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77)
로판 속 공무원 777화(778/945)
황태녀의 호기심 버튼이 눌렸다.
“사쵼?”
“웅. 내 사쵼동생이래!”
오늘도 평소처럼 저택에 놀러 온 황태녀. 최근까지 황궁에서 지냈기 때문인지, 황태녀 옆에 붙어 귀를 쫑긋거리는 마네와 미네.
그런 두 토끼를 쓰다듬던 황태녀는 페디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쵼도 동생이야?”
“웅!”
“그냥동생하구 다른건 모야?”
그 말에 페디도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절로 웃음이 나오는 광경이라 대신 답해주기보다는 페디의 고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사실 그냥 동생과 사촌 동생의 차이는 몇번이나 설명해 줬지만, 아직 어린 페디에게 있어 그 차이를 구분하는 건 어려운 모양이다.
‘동생이면 다 같은 동생이지.’
솔직히 사촌인지 육촌인지는 어린애들이 알 게 뭐야. 어차피 자기보다 어리면 다 동생인데.
“아! 같은 집애서 안살면 사쵼이야!”
“그럼 나랑 뻬디도 사쵼이야?”
“그렁가?”
“사촌은 아빠의 자식이 아닌 삼촌의 자식을 말합니다. 황태녀 전하께는 이드라펜 후작의 자식이 사촌이 되겠지요.”
졸지에 페르디난트 크라시우스에서 페르디난트 리브노만이 될 기세라 슬쩍 정정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고민하게 두는 것은 중요하나,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개입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잘못된 상식을 주입시킬 수는 없으니.
“삼쵼 자식?”
그리고 내 정정에 황태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마자! 삼쵼도 나한태 동생보여준다고해써!”
“축하드립니다, 전하. 전하께서도 곧 사촌 동생을 보게 될 겁니다.”
“와! 죠아!”
사촌 ‘동생’이라는 단어에 황태녀는 히히 웃기 시작했다.
그래, 부디 몇 달 후에 태어날 사촌도 동생처럼 아끼고 보살피기를. 오늘날 리브노만의 핏줄은 멸종 위기종이나 다름없는지라, 조만간 태어날 아인테르의 자식은 새로운 방계의 기둥이 될 운명이다. 황실과 제국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황태녀와 우호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
물론 황태녀의 성정을 생각하면 잘 지낼 거라 믿는다. 사촌이 먼저 황태녀를 배신하지 않는 이상, 황태녀가 사촌을 저버리지는 않을 터.
‘아들 셋이 전부 멀쩡했다면 좋았을 텐데.’
활짝 웃는 황태녀와 반대로 나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상황의 자식은 황제와 아인테르, 죽은 도르고스까지 셋이었다. 이 셋이 열심히 자식을 낳아도 모자란 판국에 도르고스는 죽어버렸지. 리브노만의 번영을 위하여 황제와 아인테르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또 황실의 직계가 끊기면 나라 꼴이 볼만할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황후가 세 번째 자식을 임신 중이고, 샤티의 출산도 몇 달 후면 이루어진다는 거겠지. 적어도 2, 3세대 안에 황실이 잘못될 일은 없다.
“때부!”
“예, 전하.”
“그럼 나 뻬디 사쵼보러 갈래!”
“예?”
“뻬디 동생이면! 내 동생! 나도 보고시퍼!”
에리히가 듣는다면 감동을 할지 기겁을 할지 애매한 부탁. 너무도 순수하고 해맑은 요청인지라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다.
“전하. 아쉽게도 페디의 사촌은 막 세상에 나와서 곤히 자고 있습니다. 아직 전하를 맞이할 때가 아니지요.”
그러나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다는 거지, 순순히 수락할 사안도 아니다. 막 출산을 마친 산모와 아기에게 외부인을 들이미는 건 곤란한 일이지 않나.아무리 황태녀의 부탁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히잉… 진쨔 안대?”
“전하께서 누나의 마음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페디의 사촌도 깨어있을 때 누나를 보고 싶어 할 겁니다.”
슬쩍 누나라고 치켜세워주자 시무룩해졌던 황태녀의 표정이 급속도로 밝아졌다.
“죠아! 난 누나니까!”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이, 누나라는 단어가 황태녀의 자부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마치 수많은 파벌원을 거느려 기세등등한 파벌장을 보는 기분이다. 파벌원 대신 동생들, 파벌장 대신 첫째 누나라는 게 귀여운 차이점이지만.
