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78)
로판 속 공무원 778화(779/945)
황태녀의 제도 관광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황제에게 있어 황태녀는 황위 계승 서열 1위인 소중한 후계자이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딸이다. 그런 딸을 위험 속에 방치하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황태녀의 권위에 걸맞은 호위를 구성한다? 제도 전체가 황태녀의 행차에 고개를 숙일 것이며, 황태녀가 원하던 민간 문화는 구경도 못 할 거다. 일이 그렇게 흐르면 황태녀가 토라질 것은 자명한 사실.
당연하지만 호위를 줄이는 건 논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호위에 소홀했다가 황태녀가 다치면 그만한 참사도 없어.
– 장관.
“예, 폐하.”
– 황태녀가 이동할 경로를 전부 비운 다음에, 황실의 시종과 기사들로 민간의 모습을 연기하는 건 어떻겠나?
“송구하오나 에이만카 14세를 이은 희대의 암군으로 남으실 듯합니다.”
더욱 유감스러운 건 황제의 멘탈은 이미 대참사라 불러도 부족함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뭐? 황태녀가 이동할 경로를 비워? 시종과 기사들로 민간의 모습을 연기해? 작은 마을도 아니고 제도에서 그딴 짓을 벌이는 건 어지간한 암군이나 폭군도 고개를 내저을 일이다. 이 세상 어떤 군주가 수도의 민심을 제 손으로 뒤엎겠나. 정권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 수도와 중앙군인데.
– 그, 건 안 될 일이지.
그래도 어디까지나 딸 걱정에 잠시 흥분한 듯, 내 질타에 황제는 빠르게 제정신을 차렸─
– 제도 인근 평원에 도시를 하나 만들어야겠어. 텔레포트로 이동하면 황태녀도 제도라 생각할 거야.
아니네. 더 미쳐버렸잖아.
황태녀의 외출을 위해 계획도시를 만들겠다는 정신 나간 발상. 실소가 절로 나오는 일이라 쌍욕이 목 끝까지 치솟았다.
‘지금은 쌍욕 해도 무죄 아닐까?’
이윽고 이 욕을 내뱉을지 삼킬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솔직히 대법관들도 이 사유를 들으면 다 고개를 끄덕여줄 거다. 황제를 향한 불충이자 무례가 아닌, 황제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 충언이라 여길 거야.
“폐하. 소신도 아비이니 폐하의 심정은 잘 알겠사오나, 너무도 과한 걱정이 아닌가 싶사옵니다.”
고심 끝에 결국 후자를 택했다. 대법관들의 무죄 선고는 가능성이고, 내가 쌍욕을 뱉어서 짊어질 괘씸죄는 확정이기에.
그리고 지금은 황제를 자극하는 것보다 달래는 것이 우선이기에.
‘…마법을 쓰면 되지 않나?’
게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에게는 마법이라는 만능열쇠가 있다. 황태녀에게 마법을 걸어서 외견을 바꾸고, 만약을 대비한 위치 추적 마법과 방어 마법을 걸어두며, 기사와 마법사들이 은밀하게 따라붙으면 호위에는 문제가 없다.
나도 황제의 기세에 밀려서 이 당연한 방법을 잠시 잊고 말았다. 하여간 저놈이 온갖 호들갑을 떨어서.
“폐하의 충용무쌍한 장병들과 충성스러운 신민들을 믿으소서. 그렇다면 황태녀 전하께서는 아무런 문제 없이, 활짝 웃으며 황궁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내 말에 황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내 충언이 가슴에 닿은 모양이다. 그래, 이렇게 말했는데도 요란을 떨면 네가 사람이냐.
– 장관.
실제로 다시 입을 연 황제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이게 짐만의 문제 같나?
“…예?”
– 황태녀가 제도 구경을 나서면, 정말 황태녀만 갈 것 같나? 장관의 아이들에게 자랑 한 번 안 할 거라고, 같이 가자는 제안을 안 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
순간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황제의 말이 맞다. 황태녀가 우당탕탕 제도 대모험에 나선다면 황태녀만의 모험으로 끝날 리 없다. 왜 그 당연한 걸 잊고 있었을까.
“내일 날이 밝자마자 태양전으로 가겠사옵니다. 근위 1군단장과 제도 경비대장을 불러 논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 장관의 말이 옳군. 그리하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이 종료됐다.
‘트릭시하고 같이 가자.’
이번 일은 황태녀와 우리 아이들의 안위가 걸린 일. 마법의 정점인 트릭시도 함께 머리를 맞대야 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거다.
***
이른 아침부터 황제 폐하의 호출이 떨어졌다.
중부 방면군 사령관 각하도 아니고,육군부장이나 참모부장도 아니고,전쟁성 장관 각하나 전승공 각하도 아닌 황제 폐하의 호출. 아무리 근위 1군단장이라지만 일개 군단장에 불과한 내가 폐하의 부름을 받았다.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폐하의 부름이니 보통 일은 아닐 터. 덕분에 몇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기회다.’
그래, 이건 기회다. 폐하께서 친히 찾으실 정도면 그만큼 중요한 사안일 테고, 그런 일을 무사히 해결한다면 폐하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과거 황혼 교단 토벌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 근위 1군단장으로 승진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이번 일도 내가 방면군 사령관이나 전쟁성의 주요 보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근위 1군단장 프랜시스 네빌입니다. 폐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그렇기에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은 후. 폐하의 집무실을 지키는 황실 기사단 부단장에게 용무를 말하였고,
“들어가시지요. 마종공 각하와 감찰성 장관 각하, 제도 경비대장께서도 와 계십니다.”
