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89)
로판 속 공무원 790화(790/945)
작은 소란이 생겼다. 작은 땅을 구매하기 위해 작은 부탁을 했더니 작은 작위가 돌아온 미친 소란이.
어이가 없어서 이제는 분노가 아닌 실소가 나올 수준이다. 도대체 황제의 두뇌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 대체 무슨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놈이길래 땅 좀 사겠다는 부탁을 작위와 영지로 돌려주는 걸까.
이해할 수 없다. 정확히는 이해해서는 안 될 끔찍한 존재다.
‘이 새끼는 저격수로 살았어도 대성했겠어.’
아니, 사실은 누구보다 명확히 알고 있다. 내가 드물게 부탁을 하니 이때다 싶어서 빚을 잔뜩 얹은 거겠지.
훗날 나에게 부탁이나 명령을 할 일이 생기면 ‘네가 먹은 이실로난 남작위는 기억나지 않느냐!’ 라고 호통치기 위해서. 아주 흉악하기 그지없는 놈이다.
“린.”
“네?”
“소들만 사지 말고, 다른 동물까지 잔뜩 사가자.”
한숨을 내쉬며 통신구를 품 속에 집어넣었다.이렇게 된 이상 남작령 전체를 동물의 왕국으로 만든다. 이실로난 남작령이 아니라 사파리 남작령이라 불리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황제 그 새끼도 그걸 원하니 나한테 영지를 넘긴 거겠지. 마침 역사 도시 크로이타 인근에 위치한 영지니, 이실로난과 크로이타를 엮어서 관광특구로 만들어 버리자.
그럼 황제가 이실로난을 들먹이며 무언가 시키려고 할 때 ‘내가 관광 수익 떡상시켰잖아 새끼야.’ 라고 반격기를 날릴 수 있다. 이 어마어마한 빚을 대충 탕감할 수 있어.
‘내가 신혼여행 중에도 이런 고민을 해야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린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부인과 느긋한 여행을 즐겨야 하는 상황이거늘. 머리로는 황제와 멱살을 잡고 잡히며 드잡이질을 하고 있다. 이 얼마나 통탄스러운 일인가.
물론 먼저 업무 얘기를 꺼낸 놈은 나지만, 그래도 작위 하사로 반격한 건 선을 넘었잖아. 10으로 찔렀더니 100으로 후려 팬 수준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이 참사는 황제 잘못이다. 아무튼 나는 무고해.
***
다른 사람들은 오빠를 무뚝뚝하고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황실을 수호하는 제국백. 제국의 관료들과 귀족들을 감찰하는 황제 폐하의 검. 젊은 나이에 권력의 중심에 선 실권자 등.사람들이 쉽게 대하기 어려운 칭호가 덕지덕지 붙어있으니까.
게다가 오빠는 검은색 의복을 즐겨 입는다.심지어 평소 표정까지 딱딱한 편이니 사람들에게 있어 공포의 상징일 수밖에.
‘나도 그랬었지.’
부끄럽지만 나도 오빠를 처음 봤을 때는 여러 가지 이유로 두려워했었다. 최대한 오빠를 피해 다니고, 오빠와 눈이 마주치는 것도 무서워했다.
그래도 굳이 변명하자면 당시 나한테는 오빠를 두려워할 이유가 있기는 했었어. 나는 실질적으로 오빠한테 피해를 봤었잖아.
그러나 남들과 같은─ 혹은 더욱 격렬한 시작이었어도, 오빠를 가까이서 보다 보니 그릇된 첫인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꾸룩꾸룩!
“호오, 이 새는…”
“타조라는 아이입니다. 새인 주제에 날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날랜 다리를 가졌지요. 어지간한 사족보행 짐승보다도 빠릅니다.
“덩치가 작은 걸 보니 막 태어난 녀석 같은데, 빠르게 달리는 건 무리겠지?”