“역시 전하께서는 듬직한 누나십니다. 마네와 미네마저 그런 전하의 모습에 감탄한 것 같군요.”
“으에? 진짜?”
– 뀨우웅!
– 뀨잉!
그러자 마네와 미네는 눈치껏 황태녀의 몸에 얼굴을 비볐다.
만족스럽다. 상황이 보낸 녀석들 아니랄까 봐 사람 수준으로 눈치가 좋아. 티티와 같은 동물농장 후배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사람 수준은 좀 과장인가?’
중급 정령들에게 깡패짓을 했던 걸 생각하면 100% 사람 수준이라고 보기는 좀 애매하다. 그래도 어지간한 짐승들 중에서는 확실한 상위권이지.
‘그러고 보니 정령들이 안 보이네.’
정확히는 유사 반딧불이인 하급 정령이 아니라, 동물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중급 정령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낯선 외부인인 황태녀. 한때 자신들에게 패악질을 부리던 마네, 미네가 결합되어 다가올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황태녀도 정령왕의 축복을 받았으니 금방 다가오겠지.’
다행스럽게도 황태녀는 바람의 정령왕의 축복을 받은 인간. 정령들 입장에서는 익숙할 수밖에 없으니, 다른 인간들과 비교하면 빠르게 익숙해질 거다.
게다가 마네와 미네도 저택에 처음 입주한 날에만 난동을 부렸지, 그 후로는 조용하게 적응 중이고. 아직은 적응 단계라고 보자.
“맞따, 때부.”
“예, 전하. 말씀하시지요.”
“나 아까 정원애서 신기한거 밧서!”
그렇게 말한 황태녀가 어깨에 두른 케이프를 들추자, 그 안에 숨어있던 녹색 개와 녹색 뱀, 녹색 참새가 보였다.
“얘네! 나 따라다녀! 신기해!”
‘아.’
색깔을 보니 바람의 정령인지라 픽 웃음이 나왔다.
이미 몇몇 정령들은 적응 단계가 끝났구나.
***
오늘두 때부 집애서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갓따.
때부 집보다 우리집이 더 널찌만, 놀거랑 볼거는 때부 집에 더 많앗다. 우리 집애는 아빠랑 엄마랑 할부지랑 까롤루쑤랑 동물들이 잇지만! 때부 집애는 반짝이들이랑 띠띠랑 말하는 동물들이랑 말하는 인형도 잇써! 동생들도 만아! 최근애는 토끼들도 생겻서!
그래서 놀때는 때부 집이 더 죠아! 우리 집이랑 때부 집이 합쳐졋으면 좋겟는대!
‘아빠한태 말해야지!’
집에 가면 아빠한태 말해볼래! 아빤 황재니까 이것저것 많이 할수잇댓서!
때부가 우리랑 가치 살면, 때모들이랑 동생드리 같이 살면, 띠띠랑 말하는 동물들이 가치 지내면 조을 것 같아! 아! 인형이랑 반짝이들두…?
“우웅?”
“전하?”
시녀장이랑 집으루 가다가 신기한개 보엿다.
“시녀장, 시녀장.”
“예, 말씀하시지요.”
“저거 모야?”
신기한거를 가리키자 시녀장이 살짝 웃엇다.
“서커스로군요. 간혹 길거리에서 즉흥적으로 공연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마침 공연을 시작하려는 모양입니다.”
“써커-쓰?”
“예, 전하.”
쳐음듣는거야. 신기한개 맞는거 같아!
“전하. 잠시 마차를 세우라고 할까요?”
“우우웅… 아냐! 일딴 집애 가야대! 엄마가 기다려!”
“예, 알겠습니다.”
신기하지만 엄마가 더중요해! 멈츄면 엄마가 걱정할꺼야!
집에 도챡하니 엄마가 안아졋다.
역시 바로 오길 잘햇서! 엄마 품이 따뜻하구 죠아!
“오늘도 잘 놀다 왔니?”
“웅! 뻬디랑 동생들이랑 놀구, 동물들이랑도 놀앗써! 아, 쵸록색 빤짝이들도 같이 놀아졋서!”
“그러니? 재밌었겠구나.”
“다음애는 뻬디 사쵼도 만나개 해준대!”
