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99)
로판 속 공무원 799화(800/945)
베히모스가 맡긴 송아지는 아이들의 열렬한 관심과 애정을 받게 되었다.
딱히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다. 원래 우리 저택에 첫 입주한 동물은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게 전통이니까. 마네랑 미네도 첫 입주했을 때 온갖 핸들링을 당하며 신고식을 거하게 치렀지. 멀리서 보면 빨래라도 당하는 것처럼 쥐어짜였었어.
다만 송아지는 아무리 새끼여도 덩치가 있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빨래 당할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으니, 그저 애정 어린 손길만 잔뜩 받았다.
– 음매애애애~
그리고 소는 현명하고 눈치 빠른 동물이라고 하던가. 작은 인간 아이들이 자신을 귀여워하는 걸 아는지, 송아지는 맑은 울음소리를 내며 아이들의 손길을 반겼다.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낯선 환경, 낯선 손길에 당황해서 겁을 먹었다면 이리저리 날뛰었을지도 모른다. 송아지가 저택에서 날뛰면 골치 아팠을 텐데, 순하고 얌전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물론 베히모스의 심성을 생각하면 그것도 고려하여 저 송아지를 맡긴 걸 거다. 베히모스는 거대 짐승 삼인방 중 가장 온화하고 지성적인 편이니까.
“우리 할부지가 키우는 애랑 또같태! 근대 얘가 더 짜가!”
황태녀의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황제의 동물 농장에는 대체 없는 게 뭘까. 닭에 소에 말에 개에 온갖 것이 다 있잖아. 예전 스티니예 왕국에서 상납한 백담비 두 마리도 상황이 돌보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이러다 동물 농장을 벗어나 동물원 수준으로 진화할 것 같다.
“때부!”
“예, 전하.”
“이 짜근애! 이름은 모야?”
그 말에 눈을 끔뻑거리는 송아지를 바라봤다.
그러게. 얘는 당분간 뭐라고 불러야 하지? 베히모스가 영구적으로 양도한 게 아니라 임시적으로 맡긴 아이라, 딱히 이름을 생각해 두지는 않았는데.
‘그냥 미니모스라고 할까.’
베히모스나 이 송아지나 소처럼 생긴 건 매한가지. 그럼 작은 베히모스라는 뜻으로 미니모스라 부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정말 미니모스라 부르면 내 위상이 추락할 미래도 뻔하다. 부인과 아이들, 사용인들에게 집중포화를 당하며 내 작명 솜씨를 의심받겠지. 굳이 겪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미래다.
“전하께서 지어보시겠습니까?”
“웅? 내가?”
그래서 황태녀에게 역으로 제안하자, 황태녀는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그 아이는 베히모스가 잠시 맡긴 아이입니다. 한 달 정도 후면 다시 베히모스에게 돌아가겠지만, 그동안은 전하의 친구로 지낼 아이지요. 친구에게 이름을 선물로 주는 건 어떻습니까?”
“우아!”
무려 이름을 선물로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난데없이 찾아온 행운에 황태녀는 눈을 반짝이며 송아지의 몸을 열정적으로 쓰다듬었다.
“내, 내가 지어도대? 진쨔?”
“그럼요. 동생들도 좋아할 겁니다.”
“웅. 누나가 지어. 누나는 누나자나.”
적절한 타이밍에 페디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태녀는 더욱 기뻐했다.
“마자. 이런건 언니거야!”
“이름! 언니가 지어!”
“예쁘게~ 지어져~”
심지어 세쌍둥이까지 페디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장하다, 우리 예쁜 자식들. 이 아빠는 착한 아이들을 둬서 너무 기뻐요.
“그럼 배히모쓰가 보낸거니까! 배히모스 쥬니어!”
?
“베히모스… 주니어요?”
“웅! 얘도 배히모쓰도 비슷하개 생겻짠아! 그래서 쥬니어!”
해맑은 대답이라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동시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 미묘한 안도감이 몰려왔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내가 생각한 미니 베히모스, 황태녀가 정한 베히모스 주니어. 둘 다 동일한 의미고 비슷한 이름이다. 처음에 지으려고 했던 미니 베히모스는 결코 해괴한 이름이 아니었다.
