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83)
로판 속 공무원 784화(784/945)
라비르제 후작의 외손녀가 황태녀의 친구가 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사교계를 뒤덮었다. 소문에 따르면 라비르제 후작의 어깨가 이전보다 더더욱 드높아졌다고 한다.
아마 소문이 아닌 진실일 거다. 후작위는 제국 귀족들의 실질적 최고 상한선인데, 더 이상 올라갈 곳 없던 라비르제 후작에게 ‘황태녀와의 연결 고리’라는 희대의 복이 찾아온 것 아닌가. 라비르제 후작 입장에서는 콧대가 하늘에 닿고, 어깨가 태산처럼 솟아날 일이다.
나로서는 라비르제 후작의 어깨가 으쓱거리든 말든 큰 상관은 없다. 내가 라비르제 후작과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후작이 잘 나간다고 경계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마살로 후작가와 디고 후작가는 라이벌이지.’
하필 두 가문은 서부에 영지가 위치해 있으며, 후작가로 지낸 기간도 비슷한 숙명의 라이벌이다.
사실 디고 후작가가 마살로 후작가에 비하면 다소 밀린다는 것이 사교계의 평가였으나─ 디고 후작가는 몇 년 전에 있었던 북방 정벌에서 원수를 배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덕분에 제국 전체라면 모를까, 서부에 한해서는 마살로와 디고는 경합을 이루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디고 후작가의 인물이 황태녀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마살로 후작가 입장에서는 다소 언짢을 수밖에 없는 일.
– 별로 상관없네만?
라고 생각했었다.
– 마라멘토 그놈의 외손녀가 전하의 친구인 게 뭐 어떤가. 자네가 내 사위인데.
장인어른의 평온한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그, 렇습니까?”
– 당연하지. 게다가 내 외손주는 전하의 친구가 되지 못해도, 동생으로 지내고 있지 않나? 난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네.
빈말이 아닌 진심이 가득한 발언이기에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벌?’
기분이 오묘했다. 장인어른의 반응을 보면 라비르제 후작과 디고 후작가를 라이벌로 여기는 것 같지 않았다. 이미 장인어른 마음속에는 마살로 후작가가 압승을 거둔 상태다.
그리고 압승을 거둔 이유가 내 존재라니. 이 신뢰를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부담스럽다고 해야 할지.
– 아마 마라멘토 녀석은 죽었다 살아난 기분일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마살로 후작가의 경쟁자가 아닌 2인자로 밀려날 기세였는데, 황태녀 전하와의 연을 얻어서 겨우 라이벌이라는 인식을 굳히게 되었으니까.
‘라이벌 맞구나.’
허나 이어지는 발언 덕분에 장인어른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장인어른… 겉으로는 디고 후작가를 아래처럼 여기고 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신경 쓰고 있구나…
‘정말 아래로 여긴다면 저렇게 능통할 리 없지.’
라비르제 후작을 꼬박꼬박 본명으로 부르는 것. 라비르제 후작의 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은근히 라이벌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는 것.
확실하다. 장인어른은 라비르제 후작에게 진심이다.
– 참, 그러고 보니 사위.
“예, 장인어른.”
– 조만간 황태녀 전하께서 기사의 저택에 방문하실 거라 들었는데, 사실인가?
그 말에 흠칫 몸을 떨고 말았다.
뭔데. 그걸 어떻게 장인어른이 알고 있는 건데. 아직 우리 애들이랑 앙리에타의 유모, 황제, 루치아노 정도밖에 모르는 이야기라고.
– 마라멘토 놈이 자랑을 하더군. 자기 외손녀가 황태녀 전하를 모시고 기사의 여식을 보러 갈 예정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아.’
정보의 출처가 라비르제 후작이라는 말에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이 정도면 라이벌이 아니라 친구 아닌가?
“사실입니다. 그 기사가 저와도 연이 있는 자라, 기사의 여식은 저희 아이들의 친우로 지내고 있습니다.”
– 아, 그렇게 말하니 알겠군.
아무튼 솔직하게 답하자 장인어른은 픽 웃음을 흘리셨다.
휴가 중인 감찰성 장관이 일개 기사의 저택에 방문한 건 나름 유명한 사건이다. 장인어른이 루치아노에 대해서는 몰라도, 나와 어느 기사가 연이 있다는 건 알고 계실 터.
– 일개 기사가 감당하기는 과분한 인맥을 쌓겠어.
“이겨낸다면 일개 기사를 넘어서는 존재가 될 수 있겠지요.”
– 하하, 그도 그런가?
그 말을 끝으로 적당히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통신구는 빛을 잃었다.
‘힘내라.’
그리고 속으로 루치아노를 응원했다.
라비르제 후작과 장인어른이 황태녀의 차후 행보를 알게 되었다. 만약 은밀하게 진행해야 하는 행보라면 두 후작도 침묵하겠지만, 하필 루치아노는 나와 엮여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감찰성 장관과 연이 있는 기사의 저택으로 황태녀 전하가 방문하신다.’ 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질 거다. 솔직히 제3자 입장으로 보면 흥미롭기 그지없는 사건이니까.
‘힘내라…’
한동안 형무성의 슈퍼스타가 될 루치아노를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나왔다.
***
며칠 전부터 품속에 휴가 신청서를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출근을 할 때마다, 업무를 볼 때마다, 퇴근을 할 때마다 온갖 시선을 받았으니까. 눈빛에도 힘이 있다면 내 몸은 구멍이 가득했을 거다.
