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06)
로판 속 공무원 806화(807/945)
해를 넘기기 전에 감찰성 청사로 출근하는 빅-이벤트가 터지고 말았다.
사실 조만간 청사로 출근할 예정이기는 했다. 내가 이리저리 쏘다니는 동안 장관의 결재가 필요한 서류들이 잔뜩 쌓였을 수 있으니까. 그런 건 새해가 되기 전에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게 가장 편하니까.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이 출근이 고모의 가문을 털기 위한 출근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일괄 결재가 아무리 편하더라도 핏줄에게 칼을 들이미는 것보다 좋겠냐고. 애초에 일괄 결재할 서류에 감찰 승인 서류가 끼어있을 텐데.
“장관 각하를 뵙습니다.”
“””각하를 뵙습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장관 비서가 있는 곳으로 직행하자, 비서와 비서실 인력들이 일제히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평소에도 깍듯했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더욱 딱딱하고 기합이 넘쳤다. 내 눈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행동은 피하려는 것처럼.
“다들 앉아라. 오랜만에 보는 상사가 낯설겠지만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일단 예의상 그렇게 말했다.
비서실 인력들은 비서의 지휘 아래 감찰성의 사무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들. 이는 감찰성이 확보한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며, 나르젠 가문에 소란이 생겼다는 것도 안다는 의미다.
자신들의 최고 상사인 장관의 혈육이 감찰 위기에 처했다는 기괴한 상황. 최고 상사가 이 감찰을 잠시 보류했다는 심장 떨리는 상황. 그러니 내가 분노를 터뜨릴까 두려워 눈치를 보는 것일 터.
“비서.”
“예, 각하.”
“나르젠 관련 정보 전부 가져와.”
그렇기에 더 입을 열기보다는 상황 파악을 택했다.이 분위기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없다. 확실한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비서실 전체에 긴장 상태가 유지되겠지.
그리고 아버지께 공명정대한 처리를 하겠다고, 억울한 자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러니 이번 일만큼은 내가 직접 살펴야 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주 사소한 것부터 결정적인 단서까지. 나르젠의 일원부터 가신, 사용인들─ 그들과 접촉한 모든 관련인들까지 전부.
“그리고 집행부장 불러.”
“부장만 부르면 되겠습니까?”
“어. 차장까지 동원하는 건 좀 그렇지.”
감찰성의 대외적 이미지만 아는 사람은 집행부장을 두려워하겠지만,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차장의 등장에 더 기겁할 거다.
차장은 주로 암살 담당이고,감찰성이 암살까지 동원한다는 건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의미니.
나르젠 백작가. 백작위를 보유하여 고위 귀족으로 분류되나, 영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관료 귀족 가문. 가문 명의의 땅이나 건물은 좀 있어도 정당하게 하사받은 영지는 존재하지 않는 가문.
영지가 곧 힘인 이 세계에서 영지 없는 귀족은 영지가 있는 귀족에 비해 다소 밀릴 수밖에 없다. 영지에서 나오는 재물, 인력 등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 이 막강한 권한이 귀족의 진정한 힘이니까.
허나 나르젠 백작가는 영지가 없는 관료 귀족이면서 조부님과 정략혼으로 맺어졌다. 아무리 현 제국백들의 위상과 조부님 시기 제국백들의 위상이 달랐어도, 객관적으로 보면 크라시우스 가문은 수도권에 영지를 가진 알짜배기 가문이다. 나르젠 백작가에게 딸까지 보내며 맺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조부님은 나르젠으로 막내 고모를 보냈다. 조부님이 보기에 나르젠 백작가는 영지가 없을지언정, 그 단점을 능가할 장점이 있었다는 뜻이다.
‘제법 명문이었네.’
그리고 조부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비서가 건넨 나르젠 백작가의 정보. 그 정보 중 가장 위에 적힌 내용은 조부님이 나르젠 백작가를 택한 이유가 적혀있었다.
