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76)
로판 속 공무원 776화(777/945)
늦은 점심부터 시작된 진통은 저녁을 조금 지나고 나서야 마무리되었다. 로베르트의 건강한 탄생이라는 아름다운 결과로.
그 시간 동안 죽을 맛이었던 제노비아에게 할 말은 아니나, 객관적으로 보면 나름 무난하고 신속하게 끝난 출산이었다. 진통이 시작되고 2시간, 3시간 만에 아이를 보는 사람들이 특이한 거지. 제노비아는 평균 중에서도 충분히 상위권이야.
그래서 이왕 가족들이 모인 김에 저택에서 늦은 저녁 식사라도 하기로 했다. 나와 에리히는 제도에서 지내니 언제든 만날 수 있으나, 부모님과 히덴 가문 사람들은 아니니까.
덕분에 무수히 많은 귀족들을 대접해야 할 주방은 뒤늦은 비상이 걸렸고,
“죠오오오오-카아아아아아아!”
“아.”
“아.”
나와 에리히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말도 안 돼.’
예상치 못한 난입이라 순간 머리가 굳었다.
이럴 리, 이럴 리가 없다. 그동안의 경험상 현명공이 들이닥치는 건 5일 정도가 지난 후여야 된다. 내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도, 테레사가 태어났을 때도 대략 그 정도의 유예 기간이 있었다.
그런데 5일은커녕 당일에 나타났다. 공작이라는 신분, 제도와 체네스 공작령의 거리를 생각하면 사실상 소식을 접하자마자 움직인 수준이잖아.
‘어떻게 안 거지?’
나도 모르게 떨리는 눈으로 현명공을 바라봤다.
현명공이 우리와 혈연으로 얽힌 만큼 로베르트가 태어난 걸 영원히 숨길 수도, 숨길 생각도 없었으나, 이렇게 빨리 알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저택에 cctv나 스파이라도 심어둔 건가?
“죠카손쟈 태어낫따구해서 왓써!”
내 혼란과 별개로 현명공은 해맑은 표정으로 양손을 흔들었다.
…그래, cctv고 스파이고 무슨 상관일까. 어차피 올 사람이 예정보다 빨리 온 것에 불과하고, 조카 손자라는 먼 가족의 탄생을 축하해 주려고 온 고마운 손님이다. 그런 손님의 방문을 꺼려 할 필요는 없다.
비록 우리의 멘탈은 위험해지겠지만, 그래도 가족의 축하는 반갑게 맞이해야 한다.
“야. 외숙모한테 인사 안 하고 뭐해.”
“어?”
“네가 이 저택 주인이잖아. 주인이 먼저 응대해야지.”
물론 나 말고 에리히가. 아무리 에리히보다 연장자인 사람들이 많아도 손님을 응대해야 하는 사람은 저택의 주인이다.
게다가 주인의 경사를 위해 온 손님이지 않나. 당연히 주인이 두 배로 기뻐하며 맞이하는 게 옳다.
“아니, 그, 저택 주인은 형이잖아.”
“내일부터 짐 뺀다고?”
그 말에 에리히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저택은 크라시우스 가문의 저택이기에 명목상 주인은 가주인 내가 맞지만, 실질적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실거주자인 에리히다. 반박할 거면 다른 저택 구해서 이사라도 가든가.
“외숙모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
“죠카아아! 압빠댄거 츄카해앳!”
에리히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현명공은 에리히를 끌어안았다.
이어지는 현명공의 진심 볼 빨기. 뒤에서 지켜봐도 볼이 쭉쭉 빨리는 것이 보여 절로 탄식이 나왔다.
‘쟤도 이제 스물둘인데.’
실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에리히도 이제 두 명의 부인이 있고, 한 명의 자식을 보았으며,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으로 지내는 사회인이다. 내 눈에는 아카데미 시절의 기억 때문에 여전히 한심하고 안타까운 동생으로 보이나, 저런 수모를 당할 만큼 꼬꼬마는 아니다.