“후후, 그것도 재미있겠어.”
얘쁘게 웃어준 엄마는 나를 더 따뜻하개 안아졋다.
엄마 품… 죠아… 써커쓰가 아무리 신기해두 엄마보다는 별로일꺼야…
‘맛따.’
써커쓰. 엄마한태 물어보려 햇는대 깜빡할뻔햇써!
“엄마, 엄마.”
“왜 그러니, 우리 딸?”
“써커쓰가 모야?”
“으응?”
“오눈길애 시녀장이랑 밧써! 신기햇찌만 엄마볼려구 그냥 왓써!”
내 말애 엄마 눈이 쟘깐 커졋다.
엄마 예뻐! 평소애도 눈 큰대 더 크니까 더 얘뻐!
“엄마를 생각해서 그냥 온 거니?”
“웅! 엄마한태 빨리 돌아온다구 약속햇서! 엄마랑 약속이 쩨일 중요해!”
“5살이 이렇게 엄마를 생각할 줄 알다니. 기특하기도 하지.”
이번애는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어줫따.
“그래. 서커스가 궁금한 거니? 그게 뭐냐면─”
***
황제가 다급한 연락을 보내온 건 늦은 밤이었다.
통신구를 방에 둔 채로 씻느라 바로 연락을 못 받았는데, 그사이에 다섯 번이나 연락을 걸었더라. 덕분에 씻고 돌아오자마자 식은땀으로 다시 샤워를 할 뻔했다.
– 장관!
그리고 여섯 번째 연락을 받자 반쯤 눈이 뒤집힌 황제의 얼굴이 보였다.
망할, 무슨 일이지? 황제가 저렇게 기겁할 정도면 무슨 참사가 터진 거야.
– 화, 황태녀가! 황태녀가 제도 구경을 하고 싶다고 떼를 쓰고 있어!
“예?”
이어지는 말에 불안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이 새끼가 고작 그런 얘기를 하려고 한밤중에 연락을 해?
“그게 왜─”
– 황태녀가 또래에 비해 총명하고 선량한 면이 있지만, 아직 다섯 살이야! 그런 아이에게 제도 구경이라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근위 군단과 제도 경비대가 들으면 슬퍼할 말씀이십니다.”
그 둘이 제도의 안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 중인데.
허나 황제에게 구박을 주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자식이 내 집, 지인의 집을 넘어서 도시 전체를 놀이터로 삼는다? 아비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하온데 폐하. 전하께옵서 어쩌다 제도에 관심을 가지신 겁니까? 소신의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러우나, 지금까지 소신이 전하를 위해 완벽한 놀 거리를 제공하지 않았습니까?”
– 그게…
내 질문에 황제는 잠시 움찔하더니,
– 황태녀가 황궁으로 돌아오다가 서커스를 발견했다네.
조금 민망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서커스를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단어라 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냥 흔한 오락거리잖아. 그게 왜.
– 황태녀는 서커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황후에게 서커스가 뭔지 물었다더군. 문제는 황후가 서커스뿐만 아니라 민간의 문화를 세세하게 알려준 모양이야.
이어지는 말에 납득했다.
안 그래도 호기심 넘치는 황태녀에게 민간 문화라는 기름을 부었으니, 황태녀가 제도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결과.
“그럼 뭐, 어쩔 수 없지요. 전하께 제도 구경을 시켜드리는 수밖에요.”
그렇기에 덤덤히 입을 열었다.
황태녀가 무언가에 꽂힌다? 합당한 거절 명분이 없으면 절대 말릴 수 없다. 그리고 황태녀의 제도 여행은 ‘어리니 위험하다.’ 같은 말로 말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어쩌겠나. 호위를 철저히 한 상태로 황태녀의 제도 순례를 실시해야지.
– 장관.
“예, 폐하.”
– 황태녀의 안전을 신경 쓰며 호위를 붙이면, 황태녀가 민간 문화를 즐길 수 있겠나?
“아.”
– 민간 문화를 즐기지 못한 황태녀가 그 반쪽짜리 제도 구경에 만족하겠나?
그러나 연이은 황제의 반격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러네. 호위를 붙이면 다들 황태녀의 눈치를 볼 테고, 그렇게 되면 제도의 문화와 놀 거리를 온전히 즐길 수 없다.
‘어쩌지 이거.’
그렇다고 호위를 포기할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