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75)
로판 속 공무원 775화(776/945)
가까운 사람의 출산을 기다리는 건 익숙한 일이다.
난 이미 여섯 부인들의 출산을 겪었고, 어머니의 늦둥이 출산도 겪은 적이 있다. 비록 어머니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출산을 끝내셨으나, 아무튼 나에게 있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특별하고 희귀한 이벤트가 아니다. 기쁜 이벤트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수긍하겠지만.
그러나 그런 나조차 조카의 탄생은 처음 겪는다. 내 아이가 아닌, 동생이 아닌, 사촌이 아닌, 대녀가 아닌 존재의 탄생. 단순한 지인이 아니라 내 동생의 자식.
‘조카라.’
아름답고도 낯선 단어를 되뇌며 에리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거의 사족 보행 수준으로 출산실에 들어가는 에리히. 나도 내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마다 저런 모습이었겠지.
귀족의 품위고 뭐고 출산실밖에 보이지 않는 집념. 내 아내와 아이만 무사하다면 나에게 불행이 닥쳐도 괜찮은 심정. 이 세상 모든 것보다 귀한 걸 얻은 기쁨.
그런 에리히의 마음을 알 것 같기에 침묵만 지켰다. 잘 알 수밖에 없다. 에리히가 처음 겪는 감정을 나는 여섯 번이나 겪었으니까.
“세라. 너도 들어가.”
“저, 저도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당연하지. 에리히 다음으로 가까운 가족이 너잖아.”
그 와중에 우물쭈물하던 세라의 등을 출산실 쪽으로 가볍게 밀었다.
세라도 홑몸이 아니기에 아주 살살, 아주 미약하게 밀었다. 에리히를 토닥였을 때의 강도로 터치하면 우리 둘째 조카가 잘못될 수도 있어.
‘잠깐만 기다려야지.’
그렇게 에리히와 세라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따라 들어가는 대신 복도에 머무는 것을 택했다.
지금 들어가 봤자 에리히는 제노비아랑 아이한테만 주목할 거다. 그런 상황에서 출산실을 북적거리게 만들 바에는 진정할 때까지 지켜보는 게 옳다.
다행히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동안의 경험 덕분에 몸만 움찔거리실 뿐, 필사적으로 자리를 지키셨으나─
“비아야! 내 딸! 우리 손자!”
유감스럽게도 첫 손주를 보게 된 어느 어른은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이해한다. 이미 여덟 명이나 되는 손주를 본 우리 부모님도 움찔거리는데, 첫 손주를 본 사람이 인내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손주가 태어나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의미겠지.
‘쟤가 차기 호르펠트 백작이구나.’
생각해 보니 제노비아의 첫 자식이면 저 아이가 차기 히덴 가문의 가주요, 차기 호르펠트 백작이다. 수십 년 후면 제국의회 귀족원의 일원으로 지낼 영광스러운 핏줄이다.
어쩌면 페디랑 같이 제국의회를 이끌어 나갈 중추가 될 수도 있겠지. 부디 사촌끼리 사이좋게 지내기를.
“삼촌의 기도가 통한 모양이에요.”
“그러게. 복자 체면은 지켜서 다행이야.”
슬쩍 옆으로 다가온 마르의 속삭임에 픽 웃음을 흘렸다.
맞는 말이다. 살아있는 복자가 에넨에게 직접 기도하고, 영원한 푸른 하늘과 콘스탄티나에게도 구걸했다. 이랬는데도 난산이 터졌다면 이 저택에 있는 사람들의 신앙심이 폭락했을 터.
혹시 그것 때문에 들어준 건가? 신을 향한 신앙심을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는 공개 기도만 한다.’
만약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이 생기면 제도 광장에서 황제 초상화를 전시한 다음에 육성으로 기도하자.
황권과 교권을 동시에 인질로 잡는 최강의 방법. 내가 생각해도 최고의 아이디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빠, 아빠.”