[ 나르젠 백작가 가주, 장 나르젠 오브 밀키언 백작. 대법관 승진 유력. ] [ 전대 가주, 하인츠 나르젠 오브 밀키언은 사법성 법무부장 역임. 제국 수석 대법관 후보로 논의되기도 함. ] [ 소가주 발터 나르젠은 법무부 2과장 역임 중. ]나르젠 얘네, 사법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명가였다. 그것도 초대 가주 때부터 지금까지 반드시 사법 관련 공무원으로 활동한 엄청난 명가.
애석하게도 나는 사법 쪽과 연관이 없는지라, 사법 분야의 네임드인 나르젠을 모르고 있었다. 내 기억 범위는 같은 행정부, 잘 쳐줘야 군부까지니까. 그 너머는 잘 몰라.
“비서.”
“예, 각하.”
“이거. 잘못 기입된 거 아니지?”
“정보부에서 몇 번이나 확인한 결과입니다.”
이윽고 다음 내용을 보다가 탄식을 한 번, 비서의 확답을 듣고 두 번 내뱉었다.
“많이도 해먹었군.”
나르젠 백작가의 재산 현황이 상당히 심상치 않았으니까.
아무리 이것들이 사법 명가라는 걸 감안해도, 영지도 없는 무소유 가문이라는 걸 고려하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수치다. 초대 가주 때부터 황실에게 받은 연봉을 전부 저축했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그럴 리 없다. 나르젠 백작가는 백작가라는 이름에 맞게, 사법 명가라는 명성과 어울리게, 그 기계적인 조부님의 선택을 받은 가문답게 귀족 다운 소비를 보이는 가문이다. 받은 연봉을 저축하기는커녕 탕진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래저래 돈 받을 구석은 많았겠어.’
생각해 보면 사법 종사자만큼 돈을 받기 쉬운 입지도 없다. 재판 전에 제발 잘 부탁한다고 슬쩍, 법 관련으로 자문이 필요하면 도움 좀 달라고 잔뜩. 작정하고 긁어모으면 금화로 산을 만들기는 충분하다.
심지어 주요 고객들이 평민이나 중산층도 아닌 귀족들이지 않나. 게다가 사법 쪽 도움이 필요하다면 십중팔구는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이니, 고객들의 지갑은 절박함과 비례하여 활짝 열렸을 거다.
‘…이 정도면 평범한 수준인데?’
그 와중에 아주 조금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르젠 백작가는 특정 가문을 과도하게 모함하거나, 백성을 핍박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감히 역천을 꿈꾼 것이 아니다.
그냥 단순하게 많이 해먹었다. 보는 사람이 순수하게 걱정될 정도로 과도하게 해먹어서, 감찰성의 눈과 귀에 들어갈 수준에 이른 거다.
‘미친놈들.’
어떻게 보면 이게 더 신기하다. 부패를 주도하기보다는 주는 돈을 받아먹는 입장일 텐데, 그 한정적인 입장만으로도 이 정도 부패를 선보이다니. 좋은 머리로 이딴 짓이나 하고 있어.
“다른 혐의는 없지?”
“예. 그게 전부입니다.”
그게 전부, 라고 표현하니 괜히 사소해 보인다. 실제로는 사람이 이렇게 부패할 수 있구나 감탄이 나올 정도의 사안이거늘.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장관이 웬 서류 더미를 들고 찾아왔다.
난데없는 상황이라 조금 당혹스러웠다. 혹시 황제의 결재가 필요한 서류인 건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장관이 휴가를 마치고 감찰성에 복귀하기라도 했나?
혼란스럽다. 장관이 맨몸으로 오는 건 그러려니 싶지만, 서류까지 들고 오는 건 대체 무슨 일일까.
“폐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나이다.”
그것도 불안할 만큼 진지한 표정으로 말이다.
“짐과 장관 사이에 실례라고 할 게 어디 있겠나. 편히 말하게.”
“황송하옵나이다.”
