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08)
로판 속 공무원 808화(809/945)
끈끈한 우정과 돈으로 맺어진 사법 명가들을 쥐어 패러─ 아니, 모시러 간 집행부원들이 하나둘 보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머리 좀 돌아가는 양반들이라 집행부원들의 깜짝 방문에 감동할지언정, 우리의 성의와 진심을 사양하지는 않았다. 괜히 사양하면 손바닥 몇 대 맞고 끝날 일을 곤장이나 참수까지 나아간다는 걸 아니까. 사법 분야에서 일한 것들이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모를 리가 없다.
그래도 아는 것과 실행하는 건 별개의 문제. 반항해 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난동을 부리는 것들이 종종 등장하니, 상대적으로 잠잠한 사법 명가들은 확실히 명가라 불릴만했다.
그 좋은 머리와 눈치로 부패 카르텔이나 형성했다는 것이 언짢지만. 능력 낭비도 이런 능력 낭비가 없어.
– 각하.
“어. 너희도 끝났냐?”
그리고 마지막 보고자는 직접 나르젠 백작가로 향했던 집행부장이었다.
이걸로 혐의가 있는 놈들은 전부 신병을 확보했다. 이제 적절한 심문을 거쳐서 합당한 처벌 수위를 정하면 돼.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물증도 제법 있으니 빠르게 진행하면 신년하례식 전까지는 가능할 거다.
– 저, 그게 말입니다.
허나 집행부장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먼저 연락을 건 주제에 시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는 모습. 평소의 집행부장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저놈은 생각하기 전에 몸이 움직이는 경우가 간혹 있어도, 행동이 머리보다 굼뜬 적은 없었다.
“왜. 누가 도망가기라도 했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신병 확보 실패지만,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낮다.
내가 괜히 이 녀석을 집행부장으로 올렸겠나. 아주 간혹 요룬 사태 같은 대형 사고를 쳤어도, 대체적으로 유능하고 일 처리도 깔끔한 녀석이라 부장에 올린 거다. 감찰부 시절에도 이 녀석이 맡은 3과는 집행을 주로 수행했을 정도니까.
– 아뇨. 전부 확보하기는 했는데…
“했는데?”
– 고모님께서 자신을 크라시우스가 아닌 나르젠 백작가의 일원으로 대우하라고, 가족들과 함께 가겠다고 강하게 주장하십니다.
집행부장의 말에 통신구를 쥐고 있던 손이 잠깐 떨렸다.
물론 어디까지나 잠깐에 불과했다.
“그게 뭐. 내가 원리원칙대로 하라고 했잖아. 고모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너희가 그렇게 했어야지.”
난 이 사건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기로 했다. 심지어 황제에게는 나르젠이 감당해야 할 업보를 다른 가문들에게 나눠주는 걸 허락받았다. 그러니 고모의 안전을 위해 이 이상 욕심부릴 필요는 없다.
나르젠이 10개가 넘는 범죄자 중 하나가 되면 기껏해야 가문원들의 직위 해제 및 강제 가주직 양위로 끝난다. 특히 가주의 며느리인 막내 고모는 형식적인 심문 후 누구보다 빠르게 풀려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무얼 더 배려할까.
“생각해 보니 이거 지시 불이행 아니냐? 원리원칙이 뭔지 몰라? 우리가 언제부터 상대 봐가면서 대우해 줬다고.”
– 아니, 그렇게 따지면 각하가 언제부터 원리원칙을 강조하셨습니까! 평소에는 집행을 가든 말든 그냥 보내는 분이 이번에만 원칙대로 하라고 강조했는데, 누가 봐도 고모님을 신경 쓰는 말이잖습니까!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말이라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집행부장의 말이 맞다. 감찰부 시절의 나는 자동 사냥 돌리는 것처럼 딱 목표만 지시했다. 원칙대로 하라는 강조도, 다소 느슨하게 하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지. 그저 현장의 판단에 오롯이 맡겼다.
그런 내가 혈육이 걸린 문제에 처음으로 원칙을 언급했다. 겉으로 보면 공정하기 위해 부하들을 관리하는 상사의 모습이나,
‘실제로는 동요하는 상사였지.’
