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73)
로판 속 공무원 773화(774/945)
살레리아 하늘에 방명록을 남기고 이틀 후, 예정대로 귀국할 준비를 마쳤다.
그 이틀 사이에 리제도 로데사에게 선물을 하나 건넸다. 다행히 스승인 트릭시처럼 허공에 메테오를 떨군 건 아니고, 직접 만든 쿠키와 케이크라는 소소한 선물을. 방에 처박혀 머리를 쓰는 직업이니 단 디저트가 도움이 된다나?
로데사도 예의상 도움이 된다고 한 건 아닌 듯, 선물을 받으며 상당히 기뻐했다.
“귀족이 직접 만든 디저트를 어디서 맛보겠어요! 마음 같아서는 마법이라도 걸어서 영구 보존하고 싶지만, 먹으라고 주신 걸 그렇게 할 수는 없죠!”
기뻐하는 이유가 조금 다르지만 아무튼 기뻐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선물이라 다행이야.
‘마지막까지 괜찮았어.’
그렇게 리제가 좋아하던 두 작가와 인사도 나누고, 우리의 이야기가 소설로 만들어진다는 약속도 받고, 원활한 저술을 위해 온갖 정보도 건네주고, 작별하기 전 선물도 건넸다. 당장 제국으로 귀국해도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알차게 일정을 보냈다.
솔직히 신혼여행보다 저술 여행에 가까운 일정이기는 했으나, 나도 리제도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이 또한 우리 둘만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니.
“만약 둘째가 생기면 태명은 리아라고 할까 봐요.”
그리고 나와 리제 사이에서 새로운 아이가 생긴 기념비적인 날이니.
당연하지만 아직 리제가 생명을 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동안의 패턴상 리제가 둘째를 가질 거라는 확신이 있다. 세 신의 축복을 받아서 그런지, 내가 노력하면 신들도 생명을 아낌없이 선물하고 있으니까.
“단풍이로 한다고 하지 않았어?”
“단풍이도 좋지만… 저랑 오라버니의 추억이 담긴 도시잖아요? 이왕이면 그 추억을 태명으로 기억하고 싶어요.”
헤헤 웃은 리제는 내 소매를 잡더니, 아주 작게 속삭였다.
“그러니 단풍이는 셋째를 가지면 써요.”
그것도 아주 도발적인 말을 속삭였다.
덕분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둘째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셋째를 꿈꾸다니. 이걸 욕심이 넘친다고 봐야 할지, 아니면 모성애가 넘친다고 해야 할지.
“리아랑 단풍이가 물려받을 재산도 열심히 준비해야겠어.”
나 또한 리제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리제의 얼굴이 벚꽃처럼 활짝 만개하였다.
‘셋이라.’
동시에 대-크라시우스 가문의 미래를 상상하고 말았다.
리제의 아이가 셋이나 생길 동안 다른 부인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부인 여섯에게 자식이 셋씩 있다면 자식만 무려 18명. 주전 11명은 물론, 예비 선수도 7명이나 갖춘 FC 크라시우스를 창설할 수 있다. 에리히가 조금만 노력하면 11:11 자체 경기도 가능하고.
상상만 해도 전율이 치솟는 미래다. 두 형제의 자식을 합하면 스물이 넘는 가문. 황금공이라는 압도적 1인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이로운 업적이다.
‘…손주들도 낳으면 어떻게 될까.’
그 와중에 FC 크라시우스보다 더 먼 미래를 생각하니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이거 여차하면 손주들의 이름을 헷갈리는 참사가 생기지는 않을까? 그건 많이 곤란한데.
어쩔 수 없지. 지금부터 손주들의 이름을 미리 정해두자. 한 50개 정도 짜두면 수십 년 뒤의 미래를 성공적으로 맞이할 수 있을 거다.
꼬꼬마 손주들이 우르르 몰려와도 동요하지 않는 할아버지. 똑 닮은 형제, 자매가 달려들어도 능숙히 이름을 말하는 할아버지.
‘최고야.’
내가 생각해도 제국에서 가장 멋진 할아버지다. 거기다가 약간의 용돈도 곁들이면 손주들이 환장하겠지.
“오라버니? 왜 그러세요?”
내가 홀로 히죽거리기 시작하자 리제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리아가 걷는 걸 상상했어.”
“뭐예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쿡쿡 웃는 리제의 모습에 어색히 미소를 지었다.
차마 ‘손주들한테 용돈 주는 걸 상상했어.’ 라고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제도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의 호출이 날아왔다.사유는 대충 짐작이 갔기에 순순히 태양전으로 향했고,
“장관 왔는가?”
“오, 감찰성 장관. 오늘 귀국했군요.”
황제뿐만 아니라 외무성 장관도 나를 반겨주었다.
‘외무성 장관도 있었나.’
나도 모르게 잠깐 움찔했다. 내가 황제 앞에서는 떳떳할 수 있어도 외무성 장관에게는 그럴 수 없으니까.
솔직히 내 일대기가 소설로 만들어지면 ‘개쩌는 전성기 북방과 그런 북방을 이긴 제국’을 홍보할 수 있잖아. 이건 황제한테도 이득이니 나와 황제는 이번 일에 한하여 임시 동맹 관계다.
반면 외무성 장관은 이번 일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황제처럼 제국의 위신이 드높아지는 것에 뿌듯할 이유가 없고, 나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긴다는 의의도 없다.
