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17)
로판 속 공무원 817화(818/945)
연말을 기념하며 터진 대규모 사법계 감찰, 새로운 해를 알린 울켄 공작 교체.그리고 이 대륙에서 오직 여덟 명만 알고 있는 트릭시의 공작위 은퇴 예정까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빅-이벤트가 연이어 터졌다. 하늘에 있는 에넨이 인간들을 위해 이벤트를 던져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차피 올해는 소란스러울 예정이었는데.’
창문을 통해 눈 덮인 정원을 보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굳이 에넨이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아도 올해는 인간들만의 자체적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교황의 생전 은퇴와 내 생전 시성이 비밀리에 준비 중이지 않나. 교황에게서 정확한 시점은 듣지 못했으나 올해를 넘길 것 같지는 않았다.
‘생전 시성이라.’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얼마 전까지는 정신이 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러다 나 성인과 공작 대리를 비슷한 시기에 달 것 같다. 교계의 권위와 세속의 권위를 동시에 짊어지는 미친 참사가 발생하는 거다.
생각만 해도 실소가 절로 나오는 일이다. 제국의 감찰성 장관이자 세르베트 공작 대리이자 살아있는 성인이라. 어째 일개 개인이 짊어지기에는 버거운 짐들이 쉬지 않고 몰려오는 기분이야.
아니지. 기분이 아니라 사실이다. 이 정도면 신들이 ‘이걸 받고도 버텨? 독하다 독해.’ 라며 나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게 아닐까.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부!”
“압빠!”
“응?”
그렇게 씁쓸한 심정으로 연신 차를 홀짝이던 중, 황태녀와 페디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각각 자선과 친절을 타고 오는 중인 두 아이. 그 뒤를 해맑은 표정으로 따라오는 티티와─
– 음매애애애~
베히모스에게 임시 분양받았던 베히모스 주니어가 보였다.
아니, 베히모스 주니어가 아니라 그냥 주니라고 부르기로 했었나?
“때부! 우리 배히모쓰! 언재보러가!?”
‘아.’
그리고 황태녀의 직설적인 물음에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 이 아이를 잠시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지. 그대의 작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이처럼 귀여운 아이들을 보고 싶으면 한 달 후에 오라고 전해다오.
베히모스에게 주니를 임시 분양받았을 때, 분명 한 달 후라고 적당한 방문 시기를 들었었다.
허나 타니안의 결혼식, 사법계 감찰, 울켄 공작 교체, 세르베트 공작 대리를 논하다 보니 어느새 2월에 돌입했다. 한 달을 넘어 두 달이 됐어.
‘서운해하겠네.’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으나, 은근히 아이들이 오는 걸 좋아하는 베히모스다. 그런데 두 달이나 아이들이 오지 않으니 내심 섭섭해할 터.
‘다행히 눈은 그쳤고.’
슬쩍 창문을 바라보자 1시간 전까지만 해도 펑펑 내리던 눈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이 내렸던 흔적만 땅을 뒤덮었을 뿐.
“바로 가시겠습니까?”
“그래두대!?”
“물론입니다. 눈이 오고 있다면 조금 곤란했겠지만, 마침 전하를 위해 눈도 멈췄군요. 베히모스랑 놀라는 하늘의 계시 아니겠습니까?”
“마쟈! 배히모쓰랑 놀꺼야!”
눈을 반짝이는 황태녀의 모습에 미안함은 더욱 커졌다.
졸지에 베히모스에게 노쇼를 선물한 것도 잘못이지만, 어른의 일 때문에 아이들을 장기간 방치한 것 같으니까. 오히려 지금까지 기다려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페디. 동생들하고도 다 같이 갈까?”
“응! 애들불러올깨!”
페디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페디를 태우고 있던 친절은 빠르게 몸을 돌렸다.
“도련님! 우선 세 아가씨들에게 가겠습니다!”
“웅!”
이윽고 요란한 발굽 소리를 내며 복도 저 너머로 사라졌다.