이건 내 실수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덤덤히 부장을 보내야 했다. 더욱 확실하게 하려면 부장을 따로 호출하지조차 말아야 했다.
그래야 현장에서 내 눈치를 보지 않았을 테니까. 장관이 이번 일도 평소처럼 여기나 보다─ 라며 적절히 행동했을 테니까.
“나르젠 백작가의 일원들은 죄의 경중에 따라 차등하여 다루되, 그 이상 배려할 필요는 없어. 나르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예외 없이 조사를 받아야 할 신분이니.”
– 그럼 전부 정보부로 인계하면 되겠습니까?
정말로 원칙대로 하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나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작은 망설임이 집행부장에게 혼란을 주었으니, 이제라도 순리대로 흐르게 조정해야 한다.
“대신 1과로는 보내지 말고. 1과에서 작정하고 털 만큼 비협조적인 인간들은 아니잖아.”
– 그건 걱정 마십쇼. 보내라고 하셔도 제가 말렸을 겁니다.
허나 정보부 중에서도 1과로 보내는 건 금지했다. 이건 고모와 내 사촌들뿐만 아니라, 14개 가문 전원에게 포함되는 말이다.
1과로 보내는 건 공명정대한 수준을 넘어서 아예 담가버리겠다는 의미다. 심문 결과는 쉽고 빠르게 나오겠지만, 그 대가로 피의 신년하례식이 진행될 터. 그건 곤란하지.
‘나르젠의 일원으로 대우하라…’
그렇게 집행부장에게 지시를 마친 후,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복잡한 심정이다. 기어코 혈육도 잡아가게 된 찝찝함, 그래도 혈육조차 잡아가는 선례를 세운 안도감, 고모가 나와의 연을 내세우며 난동을 부리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함, 크라시우스라는 이름을 한 번 정도는 말할 줄 알았는데 스스로를 나르젠으로 여긴 씁쓸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기뻐하기에도, 슬퍼하기에도, 덤덤하기에도 무리가 많은 결과다.
‘아버지를 닮으시기는 했네.’
그 와중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감찰성의 집행부가 눈앞까지 들이닥쳤는데도 막내 고모는 당당했다. 안전하게 빠져나갈 길이 있었음에도 요행이 아닌 정공법을 택했다.
역시 아버지와 같은 피가 흐르는 분이 맞기는 하다. 다만 그 정도로 굳건한 분이 크라시우스에 학을 떼며 도망쳤다니. 대체 조부님은 생전에 무슨 짓을 하신 걸까.
알고 싶지 않은 일이다. 동시에 아버지와 숙부들, 고모들의 명예를 위하여 외면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나는 맏이가 아닌 크라시우스의 가주로서 행동했다. 동생들과 접촉하지 않을지언정, 가주로서 정략으로 맺어진 가문들을 도와줬다.”
그러다 문득 호수에서 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동생들과 사적으로 접촉하지는 않았으나, 그 가문들에게는 도움을 주어 숙부들과 고모들의 입지를 지켜주었다는 말.
‘앞으로는 내가 그래야겠지.’
더 이상 아버지는 크라시우스의 사령탑이 아니다. 아버지가 지휘하던 크라시우스의 대소사는 내가 물려받아야 한다. 숙부들과 고모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신경 써야 한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내 이름만으로도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나, 오늘 일로 ‘감찰성 장관은 자기 고모의 가문마저 봐주지 않는다.’ 라는 선례가 생겼지 않나. 더 이상 침묵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주인이 되시면 최대한 도와드려야겠어.’
이번 일이 끝나면 최소 나르젠 가주와 소가주는 모든 공적 지위에서 해임된다. 또한 가주 자리는 소가주에게 강제로 넘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고모는 가주의 며느리에서 가주의 아내로 지위가 상승하게 된다.
어찌 보면 고모는 난장판 속에서 유일하게 이득을 보는 분이라 볼 수 있다. 대신 그 대가로 명치에 강한 한 방을 맞은 나르젠 가문을 최대한 수습해야 하는 게 문제.
나르젠 가문이 죄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면, 휘청거리는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때가 오면 그때만큼은 조카로서 도와드리자.
죗값을 치른 사람을 계속 죄인 취급하며 멀리하는 건 역차별이니까.
***
눈을 감은 채, 귀를 막은 채,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앉아있었다.
