부탁으로 이곳까지 왔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본국에서도 할 일이 많을 테니 오래 붙잡을 수는 없지만, 식사라도 하고 가도록.”
“아닙니다, 각하. 어찌 두 분의 시간을─”
“저희를 위해 와주신 분을 그냥 보내는 건 저희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래요.”
리제의 지원 사격에 프리드리히의 눈동자가 좌우로 요동쳤다.
심정은 이해한다. 해외 출장을 즐기기에는 귀국해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눈앞에 아른거릴 테고, 억지로 발크로스에 남는다 해도 장관과 그 부인을 상대하기 부담스럽겠지. 그러니 빠르게 용무만 마치고 돌아가는 게 심적으로 편할 거다.
하지만 리제의 말처럼 우리를 위해 온 사람을 밥 한 번 안 먹이고 보내는 건 정이 없다. 사적인 일로 공무원을 부린 진상 민원인 같잖아.
그리고 지금은 부담스러워도, 나와 함께 식사를 한 경험은 프리드리히 프로토타입에게 큰 자산이 될 거다. 내 차남과 동명이인인 사람에게 이 정도 선물은 줄 의향이 있다.
“…두 분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감사히 먹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짧은 침묵 끝에 고개를 숙인 프리드리히를 보며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성 참모부 소속인 프리드리히 프로토타입. 내가 이 사람의 이름을 보고 흐뭇했던 것처럼, 이 사람도 나와의 식사 덕분에 좋은 일이 생기기를.
***
역시 봄과 같은 아가씨와 칼날 같은 귀족의 사랑은 흥미롭고 두근거렸다.
“사실 제가 어렸을 적, 제 언니가 병으로 떠난 적이 있었어요. 제가 언니에게 향할 사랑을 독차지해서 언니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었죠.”
“저런. 어린 나이에 상심이 컸겠어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사랑이 무서워졌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 모두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졌죠.”
아가씨의 말에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면서도, 내 손은 본능적으로 아가씨의 말을 받아 적었다.
소설에서 나온 듯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아가씨. 그런 아가씨의 과거에는 마찬가지로 소설에 나올 법한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사람으로서는 안타까웠지만 작가로서는 감탄이 나올 뻔했다. 사랑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던 아가씨. 그런 아가씨의 마음을 열어버린 젊고 훤칠한 귀족.
“오라버니도… 저처럼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지만요.”
심지어 그 귀족마저도 아가씨와 비슷한 고통을 간직하고 있었단다.
빠르게 움직이던 손이 어느새 진동까지 동반하게 됐다. 이렇게 군침이 도─ 아니, 완벽한 소재는 처음 본다.
“제가 두 분의 고통을 감히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에요.”
물론 두근거리는 마음과 별개로 입으로는 끊임없이 위로를 건넸다.
작가의 흥미가 인간의 도리를 앞지르면 안 된다. 아무리 완벽한 소재여도 그것이 누군가의 비극이면 기뻐해서는 안 된다. 작가이면서도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도 오라버니랑 이런 관계가 될 줄은 몰랐어요. 저와 오라버니가 나란히 아카데미에 있는 건 기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렇죠. 두 분은 네 살 차이니, 각하께서 관료가 아닌 아카데미를 택하셨어도 만날 일이 없어야 했죠.”
사실 이건 나도 신기하다. 백작이 아카데미를 택했다면 아가씨가 입학하기 전에 졸업했을 텐데, 관료의 길을 택하자 아가씨를 볼 수 있었다. 아가씨와 연이 없을 거라 생각한 선택지가 도리어 아가씨와 백작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건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만날 사람은 무슨 선택을 해도 만날 운명.
“그러고 보니 각하는 어디 계시죠? 당분간은 부인의 이야기만 받아 적어도 벅찰 것 같기는 한데, 각하가 부인을 두고 다른 곳에 갈 분은 아니지 않나요?”
그렇게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던 중, 뒤늦게 위화감을 느껴 입을 열었다.
“아. 오라버니는 알렌 님한테 갔어요. 알렌 님도 로데사 님처럼 저희 이야기로 소설을 쓰고 싶다 하셨거든요.”
“그 영감님이요? 이제 머리가 굳어서 은퇴해야겠다고 투덜거리시던 분인데?”
“대륙 제일 검을 주제로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고 싶다고 하셨어요.”
“아하.”
바로 납득이 가는 말이라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영감님, 아르메인에 태어났으면 무조건 기사가 됐을 사람이기는 해. 아니, 몸이 조금만 더 튼튼했다면 이 발크로스에서도 기사의 길을 택했겠지.
그런 사람이니 대륙 제일 검을 보자마자 눈이 뒤집힌 건 당연한 일이다. 아마 거동이 불편했어도 생명을 쥐어짜서 마지막 작품을 남겼을지도 몰라.
“후후, 각하께서 많이 바쁘시겠어요. 저한테는 연애 이야기, 영감님한테는 무인의 이야기를 하면 정신이 없으실 텐데.”
“괜찮아요. 오라버니도 은근히 좋아하던걸요? 저희의 이야기를 아이들이 볼 수도 있겠다고요.”
“이거 참. 그렇게 말씀하시면 더 열심히 쓸 수밖에 없잖아요.”
그 말에 나도 아가씨도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쓴 이야기가 어느 연인의, 어느 부부의 영원한 추억이 돼서 자식들에게 이어진다. 작가로서 기쁘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
타일글레헨 백작이 온갖 자료를 들고 왔을 때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비록 기밀은 제외한 자료라고 했지만, 솔직히 일개 평민인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일반 자료조차 열람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런 자료들을 얻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대토벌 전쟁부터는 자료가 많으니, 전쟁 이전의 이야기부터 간략하게 말하도록 하지.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편한 대로 말씀해 주시지요!”
게다가 자료로도 알지 못할 백작의 유년 시절. 가족이 아닌 이상 누구도 모를 이야기도 흔쾌히 알려준다고 했다.
이럴 때는 늙은 육체가 원망스러웠다. 까딱 잘못했으면 과도한 심장 활동으로 죽을 뻔했으니.
“크라시우스 가문에는 자식을 엄격하게 가르치는 관습이 있었지. 내 조부께서도 아버지를 그리 가르치셨으니, 자식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아버지께서도 차마 거스르기 힘든 전통이었어.”
덤덤히 입을 여는 백작의 모습에 황급히 펜을 잡았다.
“덕분에 유년 시절이 행복했냐고 하면, 빈말로라도 그렇다고 하기는 어려웠지.”
영웅의 고난을 말하는 모습에 손이 떨려왔다.
“귀족이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니까. 부모의 사랑을 갈구할 아이가 검만 휘두르는데, 행복하면 그게 더 이상하기는 해.”
허나 내 흥분과 달리, 작게 웃음을 흘린 백작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이 내용은 백작과 크라시우스 가문을 위해서라도 적당히 양을 조절해야겠다.
‘자식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아버지.’
과거는 슬플지언정, 지금은 그 상처를 극복한 듯한 말이잖나.
한 가문의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금 일어났는데, 내 만족을 위해 그 상처를 다시 찢어낼 수는 없다. 어차피 유년 시절보다는 전쟁부터가 진짜기도 하─
“그러다 낙마를 하기도 했지.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아.’
그냥 넘어가기 힘든 내용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