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09)
로판 속 공무원 809화(810/945)
14개 가문에서 잡아온 인원들은 별다른 잡음 없이 심문에 협조했다. 이렇게 잡혀온 이상 순순히 협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아는 모양이다.
몇번이나 생각하는 거지만 그 좋은 머리와 눈치로 적당히 해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제국은 관료의 부패도 그럭저럭 눈감아주는 편인데, 돈을 향한 욕심이 황제가 정한 선을 넘어서 이런 참사가 터졌잖아.
아무튼 터진 건 터진 거고, 협조하는 것은 협조하는 것. 14개 가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다. 이미 감찰성이 확보한 정보와 교차 검증하는 수준이었지.
그리고 교차 검증 결과, 딱히 무고한 가문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감찰성이 확보한 죄목과 99% 일치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정보부에서 올린 보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칼을 뽑았으니 ‘아무래도 저희가 오해한 것 같은데요?’ 같은 결과는 내 모가지가 간당간당한 결과다. 그렇다고 우리가 확보한 정보보다 더한 정보가 쏟아져 나오면 추가 근무 확정이다.
우리가 아는 만큼만 정보가 나오고, 우리가 내정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수준의 결과. 그것이 최선의 결과다.
‘신년하례식이 소란스러운 건 막을 수 없겠어.’
다행히 피가 흐르는 연말과 연초를 맞이할 필요는 없다. 이번 사법계의 부패는 단순히 돈을 밝힌 거지, 제국의 체제나 황실의 권위에 도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목을 베어 희생양으로 바칠 수준은 아니다. 그저 현 가주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물러나고, 소가주들이 휘청거리는 가문을 맡아서 다시 수습해야 한다. 죽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또한 그동안 해먹은 양과 비례하여 적지 않은 수준의 재산을 황실에 바쳐야 할 것이며, 부패의 기반이었던 공적 직책에서 일제히 해임될 것이다. 이후에 새로 관직에 출사하는 건 막지 않겠다만, 이전처럼 고위직에서 돈을 받기는 힘들 거다.
‘또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나.’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가주직 교체, 공적 직책 해제, 벌금 납부. 이 외에 괜찮은 처벌은 무엇이 있을까.
아예 저택을 포함한 부동산도 압수해버려? 아니야, 너무 과하게 뜯으면 그 반작용으로 눈이 돌아가 버릴 수도 있어. 게다가 저택 자체는 역대 황제 중 누군가가 하사한 그 가문의 근본이자 모든 것이니까.
그냥 무난하게 차후 10년 간 공직 진출에 페널티를 주자. 추천장으로 공무원이 되겠다고 하면 후작위 이상의 귀족이 주는 것만 받아주고, 시험으로 들어오겠다고 하면 3점 정도의 기본 감점을 주면 되겠지.
‘완벽해.’
몸을 해하는 것만 피했을 뿐, 줄 수 있는 처벌은 전부 때려 박았다. 이런 처벌을 받고도 다시 선을 넘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대단한 수준이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명가의 긍지와 끈기를 높이 사 멸문으로 돌려주면 된다. 죽고 싶다는데 계속 살려주는 것도 도리가 아니지 않겠나.
“비서.”
“예, 각하.”
“슬슬 사법성에 사람 보내. 지금 잡혀온 것들은 전부 잘라도 되니까, 폐하께 해임 요청 올리라고.”
“알겠습니다.”
짧게 고개를 숙인 비서는 마침 옆에 있던 데미안에게 서류 더미를 넘겼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흐뭇하고 기특했다. 아무리 내 추천장을 받았다고 해도, 고작 몇 년 전에 아카데미를 졸업한 파릇파릇한 인력이다. 그런 젊은 인력이 장관 비서의 명을 받아서 움직일 정도라니. 확실히 유능하고 열정적이기는 한 모양이야.
‘지금처럼 무럭무럭 자라라.’
너 같은 인재가 많아야 내가 편해져.