누가 봐도 훌륭한 페디 전용 애마인지라 흐뭇했다. 페디한테는 딱히 승마를 가르치지 않아도 제국 역사에 영원히 남을 기수가 되겠어. 이 세상 어떤 기수가 말하는 말을 타고 다니겠냐고.
“난 딴애들 데리고올깨!”
“가시죠, 아가씨.”
이번에는 자선이 황태녀를 태운 채 사라졌다.
말을 타고 다니는 페디와 사슴을 타고 다니는 황태녀. 새삼스럽지만 남들이 보면 기겁을 할 기이한 광경이다. 어쩌면 기이함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러니까 맨날 우리 집에 오는구나.’
개근상을 탈 기세로 놀러 오는 황태녀. 요즘 들어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앙리에타. 조만간 놀러 올 것 같은 헬렌까지.
아이들이 자기 집을 내버려두고 우리 집에 집착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또한 새삼스러운 감상이지만 유유히 사라지는 친절과 자선을 보니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
“분명 처음에는 너 하나였는데.”
– 멍?
두 아이와 두 탈것이 떠난 후, 내 곁에 주저앉아 헥헥거리는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하지만 이 저택도 처음부터 동물의 왕국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사람만 사는 곳이었으나, 상황에게 받은 티티를 시작으로 점점 짐승들이 늘어나더니… 어느덧 이렇게…
‘대체 몇 마리지?’
일단 정령들까지 포함하면 측정 불가라는 건 알겠다.
– 음매애애.
“너도 쓰다듬어줄까?”
– 음매애애애!
홀로 멀뚱히 서있던 주니도 내 곁으로 다가와 맑게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얘한테도 못할 짓을 했다. 원래는 한 달만 있어야 할 곳에 두 달이나 머문 거잖아. 다른 부대로 파견을 왔는데 복귀일이 기약 없이 미루어진 거나 다름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끔찍하네.
“그동안 고생했어. 이제 네 주인 만나러 가자.”
그러자 주니는 말없이 내 손만 핥았다.
그리고 소의 침이 상당히 끈적하다는 건 뽈뽈뽈 기어 온 메리를 안아준 직후에 알게 됐다.
“으에에에에…”
끈적하고 축축한 느낌이 낯선지, 울먹이는 메리를 보며 침통히 눈을 감았다.
아빠가 막 안아줘서 미안해.
아홉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베히모스에게 향했다.
– 이제 왔군.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일이 많아서 이제야 왔다.
– 미안할 필요 없다. 그대가 바쁘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으니.
내 사과에 베히모스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베히모스 입장에서 가벼운 것이기에 사람이 보기에는 바위 덩어리가 좌우로 요동치는 것 같았다.
– 오히려 충분한 시간이 흐른 덕에 작은 아이들을 위한 준비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준비라.”
슬쩍 고개를 돌리자 베히모스가 말한 준비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저번에 왔을 때 베히모스가 직접 만들던 호수. 그 호수를 기점으로 지형이 급격히 변해있었다.
호수 앞쪽은 평범하게 소나 양을 키우는 일반적인 목초지처럼. 호수 뒤쪽으로는 유벤 서부에서 봤던 초원처럼.
‘이게 가능한 일인가.’
경이롭다. 베히모스가 있으니 유벤에서 살던 녀석들도 제국에서 멀쩡히 지낼 거라 예상했으나, 설마 지형 자체를 바꿔버릴 줄은 몰랐다.
더욱 놀라온 건 이게 신이 아닌 인공 생명체의 몸으로 이룩한 기적이라는 거다. 한 번 죽었다가 만들어진 상태로도 이 정도인데, 신이었던 시절에는 얼마나 많은 기적을 이룩했을까. 괜히 신으로 추앙받은 게 아니었다.
문득 북쪽에 있는 하늘 신은 어떤 기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빠르게 털어냈다. 얌전하게 잘 지내는 신을 굳이 끄집어내서 쥐어패지는 말자.
“우와! 동물원애서 봣던애들! 잔뜩 잇써!”
