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94)
로판 속 공무원 794화(795/945)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순간 몸이 굳고 말았다.
“어서 오시오, 백작. 그리고 백작부인. 본 의장과 명예로운 마도의회의 의원들은 귀빈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오.”
킬라나스 공작을 포함하여 100이 넘는 인원이 우리를 반겨줬으니까.
덕분에 반사적으로 기계적인 미소가 나왔다. 마도의회 의원 전원이 나온 것 같으니, 유벤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서는 이 극상의 대접에 걸맞은 감사를 표해야 한다. 의회 전체가 나선 환대를 당연한 것이라 여기면 아무리 트릭시를 추종하는 마법사들이라도 서운해할 수 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의장 각하. 의원 여러분께서도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본인을 공작이 아닌 의장이라고 칭한 킬라나스 공작에게 한 번, 의원들에게 한 번. 적당히 목례를 하며 감사를 표하자 홀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화기애애해졌다.
의원들은 마종공의 남편을 초대해서 좋고, 나는 국가 핵심 지도층의 환대를 받아 좋다. 아무튼 서로에게 이로운 아름다운 만남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이런 만남 없이 제국으로 귀국하는 게 가장 좋지만, 이미 지난 일에 미련을 가져서 무엇 할까.
“하온데 의장 각하. 옆에 계신 분들은 누구신지요?”
긍정적인 첫인사를 나눈 후, 공작의 뒤가 아닌 옆에 선 다섯 인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단순히 의원들 중 하나라고 보기에는 감히 의장과 나란히 선 인물들이다. 나름 손님을 맞이하는 자리이니 인물 배치도 가볍게 하지 않았을 터.
“아, 제국인인 백작은 잘 모르겠군. 마도의회의 부의장들이라오.”
“예?”
예상대로 다섯 명은 단순한 의원이 아니었으나, 부의장일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뭔 부의장이 다섯이나 돼.’
보통 부의장은 많아야 둘 정도 아닌가? 나라에 따라 아예 없는 곳도 있고.
“백작도 알다시피 우리 유벤은 다섯의 총의가 모인 연합국가 아니오. 공평하게 한 국가당 한 명의 부의장을 선발하고 있지. 참고로 의장인 나는 의장 임기 동안 무국적자라오.”
“아, 예…”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국가당 할당제라면 어쩔 수 없지. 어느 나라에서는 부의장이 배출되고, 어느 나라에는 없으면 그대로 멱살잡이니까.
하지만 의장 임기 동안 무국적자인 거는 좀 신박하다. 그놈의 균형이 뭐라고 멀쩡한 공작의 국적을 앗아가는 걸까.
‘이게 연합의 짐인가.’
두렵고도 안타깝다. 유벤은 단일 국가가 아닌 연합 체제를 선택한 대가로 이런 기괴한 현상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킬라나스 공작이 유벤 국왕과 함께 단일화를 부르짖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잃어버린 국적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거야.
‘앞으로도 무국적자로 살기를.’
공작에게는 미안한 생각이나 제국 입장에서는 그게 이득이다. 연합이라는 기괴한 체제로도 대륙 3위인 국가인데, 정말 단일 국가로 진화하면 대륙이 요동치지 않겠나. 비록 제국을 넘볼 수준은 아니더라도 아르메인과 치열한 2위 다툼을 할 거다.
그건 곤란한 일이다. 적어도 아르메인은 바로 옆이라 견제라도 쉽지, 대륙 반대편인 유벤은 견제도 어려워.
“실로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나라를 이루는 모든 자들을 배제하지 않고, 모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외부인인 제가 보기에도 감탄스럽습니다.”
그렇기에 적당한 칭찬과 적당한 견제를 버무려 건네주었다. 간단하게 들으면 덕담이나, 곱씹으면 미묘한 수준의 발언으로.
“허허, 그거 기쁜 말이구려. 우리의 선조들께서도 기뻐하실 거요.”
물론 킬라나스 공작 정도의 짬이면 듣자마자 내 의도를 알아챘을 거다. ‘너희는 전통대로 행동할 때가 가장 멋져.’ 라는 견제구라는 걸.
초대받은 입장에서 견제를 날리는 건 미안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국적은 어디까지나 제국이니까. 괜히 마도의회에서 유벤 단일화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어떤 루트든 반드시 황제의 귀에 들어간다. 그 결과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일대일 면담일 테고.
다행히 킬라나스 공작도 내 입장을 이해하는지 웃으며 넘어갔다. 게다가 공작의 말처럼 연합 체제는 타의가 아닌 유벤의 선조들이 자의로 결정한 일이잖아. 그걸 부정하는 건 단일화 파벌의 거두인 킬라나스 공작에게도 힘든 일이다.
“자, 손님을 세워두는 건 초대한 자로서 민망한 일. 백작이 괜찮다면 이 늙은이가 백작과 부인을 안내해도 되겠소?”
“물론이지요, 의장 각하. 오히려 영광입니다.”
그렇게 진심이 담긴 환영과 감사 인사. 의례적인 견제와 얼버무림이 오고 간 후, 살짝 어색해졌던 분위기는 다시 고조되었다.
작은 소란이 있었어도 나와 린은 트릭시의 가족이고, 마도의회의 귀빈이기에.
본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구경할 때도 큐레이터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크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단순한 큐레이터나 안내인이 아닌, 마도의회의 원로이자 거두가 직접 붙었다. 이 정도면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설명해 주는 것이고, 역사 속 위인을 부활시켜 역사적 사건을 듣는 수준이다.
“이 마도의회는 에르네스트 선생의 생가와 무덤 위에 만들어진 건물이오. 피와 눈물을 흘리며 다투었던 다섯 국가를 중재하고, 연합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제시한 영웅을 잊지 않기 위함이지.”