‘뭣.’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사안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기껏 가다듬었던 마음이 다시 요동쳤다. 만약 제도 경비대장만 있었다면 제도의 치안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근위 1군단과 제도 경비대의 존재 이유는 제도 방위와 제도 시민들의 안전이니까.
그런데 제도 경비대장뿐만 아니라 감찰성 장관이 있다고? 심지어 장관과 혼인한 후로는 마탑에도 자주 가지 않은 마종공 각하까지?
‘대체 무슨.’
감찰성 장관은 대륙 제일 검이요, 국내의 모든 걸 주시하는 감찰성의 수장이다. 마종공 각하는 제도를 포함한 수도권 방위의 핵심 전력이다.
그런 인물들조차 폐하의 부름을 받았다는 건 이 제국에, 제도에 크나큰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 아닌가.
어쩌면 5년 전에 있었던 황혼 교단 토벌. 혹은 그 이상의 사건이 터진 걸 수도 있다.
‘신뢰가 문제가 아니로군.’
폐하의 신뢰가 아닌 제국의 안위가 걸린 문제였다. 제도와 시민들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 욕심을 내려놓고 임하자. 지금은 군단장 프랜시스 네빌이 아닌, 제국의 군인으로 임해야 할 때다.
─라고, 홀로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제도 시민 대다수는 전하의 존안을 알지 못합니다. 황실의 상징인 보랏빛 눈동자만 가린다면 전하인 것을 알아채지 못하겠지요.”
“그도 그렇겠군.”
“또한 호위로는 보호자 역할을 맡을 어른 한 명이나 두 명이 붙는 것이 좋겠습니다.”
“고작?”
“나머지는 전하가 이동하실 경로 곳곳에 숨어있어야지요. 은신과 추격에 능한 자들을 중심으로 편성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폐하와 장관이 기묘한 주제로 대화하기 전까지는.
오직 둘이서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마탑의 경계 마법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제도 내부를 호위들이 담당하는 동안, 마탑은 외부에서의 유입을 경계하겠습니다.”
아니, 마종공 각하까지 셋인가.
도저히 입을 열 수 없는 상황이라 침묵만 지켰다.
그러다 맞은편에 앉은 제도 경비대장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저녁에 한잔하시겠습니까?’
‘그러지요.’
육성으로 나눈 대화는 아니지만, 분명 나와 경비대장 사이에는 그런 대화가 오고 갔다. 같은 처지인 만큼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했다.
“근위 군단장, 경비대장.”
“예, 폐하.”
“하명하소서, 폐하.”
“경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 제도에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되, 치안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혼란스럽다. 치안을 강화하면 필연적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거늘. 마치 뜨거운 아이스크림을 준비하라는 말씀이지 않나.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나 폐하와 장관, 마종공 각하의 대화를 들었기에 난색을 표할 수 없었다.
황태녀 전하와 장관의 자식들이 제도를 돌아다닐 예정이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정한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안 될 것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보다 높은 세계에 도달해야 한다.
폐하께서 뜨거운 아이스크림을 원하신다면 화산의 용암에서 얼음을 건져 올려야 한다. 그것이 군인의 본분, 귀족의 의무이니.
***
황태녀의 제도 대모험 계획은 관계자들의 집단 지성으로 윤곽이 잡혔다.
우선 황태녀가 있는 그대로의 제도를 느낄 수 있게, 근위 1군단과 제도 경비대는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치안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 무슨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엘레강스하면서도 아방가르드한 요구인가 싶으나─ 근위 군단장과 경비대장이 알아서 할 거라 믿는다.
‘포커로 요직을 차지한 건 아닐 테니까.’
또한 황태녀를 비롯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마법을 걸어 평범한 시민의 자식처럼 만들 예정이다. 이 조치만으로도 아이들을 향한 시선이 9할 이상 사라진다.
결정적으로 아이들의 보호자 및 근접 호위 인력은 나 하나. 트릭시는 마탑 꼭대기에서 제도 전체를 감시. 그 외 거리를 두며 호위할 인력은 집행차장이 지휘하기로 했다. 집행차장은 감찰부 시절부터 암살을 도맡았으니, 은밀한 행동에도 능숙하지.
‘이걸 뚫고 테러를 일으키는 놈이 있으면 카간이나 마찬가지인 놈이다.’
만약 그런 놈이 나오면 국운을 건 방위전에 나서야 한다.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야.
“때부! 때부!”
“예, 전하. 말씀하시지요.”
“나! 재도 구경하기로 햇서!”
물론 심장이 멈출 것 같던 아찔함은 황태녀의 해맑은 목소리 덕에 가라앉았다.
“축하드립니다, 전하. 제도는 볼 것도, 놀 것도, 먹을 것도 많은 곳이지요. 즐거운 구경이 될 겁니다.”
“그치!?”
내 말에 히히 웃던 황태녀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더니,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때부! 뻬디는 어딧서?”
“티티랑 후원에서 놀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오셨으니 곧 오겠지요.”
“뻬디! 가치 재도 구경하자고하면 죠아하갯찌?”
나와 황제의 예상대로 혼자가 아닌 함께 놀려는 황태녀.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들었다면 식겁했을 말이나, 모든 준비를 갖춰서 그런지 흐뭇해지는 말이다.
사소한 관광조차 동생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이 얼마나 기특한 마음인가.
“페디만요?”
“아니! 동생들 젼부!”
너무도 기특한 마음이다.
하지만 전부는 곤란하다. 황태녀 하나로도 긴장해야 하는데, 5살도 안 된 아이들이 여덟 명이나 추가된다? 아무리 나라도 혼자 버틸 수 없다.
‘잘 쳐줘야 세쌍둥이랑 프리드리히까지지.’
사실 페디만 가는 게 제일 편하기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