그래도 일단은 불안감과 찝찝함을 억누르며 자리를 권했다.
장관에게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기에는 생전 시성으로 너무 놀렸다. 당분간은 장관에게 무난하고 부드럽게 대해야 장관의 눈이 뒤집히지 않을 터.
“그래, 무슨 일로 왔나.”
“조만간 사법성과 법원 쪽에 칼을 휘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한숨이 나올 뻔했다.
장관이 서류를 들고 왔을 때부터 보통 일은 아닐 거라 짐작했지만, 다짜고짜 사법 쪽을 향한 감찰을 선언할 줄이야.
“줘보게.”
“예, 폐하.”
그렇기에 장관이 들고 있던 서류를 요구했고,
[ 나르젠 백작가를 중심으로 한 사법 명가들의 부패 및 사법에 대한 신뢰 재건을 위한 감찰 건의안. ]첫 문장부터 직설적이고 거창한 것이 반겨주었다.
그보다 나르젠 백작가라. 내 기억에 따르면 나르젠 백작가는 제국 초창기부터 이어진 관료 가문이었다. 그 능력이 뛰어나 상황께서는 그들이 뒷돈을 챙기는 걸 묵인하셨고, 크라시우스 가문과도 제법 굵은 선이 있어서 가만히 두고 있었지.
다만 묵인하는 사이에 이렇게 해먹을 줄은 몰랐다. 이 추악한 부패를 장관이 직접 공개할 줄도 몰랐고.
“어려운 결정을 했군.”
“존엄한 황실의 명예와 국익 앞에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살며시 고개를 숙이는 장관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장관.”
“예, 폐하.”
“다시 써오게.”
도로 서류를 돌려주자 장관이 당황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제목에 나르젠 백작가 말고 다른 가문을 넣게. 감찰에서 빼라는 건 아니지만, 주연에서 조연 정도로 내려줄 수는 있지.”
“폐하. 참으로 황송한 말씀이오나, 어찌 대의 앞에 사사로운 정을─”
“누가 봐도 나르젠 홀로 짊어질 처벌을 나누기 위해서 사법 전체를 끌고 온 건데, 이제 와서 그래봤자 설득력이 없어.”
그러자 장관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대충 봐도 나르젠 백작가의 부패는 상당했다. 아무리 명가여도 영지도 없는 가문이 쌓을 부가 아니었고, 아무리 명가여도 홀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르젠 백작가는 주동자 중 하나일 뿐, 사법계에 거미줄처럼 얽힌 파벌이 있다는 의미다. 그것도 아주 조용히, 아주 추악하게 썩어가던 파벌이.
‘이 기회에 도려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관료의 부패로 인한 피해보다 능력으로 인한 국익이 크다면 작은 부패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다. 제국은 고작 관료 개인의 부패와 일탈로 무너질 국가가 아니니까.
허나 관대하고도 자비로운 묵인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아간다면, 국익을 능가하는 부패가 보인다면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황실과 제국을 위하여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
마침 장관이 자신의 혈육이 속한 가문을 희생양으로 내세웠다. 감찰성 장관의 혈육이 속한 가문조차 처벌하는데, 감히 어떤 가문이 반항할 수 있겠나.
“또한 나르젠 하나 잡자고 다른 죄인들을 놓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나르젠을 다섯 대 팰 일이 생긴다면 부패에 엮인 다섯 가문을 찾아 한 대씩 때리라는 말. 장관도 내 말을 이해했기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 정도는 봐줘야지.’
장관이 혈육 대신 대의를 택하여 칼을 뽑아들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장관의 결단을 기특히 여겨 약간의 배려는 하는 것이 옳다.
나르젠의 죄를 없던 걸로 만들 수는 없어도, 나르젠만 피를 보게 할 필요는 없다. 온 제국이 나르젠만 욕하게 둘 필요는 없다.본래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드는 것이지 않던가.
‘연말이 화려하게 끝나겠군.’
연초는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