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86)
로판 속 공무원 787화(787/945)
최근 들어 아이들과 있는 시간보다 나 홀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무래도 앙리에타와 헬렌이라는 두 친구가 생겨서 그런지, 나를 향한 아이들의 관심이 이전보다 다소 줄어들었다. 심지어 앙리에타가 놀러 오면 앙리에타의 유모도 같이 오지 않나.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아이들을 보살펴 줄 어른이 내내 붙어있는 것이다.
‘좋은 시기가 지나가는구나.’
조금 씁쓸했지만 동시에 뿌듯했다.
부모가 아이를 24시간, 365일 붙어서 돌봐야 하는 건 아이들이 어릴 때에 불과하다. 물론 아이들이 나이를 먹었다고 방치할 생각은 없으나, 3살 아이와 13살 아이는 다르게 대할 수밖에 없다.
그 시점이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것뿐이다. 아이들이 아빠의 보호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노는 시기가 찾아올 뿐이야.
그러니 이 현상은 아이들의 성장을 증명하는 기쁜 일이다. 분명 그래야 할 터인데.
‘같이 있고 싶다…’
기쁨과 슬픔이 복잡하게 어우러졌다.
아직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필요하다. 아빠가 옆에 붙어서 정성스레 놀아줘야 한다. 애초에 우리 아이 중 가장 연장자인 페디도 겨우 4살이잖아. 부모의 품속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고.
하지만 친구라는 존재와 상호작용 중인 아이를 부모 품에 가두는 건 도리가 아니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도 옳은 일이 아니야.
…
“티티.”
– 멍.
“살면서 친구 정도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내 말 같지도 않은 말에 티티는 조용히 다가오더니, 내 얼굴을 부드럽게 핥아주었다.
강렬한 울부짖음보다 이 따스한 핥기가 더 마음 아팠다. 티티가 보기에는 주인이 어디 아픈 것 같다는 의미니.
‘친구는 많을수록 좋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괜한 생각은 하지 말자. 내가 진정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과보호를 지양해야 하고, 친구들과 노는 걸 반겨야 한다. 아무리 서운하고 쓸쓸해도 아이들의 변화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비록 4살에 찾아온 변화일지라도.
아직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상황일지라도.
“티티야. 나랑 낚시하러 가볼래?”
– 멍?
“그냥 구경만 하면 돼. 혼자 가기는 쓸쓸해서.”
– 멍멍!
갑작스러운 부탁이었지만 티티는 맹렬히 꼬리를 흔들며 해맑게 짖었다. 아마 좋다는 뜻이겠지.
생각해 보니 티티랑 제도 이곳저곳을 산책하기는 했으나, 호수에는 한 번도 같이 간 적이 없었다. 제도가 워낙 넓어서 바깥까지 나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리트리버가 물을 좋아한다고 했었나?’
비록 바다는 아니지만 낚시를 즐기는 호수도 그럭저럭 큰 편이다. 티티의 새로운 놀이터 역할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낚시를 하는 동안 티티는 물속에 넣어두자. 그러면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 될 거야.
좋아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좋아할 줄은 몰랐다.
“티티! 멀리 가면 안 돼!”
– 왈!
짧게 짖은 티티는물고기 같은 몸놀림으로 호수를 누볐다.
상상을 뛰어넘은 속도라 당혹스러웠다. 이 호수는 제국의회 의원들의 비밀기지로 사용될 만큼 규모가 있는 곳인데, 망설임 없이 입수한 티티는 어느새 호수 한가운데까지 진출했다. 진짜 물고기도 저렇게 빠르지는 않을 거야.
오죽하면 내가 호수가 아니라 욕조나 풀장에 온 줄 알았을까.우리 티티, 물구나무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수영도 잘 하는 편이었어.
‘저런 애를 지금까지 땅에만 두고.’
반성하자. 리트리버가 물을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이제야 호수에 데려온 것에. 주인이라는 놈이 애완동물 복지에 허술했던 것에.
