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88)
로판 속 공무원 789화(789/945)
유벤 서부에는 사바나와 유사한 초원 지대가 존재한다. 북방에 펼쳐진 초원과는 다소 성격이 다른, 그 덕에 특이하고 다양한 짐승들이 모여 사는 동물의 왕국이.
만약 한 국가의 영토 대부분이 사바나였다면 나라 망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겠으나, 다행히 이 사바나 지역은 유벤 연합왕국 전체로 보면 ‘감당할 수 있는 특이 지역’에 불과하다. 게다가 유벤의 체급 덕분에 사바나의 이질성을 장점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고.
– 음무우우우우-
대표적으로 이 물소처럼.
“와, 의외로 순하네요?”
“그러게. 생긴 거는 뿔로 사람 몇 명 보내 버릴 것 같이 생겼는데.”
나와 린이 근처에 있어도 눈을 끔뻑이는 물소. 조심스레 손을 뻗어 쓰다듬자 미약하게 꼬리를 살랑거리는 물소.
뿔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처럼 흉흉하게 자란 주제에 하는 행동은 일반 소와 다를 게 없었다. 뿔만 자르면 동네 축사에 보이는 흑우랑 다를 게 없겠어.
허나 이 순한 물소도 유벤 연합왕국 창설 이전에는 흉포한 짐승이었다고 한다. 내 감상대로 물소의 뿔에 찔려서 이목구비 외에 새로운 구멍이 생긴 사람이 많았다지.
그랬던 물소가 유벤 연합왕국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가축화되었다. 뿔로 사람을 박살 내던 물소는 사람에게 뿔을 헌납하여 활을─
‘결국 사람 죽이는 건 똑같네.’
물소의 뿔은 살생의 운명을 타고난 물건이구나.
“어떻습니까? 일반적인 소와 비교하면 다른 매력이 있는 동물이지요?”
그렇게 물소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사이, 물소 축사를 관리하는 관리인이 다가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확실히 색다른 매력이 보이는군.”
“매력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농사에 사용되기도 하고, 순하지만 힘이 강하여 맹수를 쫓아내기도 하고, 간혹 물소를 타고 경주를 하기도 하죠. 인간의 식사와 안전, 유흥에 전부 관여하는 아이입니다.”
내 호응에 관리인은 더욱 들뜬 어조로 설명을 이어갔다.
너무 흥분한 것 같지만 자기 업무에 대한 자부심, 물소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다는 의미 아니겠나. 물소를 수입할 입장에서는 오히려 기꺼운 일이다. 이런 관리인이 돌본 물소라면 건강하겠어.
– 음무우우우.
“게다가 지금처럼 사람을 잘 알아봅니다!”
“그래 보이는군.”
실제로 나와 린의 터치를 당하던 물소는 관리인에게 다가가 울음소리를 냈다. 누가 봐도 주인을 알아보고 반기는 모습.
그 모습을 보니 물소 수입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뿔로는 활을 만들 수 있고, 일반 소처럼 농사에 투입이 가능하고, 뿔이라는 흉기가 있어서 맹수와 드잡이질이 성사되고, 심심하면 경마를 하듯이 경우 경주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충성심까지 결합되면 실로 완벽한 짐승이다.
대신 고기의 맛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정도면 육질이 별로여도 무방하지. 고기까지 훌륭하기를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일이다.
“헌데 관리인.”
“예, 각하. 말씀하시지요.”
“저기 있는 놈은 유독 큰데?”
“아.”
축사라고 부르기에는 지붕도 없고 너무 거대한 울타리. 그 안에서 홀로 풀을 씹고 있는 거대한 물소를 가리키자, 관리인은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저 녀석도 물소기는 한데, 이 아이들과는 종이 다른 녀석입니다.”
“종이 달라?”
“예. 굳이 분류하자면 들소라고 부르는 것이 편하겠군요. 수백 년 동안 가축화에 실패한 난폭한 놈들입니다.”
치가 떨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관리인을 보니 빙의 전 세상이 떠올랐다.