“생가와 무덤… 말입니까?”
“오해하지는 마시오. 에르네스트 선생이 살아계셨을 때는 물론, 그 유족 분들에게도 동의를 구한 일이니까.”
작게 웃음을 흘린 킬라나스 공작은 웅장하고 거대한 문을 열었다.
“이 대회의실 아래에 에르네스트 선생의 무덤이 있소. 그분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오직 유벤의 국익과 백성들의 평온을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로.”
유벤인이 아닌 제국인인 내가 들어도 심장 떨리는 의미였다.
이게 남의 나라 의회 이야기라 심장 떨리는 걸로 멈췄지. 만약 제국의회 대회의실 바닥에 에이만카 대제의 무덤이 있다면? 대제가 지켜보는 앞에서 매일매일 업무를 봐야 한다면?
아마 역대 의원 중 다수는 부담감에 돌아버렸을 거다. 잘도 이런 미친 짓을.
“그리고 사흘 후, 결혼식의 열기가 가라앉으면 마도의회의 모든 의원들이 이 대회의실에 모일 예정이오. 마종공 각하와 탐명공 각하의 논문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을 할 터이니, 다들 기쁜 마음으로 모이겠지.”
“예?”
수백 년 동안 처절하게 굴렀을 마도의회 의원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사이, 킬라나스 공작이 심상치 않은 말을 던졌다.
사실 의원들이 논문을 분해하고 연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마법에 환장한 마도의회 의원들이 내가 건넨 논문과 자료에 손을 대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그걸 굳이 에르네스트의 묘지 위에서, 전달자에 불과한 내 앞에서 언급하는 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걸 왜 나한테.’
불안하다. 굳이 나한테 자신들의 일정을 말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그 자리에 타일글레헨 백작이 함께 한다면 무엇보다 영광스럽고도 찬란한 토론의 장이 될 거라 믿소.”
‘아.’
그리고 의문은 짧았다. 킬라나스 공작은 눈물이 절로 나올 만큼 직설적으로 나왔으니까.
마법의 정점인 마종공이 하사한 논문을 미리 살피는 것. 심지어 그 자리에 마종공의 부군이 함께하는 것. 유벤 마법계의 권위를 더욱 드높일 수 있는 방법이며, 현 마법계의 수장인 킬라나스 공작의 발언권도 늘어날 상황이다.
존경하는 대선배의 지식을 받으며, 그 대선배의 가족을 모실 수 있고, 엄청난 권위를 등에 업어 영향력을 넓히는 것. 이 이득을 포기하는 건 귀족이라 할 수 없다.
“제가 비록 뛰어난 대마법사를 아내로 두었으나, 저는 마법에 대한 소양이 없습니다. 자리를 지켜봤자 마도의회의 명예를 더럽히는 게 아닐는지…”
“그런 염려는 마시오. 그 어떠한 마법사도 감히 백작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으니 말이오.”
확신에 가득 찬 공작의 목소리에 그저 미소만 지었다.
졸지에 업계 고인물들의 무제한 토론을 구경하게 생겼다. 그것도 학사 자격도 따지 못한 애송이 신분으로 말이다.
마법을 배우고자 노력하지는 않았으나, 마법이라는 것에 아무런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빙의 전 세상에는 없던 기술.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텔레포트라는 희대의 이동이 가능한 기술. 사람으로서 흥미가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허나 흥미와 재능은 별개인 법. 빙의 전에는 철저한 문과, 빙의 후에는 무인으로 살아온 나에게 마법을 배울만한 지혜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내 부인이 트릭시라도 말이다.
‘아무리 스승이 좋아도 제자가 둔재면 답이 없지.’
이미 죽어버린 나무에 물을 뿌려도 의미가 없는 것처럼.
정확히는 내가 내 한계선을 둔재로 정했다. 검으로 대륙 정점에 이르러서 그런지, 딱히 마법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았다. 굳이 머리를 굴려가며 마법을 배울 필요가 없지 않나.
이 다짐은 아이러니하게도 며칠 전부터 더욱 견고해졌다.
[ 세상을 삼원색으로 구분할 경우, 마법으로 삼원색을 구현하면 천상의 천사를 마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과 가능성. ] [ 물 속성 마법을 연달아 사용할 경우, 일시적으로 상실된 대기 중의 수분이 복구되는 과정과 동일한 위력의 물 속성 마법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시간. ] [ 땅 속성 마법으로 대지를 가를 경우, 밀려난 지각이 대륙과 바다에 끼치는 영향과 복구 가능성. ]‘어후, 시발.’
더욱 세세하게 말하면 둘째 장인어른의 논문을 받은 후부터 마법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없앴다.
그저 제목만 봐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논문들이었다. 아무리 둘째 장인어른이 마법계의 네임드라는 걸 감안해도, 이런 걸 논의하는 것이 마법사의 역할이라면 난 평생 검사로 살아가겠다.
분명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
“분명 세상은 삼원색으로 구분할 가치가 있으나, 천상을 이 대륙과 같은 세계라 단정 지을 수 있겠습니까?”
“물 속성 마법에 대해서는 보다 확실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과연 물 속성 마법이 대기 중의 수분을 이끄는 것인지, 아니면 시전자나 그 주변 인간들의 수분을 사용하는 것인지부터 알아야 하지요.”
“땅 속성 마법으로 밀려난 지각? 이 드넓은 대륙에 마법 하나가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저런 토론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제발 나를 놓아줘. 남들이 물어보면 마도의회의 아름다운 토론을 들었다고 할 테니까. 제발.
“흐음. 부군 각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러니 나 좀 그만 쳐다보고, 그만 말 좀 걸어.
난 마법사가 아니라 검사야, 이 미친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