하다못해 성수들도 이 호수에 와본 적이 있었다. 비록 부인들에게 쫓겨나서 방황하다가 간 것이지만, 아무튼 성수들도 간 곳을 티티는 가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인가.
‘앞으로는 자주 와야겠어.’
못해도 1주에 1번은 오자. 그래야 티티가 좋아할 테니까.
“형.”
“왔냐?”
네시호의 괴수처럼 둥둥 떠다니는 티티를 보던 중, 등 뒤에서 에리히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저거 티티야?”
“저거라니. 우리 귀한 티티한테.”
자연스레 내 옆에 앉으며 망언을 내뱉는 에리히. 그 참담한 망언을 친절히 지적하자 에리히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헤엄치는 애가 티티야?”
“어. 엄청 빠르지?”
“티티가 물하고도 친할 줄은 몰랐네.”
그렇게 말한 에리히는 가방에 있던 낚싯대를 꺼내더니, 내 앞에 있던 미끼를 가져갔다.
“네 거 써 인마. 미끼 이거 얼마나 한다고.”
“형이 급하게 불러서 낚싯대만 챙겼어.”
차마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논리라 작게 혀를 찼다. 확실히 급하게 부른 감이 없잖아 있지.
“그래서, 왜 부른 거야?”
“그냥.”
“뭐?”
덤덤한 대답에 에리히의 미간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화내기는. 어차피 휴가 중이라 딱히 바쁘지도 않았을 텐데. 지금도 부르자마자 바로 달려왔잖아.
“농담이고. 말할 게 하나 있어서.”
물론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부른 건 아니다. 내가 이놈이랑 별 이유 없이 오붓하게 낚시할 정도로 살가운 관계도 아니고.
“너 조만간 유벤으로 가지?”
“…뭐, 그렇지.”
일그러졌던 에리히의 미간이 스르륵 펴지더니, 얼굴에는 빡침 대신 수심으로 가득해졌다.
나도 에리히도 최근에야 알게 된 정보. 라테르의 결혼식이 11월 마지막 날에 이루어진다는 따끈따끈한 소식.
심지어 12월 중순에는 타니안의 결혼식이라고 한다. 둘이 짠 것도 아닐 텐데 잘도 그렇게 날짜가 잡혔어.
“그래도 비아의 몸이 무거울 때는 피해서 다행이야. 아직 세라도 배가 많이 나온 편이 아니고.”
“그건 그렇지.”
에리히의 정신 승리에 순순히 동의해 줬다. 당사자가 소소하게나마 위안을 가진다면 좋은 일이니까.
그리고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어차피 가야 하는 해외 출장이라면 만식일 때는 피하는 게 좋지 않겠나. 제노비아도, 세라도 몸이 가벼워야 여행을 즐길 수 있을 테니.
“나도 유벤 가게 됐다.”
“엉?”
결정적으로 나도 에리히를 놀릴 처지가 아니다.
“나도 유벤 간다고.”
대륙 반대편인 유벤으로 가는 건 에리히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아니, 형이 왜?”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 묻는 에리히를 보다가, 여전히 호수를 누비는 티티를 바라봤다.
그러게. 나도 내가 유벤에 가게 될 줄은 몰랐어. 기껏해야 대륙 중부나 돌아다닐 줄 알았지.
“린이 신혼여행은 유벤으로 가고 싶다고 해서.”
물론 어디까지나 의외인 것이지 싫다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부인이 가자고 한 국가다. 다른 사유도 아닌 신혼여행을 목적으로 가는 곳이다. 대륙 반대편이 아니라 행성 반대편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나.
“아, 넷째 형수가.”
“어딜 건방지게 형수라고 불러. 뒤에 님 자 안 붙여?”
“좀 봐줘. 친구를 형수라고 부르는 걸로도 힘들어.”
이번에도 반박할 수 없는 말이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 새끼가 가끔은 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치명타를 날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걸 보면 지능이나 눈치가 부족한 놈은 아닌데.