그 세상에서도 물소와 들소가 존재했지. 물소는 가축화에 성공했지만, 들소는 워낙 성격이 지랄맞아서 끝끝내 실패했다고 하던가?
‘어쩐지 넓더라.’
울타리를 너무 길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사실상 ‘제발 이 선만 넘지 말아 다오.’ 라는 애절한 부탁이었다. 저 정도면 들소의 생활 반경보다도 넓겠어.
“가까이서 봐도 되겠나?”
“그, 저놈이 워낙 난폭해서,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속된 말로 지랄 발광을…”
잠시 말을 흐리던 관리인은 빠르게 나를 훑어보더니,
“각하시라면 괜찮겠지요!”
홀로 납득하며 우리를 들소에게 안내해 줬다.
대륙 제일 검이라는 칭호가 은근히 편하기는 하다. 적어도 사람들이 내 무력을 의심하지는 않아서, 위험할 수 있다며 만류하는 경우는 적으니까.애초에대륙 제일 검이 위험할 상황이 어디 있겠어. 잘 쳐줘야 트릭시와 부부 싸움을 할 때뿐이지.
아니면 마르에게 큰 실수를 해서 마르가 처가로 갈 때라거나. 그러면 전성기 시절로 복귀한 장인어른이 찾아올 테니.
– 푸르르르륵!
‘뭐야.’
그렇게 들소에게 다가가자, 나를 인지한 들소는 딱 봐도 눈이 뒤집힌 채 투레질을 했다.
이 새끼 광우병이라도 걸렸나. 사람을 보자마자 전투태세에 돌입하는 건 너무 강렬한데.
“얘는 딱 생긴 것처럼 행동하네요.”
린의 말에 무심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맞는 말이다. 물소는 의외로 온순했다면, 이 들소는 생긴 대로 난폭했다. 물소보다 크고 우람한 뿔을 가지고 있으니 성격도 더 지랄맞다는 것처럼.
– 푸륵, 푸르르륵.
‘음?’
딱밤이라도 한 대 날려야 조용해질까 고민하던 중, 들소의 투레질이 점점 작아졌다.
그러고는 조용히 무릎을 꿇으며 초원에 주저앉는 들소. 흰자위가 보일 정도로 뒤집혔던 눈까지 온화하게 가라앉았다.
– 음머어어어어어.
“…아무래도 각하께 복종한 것 같습니다.”
관리인의 얼떨떨한 목소리에 슬쩍 들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확히는 딱밤을 날릴 예정이었던 부분을.
– 으, 음머어어어.
‘생존 본능인가?’
파르르 떠는 들소를 보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짐승의 본능이라는 건 생각보다 정확하구나.
아니, 어쩌면 내 몸에 베히모스의 냄새가 있던 걸 수도 있다. 2천 년 만에 잠에서 깬 베히모스를 먼저 발견한 것도, 가끔씩 아이들을 데려다가 베히모스와 놀게 하는 것도 나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베히모스의 체취가 묻었어도 이상하지 않지.
‘좋아.’
사실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물소 가축화에 성공한 유벤조차 이루지 못했던, 물소보다 더 우람한 뿔을 자랑하는 짐승이 복종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이놈도 제국으로 데려가서 키우자. 물소의 뿔로는 기존 활을 만들고, 이놈으로는 더 크고 튼튼한 한정판을 만들면 좋을 거다.
‘특산품 하나 생겼네.’
수십 년 정도 후면 제국산 특제 각궁이 온 대륙에 퍼지겠지.
물소는 원래 가축화된 놈을 수입한 거니 애매하지만, 솔직히 이놈은 내 공로니까 로열티라도 주장하자.
의외의 수확을 얻은 후, 기분 좋게 사바나 지역을 돌아다녔다.
“왼쪽으로 가자.”
– 음머어어어.
그것도 막 복종을 표한 충성스러운 들소를 탄 채로.
평범한 말이 아니라 들소를 타고 있어서 그런지, 관광을 즐긴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코끼리를 타고 아프리카를 누비면 이런 기분일까.
