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97)
로판 속 공무원 797화(798/945)
트릭시의 깜짝 강연은 방청객들의 열렬한 박수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처음 강연을 시작할 때보다 배로 늘어난 인파였기에 상당히 우렁찬 박수였다.
‘많기도 하네.’
대회의실을 훑어보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분명 처음에는 모든 의원들이 앉았어도 공간이 넉넉한 장소였지. 그런 대회의실이 하루가 다르게 좁아지더니 어느덧 만석을 넘어 입석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강연이 길어질수록 소식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 늘었으니까. 현직이 아닌 전직 의원들은 물론, 유벤에서 나름 이름 날리는 거물들이 강연을 듣기 위해 몰렸으니까.
‘돌려보낼 걸 그랬나?’
물론 입장 통제는 생각으로만 그쳤다. 막을 이유가 없다는 건 둘째치고, 수염마저 하얗게 변한 노인들이 촉촉한 눈망울로 무릎을 꿇으며 강연을 듣고 있었다. 그렇게 열정적인 노인에게 어찌 돌아가라고 할 수 있겠나.
그래서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방청객들을 보며 멍하니 자리만 지켰다. 마도의회가 내 건물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유벤 연합왕국이 관리하는 건물이잖아. 그런 건물에 유벤 사람들이 들어오는 건 이상할 것도 없지.
게다가 트릭시의 드넓고도 깊은 지식은 사람 몇 명 추가된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100명이 아니라 1000명이 트릭시의 강연을 들어도 트릭시가 피해 보는 것은 없다. 오히려 트릭시와 나, 린에게 부채감을 느낄 사람들만 늘어나는 일이다.
“연달아 선물만 받아서 부끄러울 정도로군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 증거가 귀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찾아간 라테르다.
신혼 중임에도 대면 신청을 받아준 라테르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깜짝 강연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저하, 어찌 일개 귀족에게 고개를 숙이십니까. 심지어 마도의회에 은혜를 베푼 건 제 아내의 결단입니다. 저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라테르에게 적당히 겸양을 표했다.
유벤인들이 마법에 진심이라는 것도 알고, 트릭시를 열렬히 추종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니 지금은 난색을 표하기보다 모든 공을 트릭시에게 돌리는 것이 옳다.
어차피 고개를 들어달라고 해봤자 듣지도 않을 테니. 짧은 유벤 체류였지만 그 짧은 기간만으로도 유벤의 특징을 알게 됐다.
“장관이 아니었다면 마종공께서 은혜를 베풀 일도 없었겠지요. 그 정도도 모를 만큼 우둔하지는 않습니다.”
이윽고 고개를 든 라테르는 아까보다 짙은 미소를 지었다.
알면 됐다. 사실 나도 예의상 한 말이었어.
“장관이 선별한 짐승들은 유벤의 마법사들이 텔레포트를 통해 운반 중입니다. 이미 제국 외무성과 농축성에게 입국 허가도 받았으니, 장관은 편히 귀국하면 됩니다.”
“마지막까지 배려를 받는군요. 감사드립니다, 저하.”
“별말씀을. 전하께서 더 많은 걸 주지 못해 아쉽다고 하셨을 정도입니다.”
그 말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이미 마도의회와 라테르의 편의를 받은 걸로도 충분하다. 국왕까지 나서면 판이 너무 커져.
“…그보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도저히 장담할 수가 없군요.”
“그렇지요. 이번 만남도 저하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아니었다면 평생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을 인연이니, 이 이상 아쉬워하는 건 욕심일 터.”
그렇게 말한 라테르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뒤편에 있던 책장에서 얇은 책을 무더기로 꺼냈다.
“제 작별 선물입니다. 아이들에게 주시지요.”
“저하, 이건?”
“유벤의 동화입니다. 아직 어리니 날카롭고 딱딱한 물건보다는 이런 게 좋을 것 같더군요.”
예상치 못한 선물이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동화라. 아이들에게 걸맞은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선물 아닌가. 아이들과 놀아주기 바쁜 나조차 동화를 선물하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미 같은 것을 에리히에게도 줬습니다. 그러니 부담은 가지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저하. 아이들에게 반드시 저하의 마음이라 말하겠습니다.”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말씀입니다.”
이번에도 라테르는 미소를 지었다. 신혼 중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단순히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반가워서 그런 건지─ 아카데미 때보다 자주 미소를 보였다.
몇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온화한 태도를 보인 라테르는 정문까지 나와 우리를 배웅해 줬다. 천상의 주가 허락한다면 언젠가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그 배웅을 끝으로 우리도 귀국 준비를 마쳤다. 챙길 것도 챙겼고, 줄 것도 줬고, 라테르와 인사도 나누었다. 더 이상 유벤에 남을 이유가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귀국하면 된다.
“결국 유벤에서 수입한 건 짐승밖에 없네요.”
다만 처음 유벤에 입국하며 기대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결과를 들고 귀국하게 됐다.
원래는 대륙 반대편의 문화, 이질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교역품을 찾으려고 했었는데 말이야. 어쩌다 보니 독특한 교역품이 아닌 짐승들만 구매하게 됐어.
“뭐 어때. 잘만 기르면 물소의 뿔을 황실과 우리 가문에서 유통하게 되는 거야. 절대 손해는 아니지.”
허나 아쉬운 결과는 아니다. 어지간한 교역품보다 이 짐승들이 더 가치 있으니까.