그래도 어쩌겠나. 상대가 외숙모 겸 공작이라면 스물둘 먹고도 꼬꼬마 행세를 해야지.
“으으으응?”
그러다 현명공의 시선이 어머니 품에 안겨 있던 테레사에게 향했다.
“우뤼! 기여운! 막내죠카도 잇썼네!”
“으에?”
방금 전까지 물고 빤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현명공은 에리히를 내팽개치고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아무런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 행동이라 감탄스러웠다. 내가 티티의 털을 쓰레기통에 버릴 때도 저거보다는 망설이다가 버릴 텐데.
“아가씨! 우뤼죠카 안아두대!?”
‘안 돼.’
현명공의 말에 비명이 터져 나올 뻔했다.
안 돼, 어머니, 제발. 지금 상황에서 테레사를 현명공에게 맡기면 그만한 참사도 없어요. 에리히가 당한 것보다 더 심하게 빨릴 거라고.
“물론이지요. 자, 테레사. 외숙모님한테 안겨 보렴.”
“우웅!”
허나 내 간절한 바람은 어머니께 닿지 않았다. 테레사도 다가올 재앙을 짐작하지 못한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여운 망내! 외숙모랑 뽑뽀쬬오오옥!”
“으에에에에에엥!”
그리고 그 대가는 참혹했다.현명공은 마치 탐욕스럽고 사악한 아귀처럼 테레사의 탐스럽고 새하얀 볼을 집어삼켰다.
아귀에게 물려버린 가련한 테레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 못했다. 나와 에리히도 버틸 수 없던 걸 어리고 어린 테레사가 어떻게 이겨내겠어. 활발하고 위풍당당한 테레사조차 현명공 앞에서는 가련한 아기에 불과하니까.
“우부부부붑!”
“흐에에엥! 간지러어어어!”
그리고 소중한 여동생의 울부짖음에도 이 무력한 오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못난 오빠라 미안해. 하지만 그게 크라시우스 가문의 숙명이니까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폭풍처럼 등장한 현명공은 에리히와 테레사를 연달아 격파하더니, 곤히 자고 있던 로베르트 곁으로 가 입을 틀어막았다.
“어뜨케… 넘무기여어…”
자고 있는 아이를 위한 마지막 이성인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혹시 로베르트가 자든 말든 안아보겠다고 난리 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로베르트가 막 태어난 아이이자 다른 제국백 가문의 외손주라는 걸 고려한 모양이다.
다행이지만 조금 서글펐다. 그 이성의 1%라도 우리 남매한테 써주면 안 됐을까.
“착하지, 착해. 뚜욱.”
“흐이이잉…”
그랬다면 아직 미성년인 소공작이 테레사를 달랠 일도 없었을 텐데.
소공작이 올해로 14살이었던가? 체네스 공작령에서 봤을 때가 10살이었으니 대충 그 정도 되었을 거다. 아직 꼬꼬마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나이인 거다.
그런 아이가 자기 엄마의 만행을 수습 중이라니. 기특하고도 딱한 광경이다.
“흐힣.”
그 와중에 테레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으나, 어느 주정뱅이와 비교하면 얌전한 모습이니 넘어갔다.
“미안하구나. 원래는 1주 정도 지나고 올 생각이었는데, 네 외숙모가 워낙 완강해서 말이다.”
그렇게 현명공과 소공작을 번갈아보던 중, 히덴 가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던 외숙부님이 다가왔다.
“괜찮습니다. 가족의 방문은 언제든 반길 수 있는 일이지요.”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그래도 다음부터는 최대한 말려보마.”
“하하,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에 외숙부도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래, 역시 외숙부는 내 예상대로 움직일 예정이었어. 그 예상을 현명공이 박살 낸 거지. 늘 그렇듯 현명공이 문제였다.
“그보다 외숙모님은 오늘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 아셨는지…”
“아.”
외숙부의 짧은 탄성에 현명공으로 향하던 고개를 다시 외숙부에게 돌렸다.
