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74)
로판 속 공무원 774화(775/945)
리제와의 신혼여행을 마친 후로는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었다.그 평온함 속에서 굳이 이벤트를 찾는다면 티티와 제니의 관계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정도?
티티가 오든 말든 새침하게 엎드려 있던 제니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티티를 보면 아주 미약하게나마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나 티티에게 다가가기까지 했지.
누가 봐도 외부인─ 아니, 외부견이라 여기던 티티를 반가운 손님으로 여기는 모습이었다. 이 관계가 조금 더 발전하면 친한 친구를 거쳐 사랑스러운 연인, 최종적으로는 일생의 반려로 진화하지 않겠나.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겠어.”
– 멍!
그렇기에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티티는 언제나처럼 해맑은 눈동자로 맑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래, 티티도 이 점진적인 발전이 기꺼울 거다. 사랑하는 제니가 자신을 반겨준다면 기쁠 수밖에 없다.
‘내년이나 내후년이면 새끼도 보겠네.’
덕분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우리 티티도 그때쯤이면 참한 색시랑 결혼도 하고, 귀여운 자식들도 잔뜩 낳을 거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그보다 티티랑 제니의 결혼은 어떻게 축하하는 게 좋지? 사람처럼 결혼식을 올리는 건 무리겠지만, 우리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티티가 반려를 얻는 날이다. 그런 아름다운 날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아니, 애초에 개들의 결혼 날짜는 어떻게 정하는 게 옳을까. 사람의 결혼 날짜는 사람끼리 정할 수 있으나, 말을 못 하는 짐승들의 결혼은 대체…
‘첫 짝짓기 날을 결혼 날짜로 여기면 되나?’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티티와 제니가 사랑을 나눈다면 그날이야말로 진정한 부부가 되는 날. 바로 그때 두 개의 결합을 축하하면 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이 좋겠다. 괜히 설레발 칠 바에는 확실한 날에 티티와 제니의 결혼을 축하하는 게 낫지.
“칼!”
“음?”
그렇게 티티와 제니의 화려한 웨딩 로드를 상상하는 사이, 저택에 있던 마르가 정원으로 달려왔다.
“왜? 무슨 일 있어?”
너무 다급한 외침이라 쪼그려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티티도 마르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는지 낑낑거리기 시작했고.
“바, 방금 서방님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동서가 출산을 시작했대요!”
“뭐?”
– 멍?
그리고 마르가 전달해 준 정보는 정말 심상치 않았다.
슬슬 출산일이 다가오는 중이라 짐작하기는 했는데, 이건 예정일보다 다소 빠른 시기였다. 적어도 몇 주는 지나야 소식이 있을 줄 알았거늘.
‘역시 아이들은 방심을 못 하겠어.’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언제 세상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고작 어른들의 잣대로 출산일을 완벽히 계산하는 건 너무도 심한 교만이었다.
나도 여섯 번의 출산을 경험하면서 단 한 번도 예정일에 태어난 적이 없었잖아. 그보다 다소 빠르거나, 늦은 시기에 찾아왔었지.
“방금 시작했다고 하니 바로 가봐야─”
“일단 나 먼저 가 있을게.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할 텐데, 갑자기 우르르 몰려오면 더 당황스러울 거야.”
내 허락만 떨어지면 크라시우스 가문 저택으로 달려갈 기세인 마르인지라, 일단은 마르를 차분히 다독였다.
가족의 출산에 가족들이 몰려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허나 지금은 신랑인 에리히가 패닉 상태일 터. 그런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다 같이 몰려가면 에리히의 멘탈이 더욱 흔들릴 거다.
내가 경험자라 잘 안다. 지금은 모든 가족들이 몰려가는 것보다 소수만 찾아가서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 우선이다.
“그, 그래도…”
“아예 오지 말라는 건 아니야. 몇 시간 정도 지나면 에리히도 진정할 테니, 그때 내가 연락 줄게.”
그러자 눈동자가 거칠게 요동치던 마르도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출산이라.’
마르를 가볍게 껴안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세라가 어마어마한 조산을 하는 게 아니라면 당연히 제노비아의 출산일 거다. 크라시우스 가문과 히덴 가문의 핏줄을 이은, 차기 호르펠트 백작이 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내 자식도, 동생도, 대녀도 아닌 조카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내 첫 번째 조카가 이 세상에 강림하는 순간이다.
‘내 조카.’
어느새 나도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멀쩡해야 정상인데. 내가 아니라 에리히만 떨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조카라는 인식을 하자마자 나도 긴장되기 시작했다.
곤란한 일이다. 나도 긴장 상태에 빠지면 에리히를 다독이는 게 힘들어지잖아.
“칼. 괜찮을 거예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요.”
내가 떨기 시작하자 내 품에 안겨있던 마르가 내 등을 토닥였다.
졸지에 위로를 받게 돼서 민망할 따름이다.
에리히가 서식 중인 크라시우스 가문 저택으로 달려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문의 경비병을 제외하면 다른 사용인들은 만나지 못했다. 제국백 가문이 제도에 마련한 저택임에도, 그 거대한 저택 내에서 누구도 만나지 못한 채 출산실까지 달려갔다.
“에리히.”
“형?”
그렇게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자 초조하게 복도를 서성이는 에리히, 그런 에리히 옆에 있는 세라, 부부를 둘러싼 사용인들을 볼 수 있었다.
“백작 각하를 뵙습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됐다. 지금은 제수와 곧 태어날 조카의 안녕을 위해 온 것이니, 본작에게 신경 쓰지 말고 이 상황에 집중하라.”
