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98)
로판 속 공무원 798화(799/945)
유벤 서부에서 봤던 사파리가 크로이타 인근에서도 재현되고 있었다.
수백 마리 단위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물소와 들소. 새로운 놀이터를 순찰하려는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타조. 남들이 무얼 하든 느긋하게 걸어 다니는 덩치 깡패 기린과 코끼리 등. 실로 동물의 왕국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이제 막 첫 삽을 뜬 상황이니 동물의 백국 정도로 하자. 왕국은 너무 과장했어.
“베히모스.”
– 아. 그대인가?
이 백국을 만든 영웅에게 다가가 말을 거니, 고개를 땅에 박다시피 숙이고 있던 베히모스가 스르륵 고개를 돌렸다.
– 그대와 황제가 보낸 아이들은 잘 돌보고 있다. 아주 순하고 건강한 아이들이더군. 몇 년만 지나면 크게 늘어날 거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짐승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 선물이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다행이다.’
난데없는 짬처리라고 귀찮아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역시 로이가스 황가의 가축들을 돌본 경력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어떤 짐승이든 기꺼운 마음으로 보듬잖아.
생각해 보면 베히모스는 트리카 제국의 멸망을 알게 된 직후에도 가축들을 성실히 돌봤다. 구덩이에 박힌 채 울다가도 가축들에게 밥을 줄 시간이 되면 도로 나왔었지.
역시 축산의 신이었던 존재답다. 베히모스를 믿고 짐승들을 수입한 건 훌륭한 선택이었어.
“기대하도록 하지. 이 아이들은 크로이타 인근뿐만 아니라, 주변 영지에서도 살게 될 테니까.”
– 그런가? 좋은 소식이로군. 낯선 환경에서 살아갈 아이들이니 집이라도 넓어야지.
내 말에 베히모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땅이 충분하다는 걸 말해줬으니 베히모스도 마음껏 짐승들을 번식시킬 거다. 그럴수록 제국이 수확할 수 있는 물소의 뿔도 늘어날 테고.
상상만 해도 기쁜 일이다. 유벤에서 수입한 게 아니라 제국에서 직접 채집한 물소 뿔. 이제 군수물자 100% 자급자족도 꿈이 아니다.
“그런데 무얼 하고 있던 거지? 땅에 특이한 것이라도 있나?”
전승공에게 좋은 선물을 준 것 같아 흐뭇한 것도 잠시. 다시 땅에 머리를 박으려던 베히모스를 불러 세웠다.
평소에는 조용히 배를 깔고 누워서 짐승들을 바라보거나, 그도 아니라면 순찰하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베히모스다. 아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이것저것 찾은 적은 없었다.
뒷산 수준의 덩치를 가진 베히모스가 고개까지 숙이며 땅을 훑어본다? 베히모스에게 본능적 호감을 느끼는 짐승들조차 흠칫할 일이다. 나였어도 말을 하는 빌딩이 나를 바라보면 움찔할 테니까.
– 별거 아니다. 새로운 아이들이 생겼으니 호수를 만들고 있었지.
“뭐?”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상당히 기괴했다.
“호수?”
– 저 아이들이 마실 물, 씻을 물이 필요하지 않나. 게다가 그대가 보낸 아이들 중에는 물속에서 지내는 아이들도 있다.
그 말에 악어와 하마 같은 짐승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정말 작정하고 관광특구를 만들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전부 긁어모았지.
하지만 베히모스가 자체적으로 호수를 만드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다. 설마 식수 공급도 축산의 일부라 베히모스의 권능으로 취급하는 건가? 짐승 사육과 연관된 일이면 전부 가능한 거고?
‘권능 대단하네.’
베히모스가 제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발견됐다면 대륙 국력 순위가 요동쳤을지도 모른다. 만약 겨울 삼국에 나타났다면 대륙의 대표적 약소국들이 중소국 정도로 떡상했을 수 있다.
레비아탄과 지즈도 활용도가 넘치는 치트급 존재지만, 베히모스는 가만히 두기만 해도 그 나라의 산업 자체가 뒤바뀔 테니. 고기와 가죽, 그 외 부속품들을 어마어마하게 확보할 수 있을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라. 우리의 편의를 위해 보낸 아이들이니, 우리도 마땅히 책임을 져야지.”
– 그러도록 하겠다. 허나 그대들은 이 아이들을 나에게 보낸 것으로도 충분히 책임을 다하였다. 나의 비호를 받는 것보다 최고의 대우는 없을 터.
자부심 가득한 베히모스의 목소리에 픽 웃음을 흘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최고의 부모이자 사육사에게 보내는 것만큼 최고의 책임이 어디 있을까.
– 헌데 작은 아이들은 같이 오지 않은 건가?
“이번에는 나 혼자 왔다. 아쉽나?”
– 작은 아이들은 내가 돌보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좋아했지. 이 아이들을 돌보는 입장으로서 어찌 기특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을까.
그렇게 말한 베히모스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짧게 소와 같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 음매애애애!
그러자 저 멀리서 작은 송아지 하나가 달려왔다. 부모의 부름에 후다닥 달려오는 아이처럼.
– 이 아이를 잠시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지. 그대의 작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이처럼 귀여운 아이들을 보고 싶으면 한 달 후에 오라고 전해다오.
“한 달? 그렇게나 오래?”
– 그 정도는 지나야 이번에 온 아이들이 완벽히 적응하고, 이 장소도 아이들을 위한 곳으로 변할 것이다.