“전부 길어! 커!”
아무튼 대륙 동부와 서부의 놀라운 조화에 아이들의 눈이 뒤집혔다.
울타리 안에 있던 소수의 동물들을 보는 걸로도 기뻐하던 아이들이다. 그런데 울타리가 아닌 드넓은 초원에서, 소수가 아닌 수많은 동물들을 직관하게 되었다. 그것도 소나 양 같은 평범한 동물이 아닌 기린과 코끼리, 악어, 하마, 타조, 물소, 들소 같은 것들을.
솔직히 아이들이 아니라 성인이어도 눈이 뒤집힐 광경이다. 나도 혼자 놀러 온 거라면 들소 등에 올라탄 다음에 사파리 투어 즐겼어.
“이렇게 제대로 터를 잡아줄 줄은 몰랐는데. 고맙다.”
–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내 일이지 않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말한 베히모스는 내 뒤에 붙어있던 주니를 바라봤다.
– 호오.
그러고는 작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아이를 잘 돌봐준 모양이군. 저 아이의 눈에서 그대를 향한 신뢰가 보인다.
“신뢰?”
예상치 못한 말이라 슬쩍 주니를 바라봤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딱히 이 녀석에게 잘 대해주거나 살뜰히 보살펴주지는 않았다. 그냥 우리 집에서 지내는 여러 동물 중 하나처럼 여겼지. 어차피 한 달 후면 돌아갈 애라 생각했고, 내가 없어도 가족들과 사용인들이 돌봐주니까.
‘본능적으로 주인을 아는 건가.’
그럼에도 나를 신뢰한다면 주니가 저택의 주인을 파악했다는 의미다. ‘주인이 나를 보살피라고 했으니 잘 대해주는 거겠지.’ 라고 현명한 판단을 내린 거다.
다만 주니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진실이 있다면, 나는 저택의 법적 주인일지언정 저택 내 서열은 한없이 아래라는 것. 차라리 우리 아이들이나 아내들 라인을 잡았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네가 잡은 줄은 그냥 금색으로 색칠만 된 평범한 동앗줄이야. 썩은 줄을 잡은 건 아니지만 좋은 걸 잡은 것도 아니야.
– 음매애애애~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니의 머리를 쓰다듬자 주니는 해맑게 울음소리를 냈다.
– 그대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데려가서 키우겠나?
“그럴까…”
줄을 잘못 잡은 녀석을 방출까지 하는 건 양심이 아픈 일.
이왕 이렇게 된 거 얘도 저택의 영구 멤버로 삼자.
***
때부랑 동생들이랑 배히모쓰랑 잔뜩 놀다가 돌아왓따.
더 놀구 시펏는대, 때부가 어두워지기 전애 돌아가라고해서 돌아왓서.
‘겨울 시러!’
여름애는 더 오래 놀았는대! 겨울애는 빨리 어두워져! 오래 못놀아!
게다가 해도 늦께나와! 겨울 엄청 시러!
‘코 긴애 신기했는대…’
죠아. 내일도 배히모쓰한태 가서 코가 엄청긴 신기한애랑 놀자.
코… 코… 코끼리? 때부가 그런 이름이라고 햇서. 코가 길어서 코낄이!
“전하!”
“우웅?”
시녀쟝이랑 같이 집애 돌아가니 시종장 아져씨가 뛰어왓다.
“화,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서 전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으에? 아빠랑엄마가?”
“예, 전하! 그렇습니다!”
왜에? 나 때부랑 놀때면, 아빠두 엄마두 안기다리는대?
“전하, 놀라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황후 폐하께서 전하의 두 번째 동생을 낳으셨습니다!”
“…….”
“…그, 전하. 소신이 드린 말씀은 너무 놀라지만 마시라고…”
“우와아아아아!”
동생! 동생!
까롤루쑤 다음 동생! 내 동생!
“진쨔야!?”
“예! 막 세상에 나타난 전하의 동생입니다!”
우와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