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07)
로판 속 공무원 807화(808/945)
감찰성은 일개 부였던 시절에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괴물 같은 부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막강한 권한을 손에 넣은 게 아닌, 태생부터 괴물로 태어난 부서였다.
‘애초에 부로 만들어질 부서가 아니었으니까.’
감찰부 설립 역사는 다소 복잡하다. 감찰부 설립을 추진한 당시의 황제는 당당하게 자신만의 칼을 만들려고 했으나, 당대 귀족들의 견제와 반발로 인하여 재무성 소속으로 위장 설립해야 했다.
허나 위장 설립을 했어도 감찰은 감찰. 당대 황제가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설립된 부서이고, 이후 암군이라는 평을 받는 황제들도 감찰부만큼은 한 손에 쥐며 칼춤을 췄다. 덕분에 감찰부가 이름만 ‘부’지 실질적으로는 ‘성’이나 다름없다는 건 비밀조차 아니었다.
‘어쩌면 성보다 더 괴랄한 부서였지.’
감찰부는 심증만 있으면 어떠한 귀족이나 부서든 간에 뒤엎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 미친 권한은 감찰부를 제국의 공포로 만들었으며, 피와 눈물로 얼룩진 부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심증으로 움직였다가 헛발질이라는 게 밝혀지면 감찰부장이 목을 반납해야 하지만, 보통 공무원들은 물증이 있어도 함부로 움직이기 어렵잖아. 그걸 고려하면 규격 외의 권한이 맞다.
그리고 오늘날 감찰부는 일개 부에서 성으로 진화했다. 감찰성 창립 위원장이자 초대 장관은 제국의 실권자이며, 사법계를 합법적으로 쥐어 팰 물증까지 확보했다.
심지어 감찰에 대하여 황제의 구두 승인이 아닌 대면 결재를 받았다. 공식적인 승인 기록이 남았기에 황제가 모른 척 책임을 회피할 수도 없다.
“이런 일로 장관을 보게 되어 면목이 없습니다.”
덕분에 사법성 장관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휴가를 즐기던 제국의 실권자가 갑자기 청사로 출근하더니,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에 대규모 감찰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것도 그 실권자의 혈육이 속한 가문까지 전부.
사법성 장관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을 거다. 연말을 맞이하여 평소처럼 일을 보다가 빅-이벤트가 터진 거니까.
“감찰성이 나서기 전에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했는데.제가 부족하여 사법성과 법원의 부패를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런 말씀 마시지요. 부패가 일어났다면 저지른 자들의 죄가 더욱 크지, 어찌 말리지 못한 자의 죄가 더 크겠습니까.”
책상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는 사법성 장관을 보다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행정부서 서열상 사법성은 감찰성보다 위다. 그렇기에 사법성 장관은 감찰성 장관인 나보다 서열이 높지만, 감찰이라는 변수가 발동했기에 서열이 역전되었다.
그러나 사법성 장관의 저자세에 강압적으로 소리치기보다는 부드럽게 다독였다. 사법성 장관은 이번 감찰과 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성 장관은 그냥 두게. 이런 일로 해임하기에는 아까운 인재야.”
황제가 그것을 원하니까.
딱 부패에 연관된 것들만 쳐내고, 그 외에는 멀쩡하기를 바라니까.
‘이런 걸로 장관을 쳐내면 버틸 장관이 없지.’
사실 이번에 적발된 사법계의 부패는 다른 곳에서도 암암리에 일어나는 평범한 혐의다. 단지 그 평범한 부패 혐의가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임계점을 넘은 거지. 티끌 모아 태산을 안 좋은 의미로 이룩한 사태다.
그러니 장관은 제외한다. 이런 티끌 때문에 아직 일할 날이 많이 남은 장관을 날리는 건 인재 낭비다.
‘티끌 때문에 감찰에 나서는 것도 문제지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법성 장관이 당혹스러운 것처럼 나 또한 어이가 없고 실소가 터질 것 같으니.
“제가 장관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이번 감찰로 동요할 사법성과 법원을 다독여 달라는 것입니다. 장관께서 굳게 중심을 잡으신다면 무고한 자들은 동요할 리가 없으니까요.”