“응?”
훗날을 위해 광장 한구석을 구매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부인들과 함께 왔던 페디가 내 다리를 토닥였다.
“나두 들어가도 대?”
그러고는 눈을 반짝이며 출산실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다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페디는 출산실 문이 열릴 때마다 새로운 동생을 얻었기에, 페디의 상식으로는 ‘출산실 = 동생이 생기는 곳’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기도 들어가고 싶다며 떼를 쓰는 거고.
벌써부터 사촌 동생에게 관심을 보이는 훌륭한 형. 역시 우리 페디에게는 맏이의 자격이 있어.
‘괜찮겠지.’
그래도 에리히의 멘탈을 생각해 이따 들어가자 말하려 했으나, 굳이 말리기에는 이미 출산실에 점프 입장한 사람이 존재한다. 우리 페디가 추가돼도 딱히 안 될 건 없겠지.
“아빠랑 같이 들어가자. 대신 동생은 아직 삼촌이랑 얘기해야 되니까, 동생이랑 인사하는 건 이따가 하자?”
“웅!”
“나두! 나두!”
“아빠! 나두!”
그러나 한 명을 허락하면 다른 아이들도 허락해야 하는 것이 육아의 숙명. 페디가 입장권을 따내자 멀뚱멀뚱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도 열렬히 입장권 경매에 참여했다.
이러면 조금 곤란하다. 한 명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상은 너무 북적거리는데? 에리히의 감동과 오열이 강제로 깨질 수 있겠어.
“그럼 다 같이 들어가는 게 어떻겠니?”
“어머니?”
“어차피 조용하게 기다리는 건 이미 그른 것 같구나.”
그 말에 출산실을 바라보자, 명예를 위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누군가가 눈물범벅인 얼굴로 제노비아와 조카를 번갈아 안고 있었다.
납득했다. 이제 와서 조용함이니 감동이니 따지는 건 의미가 없겠어.
‘저 와중에 같이 울 줄이야.’
심지어 에리히는 장인의 참가에 더욱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우리가 들어가도 감정이 흐트러질 일은 없을 것 같다.
그것보다 나도 남들이 볼 때는 저랬다는 거겠지? 제3자 입장으로 보니까 좀 미묘하기는 하네.
우리 첫 조카의 이름은 로베르트로 결정됐다.성은 히덴 가문을 이어야 할 아이기에 크라시우스가 아닌 히덴을 사용하기로 했고.
‘로베르트 히덴.’
한참을 울다가 겨우 잠든 조카를 내려다봤다.
훗날 로베르트 히덴 오브 호르펠트라고 불릴 아이. 제국에서도 30명만 존재하는 제국백 중 하나가 될 아이.
“울음소리가 우렁차던데, 로베르트도 건강한 기사로 자라겠군.”
“흐흐. 히덴과 크라시우스의 핏줄을 이었으니 당연하지.”
로베르트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대화를 들으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긴. 원래 아이들은 우렁차게 울지만, 로베르트는 그중에서도 상당히 쩌렁쩌렁한 울음소리를 과시했다. 막 태어난 아이가 저택을 압도할 만한 위엄을 선보인 것이다.
마침 친가인 크라시우스와 외가인 히덴은 명성 높은 무가. 거기다가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두 차례의 전쟁에 종군한 경험이 있는 골수 무인.
‘무재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어.’
이 정도면 기사를 하라고 운명이 점지한 수준이다. 만약 로베르트가 무인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건 핏줄이 내린 재능을 아득히 능가한 새로운 재능이 있다는 것이니, 국익을 위해 지원해야 할 수준일 터.
물론 재능이 없어도 조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도와주겠지만. 에리히랑 제노비아도 딱히 자식을 무인으로 키우겠다는 고집은 없어 보이니까.
“다 울었냐?”