대륙 반대편 국가와 교역로를 뚫는 것보다, 지금까지 제국에 없던 짐승들을 사육하고 부속품을 판매하는 게 편하니까.
“그건 그렇죠. 그럼 바로 베히모스한테 가볼까요?”
“아니.”
린의 제안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짐승들을 텔레포트로 보내는 중이라 했으니 우리보다 먼저 제국에 도착했을 거다. 이미 베히모스 주변에서 풀을 뜯고 평화로운 제국 생활을 시작했을 거다.
그렇기에 지금 중요한 건 안전히 도착한 짐승들이 아니다. 내가 무엇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다.
“일단 제도로 가자. 봐야 할 놈이 하나 있거든.”
이 형의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동생.
난 그놈이 통곡하는 걸 먼저 봐야 마음이 풀릴 것 같다.
흡족함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축하한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작위가 늘어났어.”
축 늘어진 채로 나를 맞이한 에리히. 그런 에리히에게 내가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흐리멍덩했던 에리히의 눈빛이 뜨겁게 타올랐다.
“하지만 고작 남작위라니. 아무리 계승 작위라지만 조금 아쉽네. 더 높여달라고 폐하께 부탁해 볼까?”
다시 가라앉았다.
아마 불안할 거다. 승작이라는 걸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나 의문이면서도, 나라면 정말 가능하지 않을까 두렵겠지. 그 감정이 에리히의 눈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게 누가 도망치래.’
조카가 명분이었어도 형을 두고 튀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내가 귀여워하는 건 어리고 어린 조카지, 다 큰 남동생이 아니니까.
게다가 내가 부탁하자마자 냅다 작위를 던진 걸 보면 황제도 에리히에게 작위를 수여할 생각이었던 거다. 내가 입을 열지 않았어도 피할 수 없던 미래라는 거지. 그 미래가 아주 조금 앞당겨졌을 뿐.
“그래서. 영지는 어디에 붙어있냐?”
“나도 크로이타 인근…”
“오.”
마침 잘 됐다. 크로이타 인근이면 내 원대한 야망에 합류하기 딱이야. 잘만 하면 에리히의 영지도 역사-관광 특화 지구로 발전할 수 있겠어.
“너 어차피 영지 관리할 시간 없지? 내가 내 영지랑 통합해서 관리할 건데, 괜찮냐?”
“아예 가져가도 되는데.”
“조카 작위 뜯어가는 삼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미래의 조카를 들먹이자 에리히는 침통히 눈을 감았다.
저 녀석이 미혼이었다면 작위와 영지는 짐에 불과하나, 기혼이 된 순간부터 전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이 됐다. 귀찮다고 함부로 버릴 물건이 아니지.
“몇 번째 조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조카가 관광 수익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줄게.”
“듣기만 해도 기쁘네…”
내 다짐에 에리히는 감동의 눈물을 흘릴 기세로 기뻐했다.
이런 형이 세상에 둘이나 있을까. 더 기뻐하고 감동해도 좋다.
***
새로운 아이들이 쉴 새 없이 몰려왔다.
– 너희는 특이하게 생겼구나.
– 으, 음머어어어…
– 두려워하지 말거라. 나는 너희를 자식처럼 돌볼 터이니.
생긴 것은 소와 비슷했으나 큰 뿔을 자랑하는 아이들.
– 음머어어어어!
– 으음?
그보다 더욱 큰 뿔을 가진 채 이리저리 날뛰려는 아이들.
그렇군. 저 아이들은 아직 사람의 손을 낯설어하는 아이들이로군. 사람이 익숙하다면 환경이 변한 것 정도로 저렇게 날뛸 리 없으니 확실하다.
– 진정하거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며 큰 뿔을 가진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수백 마리에 이르는 숫자지만 상관없다. 모든 짐승들은 나의 아이들. 수백이 아닌 수천이어도 능히 돌볼 수 있으며, 마땅히 돌봐야 한다.
– 이곳은 내가 관리하는 땅이며, 너희를 감싸 안을 땅이다. 너희를 위협할 것은 무엇도 없으니 두려워할 필요 없다.
– 음무어어어어…
– 음머어어어…
내 위로에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던 큰 뿔의 아이들이 하나둘 진정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순한 아이들이다. 단지 가혹한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조차 경계하며 살아갔기에 난폭함으로 자신을 지켜려고 한 것이겠지.
– 흠.
그건 그렇고 이 아이들은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 나야 새로운 아이들을 돌보게 됐으니 기쁘기는 하다만.
– 꾸룩, 꾸루루룩!
그것도 이 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아이들이니 더더욱.
“베히모스시여.”
– 음. 무슨 일인가?
다양하고 독특한 아이들을 내려다보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이 지역을 관리하는 지방관이라고 했던가. 소중한 추억이 담긴 크로이타를 성실히 관리해 주는 인간이기에 늘 고맙게 생각하는 인간이다.
“황제 폐하와 타일글레헨 백작 각하께서 보낸 짐승들입니다. 본래 제국에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짐승이니, 당신의 힘을 빌리고 싶다 하셨습니다.
– 그렇군.
그리고 지방관의 말에 이 상황을 이해했다.
– 걱정하지 말아라. 내 눈에 들어왔다면 어떤 아이든 최고의 삶을 누릴 터이니.
동시에 내 역할도 이해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이 아이들이 웃으며 자랄 수 있게 돌보면 된다. 그것이 내가 2천 년 전에도 했던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