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04)
로판 속 공무원 804화(805/945)
타니안의 결혼식은 하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아직 적법한 나이가 되지 않아 차기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이미 성자 취급을 받는 타니안과 시성성 성장인 알렉산드리아나 추기경의 결혼식. 이 둘의 결합만으로도 온 대륙이 주목할만 한데, 결혼식 사회를 무려 교황이 맡아서 진행했다. 심지어 추기경 품에 있는 아이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배려까지 보였다.
이는 교황이 타니안과 알렉산드리아나 추기경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이며, 이 둘을 교단의 미래라고 과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교단은 당장이라도 세대교체가 가능할 만큼 인재풀이 넓고 튼튼하다는 과시.
물론 굳이 과시하지 않아도 차기 성자와 30대 추기경이 교단의 미래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무리 정치라는 게 당장 내일의 일도 알 수 없는 심연일지언정, 저 둘이 실각할 정도면 교단이 박살 나야 가능하니까.
‘그래도 암암리에 아는 것과 공인하는 건 다르지.’
비공식과 공식은 고작 글자 하나 차이지만 그 위상은 천지 차이다. 게다가 곧 연말 행사와 연초 행사가 들이닥칠 테니, 이 충격이 가시기 전에 타니안은 사교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이건 교황이 작정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상당한 위세를 자랑하는 타니안을 적극적으로 키우려고 작정했어.
그리고 그 이유는 교황 교체라는 대형 이벤트 과정에서, 교단이 동요하지 않고 굳건하기를 바라기 때문이겠지.
‘이 정도 복선은 깔아야 양위가 가능하구나.’
씁쓸했다. 생각해 보면 상황도 양위 준비를 상당히 공들여서 하고, 북방 정벌이라는 어마어마한 업적으로 양위 잡음을 최소화했었다.
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치 괴물인 상황조차 양위를 가볍게 진행하지 않았다. 상황과 대등한 존재인 교황도 양위를 위해 이런 공을 들이고 있다.
‘은퇴도 능력이었어.’
반성하자. 대륙의 정점이나 마찬가지인 자들도 양위와 은퇴를 위하여 이런 노력을 기울이거늘, 나는 그저 입으로만 퇴직을 떠들었다. 자유에 걸맞은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한 후계자, 완벽한 명분, 수 년에서 수십 년도 감수하고 인내. 이 모든 것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음만 앞선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야.
‘아직 1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한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농축된 공무원 생활을 해서 문제지, 내가 공무원으로 지낸 세월은 10년도 되지 않았다. 어째서 서른도 되지 않은 내가, 10년도 일하지 않은 내가 자유를 손에 얻고자 한 걸까. 뭐가 그리 급하다고 서둘렀던 걸까.
교황과 타니안, 알렉산드리아나 추기경 덕분에 기다림의 미학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선현의 말씀을 떠올려냈다.
앞으로 오늘의 일을 잊지 말고 차분히 나아가자.
귀국하자마자 서둘렀던 이유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
“성 칼 형제님 오셨습니까? 자, 어서 앉으시지요.”
이 개 같은 새끼 때문에 탈주와 자유를 꿈꾸던 거였어. 한시도 이 새끼 아래에서는 도저히 못 있겠기에.
“폐, 하. 성 칼이라니요. 어찌 그런 황송한 말씀을 하십니까.”
“황송하다니요. 형제님보다 성인의 자격에 걸맞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근래 벌어진 기적 같은 일 중에 형제님이 관여하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까?”
성호를 긋는 황제를 보니 절로 주먹이 움찔거렸다.
저 망할 놈. 표정은 진중하기 짝이 없지만 눈가는 아까부터 파르르 떨렸다.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것처럼.
“제가 비록 황제지만, 주를 경외하며 주의 가호를 받는 필멸자라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헌데 신의 총애를 받고 기적을 일으키는 성인이 저와 함께하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참으로 황송한 말씀이지만, 소신은 시성을 받지 않았습니다.”
목 끝까지 치솟은 쌍욕을 참으며 겨우겨우 이성적인 반박을 내뱉었다.
그래, 나는 성인이 아닌 복자다. 교황에게 생전 시성을 장담 받은 것뿐이지, 정말로 성인이 된 것은 아니다. 시성이라는 게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니까.
게다가 지금은 차기 성자와 추기경의 결혼이라니 빅-이벤트가 발생한 직후잖아. 이 상황에서 생전 시성을 진행하면 기껏 교황이 띄운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결혼식으로 향했던 시선이 시성으로 향할 테니.
그렇기에 최소 수개월은 지나야 생전 시성이 논의될 것 같으나─ 황제는 내 논리적 반박에도 불구하고 티배깅을 멈추지 않았다.
“형제님. 뒤를 봐주시겠습니까?”
“뒤는 갑자기 왜…”
황제의 말에 따라 뒤를 돌아보자마자 몸이 굳고 말았다.
초상화. 아무리 봐도 나를 그린 듯한 초상화가 벽에 걸려있었다.
그것도 평범한 초상화가 아닌 뒤에 찬란한 광원이 그려진 초상화가.
성인에게만 허락된 숭고한 빛이 그려진 초상화가.
“교단은 이미 형제님을 성인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만.”
“아니, 그, 저건.”
“어차피 사후나 생전이나 결과는 같으니 그냥 받아들이는… 크흐흐흫!”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 다시 황제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황제는 허리까지 숙여가며 웃고 있었다.
망할 새끼. 기껏 타국에 다녀온 신하에게 위로는 못 할망정 비웃기나 하는 새끼.