“마땅히 그리하겠습니다. 허나 제 부족함으로 폐하와 장관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에 참으로 민망하고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제가 더 도울 것이 있겠습니까?”
무조건 항복, 무조건 협조를 선언하는 장관을 향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장관께서는 무고한 자들만 지켜주십시오.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내 연이은 강조에 사법성 장관의 눈에 잠시 독기가 스쳐 지나갔다.
“무고한 자들. 예, 명심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신년하례식 전에는 일이 끝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해를 맞이하는데 불미스러운 소란이 있는 건 곤란하지요.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수습하려면 저도 장관도 노력해야 할 겁니다.”
이번 감찰은 속도전으로 진행할 거라는 말. 조금이라도 연관된 자들은 확실하게 날려버릴 거라는 말.
딱히 돌려 말하지도 않았으니 장관도 열심히 승진 내정자 명단을 작성할 거다. 선이라는 걸 모르고 해먹은 놈들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적당히 해먹을 줄 알고 적당히 말 잘 듣는 인재들을 올릴 기회. 이런 기회를 놓칠 미숙한 인간은 장관이 될 수 없다.
‘전화위복인가.’
사법 명가라고 불리며 떵떵거리던 놈들이 대거 현직에서 쫓겨나고, 사법성 장관 라인이 대거 승진할 기회다.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도 이런 전화위복이 없다.
다만 이렇게 물갈이를 하고도 부패 사건이 터지면 그때는 빼도 박도 못하는 사법성 장관의 책임이지만, 수백 년 역사의 명가도 아닌 자기 라인조차 관리를 못 하면 더 이상 장관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거지.
애초에 그렇게 허술한 양반이라면 황제가 유임시킬 일도 없고. 앞으로 10년은 사법성에서 잡음 하나 들리지 않을 거다.
***
오랜만에 현장을 직접 지휘하게 됐다.
부장이라는 명함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가 현장에서 직접 뛸 일이 드물다는 건데, 이번 일은 부장인 나조차 나서야 했다.
다른 놈에게 맡기기 불안한 것도 이유지만, 장관 각하가 직접 지시하셨으니까.
“나르젠 백작가는 네가 처리해. 네 정도 짬은 돼야 내 눈치 안 보고 원칙대로 할 테니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십니까? 제가 각하 눈치를 얼마나 보는데요.”
“눈치를 본 게 그 정도면 그냥 눈을 뽑는 게 낫지 않냐?”
각하께서 나를 신뢰하여 맡긴 일이니까.
나르젠 백작가. 무려 각하의 혈육이 속해 있는 가문. 차라리 각하의 동생이라면 모를까, 각하의 고모께서 몸을 담고 있는 가문.
그래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르젠 백작가에서 피를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피를 보기에는 혐의 하나하나가 사소하니 말이야. 이런 걸로 도끼를 휘두르면 일개 소매치기범이나 무전취식범도 목을 잘라야 할 수준이다.
대신 소매치기와 무전취식을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서 한 미치광이들이라는 게 문제지.
“이게 어딜 봐서 관료 귀족 가문이야.”
그렇게 제도 내에서도 고위 귀족들의 저택이 밀집한 곳으로 이동하자, 화려한 나르젠 백작가의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백작가에다 고위직을 대대로 역임한 가문이어도 영지 없는 가문에 불과하다. 그런 주제에 제도에서 이런 저택을 유지하다니. 도대체 얼마나 해먹었으면.
“바로 돌입하겠습니다.”
아무튼 집행에 돌입하려는 1과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
“아, 잠깐. 들어가기 전에 확인하고 가라.”
급히 품속에 있던 초상화를 여러 장 꺼냈다.
“장관 각하의 고모님과 그 자제분들이다. 각하의 혈육이신 데다 이번 감찰과 무관한 분들이니, 정중하게 모셔라.”
“정말 무관합니까?”
“고모님은 가주의 부인이 아닌 며느리라 살림에 적극 관여하지 못하고, 자제분들은 아직 돈을 만질 정도의 위치도 아니야.”
“하긴. 그건 그렇겠군요.”
