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18)
로판 속 공무원 818화(819/945)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경사가 나를 반겨주었다.
“선배가 셋째 조카 낳았다는데요?”
다만 조금은 당혹스러운 경사였다.
“뭐?”
정문에서 마주친 에리의 한마디에 절로 멍한 목소리가 나왔다.
황후가 셋째를 임신 중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슬슬 세상에 나올 때라는 것도, 황제가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두근거려 하는 것도, 그와 별개로 황후의 행동반경이 극히 줄어든 틈을 타 보드카를 흡입 중인 것도 알고 있었다.
헌데 이렇게 놀다 온 다음에 황후의 출산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이 아니라 내일 베히모스한테 갔지. 졸지에 황태녀를 동생이 태어나는 중요한 순간에 바깥에 있던 누나로 만들었어.
아니, 누나가 아니라 언니인가?
“황자 전하야, 황녀 전하야?”
“2황녀 전하요.”
언니가 맞았구나. 동생이 태어나는 중요한 순간에 바깥에 있던 언니로 만들어버렸어.
“민망하네. 황태녀 전하한테 당분간 미움받겠어.”
“뭐 어때요. 초조하게 기다려야 할 시간이 신나게 놀고, 놀고 돌아오니 예쁜 동생이 태어난 거잖아요.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히히 웃는 에리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기는 하지. 게다가 솔직하게 말하면 2황녀가 태어나는 자리에 황태녀가 있어봤자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잖아. 오히려 황궁의 시종, 시녀들이 황후와 동생을 걱정하는 황태녀를 달래느라 고생했을 거다.
‘잘 데려갔네.’
황태녀를 베히모스에게 데려간 건 훌륭한 선택이었다. 황제도 황태녀가 바깥에 있는 걸 원했기에 나한테 연락 하나 없던 거겠지, 아무렴.
“그보다 벌써 세 번째 자식이라. 황실이 날로 번창하는 것 같아 다행이야.”
“선배는 다섯째까지 욕심내는 것 같더라고요.”
“저런.”
황궁에 있을 어느 누렁이를 떠올리자 다시 웃음이 나왔다.
힘내라, 누렁이. 다섯 중 셋을 낳았으니까 절반은 넘었잖아. 남은 둘도 노력하면 건강하고 귀엽게 낳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이렇게 금슬이 좋으면서 몇 년 동안 잠잠하다가 겨우 황태녀를 낳았잖아. 그때 침묵한 대가를 지금 일시에 지불하는 거라고 생각하자. 결혼하자마자 열심히 노력했으면 이미 다섯째가 아니라 일곱째도 낳았을 테니까.
“아직 이름은 모르지?”
“넹. 뭐, 이름이야 금방 정하겠죠. 후보를 수십 개는 만들어 둔 것 같던데.”
그 정도면 후보 중에서 고르는 것도 일일 것 같다. 높은 확률로 자고 일어나야 이름이 정해지겠어.
다음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외출 준비를 했다. 날이 밝기 무섭게 놀러 오는 황태녀가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이번에 태어난 여동생에게 정신이 팔린 듯하니까.
그렇다면 황태녀의 대부로서 새로운 동생의 탄생을 직접 축하하는 것이 도리다. 대녀의 기쁨은 대부의 기쁨이고, 대녀의 슬픔은 대부의 슬픔 아니겠나. 새로운 동생의 탄생에 희희낙락할 황태녀 옆에서 열심히 박수라도 쳐줘야지.
“압빠, 어디가?”
“황궁에. 황태녀 누나 만나고 올게.”
“나두 가면 안대?”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막 태어난 아기를 누구보다 자주 본 페디지만, 그건 같은 저택에서 태어난 동생이거나 같은 핏줄인 사촌인 경우였다. 그런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막 태어난 아기는 최대한 사람과의 접촉을 지양하는 게 옳다.
그러니 오늘은 나 혼자 가자. 일단 황태녀에게 동생이 생겼다는 말은 하지 말고, 황후와 황녀의 상태를 본 다음에 아이들을 데려갈 시기를 정─
“나두 새동생 보고시퍼.”
“어?”
페디의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
뭐지? 새 동생이라는 걸 보면 황자를 말하는 건 아닌데, 황녀가 태어난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애리 엄마가 말해줫서. 누나 동생 생겼때!”
‘아.’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바로 납득했다. 에리가 그새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구나.
물론 에리가 자유분방하기는 해도 생각이라는 게 있으니 저택 밖으로 유출하지는 않았겠지만, 저택 내에 있는 눈과 귀도 충분히 많다.
“아빠! 언니 만나러가? 우리두 갈래!”
“우리두! 우리두!”