“좋은 이름이군요.”
그렇기에 진심을 가득 담아 미소를 지었다. 황태녀는 저 송아지에게 이름이라는 선물을 주었고, 나에게는 안도라는 선물을 주었다.
앞으로 나한테 작명 솜씨로 지적하는 사람이 나오면 위축되지 않고 당당해지리라. 황태녀 전하도 나와 비슷하다는 말과 함께.
이 제국의 차기 주인이 나와 함께 한다는 말과 함─
“긴거가튼대. 다른걸로 하면 안대?”
“응? 그릉가?”
‘아.’
설마 페디가 지적할 줄은 몰랐다.
“그럼 쥬니라고 하쟈!”
“죠아!”
그래도 길지 않은 지적이라 다행이다.
12월 중순이 다가올수록 저택은 소란스러워졌다.
아이들은 정원에서 눈싸움을 하기 바빴고, 눈덩이를 돌돌 굴려 작고 아담한 눈사람을 만들었으며, 어디서 들은 건지 이글루로 만들어보고 싶다며 졸랐다.
그리고 이 소란 속에서 나 홀로 고심에 빠졌다.
‘선물로 뭘 줘야 하지?’
여명 교단의 차기 성자인 타니안과 시성성 성장인 알렉산드리아나 추기경의 결혼.
동네 평민의 결혼식도 맨손으로 가면 욕을 먹는데, 거물 둘의 결혼은 말할 것도 없다. 단순히 체면을 차리는 수준을 넘어서 받는 사람이 감탄할 만한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제국과 신성교국은 에이만카 대제 시절부터 우호 관계를 유지했으니까. 제국의 집권 정당성을 위해 여명 교단과 철저히 협력해야 하니까.
아니, 애초에 공적인 요소를 떠나서 타니안은 우리 아이들에게 축복을 내려준 은인이다. 내 은인도 아닌 자식의 은인이 결혼하는 걸 외면한다? 그게 사람이냐.
‘덕분에 내 발로 신성교국까지 가는 거고.’
눈싸움을 하느라 지쳤는지, 복슬복슬한 풍요의 털에 몸을 묻으며 휴식을 취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 아이들을 두고 해외로 가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다.딱히 황제의 은근한 출국 요구나 압박이 있던 것도 아니다.그저 제국과 신성교국의 우호 관계, 이미 라테르의 결혼식에 참석한 전례, 아이들이 입은 은혜를 생각하면 반드시 가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 황제의 명령보다 더 무겁고 두려운 인간의 도리다.
‘차라리 명령으로 가는 거면 반항이라도 할 텐데.’
진심으로 아쉽다. 명령은 무시하거나 우회할 방법이라도 있잖아. 게다가 명령 없이 자발적으로 외교 활동에 나서는 건 손해 보는 기분이기도 하고.
‘망할 길가 놈.’
나랑 에리히가 국경을 넘나드는 걸 보면 얼마나 뿌듯해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형제가 나란히 특급 노예라며 기뻐하겠지.
…
‘뭘 줘야 하지?’
상습 황제 비난을 마치고 다시 선물에 대해 고민했다.
골치 아프다. 류티스에게는 사인을 한 검을 미리 주었고, 라테르에게는 트릭시와 둘째 장인어른의 논문을 건네줬다. 검과 마법을 상징하는 녀석들에게 눈이 뒤집할 만한 선물을 줬다.
그러니 타니안에게는 종교를 상징할 만한 선물을 주는 것이 옳은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유감스럽게도 나에게 그런 성스러운 물건은 없다.
솔직히 내가 살아있는 복자기는 한데, 그 복자라는 칭호도 내 능력으로 얻은 게 아니라 여명 교단이 시복해 준 거다. 여명 교단의 시복이 없었다면 난 종교와 큰 연관이 없는 일반인에 불과하다.
신들의 명예 제사장이자 은인. 이 역시 타이틀은 거창하지만 실속은 없다. 물론 신들과의 인연 덕에 이것저것 얻은 건 있지만, 그렇다고 타니안에게 지즈나 정령을 선물로 줄 수는 없잖아.