납득한 듯 빠르게 초상화를 훑어본 1과장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느긋하게 저택으로 들어갔다. 일부러 보란 듯이, 들으라는 듯이 소란을 일으키며 저택에 접근했다. 최소한의 눈치가 있다면 전부 홀로 나와 우리를 맞이해 주겠지.
“이, 이게 무슨 짓인가! 이곳은 제국의 법관이신 밀키언 백작 각하의 저택이다!”
“나르젠 백작가는 대대로 사법성의 부장과 제국 대법관을 배출한 명예로운 가문이오! 감찰성의 방문을 겪을 일은 하지 않았─”
“억울하면 법대로 항소하십시오. 저희는 감찰성 장관 각하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
“뭣?”
실제로 저택에 발을 들이자 격렬히 환대해 주는 나르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사법 명가라는 이름은 포커로 얻은 게 아닌지, 말로 떠드는 것 이상의 저항을 하지는 않았다. 가끔 사용인들이나 사병을 방패 삼아 발악하는 멍청이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를 생각하면 나르젠은 양호한 편이지.
“가, 각하께서 무언가 오해를 하신 모양이오. 부디 각하를 뵙게─”
“오해 같은 건 없습니다. 지금 장관 각하의 판단에 오류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르젠 소가주가 입을 열자 1과장이 단호히 잘라냈다.
역시 부하가 유능하면 편하다. 저렇게 잘라내면 더 구걸할 수도 없잖아. 저런 말을 듣고도 다시 입을 연다면 장관 각하가 실수했다고 모욕하는 꼴이니.
“이미 나르젠을 포함한 14개의 가문에 감찰을 진행 중입니다. 가주께서는 법관이시고, 소가주께서는 법무부의 과장이시지요. 오래 끌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것은.”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감히 장관 각하와의 연을 입에 담지는 마십시오. 각하께서는 그조차 감안하시어 대의를 위해 결단하셨고, 저희는 그 연을 고려하여 당신들을 귀족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순순히 협조하지 않으면 현행범으로 취급해 온갖 쌍소리와 무력을 동원하겠다는 엄포. 덕분에 나르젠 가문은 제 발로 걸어갈 것이냐, 네 발로 기어갈 것이냐 선택해야 했다.
“…따르겠소.”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립니다.”
순순히 손을 내미는 소가주, 탄식을 내뱉는 가주를 보다가 구석에서 침묵을 지키는 귀부인을 볼 수 있었다.
‘저분이군.’
장관 각하와 같은 흑발에 흑안. 장관 각하의 결혼식 때마다 뵌 전대 크라시우스 가주와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 귀부인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젊은 자제들.
확실하다. 저분이 각하의 고모님이다.
…
‘이제 어쩌지?’
막상 귀중한 분을 보게 되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눈앞에서 시아버지, 남편 등등이 잡혀가는 걸 보고 계신 분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하며 모셔야 하는 거지? 혹시 가지 않겠다고, 어딜 감히 크라시우스의 핏줄에게 손을 들이대냐고 성을 내면 어쩌지?
장관 각하야 원칙대로 하라고 했지만, 정말 원칙대로 할 수 있는 놈이 어디 있겠냐고. 각하와 저 고모님이 완전히 절연하는 게 아닌 이상 결국 혈연인데.
“실례하겠습니다, 부인. 엘린 나르젠 님 맞으십니까?”
그래도 이런 흉흉한 곳에 각하의 혈육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 은근히 내가 나서주기를 바라는 집행부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고모님께 향했다.
“그래. 내가 엘린 나르젠일세.”
내가 다가오자 자식들을 뒤로 숨긴 고모님은 덤덤히 입을 여셨다.
“부인과 자제분들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혹시 윗분의 명인가?”
“아, 예.”
그러자 고모님은 살며시 눈을 감더니, 나를 지나쳐 1과장에게 향했다.
“부, 부인?”
“태어난 것도 보지 못한 분이야. 고모라고도 할 수 없는 주제에, 이제야 도움을 받는 건 염치없는 일이지. 나도 나르젠의 일원으로 대우하고 처리하게.”
너무도 단호한 말이라 식은땀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