나는 무엇도 보지 않을 것이고, 무엇도 듣지 않을 것이고, 무엇도 말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저 죄인 중 한 명으로서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니까.
“부인.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들어주시오. 고집을 부릴 일이 아니잖소.”
설령 나에게 사정하는 것이 남편일지라도.
“나야 죄를 지었으니 그 대가를 받아도 할 말이 없소. 하지만 부인은, 아이들은 죄가 없지 않소? 그러니 이곳에서 내보내 달라고 하시오. 부인이 부탁하면 적어도 우리와 다른 공간에서 심문을─”
“저와 아이들이 떳떳하다면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 이상 남편의 명예가 떨어지는 건 좌시할 수 없기에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여러 가문의 귀족들이, 감찰성의 관료들이 모여있다. 이 자리에서 내뱉는 사소한 말 한마디와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남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터.
“죄가 있다면 황궁조차 지옥처럼 느껴질 것이고, 무고하다면 지하 감옥도 스쳐 지나가는 공간에 불과하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혹시 폐하께옵서 가족에게 연좌를 물어야 할 만큼 죄를 지으신 겁니까? 황실과 제국을 능멸하고, 백성을 핍박하신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소! 내 비록 죄인이나, 감히 그런 중죄를 짓지는 않았소!”
“그렇다면 되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말했으면 남편도 더 입을 열지 않을 거다. 눈앞의 작은 난관을 위해 부정한 청탁을 하자는, 작은 걸 지키고자 큰 것을 잃는 실수는 하지 않을 거다.
‘휘청거려도 긍지와 명예를 지킨다면 다시금 일어나는 게 귀족.’
이는 내가 크라시우스 시절, 아버지께 유일하게 배운 진리.상황으로 물러나신 에이만카 16세 폐하께서 일생을 바쳐서 입증한 진리.
폐하의 질책과 실망을 받을지라도, 다른 귀족들과 관료들과 멀어지더라도. 스스로 품은 불꽃을 지킨다면 다시금 일어설 수 있다.
“엘린 나르젠 님. 12호실로 와주십시오.”
관료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한숨을 내쉬는 남편과 불안한 기색을 풍기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아이고, 귀한 분이 오셨군요.”
12호실에 들어서자 의외의 광경을 보게 됐다.
말로는 귀한 분이라고 했지만 양발을 책상에 올린 채 시큰둥히 술을 마시는 금발의 관료.
영주가 가신을 대할 때도 저렇게 행동하지 않는 법이거늘. 저 관료는 대체 무슨 성품을 지닌 것일까.
“정보차장 라파예트 바론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잡혀오신 분들이 워낙 많아서, 서류에 서명이나 하던 저까지 끌려왔습니다.”
이윽고 양발을 내린 정보차장은 맞은편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정보차장이라. 분명 장관이 감찰부장이던 시절부터 보필하던 측근이라고─
“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엘린 님이라 제가 온 것이 아니라, 아무 방이나 들어왔더니 엘린 님인 겁니다. 이거 참 기막힌 우연이지요.”
“그런가.”
“뭐. 믿으시는 건 엘린 님의 자유입니다만.”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정보차장은 술병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의심을 사기 딱인 건 부정할 수 없군요. 저는 엘린 님을 심문하지 않고, 한 2시간 정도 다과만 대접할 거거든요.”
“뭐라?”
“지금 나가봤자 마음만 복잡할 겁니다. 여기서 잠시 쉬신다 생각하고, 딱 2시간만 있읍시다.”
당당한 특혜 발언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
눈빛이 사나워지는 고모님을 보니 본능적으로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저 눈빛. 확실히 제도에 사는 모 장관과 비슷하다. 품위를 거두어들이니 그 흉악함이 보여.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니까.
‘뭐 털 게 있어야 심문이라도 하지.’
심증으로도 이분은 부패에 관여하지 않았고, 물증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런 분을 심문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고 광속으로 보내면 위에서 고함을 내지를 거다. 분명 원리원칙대로 하라고 했는데 무슨 짓이냐고. 지금 자기 고모라 봐주는 거냐고.
‘털 게 없다고.’
진짜 원칙대로 하면 이분은 여기 잡혀와서도 안 되는 거라고.
망할.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