‘관심은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무심코 품 속의 휴가 신청서를 만지작거렸다. 감찰성 장관 각하께서 내 저택에 방문하신 이후로 평생 받을 시선은 다 받은 줄 알았으나, 유감스럽게도 내 착각이었다. 내 평생은 내 생각보다도 길었다.
덕분에 휴가 신청서를 성유물처럼 품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바로 제출하고 도망치기 위해.
‘반드시 휴가로 멈춰야 한다.’
그래도 억울하고 원통해서 절대 사직서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3번을 다시 태어나도 얻기 힘든 행운 덕분에,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행운 덕분에 장관 각하를 뵙게 되었다. 각하의 은혜 덕분에 과장이라는 직책까지 올랐다.
그러니 이 행운을 내 손으로 내던질 수는 없다. 내가 이 이상 올라가는 걸 포기할지언정, 결코 지금의 영광을 놓칠 수는 없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헬렌에게 보다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서.
“2과장.”
“아, 부장님.”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사이, 등 뒤에서 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침 여기서 다 보는군. 1과장과 식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된다면 자네도 같이 가겠나?”
“그, 것이…”
직속 상관의 제안에 무심코 1과장의 눈치를 살폈다.
차기 교정부장 자리를 노리는 1과장에게 있어 부장과의 일대일 식사는 몹시 중요한 자리일 터. 기껏 친해진 1과장과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상하는 건 곤란하다.
“그래, 2과장도 같이 가는 것이 좋겠어. 우리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모이겠나?”
허나 1과장은 도리어 기꺼운 표정으로 내 합류를 제안했다.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아 쓴웃음만 나왔다. 차기 부장을 노리는 1과장이기에 더더욱 내 합류를 원하는 것이다.
‘후배의 덕을 보려는 선배라니.’
심지어 부하의 뒷배를 노리는 상관이라니.
하지만 씁쓸함과 별개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마 내가 부장님이나 1과장이었어도 저랬을 테니까. 내가 승진에 욕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평온한 관료 생활을 위해 달라붙었을 테니까.
내 뒤에 감찰성 장관 각하가 계시는 것은 물론, 조만간 황태녀 전하께서 친히 저택에 방문하실 예정이다. 우리 헬렌과 장관 각하의 자제분이 친구가 되었기에. 각하의 자제분은 황태녀 전하와 누나 동생 하는 사이기에.
한 다리 건너 인맥 덕분에 이루어진 황태녀 전하의 방문. 그 사실을 알게 된 부장님과 1과장은 마치 맹수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를 잡아 죽이려는 맹수가 아니라 다행이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눈빛이 사람을 죽이려는 맹수가 아닌, 먹이를 달라 사정하는 맹수의 눈빛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좋게 생각하자.’
점점 품속의 휴가 신청서가 묵직하게 느껴졌으나, 애써 무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건 기회다. 불특정 다수에게 과도한 관심을 받는 건 독이지만, 내 상관과 선배에게 호의를 받는 건 약이─
‘음?’
휴가 신청서와 함께 잠들어있던 통신구가 빛을 뿜기 시작했다.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받게. 중요한 연락일 수도 있지 않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부장님.”
부장님의 말에 황급히 통신구를 꺼냈다.
저 말대로 중요한 연락일 수 있다. 최근 장관 각하께서 친히 연락을 주신 것처럼 이번에도 각하의 연락일 수 있지 않나.
“형무성 교정부 2과장, 루치아노 니덴입니다.”
– 타일글레헨 백작이다.
실제로 연락을 주신 분은 장관 각하가 맞았다.
각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부장님과 1과장은 숨조차 멈출 기세로 침묵을 지켰다. 그러면서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것이 관료로서 본능적으로 각하를 피하는 것 같았다.
– 갑자기 연락을 줘서 미안하군. 청사에 있을 시간이지만, 급히 말할 게 있어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각하. 부디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 곧 황태녀 전하께서 경의 저택으로 가실 거야.
각하의 말씀에 몸이 굳고 말았다.
저런 말이 나올 줄 알았으면 편히 말씀해 달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 물론 전에 말했던 것처럼 본작이 함께 갈 것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아, 예. 감사합니다…”
걱정이 절로 드는 말이었으나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 그럼 도착하면 다시 연락하도록 하지.
빛을 잃은 통신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내가 없는 사이 황태녀 전하께서 저택에 방문하신다. 부인과 헬렌만 있는 상황에서 전하께서 강림하신다.
“2과장!”
“예, 예?”
“조퇴 처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서 저택으로 가게! 아무리 장관 각하가 계셔도, 전하께서 오셨는데 주인이 자리를 비우면 되겠나!”
부장님의 외침에 새하얘졌던 머리가 점점 색을 되찾았다.
맞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부인과 헬렌만 있다면 주인인 내가 달려가는 게 맞다.
“감사합니다! 바로 가보겠습니다!”
부장님과 1과장에게 고개를 숙인 후, 빠르게 저택으로 달려갔다.
각하와 전하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해도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
오늘은 기분이 좋아요!
주인님하고 작은 주인님! 작은 주인님과 친한 작은 사람하고 같이 제니를 보러 가기로 했어요!
아! 그리고 늘 보던 작은 사람 말고, 새로운 작은 사람도 나타났어요!
“얘가 띠띠야?”
“웅! 귀엽찌?”
“엄쳥!”
이 작은 사람도 나를 쓰다듬어줬어요!
쓰다듬어주는 사람! 좋은 사람!
“졔애-니라는 애도 귀엽겟지?”
제니를 칭찬해 주는 사람! 좋은 사람!
반가워요! 반가워요! 우리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