전문가의 말이니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조만간 타니안의 결혼식이 있어서 다시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달 정도면 신성교국에 다녀오고, 신년하례식까지 치렀을 테니 느긋하게 베히모스를 보러 올 수 있다.
‘신성교국이라.’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귀국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출국해야 하는 내 팔자가 너무도 처량했다.
허나 라테르의 결혼식에 참석한 순간부터 내 신성교국 입국은 막을 수 없는 미래다. 타국 부원들의 결혼식에 전부 불참했다면 상관없으나, 셋 중 하나라도 참석했다면 나머지 둘도 참석해야 한다. 그래야 특혜니 편애니 그런 숨 막히는 논란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아빠 없는 동안 새로운 친구랑 놀면 되겠어.’
어느새 나에게 다가온 송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아빠가 연이어 출국을 한다면 우리 아이들과 놀아줄 수 없다. 그래도 송아지라는 새로운 친구가 임시 거주하게 되었으니, 아빠의 공백이 그럭저럭 채워질 거라 믿는다.
– 음매애애애.
‘귀엽긴 하네.’
그리고 성체라면 집에서 기르기 곤란하지만, 송아지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소가 덩치만 작으면 애완동물로 기르기 딱 좋은 동물이기는 하잖아.
***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새로운 태양이 뜰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는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에 접어들었다는 말. 조금만 지나면 12월 중순에 접어든다는 말.
‘결혼식이 코앞.’
나와 알렉산드리아나 자매님의 결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의미기도 하다.
덕분에 정숙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신성교국이 점점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차기 성자와 추기경의 결합을 자기 일처럼 축하하며, 오랜만에 겪는 교단의 경사에 다들 기뻐하고 있다.
비록 결혼 전에 새로운 생명을 가졌다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자 ‘얼마나 부모 얼굴이 보고 싶으면 벌써 왔겠습니까.’ 같은 말로 우리를 다독여줬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의 일탈을 꾸짖기보다 감싸 안는 걸 택해주셨으니 말이다.
– 넌 진짜 역사에 남을 거다.
소중한 친우도 나의 미숙함을 질타하기보다 웃는 걸 택했으니까.
– 설마 차기 성자가 혼전 순결을 깨부술 줄은 몰랐어. 그것도 상대가 추기경일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
통신구 너머의 에리히 형제님은 연신 웃음을 흘렸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내 충격 고백에 딱딱히 굳었었지. 그럼에도 금방 웃는 걸 보면 에리히 형제님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그동안의 경험이 에리히 형제님을 강하게 만든 걸 수도 있고.
– 그건 그렇고, 신성교국 사람들이 의리는 확실하네. 몇 개월 전에 임신한 걸 누구도 모르고 있잖아.
그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지요. 저에게는 실로 과분한 사람들입니다.”
형제님의 말이 맞다. 알렉산드리아나 자매님이 새로운 생명을 품은 것도 어언 반 년이 넘어간다. 상당히 긴 기간이었지만 자매님의 혼전 임신은 신성교국 사람들 외에 아무도 모른다.
그저 자매님이 휴직 중이라는 것만 알 뿐. 대륙 전체에 퍼진 세속 국가들의 눈과 귀조차 자매님에게 닿지는 않았다. 신성교국의 모든 형제자매님들이 합심하여 함구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에리히 형제님은 자매님의 임신을 빠르게 알았을 거다. 에리히 형제님은 제국 감찰성 장관의 동생이자 제국의회 의원이니까. 이런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게 접할 자격이 있으니까.
– 다른 애들한테는 말했어?
“아직입니다. 형제님은 직접 신성교국까지 오실 예정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가장 먼저 말씀드려야지요.”
– 아.
형제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하. 형제님께서 가슴 따뜻한 분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타국의 친우들을 위하여 국경까지 넘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보고 배워야 할 미덕입니다.”
– 미덕은 무슨.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최대한 참는 게 보이는 형제님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형제님이 저렇게 뚱한 이유는 잘 알고 있다. 신혼 중임에도, 막 자식을 본 상황임에도 타국을 전전하는 게 마땅치 않은 것이겠지.
그래도 어쩌겠나. 제국이 우리의 친우인 에리히 형제님을 가만히 두지 않는데.
“유벤에는 아이와 함께 가셨다고 했지요.”
– 어, 그랬지.
“이번에도 함께 오십시오. 형제님의 아이면 제 조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축복이라도 내려주겠습니다.”
그 말에 어두웠던 안색이 급격히 밝아졌다.
초보 아빠라도 아빠는 아빠라는 건가. 자신의 피곤함보다는 아이의 행복에 더 집중하고 있다.
‘나도 저렇게 되겠지.’
몇 달 후면 세상에 나타날 내 아이. 나와 같은 피를 공유하는 유일한 가족.
잠깐 상상한 것임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의 아이를 볼 때도 귀여웠는데 내 아이는 대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이러다 성자의 의무보다 아비의 의무에 더 열중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아직 나이가 차지 않아 성자 앞에 차기라는 단어를 붙이고 있는데, 정식 성자가 되기 전부터 심각한 시련과 마주하게 됐다.
그래도 이런 귀여운 시련이라면 환영이다. 천상의 주께서도 어려울지언정 불가능한 시련을 하사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럼 결혼식 때 뵙겠습니다. 조카에게 미리 이 삼촌 칭찬 좀 하고 와주십시오.”
– 머리처럼 마음도 하얗다고 해줄게.
“하하, 그거 좋군요.”
조카님이 그 말을 알아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