이제 조기 퇴직은 감히 바라지도 않고, 그냥 부릴 수 있는 부하가 많아졌으면 좋겠어…
“어, 나다.”
– 각하. 저 좀 살려주십쇼.
장관을 귀찮게 하는 부하가 아니라 알아서도 척척척 잘 하는 그런 부하가.
‘이건 또 뭐야.’
데미안이 나간 후, 기다렸다는 듯 날아오는 연락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4개 가문도 아니고 14개 가문에서 일제히 심문 대상이 잡혀왔다. 인력이 부족하여 정보차장까지 급히 심문실에 투입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한테 SOS를 요청할 줄은 몰랐다.
“뭔데. 1과가 난입하기라도 했냐?”
정보부장은 정보부 전체의 일을 총괄하고 있으니, 심문실 현장에서는 정보차장이 최고 책임자다. 그런 차장이 처절한 SOS를 보낼 정도면 그만한 문제가 터졌다는 뜻.
그리고 차장이 절박한 구조 요청을 보낼 사안은 대규모 심문 소식을 들은 1과가 자기들도 돕겠다며 참전하는 것뿐이다. 그 정도는 돼야 차장이 위기에 몰릴 거야.
– 그런 거였으면 살려달라는 게 아니라 죽여달라고 했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 일단 좋은 소식하고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는데, 뭐부터 들으시겠습니까?
그 말에 통신구 너머로 보이는 차장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희망 고문을 해. 보통 그런 경우는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을 잡아먹잖아.
“동시에 말해.”
– 고모님은 결백하셔서 딱히 심문할 필요가 없는데, 심문을 하지 않으니 귀족의 명예를 짓밟는 거냐면서 분노를 표하십니다.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그게 무슨 말이야?”
– 말 그대로입니다. 몇번이나 확인해도, 이번 일에 고모님과 그 자제분들은 결백해요. 애초에 가문의 실권과도 멀고, 공직에도 있지 않은데 연관될 게 있겠습니까. 그냥 나르젠이라 잡아온 겁니다.
“…그래도 나르젠으로 대우하기를 원하시니 형식적으로라도 심문을─
– 아니!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요! 형식도 무언가 건수가 있어야 하는 거지, 동네 평민을 잡아다가 귀족들의 부패를 물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 수준입니다!
이번에는 의아함이 아니라 당혹감 때문에 입을 열지 못했다.
고모와 사촌들이 무고하다는 건 짐작했다. 가문의 살림이나 나르젠의 뒷거래에 깊이 관여하지 못할 터이니, 털어도 별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그래서 고모와 사촌들을 원칙대로 정보부에 넘긴 거기도 하다. 털어도 처벌받지 않을 테니.
그런데 정말,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잠깐 심문실에 잡아둘, 억지로라도 ‘우리 이 사람들 심문합니다.’ 같은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그게 말이 되나?’
믿을 수가 없다. 솔직히 감찰성의 수장인 나조차 작정하고 털면 먼지가 나온다. 귀족으로 살아가는 이상 손에 콩고물은 묻게 되고, 단순히 길을 지나가도 먼지가 묻게 된다. 사교에 발을 들이지 않는 이상, 지방 구석에 박혀서 한적하게 지내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헌데 고모는 조부님의 선택을 받은 사법 명가의 며느리가 되었다. 실권과 거리가 멀어도 작정하면 사소한 먼지가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감찰이란 건 그 사소한 것을 찾아내고, 부풀리는 게 일인 업무고.
– 잡아두기에는 뭐 물어볼 것도 없고, 그렇다고 바로 풀면 심문을 넘겼다고 의심받습니다! 당장 각하만 해도 저한테 뭐라도 하라고 쪼시지 않았습니까!
억울함이 가득한 차장의 외침에 결국 참았던 한숨을 내뱉었다.
쉽게 끝나기를 바랐는데. 고모가 상상 이상으로 청렴해서 일이 꼬였다.