그리고 이 녀석의 성격이 지랄맞은 건 생태계에서도 유명한 진실 같았다. 오죽하면 근처를 지나가던 짐승들이 들소를 보면 슬쩍 발걸음을 돌릴 정도겠나.
‘역시 덩치가 크면 깡패지.’
우람한 덩치와 우람한 뿔, 그에 걸맞은 성질. 아무리 소라는 이름이 붙었어도 맹수 취급을 받기 딱 좋은 놈이다.
“오빠.”
“응?”
“얘를 위리디아나 북방에서 기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린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녀석을 내 영지, 내 영향권 내에서 기를 수 있다면 그만한 행운도 없다. 당장 위리디아에서는 고품종 말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번식 사업 중이잖아.
“가능하면 좋겠지. 불가능해서 문제지만.”
허나 애석하게도 물소든 들소든, 내 영지에서 기르는 건 무리다.
“하긴. 그건 힘들겠죠?”
먼저 말을 꺼낸 린도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내가 유벤에서만 서식 중인 소들을 수입하는 건 어디까지나 베히모스의 힘을 빌린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다. 베히모스의 터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 기르면 기껏 수입한 녀석들이 단체 돌연사할 터.
그렇다고 베히모스를 위리디아나 북방으로 옮길 수도 없다. 베히모스가 워낙 크로이타에 대한 애착이 강한지라, 다른 곳으로 이사를 부탁하면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할 테니.
“저기. 그러면 오빠.”
내 앞에 앉아있던 린이 몸을 돌리더니,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귓속말을 했다.
“크로이트랑 그 인근은 황실 직할령이잖아요. 베히모스 주변 땅을 조금만 임대하거나 구입하는 건 어때요?”
“뭐?”
충격적인 제안이라 들소의 뿔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고 말았다.
– 으, 음머어어어어!
“아, 미안하다.”
다행히 부러지기 전에 놓았지만 심적 충격은 가라앉지 않았다.
황실 직할령 임대, 혹은 구매. 우리만 있음에도 주변을 살핀 이유가 있었다. 이런 대화를 함부로 하는 건 조금 위험…
‘위험한가?’
생각해 보니 딱히 위험한 대화는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뭐 공짜로 땅을 뜯는 것도 아니고, 그만한 대가를 주며 잠시 땅 좀 쓰겠다는 거잖아. 그 기간이 일시적이냐 영구적이냐의 차이인 거지.
게다가 베히모스가 머무는 땅은 썩 중요한 땅도 아니다. 물소와 들소를 영입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요구하면 황제도 거절할 이유가 없다.
“목장 대여섯 개 들어갈 크기면 충분하겠지?”
“그보다 작으면 동물들이 피곤해 할 테고, 크면 공간 낭비니까요.”
망설임 하나 없는 단호한 대답이라 신뢰성이 높아졌다.
원래 남편으로서 부인의 말은 믿어 마땅한 것이나, 요룬 백작가의 영애가 확신으로 가득하니 설득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하는 법. 마침 운명처럼 소들을 수입하기 위한 일이니, 황제에게 즉각 문자를 보냈다.
물소뿐만 아니라 들소도 들여올 예정인데, 얘네를 가축화하면 직할령 일부를 팔아줄 수 있겠냐고.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처참했다.
[ 이실로난 남작위를 칼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에게 하사한다. 이는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계승작이며, 이실로난 남작령은 크로이타 인근에 존재한다. ]‘이런 미친 새─’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려던 욕을 황급히 억눌렀다.
이 새끼야. 내가 목장 몇 개 들어갈 땅만 달라고 했지, 영지를 통째로 달라고 했어?
‘이딴 족쇄 필요 없어.’
땅 일부가 아니라 영지 하나를 받으면 수지 타산이 안 맞잖아. 이러면 내가 황제의 명령을 몇 개 더 들어줘야 한다고.
‘망할 놈.’
이 새끼 분명 일부러 이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