“지금은 그렇지요. 하지만 1년만 지나면 말과 비슷한 높이로 자랍니다.”
– 꾸루루룩!
“오.”
바로 지금처럼.
‘저렇게만 보면 평범한 영식 같은데.’
무릎 높이까지 자란 특이한 새를 쓰다듬으며 미소 짓는 오빠. 저런 오빠의 모습을 보다 보면 두려움보다는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오빠는 사람에게도 짐승에게도 친절하게 대한다. 딱딱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표정이 다채로워서, 고작 짐승에게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준다. 저런 사람을 어떻게 무서워하고 꺼릴 수 있을까.
‘아까통신구를 봤을 때도 그랬어.’
저 타조라는 새를 보기 전, 통신구를 보며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던 오빠를 떠올렸다.
아마 황제 폐하께서 오빠의 예상보다 시원한 답을 돌려주셨기에 당황했던 거겠지. 오빠를 향한 폐하의 신뢰는 막강하니까.
“소들만 사지 말고, 다른 동물까지 잔뜩 사가자.”
오빠가 갑작스레 대량 구매를 결정할 정도니, 목장 몇 개 마련할 수준의 땅이 아니라 기사들이 가진 봉토 수준의 땅을 판매하신 게 아닐까? 높은 확률로 그럴 거다.
‘그런 걸로 놀랄 입장도 아니면서.’
나도 모르게 쿡쿡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빠 정도 되는 사람이 그런 걸로 동요하다니. 오빠를 가장 얕보는 사람은 오빠 자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야.그다음은 오빠가 의외로 감정 변화가 심하다는 걸, 속내가 훤하다는 걸 알고 있는 우리일 테고.
그래서인지 오빠를 보면 계속 미소가 지어졌다.
“린. 얘도 키워볼까? 성체가 되면 애들이 타고 놀기도 좋을 것 같은데?”
나와 신혼여행을 왔다는 걸 꾸준히 상기하며 틈틈이 말을 거는 오빠의 모습.
“그런데 상업적으로 쓰기에는 좀 애매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특산품에 관심을 가진 걸 잊지 않고 같이 고민해 주는 오빠의 모습.
“대륙 반대편에서 온 동물이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죠.”
“하긴. 그건 그렇겠지?”
내가 긍정적 반응을 보이니 밝게 웃는 오빠의 모습.
언제나 보는 웃음이지만 언제 봐도 행복하다. 오빠와 함께 있으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 차오른다.
그래서 굳이 오빠에게 특산품에 관한 이야기를, 장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대화 주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지금처럼 오빠랑 쉬지 않고 대화할 수 있으니까.
‘진짜 관심이 있기도 했고.’
어차피 다루어야 할 일이면 오빠와 애정을 나누며 다루는 게 이득이니까.
– 꾸룩, 꾸루루룩!
“그런데 이 녀석. 기병처럼 사용할 수도 있나?”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사람의 손은 타지만, 등에 누군가를 태우는 건 싫어하는 것들이라서 말입니다.”
“아쉽군.”
밝았던 오빠의 안색이 다소 어두워졌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관리인은 알아채지 못했다. 저 미묘한 변화는 가족만이 느낄 수 있는 변화이고, 작은 특권이니.
‘둘만 여행 오니 좋기는 좋네.’
이 장소에서 나만이 오빠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다는 만족감. 나만이 오빠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뿌듯함.
저택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저택에는 오빠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너도 오빠랑 같이 지내면 알게 될 거야.”
– 음머어어어어.
타조를 이리저리 구경하는 오빠를 보다가, 옆에 있던 들소를 토닥였다.
지금은 오빠의 무력을 눈치채고 복종한 아이. 하지만 오빠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다 보면 오빠가 단순히 무섭기만 한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거다.
우리 저택에 있는 티티와 성수들처럼. 마네와 미네처럼.
해가 지기 전에 리조트로 복귀했다.