“미안하네, 장관. 내가 최대한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어.”
이제 존대까지 갖다 버린 황제는 더욱 격렬하게 웃었다.
“내 앞에 있는 장관과 초상화의 장관이 겹쳐 보이니, 이걸 어떻게 참을 수 있겠나!”
황제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나는 그저 마음으로 울었다.
어째 초상화 속의 나도 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마 기분 탓일 거다.
“뭐, 아무튼 축하하네. 이거 장관이 준비한 결혼 선물은 성 칼이 건설한 성 타니안 대성당이 되겠어.”
듣기만 해도 가슴이 옹졸해지는 흉흉한 이름이라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과연 저런 흉흉한 걸 선물로 줘도 되는 건지 진심으로 의문이다.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은 부인들의 다독임 덕에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부인들도 남편이 살아서 성인이 된다는 영광에 기뻐하였으나, 적어도 나를 비웃기보다는 부담이 클 거라며 걱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축하와 걱정을 동시에 주는 상냥함에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남편의 명예보다는 짊어져야 할 짐에 주목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야.
‘그 새끼는 이런 기본적인 배려도 없어.’
이윽고 감동은 원망으로 돌변했다. 황제 그 새끼가 내 생전 시성 소식에 조금이나마 난색을 보였다면 이렇게 상처받을 일도 없었다.
시성은 사후에 이루어진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붕괴되었을 때, 살아서 복자가 아닌 성인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떤 여파가 일어날지 함께 고민해 줬다면 이렇게 분노할 일도 없었다.
‘걔는 뭐 없나?’
그렇기에 정원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머리를 굴렸다.
이 세계에서 신하의 공은 황제의 공. 내가 온갖 기적을 세웠다면 그 여파가 반드시 황제에게도 향한다. 내가 살아서 성인이 될 위업을 세웠다면 황제에게도 기적의 지분이 있다.
잘 생각해 보자. 내가 일으킨 기적 중 황제도 지분을 주장할 만한 사건이 뭐가 있을까. 어떤 논리를 펼쳐야 교단이 그놈에게도 초상화를 보내줄까.
‘무난한 건 세계수 부활이기는 한데.’
아펠스가 불태운 세계수가 현 황제의 즉위 기간에 부활했다. 이는 현 황제의 덕이 신에게 닿아서 일어난 기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다만 이건 아무리 잘 쳐줘도 사후 시복이다. 성인은 꿈도 꿀 수 없는 수준이며, 복자조차 죽어서 도달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세계수가 막 부활했을 때의 충격은 내가 다 흡수해버려서 다시 써먹기는 약하지.
그러면 정주민과 긴 시간 대립한 북방 유목민들이 황제에게 굴복한 것? 아니야, 이걸 내세우면 현 황제가 아니라 상황이 끌려 나오게 돼.
아니면 2천 년 전의 고대 짐승들이 다시 눈을 뜬 거?
‘이건 괜찮네.’
레비아탄과 베히모스, 지즈는 오늘날 대륙의 마법과 기술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생물들이다. 이걸 잘 포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기는 해.
좋아. 2천 년 전에 잠든 짐승들마저 일깨우는 위대한 황제. 상식을 깨부순 존재들이 복종하는 위대한 황제. 이렇게 여론전을 펼치면 어떻게든─
‘뭐야.’
욕망에 머리가 잠식되어가던 중, 품속에 있던 통신구가 빛을 내뿜어 움찔하고 말았다.
순간 황제에게 내 야망이 들킨 줄 알았으니까. 역시 음모를 꾸미게 되면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구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에도 의심하게 되니 원.
– 각하. 장관 비서입니다.
“어, 무슨 일이야?”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연락을 받자, 평소처럼 무뚝뚝한 장관 비서의 얼굴이 보였다.
이 못난 장관을 대신하여 감찰성을 책임지는 특급 인재. 나보다 젊었다면 차기 감찰성 장관이 되었을 기둥. 태양전에 사는 누군가와 달리 보기만 해도 흡족한 얼굴이다.
– 각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결례를 무릅쓰고 연락드렸습니다.
“나한테?”
허나 흡족한 얼굴과 달리 썩 달가운 이유로 연락한 건 아니었다.
사실상 장관 대리 수준의 권한을 쥔 비서다. 반드시 장관의 결재가 필요한 게 아닌 이상 알아서 업무를 처리하고, 내 결재가 필요한 일마저 나한테 먼저 독촉하지 않았다. 분기나 반기에 한 번 일괄 결재하면 되니까.
그럼에도 비서가 먼저 연락을 걸었다? 절대 평범한 일은 아니다.
“말해봐.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면 내가 해야지.”
– 그것이…
잠깐 망설이던 비서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 나르젠 가문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나, 감찰을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 예?
“응?”
다소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나와 비서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나르젠 가문 감찰 이후에 나올 말을 기다리기 위해.
– 저, 각하. 나르젠 백작가입니다.
비서는 이 이상 설명이 필요하냐는 듯한 눈빛이기에.
뭐지? 비서가 저렇게 반응할 정도면 감찰을 진행하기 어려운 사유가 있다는 건데?그런데 일개 백작가가 감찰을 피할 정도의 여력이 되나?
‘…나르젠?’
그런데 왜일까. 나르젠이라는 이름이 묘하게 익숙하다.
– 각하의 고모 되시는 분께서 나르젠 가주의 며느리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
비서의 추가 설명을 듣고 나서야 생각났다.
내 고모 중 한 분이 나르젠 가문으로 가셨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