“사실 니아가 나한테 연락을 줘서 말이다. 그걸 무심코 네 외숙모한테 말해버려서…”
“그렇, 군요.”
외숙부가 원인이라는 말이었으나 원망하지는 않았다.
고작 이런 일로 원망하기에는 대현명공 결전 병기인 외숙부의 역할이 너무도 크니까.
“둘째 때는 더 조심하마.”
하지만 이번에는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답하지 않았다.
외숙부의 작은 실수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참사는 없었다는 뜻이니.
***
하디네르 남작과 호르펠트 백작의 아들이 태어났다.
두 제국백 가문의 피를 이은 차기 호르펠트 백작의 탄생. 크라시우스 가문과 히덴 가문의 유대를 상징하는 아이.
‘조만간 선물이라도 보내야겠군.’
황제로서 제국백 가문의 경사에는 반드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가문의 경사이자, 장관 가문의 경사라면 더더욱.
‘장관한테는 첫 조카인가?’
조카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미 자식이 여덟이나 있는 장관에게 조카 하나가 대수일까 싶으나, 자식과 조카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황후가 했던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자식은 내가 먼저 봤는데 말이야.’
문득 분한 마음이 들었다. 나와 장관 중에 먼저 자식을 본 건 나지만, 조카를 먼저 본 것은 장관이 되었다. 장관을 상대로 2승을 할 수 있었는데 1승 1패가 되고 말았어.
그래도 나 또한 몇 개월 후면 조카를 볼 수 있기에 아쉬울지언정 원통하지는 않다.
나의 조카, 아인테르의 첫아이, 차차기 바란디가 후작이 될 아이.
‘기대되는군.’
그래,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번에 태어난 장관의 조카에게 화려한 선물을 보내자. 장관의 성격상 받으면 받은 대로 돌려줄 테니까.
‘기사 수준의 봉토를 줄까?’
잠깐 그런 욕망이 들었지만 금방 털어냈다. 내가 땅을 하사하면 장관이 입에 거품을 물며 발작할 수도 있다.
차라리 질과 양을 확실하게 챙기되, 종류는 무난하게 보석이나 비단이 좋을 거다. 잘못하면 선물을 주고도 욕을 먹는 경이로운 사태가 터질 수 있으니.
“참.”
탄생석으로 만든 조각상도 괜찮겠다 생각하던 중, 잠시 머리 한구석에 박아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름이 끝나기 직전, 외무성에서 비밀리에 올렸던 정보.
신랑과 신부의 요청으로 작고 조용하게 진행할 예정이라던 결혼식. 그러나 왕족의 결혼식을 아무런 하객도 맞이하지 않은 채 진행할 수 없으니, 제국에서도 당연히 최소한의 사절단을 보내기로 했다.
이왕이면 이 일을 계기로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려 했으나, 당사자들이 작은 결혼을 원하니 어쩌겠나. 결혼식은 주인공들의 의향을 존중해야지.
그리고 라테르 왕자의 결혼식이면 하디네르 남작도 움직여야 한다.
‘더 넉넉하게 챙겨줘야겠어.’
첫아이를 본 것에 대한 축하. 거기에다 신혼 휴가 중 타국까지 가게 될 것에 대한 위로.
당연하지만 위로 정도로 남작의 노고를 다독일 생각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선입금에 불과한 보상이다.
다만 조금, 조금 문제가 있다면─
[ 여명 교단 차기 성자 타니안 에네스, 12월 중순에 결혼 예정. ]하디네르 남작이 유벤 연합왕국에 다녀오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타국에 갈 일이 있다는 것이다.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나 어쩌겠나. 하디네르 남작이 라테르 왕자, 타니안과 깊은 친분이 있는 건 사실인데.
‘일개 남작의 인맥이 대륙을 뒤덮는군.’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세상 어느 남작이 황족과 왕족, 차기 성자와 친우로 지낼 수 있을까. 남작도 본인의 형처럼 비범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