그럼에도 외무성 장관은 이번 일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 무려 하늘 베기를 타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발크로스 외교부를 온 힘을 다해 설득해야 했다.
“폐하와 장관께서 걱정해 주신 덕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중히 황제와 외무성 장관에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에게는 의례적인 마음을 담아. 장관에게는 진심의 사죄를 담아.
“아이고, 걱정해 준 덕이라니요.부끄러운 말씀입니다.이 대륙에서 그 누가 장관을 해할 수 있다고 걱정하겠습니까? 사실 장관이 여행 선물은 가져오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만 했습니다.”
껄껄 웃음을 흘리는 외무성 장관을 보니 더더욱 죄책감이 몰려왔다.
겉으로는 평범한 농담이지만 그 속내는 결코 평온하지 못했다. 대충 ‘신혼여행 간다고 해서 입국 도와줬더니, 그걸 하늘 베기로 보답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라는 한탄이었으니까.
미안하다. 내가 미안해… 나도 타국에서 하늘을 가르게 될 줄은 몰랐어…
“저와 장관 사이에 이유가 있어야 선물을 주고받겠습니까? 제가 장관께 드릴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드려야지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하자 슬픔이 감돌았던 외무성 장관의 눈동자가 조금은 편안해졌다.
이번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언제든 손을 보태겠다는 말. 적어도 외무성 장관이 고생한 만큼의 가치는 될 거다.
“이거 참. 장관 둘이 짐 앞에서 대놓고 결탁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송구하옵나이다, 폐하. 소신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사오니─”
“의회 영구 의장으로 삼기 전에 자리에 앉도록.”
“예.”
황제의 단호한 경고에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아쉽다. 합법적으로 퇴직할 절호의 기회였거늘.
“프흐, 장관. 제국의회 의장이 뭐 어때서 그러십니까? 다른 귀족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인데요.”
“너무 영광스러워 감히 넘볼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 말에 외무성 장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다행이다. 서글펐던 마음이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아.
“그보다 장관. 외무성이 노력한 덕에 발크로스에서 하늘까지 갈랐는데, 노력한 만큼의 성과는 얻었나?”
이어진 황제의 말에 외무성 장관도 조용히 내 얼굴을 바라봤다. 자신과 부하들이 고생했으니 부디 괜찮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예, 폐하. 알렌이 감격하며 소신에게 최고의 작품을 약속하였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또한 하늘을 베었던 검도 알렌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소신에게 한 맹세가 흐릿해지더라도 그 검을 보면 다시금 기억날 터이니, 영원히 알렌과 함께할 맹세이지요.”
그러자 황제는 잠깐 몸을 움찔하더니, 이윽고 픽 웃음을 흘렸다.
“조만간 발크로스에서 새로운 국보를 발표하겠군. 그 검에는 뭐라고 썼나?”
“검은 한 번의 휘두름으로 한 명을 죽이나, 펜은 한 번의 휘두름으로 국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번에도 엄청난 걸 적었군그래.”
내가 생각해도 여파가 클 문장이라 어색하게 웃음만 흘렸다.
그래도 문화 강국의 대문호에게 줄 검이잖아. 나름 글과 관련된 문구를 적어야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
***
사건은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왔다.
분명 1시간 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평범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평범하게 차를 마시고, 평범하게 비아의 몸 상태를 살피고, 평범하게 세라와 정원을 산책했다.
특별할 거 하나 없는,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분명 그랬다.
“흐으으윽─!”
“비, 비아!”
“언니!”
헌데 그 일상이 순식간에 깨졌다.
비아가 배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는 순간부터. 비아가 식은땀을 흘리며 인상을 쓰는 순간부터.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눈과 귀로 들어오는 정보가 머리에 닿지 않았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좋지? 아무래도 아이가 나오려는 것 같은데, 우리 첫째가 나오려는 것 같은데 어쩌지?
“백작 각하!”
“각하를 모셔라! 대기 중인 인원들도 전부 불러!”
허나 내가 입을 열기도 전, 비아를 보살피던 시녀들이 저택이 떠나갈 정도로 외치기 시작했다.
‘아.’
기억났다. 저 시녀들, 세라랑 결혼한 직후에 형이 보낸 시녀들이었지. 임산부를 모시는 것에 능숙한 전문가들이니, 출산 시에도 원활하게 대처할 거라고. 내가 멍하니 손가락만 빨고 있어도 알아서 잘 할 거라고.
그때는 형이 괜한 걱정을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괜한 걱정이 아니라 전문가의 연륜이었다.
“남작 각하!”
“어, 어?”
“호르펠트 백작 각하는 바로 출산실로 모시겠습니다! 몇 주 전부터 출산을 대비하고 있었으니, 의료진도 곧장 달려올 겁니다!”
시녀의 패기에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각하께서 괜찮으시다면 가족분들께 연락을─”
“그, 건 내가 하도록 하지.”
“예, 각하!”
내 대답을 듣자마자 시녀는 복도 너머로 달려갔다.
아직도 머리가 멍하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야.
아니지. 폭풍은 지나간 게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한 거지.
‘가족에게 연락…’
떨리는 손으로 품속의 통신구를 꺼내려다 놓치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져 야속하게 굴러가는 통신구. 다행히 금이 가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저 멀리 굴러가는 통신구.
‘미치겠네.’
파르르 떨리는 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형은 이걸 어떻게 여섯 번이나 버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