***
급히 밖으로 나갔던 정보차장은 다시 안으로 들어온 뒤로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통신구를 보고 혀를 차고,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모님. 저희 이러지 맙시다. 고모님을 심문할 이유도, 여력도 없어요.”
“원칙보다 위에 서는 건 없다. 윗분도 봐주지 말라고 한 소리 하신 것 같은데.”
“이번 일에 아무 연관이 없는 건 저희보다 당사자인 고모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심문을 생략하고 싶은데, 하필 고모님이 저희 윗분과 혈육이시라 정말 무고하셔도 그냥 놓아드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시늉이라도 해야 돼요.”
어느새 차장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귀찮음과 나태함 대신 절박함이 깃들었다.
“제가 민간인에게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저희 체면을 봐서라도 여기 가만히 계셔주십시오. 저희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면 장관 각하를 생각해 주시고요. 그분은 휴가 중인데도 뛰쳐나와서 이 일을 지휘 중이십니다.”
그 말에는 절로 손이 떨렸다.
그분, 감히 조카라고 부르기 민망한 분이 곤란해진다면 나도 고집을 부릴 수 없다. 차마 그분의 덕을 볼 염치가 없어 빠져나갈 길이 보여도 외면하고 있는데, 그 선택이 정작 그분을 곤란하게 만든다면 그만한 민폐도 없지 않나.
“고모님이 염려하시는 건 압니다. 여기서 풀려나면 장관의 고모라 풀려났다고, 그렇다고 귀하게 대접받으면 장관의 고모라 편의를 받았다고 뒷얘기가 나오는 걸 우려하시는 거겠지요. 본래 귀족들이란 입이 가볍고 함부로 말하는 것들이니까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차장은 고개까지 숙였다.
“각하께서는 고모님의 배려에 감사해 하고 계십니다. 또한 귀족들이 무어라 떠들든 코웃음도 치지 않을 분입니다. 그러니 그런 조카를 봐서라도, 부디 협조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나르젠의 명예와 긍지를 위해, 조카라고 부르기 죄송한 분을 위해 당당히 나섰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민폐가 된다면…
“…2시간이면 되는 건가?”
“물론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가시면 다른 분들과 똑같이 대우하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과하게 기뻐하는 차장을 보니 다시 한숨이 나왔다.
절대 긍지를 버릴 수 없다는 고집을 버리고 나니, 내가 얼마나 철없이 행동했는지 알 것 같다.
속았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우하겠다고 말한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몇 시간 전의 약속이 순식간에 깨졌다.
“─이상 호명한 분들은 가문으로 복귀하셔도 됩니다. 추가적인 심문은 없을 예정이니, 안심하고 돌아가십시오.”
정확히는 약속을 꼬아서 지켰다. 어떻게든 석방할 만한 사람들을 추려내서, 나를 그 다른 사람들 속에 넣어버렸으니까.
‘너무 쉽게 믿었다.’
분하다. 어쩐지 생긴 것도 뺀질거리고 능글맞게 생긴 사내였다. 신의가 없어서 여자 여럿 울리고 다녔을 얼굴이었다. 그런 사람을 믿다니, 나도 마음이 다급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공식 석방까지 받았으니 더 고집을 부릴 수는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이번 사건으로 놀랐을 아이들을 다독이자. 그래야 당분간 휘청거릴 나르젠 가문을 이 아이들이 일으켜 세우겠지.
그런 다짐을 하며 저택으로 복귀했고,
“왔느냐.”
“큰 오, 라버니…?”
“오랜만에 듣는 말이구나.”
아무도 없어야 할 저택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히 찾아온 것이다.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벌써 아득하니, 쫓아내지 말고 대화를 해줄 수 있겠느냐?”
내 큰 오라버니. 크라시우스의 전대 가주. 전대 타일글레헨 백작.
얼굴을 못 본 지 한참이나 지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