“더 나올 것 같은데 이제 안 나오네…”
아무튼 조카를 내려다보다가 옆에 있던 에리히의 등을 토닥였다.
에리히는 탈수가 진지하게 우려될 정도로 울어댔다. 나도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감정이 격해졌다지만, 솔직히 에리히만큼 울지는 않았을 거다.
…않았겠지? 나도 저 정도로 울었다면 많이 민망한 일이다. 앞으로는 좀 자제해야겠어.
“맞다. 한 5일 정도 지나면 미리 긴장해 둬.”
“긴장?”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던 에리히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쯤 되면 외숙모도 소식 듣고 달려올 거다.”
“아.”
그리고 외숙모라는 단어에 몸이 굳고 말았다.
성인인 우리도 물고 빠는 현명공이다. 덕분에 테레사가 태어났을 때,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정말 환장을 했지. 로베르트라고 다를 건 없다.
아니, 오히려 에리히의 첫 자식이기에 더욱 격렬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원래 첫 번째는 무엇보다 각별한 법이니.
“내가 찾아가겠다고 해도 먼저 오겠지?”
“괜히 말리면 기사단 대동하고 올 수도 있으니 그냥 받아들여.”
내 친절한 조언에 에리히는 침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이라면 현명공이 아니다. 현명공이라는 폭주 열차는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지.
그나마 막을 가능성이 있다면 외숙부를 동원하는 것뿐인데, 외숙부도 에리히한테 자식이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은근슬쩍 같이 오실 거다. 한 손에는 소공작의 손을 잡은 채로.
‘크라시우스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다.’
조금 침통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쩌겠나. 우리가 현명공과 혈연적 관계가 있는 이상, 세상에 끝날 때까지 감당해야 할 숙명이거늘.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과 조카들이 공작의 사랑을 받는 거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어른이 많을수록 이롭지 않겠나. 막말로 크라시우스 가문과 히덴 가문은 잘못될 수 있지만, 살론 공작가는 제국이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공작가니까.
“그런데 로베르트는 푸른 눈일까, 붉은 눈일까.”
“…그러게. 울다가 잠들어서 나도 아직 못 봤네.”
슬쩍 주제를 돌리자 복잡한 표정을 짓던 에리히도 픽 웃음을 흘렸다. 경사스러운 날에 현명공의 습격을 주제로 오래 논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게다가 로베르트의 눈동자 색깔은 중요한 안건이다. 머리카락은 크라시우스를 닮아 흑색이지만, 과연 눈동자는 어느 가문을 닮았을까.
눈동자도 크라시우스의 흑색? 아니면 에리히가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푸른색? 그도 아니라면 제노비아의 붉은색?
어느 쪽이든 흑발하고는 잘 어울릴 것 같아 기대된다.
***
졔도! 당쟝 재도로 가야대!
“갈래! 바루갈래! 죠카가 이 외숙모 기다릴끄야!”
“지금은 참아. 막 출산했는데 몸을 추스를 시간은 줘야지.”
“실어! 이미다룬 가죡뜨르으은! 젼부 밧쓸꺼 아냐! 나 하냐가두 갠챠나!”
쟈기이 만류애두 강려키 제도로가눈걸 쥬장햇다.
얘전애눈 쟈기의말이 맏는거 가탓지만, 생가케보니 이미 나말구 다룬가죡들은 산모랑 애기를 봣잔아! 왜 냐만 나중에봐야대!
“릴리도 보구싶대!”
“저, 저느은…”
“보구십찌!?”
“…네.”
이것빠! 릴리두 엄마편들자나!
내편 안드러쥬눈 쟈기! 나빳서!
“이거 참.”
그치만 골란하다눈둣 웃눈쟈기! 그런쟈기도 멋쪄서 죠아!
“우리 조카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히덴 가문의 첫 손주기도 해. 가서 너무 소란 피우지는 말고. 알았지?”
“걱쪙마! 나만미더!”
허락해쮸눈 쟈기 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