너도나도 고개를 숙이는 사용인들에게 손을 내저은 후, 에리히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였다.
“축하한다. 이제 너도 아빠가 되겠어.”
그 말에 에리히의 눈동자가 거칠게 요동쳤다.
당황스럽고 경황이 없겠지. 나도 여섯 번이나 겪었음에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지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 아내가 내 자식을 낳는 중인데 어느 남편이 덤덤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에리히를 위해서라도 나만큼은 최대한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 호들갑을 떨며 괜찮을 거라고,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떠드는 것보다는 ‘당연한 일’처럼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조금만 있으면 당연히 아빠가 되는 것처럼.
“내가 자식은 여덟인데, 조카는 한 명도 없었잖아. 그게 조금 서운했는데 이제야 한을 풀겠어.”
“자식이 여덟이나 있는데 욕심도 많아.”
내 너스레에 에리히의 입가도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욕심은 내도 돼. 우리… 첫째 조카가 아장아장 걸으면서 삼촌을 찾을 거라 생각하니 욕심이 안 날 수가 없고.”
태명을 말하려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태명이 생각나지 않아 급하게 첫째 조카로 수습했다.
역시 나도 에리히 못지않게 긴장한 모양이다. 설마 다른 것도 아닌 태명을 잊을 줄이야.
‘물어보면 서로 어색하겠지?’
솔직히 지금의 에리히는 태명은커녕 자기 이름도 가물가물한 상태일 거다. 그런 상황에서 괜한 질문을 하는 건 에리히만 괴롭히는 꼴이겠지.
“그건 그렇고, 누구누구한테 연락했어?”
“형 빼면 부모님이랑 장인어른, 장모님밖에 없지 뭐.”
딱 예상한 범위라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 외에 부를 사람은 마땅히 없겠지만.
“제도에서 지내는 건 형뿐이라 그런지, 형이 제일 먼저 왔어. 누가 와주니 마음이 놓이기는 하네.”
쓴웃음을 지은 에리히는 여전히 떨리는 눈동자로 말을 이었다.
무슨 심정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출산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출산 중인 임산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나, 기다리는 사람끼리는 서로 위안을 줄 수 있다. 내가 제노비아에게는 도움이 못 돼도 에리히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럼 먼저 온 김에 선물이라도 줘야겠네.”
“응?”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기울인 에리히를 뒤로하고, 출산실로 다가가 문을 짚었다.
“위대하신 우리의 주, 찬란히 빛나는 태양으로 만물을 보듬는 에넨께 기도드립니다. 당신의 복자가 감히 청하노니, 부디 이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위해 싸우는 여인이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게 하소서.”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기도를 울렸다.
이럴 때 복자라는 이름을 써먹지 않으면 언제 써먹겠나. 나도 부인들이 출산에 돌입할 때마다 속으로 몇십 번, 몇백 번이나 기도했다.
“고고하게 군림하는 하늘, 아름답게 대지를 뒤엎는 초목께 청하노니. 부디 새로운 생명이 당신들의 가호 아래 자랄 수 있게 하소서.”
이윽고 영원한 푸른 하늘과 콘스탄티나에게도 기도를 올렸다.
신을 향한 기도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이 실존하는 세계에서, 신성력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신과 연이 있다면 신에게 안녕을 기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겠나.
태양의 복자이자 하늘의 명예 제사장이자 초목의 은인. 평소에는 덕지덕지 붙은 칭호에 실소가 나왔으나, 우리 조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써먹을 의향이 있다.
“이제 마음이 좀 놓이냐?”
“엄청.”
짧은 기도를 마치고 고개를 돌리자, 에리히가 픽 웃음을 흘리며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세 신의 가호가 있다면 허약하게 태어날 아이도 건장하게 태어날 거야.”
“감사드려요, 아주버님.”
에리히의 감사 인사에 우왕좌왕하던 세라도 고개를 숙였다.
흐뭇하다. 짧은 기도가 두 명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이보다 이득인 것도 없지.
“고마운 줄 알면 됐어. 조카가 건강하게 태어나면 헌금 잊지 말고.”
그 말과 함께 에리히의 등짝을 후려치자 에리히는 바닥에 픽 쓰러졌다.
새끼가 엄살은. 에리히가 나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또래 중에서는 적수를 찾기 어려운 최상위권인 무인인데.
“저, 아주버님?”
“응?”
“에리히… 기절한 것 같은데요?”
세라의 말에 스르륵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애석하게도 에리히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대자로 바닥에 뻗어있었다.
‘이게 뭔.’
당혹스러워서 입이 열리지 않았다. 설마 이런 가벼운 터치로도 기절할 만큼 긴장 상태였던 건가?
***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이 와 계셨다. 심지어 형수들과 조카들까지도.
‘뭐지.’
분명 아까까지는 없던 손님들이 시야에 들어와 의문이 들었다. 분명 형한테 고맙다고 인사한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둔탁한 충격 이후로는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뭐 어떤가. 긴장하다 보면 잠깐 기억이 날아갈 수도 있지.
– 으에에에에에에엥!
그리고 문 너머에서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내 기억 따위가 대수일까.
“남작 각하! 멋진 아드님이십니다!”
이윽고 출산실의 문이 열리며 고대하던 소식이 들려왔다.
이상하다. 분명 고대하던 소식인데 왜 입이 열리지 않을까.
“울어도 돼. 지금은 울어도 이상한 거 아니야.”
그래도 형의 토닥임에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