‘형 명치에 죽창 꽂을 능력으로 자기 연애나 살피지.’
이미 결혼도 하고 자식도 본 녀석에게 할 생각은 아니나, 볼 때마다 생각나는 걸 어쩌겠나. 77년도 시즌 에리히는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괴물이다.
“그런데 갑자기 웬 유벤? 넷째 형수가 마법에 관심이 많았나?”
“마법 때문에 가는 건 아니고, 유벤이 대륙 반대편이다 보니 특이한 게 많잖아. 예전부터 흥미 있었대.”
마도강국 유벤에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륙 반대편 국가에 있는 자원이나 물품에 흥미가 가는 것.쉽게 말하면 상인의 유전자가 발동했다는 뜻이다.
나야 워낙 타국에 관심이 없으니 그러려니 싶었으나, 확실히 유행이나 문화에 민감한 상인이라면 유벤에 매력을 느낄 법하다. 유벤에서 괜찮은 물건 하나만 찾아도 ‘대륙 반대편에서 날아온 이국적 향취’ 라고 포장할 수 있으니.
“아무튼 11월 중순 정도에 가기로 했다. 그보다 늦게 가면 결혼식 때문에 소란스러워질 테고, 빨리 가면 라테르 얼굴도 못 보고 귀국할 테니까.”
“하긴. 이왕 간 거면 얼굴은 봐야지.”
그 말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로는 다시 볼 일이 없을 줄 알았거늘. 5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도 안 좋은 일이 아니라 좋은 일로 만나는 거라 다행─
“저기, 형.”
“왜.”
“형이 유벤으로 가면 나까지 갈 필요는 없지 않─”
에리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수로 집어던졌다.
어딜 감히 형한테 짬처리를 시도해. 죽을라고.
“고맙다, 티티야…”
– 멍!
그렇게 한가을에 입수를 하게 된 에리히는 마침 근처를 헤엄치던 티티가 건져줬다.
내가 형으로서 이런 생각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에리히보다 티티가 훨씬 총명하고 도움 되는 존재 같아.
***
칼의 다음 여행지는 유벤 연합왕국으로 정해졌다.
신성교국, 제레노 왕국, 발크로스 왕국을 방문해서 다음 여행지도 막연히 대륙 남부일 줄 알았으나, 린은 의외로 유벤 연합왕국을 택했다.
“유벤의 환경은 제국과 많이 다르잖아요. 제국에서는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짐승들이 돌아다니고, 독특한 물건들도 많아요.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어요.”
허나 린에게 요룬 백작가의 피가 흐르는 걸, 요룬이 황금공 파벌의 핵심 세력인 걸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게다가 조만간 라테르 왕자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다. 린도 라테르 왕자와 적지 않은 친분이 있으니, 축하를 겸한 방문일 수 있다.
‘가족을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지.’
마도강국인 유벤 연합왕국. 유벤의 명성에 걸맞게 마법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있던 라테르 왕자.
그런 라테르 왕자에게 적절한 선물이 있다. 마법사에게 주는 선물이니 칼과 린이 준비하는 것보다는 내가 준비하는 게 좋을 터.
‘찾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세르베트 공작령의 공작성으로 향했고, 서랍 깊숙한 곳에 박아뒀던 선물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제국 아카데미에 재학하는 동안 작성했던 논문들. 막 마탑 소속이 되었을 때 진행했던 연구 기록.
‘옛날 물건이지만 가치는 있겠지.’
아니, 오히려 어디서도 찾지 못할 옛날 자료기에 더욱 가치가 있을 수 있다.최근에 작성한 논문은 누구나 찾을 수 있지만, 100년 전 자료는 나만이 가지고 있기에.
‘…복사는 조금 오래 걸리겠어.’
그런데 이거, 막상 찾고 보니 내 기억보다 양이 많았다.
다 복사하려면 1시간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