– 그래서 나 찾은 거야?
‘예.’
결국 고민 끝에 영원한 푸른 하늘에게 말을 걸었다.
에넨의 아들에게 결혼 선물을 주려고 하는데, 혹시 뭐 괜찮은 아이디어 없냐고.
–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니 재화가 적당하지 않아?
‘저도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랬겠지만, 하필 차기 성자와 추기경이지 않습니까. 종교적 의미가 있는 선물을 줘야지요.’
– 복잡하네. 그냥 주는 대로 받지.
작게 투덜거린 것과 달리 영원한 푸른 하늘은 침음까지 흘리며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 침음을 들으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이 유감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이기는 하나, 그래도 에넨보다 먼저 태어난 태초의 신이다. 그런 신이 진심으로 고민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
– 모르겠어.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허나 두근거림은 빠르게 끝났다.
통탄스럽다. 내가 그렇게 큰 기대를 한 건가? 신한테 종교적 색채가 강한 선물을 묻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 아.
‘왜 그러십니까? 뭐 있습니까?’
– 아, 아니다. 이걸 결혼 선물로 주기는 좀…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선물은 포장하기 마련이니까요.’
처절하게 꺼져가던 희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선물로 적당한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하다. 내가 좋은 선물을 마련할 능력은 없어도, 멋지게 포장할 능력은 있으니까.
– 에넨이랑 콘스탄티나가 막 태어났을 때는 내가 돌봐줬다고 했지? 걔네가 아직 힘을 다루는 것에 미숙할 때, 대륙에 강림하는 연습을 시킨 적이 있었거든?
‘강림이요?’
– 아주 간혹 신이 실체를 가지고 대륙에 강림하는 경우도 있어. 뭐,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잠시 입을 다물었던 영원한 푸른 하늘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말 그대로 미숙할 때라 처음 발을 디딘 곳에 에넨의 발자국이 깊게 남았어. 태양의 힘을 가득 담아서인지 지워지지도 않더라. 그거 아직 북방에 있을걸?
‘와.’
절로 감탄이 나왔다. 신이 대륙에 처음으로 남긴 발자국.그건 종교인이 아니라 일반인이 받았어도 가보로 간직할 만한 선물이잖아.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선물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다.’
– 그러면 다행이기는 한데. 발자국을 선물로 줄 수 있겠어…?
‘땅을 통째로 뜯어가면 되죠. 양손으로 들 정도의 크기면 될 겁니다.’
내가 살던 세상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도 있었다.신의 발자국 화석이라고 불가능할 게 있을까.
영원한 푸른 하늘이 말한 대로 북방으로 향했다.
북방 중에서도 변두리라 인적이 드문 곳. 지즈가 둥지로 삼은 곳과도 거리가 있어서 사람이 갈 일이 없는 곳.
“와.”
그곳에서 딱 봐도 신성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발자국을 볼 수 있다.
‘불… 타는군요.’
– 그러게. 저거 아직도 저러고 있네?
겸사겸사 발자국 주변에는 자그마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 태양신이라 그런지 에넨이 낸 불이 오래가기는 했거든? 그런데 설마 아직도 타고 있을 줄은 몰랐지.
‘…….’
– 저걸로 괜찮겠어? 다른 선물 생각해 볼까?
‘아니요. 이거면 충분합니다.’
영원히 타오르는 태양의 불꽃. 오히려 좋아.
– 참, 가져가기 전에 에넨한테 미안하다고 기도는 올려.
‘예? 기도요?’
– 저거 미숙할 때의 흔적이라 에넨도 좀 부끄러워해. 신성력까지 써가며 숨기고 있던 건데, 너는 나랑 같이 있으니까 바로 찾은 거야.
신의 흑역사라는 말에 잠깐 움찔했지만 금방 마음을 가다듬었다.
정녕 흑역사라 생각했다면 내가 이 자리에 오는 것을 막았을 거다.
‘제가 잘 쓰겠습니다.’
그래도 영원한 푸른 하늘의 조언에 따라 에넨에게 기도를 올렸다.
흑역사가 아니라 위대한 첫걸음으로 어떻게든 포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