유벤에 볼 거리가 동물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생물을 수입하는 건 당일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동물 수입 문제는 나와 오빠가 귀국할 즈음에나 결론이 날 거다.
“확실히 유벤이 제국이랑 멀기는 먼가 봐. 어떻게 저런 동물들이 야생에서 지내나 모르겠어.”
“그러게요. 제국에서는 마법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할 텐데 말이에요.”
오빠의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에서는 제도 동물원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짐승들이 야생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제국과 유벤의 환경이 다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그리고 환경이 다르면 문화도 다르고,문화가 다르면 주로 사용하는 물건들도 다르다.
‘역시 거리보다 높은 장벽은 없구나.’
유벤의 물건들을 제국에 가져가기만 하면 곧바로 이국적인 기념품이 된다. 성능까지 결합되면 이국적인 명품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
비록 특산품에 대한 조사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꺼낸 명분이었으나, 동시에 우리 가족을 위한 진심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 우리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많은 걸 물려줄 수 있으면 좋으니까.
그래서 리조트로 복귀하는 길에 시장에 들러 간단히 분위기를 살폈는데,
‘가장 기대했던 게 무너졌어.’
유벤 연합왕국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마법.
그 마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특산품들은 제국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할 것 같다.
‘트릭시 언니가 너무 강해.’
오직 한 사람. 트릭시 언니가 제국에 존재하고 있기에.
유벤이 마도강국이면 뭐 하나. 마도강국보다 우위에 선 압도적인 정점이 제국인이잖아. 유벤이 마법을 토대로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건 이미 트릭시 언니와 마탑이 만들어서 제국에도 존재한다. 제국에 팔 필요성이 없어.
덕분에 오늘 탐사 중 가장 큰 수확은 서부 초원의 짐승들이었다. 기대했던 마법 물품이 의외의 복병을 만나고, 별 기대가 없던 짐승들을 보며 의외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빠.”
“응?”
“솔직히 마도강국이라는 이름… 트릭시 언니가 살아있을 때는 쓰면 안 될 것 같아요.”
“프흐, 그건 그래.”
그 말에 오빠도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도 말만 안 했지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어쩌지? 기대했던 마도구가 이러면 다른 특산품을 찾기 힘든데?”
“뭐… 넓은 국가니 계속 찾아보면 다른 게 나오기는 하겠지만, 기대한 만큼 다양하게 찾지는 못할 것 같아요.”
“아쉽네.”
오빠의 말에 어색히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유벤이 아니라 가까운 나라를 고를 걸 그랬나? 괜히 오빠만 피곤하게 만든 것 같아.
“그럼 며칠 동안은 리조트에만 있을까?”
“네?”
“찾아도 기대만큼 성과가 안 나온다면 느긋하게 하는 것도 좋지. 애초에 우리는 놀러 온 거잖아.”
그렇게 말한 오빠는 내 옆에 앉더니, 자연스레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아.
아아아!
‘왔다!’
어느새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며칠이라는 시간, 오빠의 적극적인 애정 표현.
이건 분명 그거다. 마르 언니와 리제가 말했던 그거야.
‘두, 둘째…!’
신혼여행을 갔던 마르 언니와 리제가 품고 온 소중한 보물.
우리 모두가 한 명의 아이들을 낳아서,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는 약조.
“어차피 우리 결혼식 때까지 유벤에 있어야 하니 시간은 많은데, 어때?”
나도 이제 우리 알리나의 동생을 만들어줄 수 있다.
“조, 좋아요. 오빠 말처럼 시간은 많으니까…”
내 대답에 오빠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아마 나도 비슷한 표정일 것 같다.
***
린과 장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부부 사이에는 애정 어린 대화를 나누는 게 제일이지.
며칠 동안은 통신구도 보지 말자. 황제가 문자를 보내도 무시하자.
꼬우면 유벤으로 외교관 하나 보내든가. 신혼여행 중인 새신랑은 누구도 막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