“동생! 보고시퍼!”
바로 페디의 뒤를 이어 우르르 몰려오는 우리 아이들처럼.
‘어쩌지.’
눈을 반짝이는 여덟 아이들의 모습에 어색히 미소만 지었다.
막 출산을 마친 후라 황후도 허약한 상태일 테고, 2황녀도 가장 연약한 시기다. 조금 과장하면 호흡조차 조심해서 해야 한다.
그런 곳에 아이들을 여덟이나 데려간다? 아무리 황실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의 사이가 각별해도 그건 좀.
‘안 되는 건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해야지.’
속으로 심호흡을 한 후 표정을 가다듬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나,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오냐오냐 키울 생각은 없다.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서라도 안 될 때는 단호히 막아내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부드러움과 엄함의 절묘한 균형. 그것이 진정한 양육일 테니.
***
“장관.”
“예, 폐하.”
“축하하러 와줘서 고맙기는 하네만,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다네.”
내 말에 장관은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본인도 민망하기는 한 모양이다.
‘거참.’
장관의 발치에 오밀조밀 모여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장관의 아이들.
그 모습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장관이 아이들에게 약한 걸 고려하면 당연히 작은 손님들도 올 거라 생각했으나, 설마 전부 올 줄은 몰랐으니까.
“빼하. 안녕하새요.”
“안냥하새요!”
“안녕~”
이윽고 페디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다른 아이들도 앞다투어 고개를 숙였다.
“그래, 어서 오거라. 날도 추운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들 했다.”
다행히 다들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닮았는지 귀엽고 예의 바른 모습이다. 이 얼마나 황실과 제국의 홍복인가.
‘전부 오면 뭐 어떤가.’
그래서인지 약간, 아주 약간 당황스러웠던 마음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아이들이 아빠를 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아빠를 따라서 우리 황녀를 보러 온 것이 아닌가. 자신의 가족이 아닌 황태녀의 가족마저 동생이라 여기는 것이다. 단순한 친구가 아닌 가족처럼 끈끈한 정 때문에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황태녀와 황자, 황녀의 아비로서 기꺼이 이 가족 같은 아이들을 맞이해야겠지. 마치 이 아이들의 삼촌처럼.
“우리 캐롤라인도 좋아하겠구나. 이렇게 멋진 오빠들과 언니들이 왔으니.”
“깨롤-라인?”
“깨롤라인! 동생이룸이 깨롤라인이애요?”
“그렇단다. 너희 동생 캐롤라인이야.”
그 말에 장관의 아이들은 열렬한 환호를 쏟아냈다.
이거 우리 황녀가 개인 시간이 없다며 불평을 표하면 표했지,쓸쓸하게 자랄 일은 없겠어. 이렇게 열정적인 가족 겸 친구가 여덟이나 있으니까.
“황녀 전하의 존함이 캐롤라인이군요.”
“그래. 장인어른께서 추천한 이름 중 하나지. 괜찮지 않나?”
“캐롤라인 리브노만.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장관의 대답에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도 아닌 장인어른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당연히 아름다울 수밖에.
“아무튼 추위를 뚫고 와줬으니, 주인공도 기꺼이 손님들을 맞이해야겠지. 들어오게.”
“그, 괜찮겠습니까? 황후 폐하와 황녀 전하께서는 많이 피곤하실 터인데…”
“알면서 이렇게 왔나?”
다시 장관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농담일세. 황후는 뉘렌 공작가의 피를 이어서 튼튼하고, 황녀도 극진한 보호를 받고 있으니 잠시 눈에 담는 것 정도는 문제없어.”
작게 웃음을 흘리며 장관의 등을 후려쳤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장관은 황후와 황녀의 건강을 우려하여 혼자 오거나 몇몇 아이들만 데려 오려 했겠지만,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굴복한 거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아비인데 어찌 그 마음을 모르겠나. 심지어 장관은 여덟이나 되는 아이들을 달래고 설득해야 하는 입장. 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나도 벅찬데 여덟이라.’
아직 혼자서 걷지도,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는 황자의 몫까지 맹활약하는 황태녀. 그런 황태녀 하나를 달래는 것도 힘든데, 여덟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두렵군.’
잠깐 황태녀가 여덟인 미래를 상상하니 반사적으로 몸이 떨렸다.
사랑스럽지만,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내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캐롤라인은 요람에 누워 곤히 자고 있었다.
그 옆에서 시녀장의 품에 안긴 채 동생을 바라보는 황태녀. 황태녀의 품에 안겨 마찬가지로 자기 동생을 보는 황자까지.
‘좋군.’
흐뭇한 광경이라 괜히 코 끝이 찡해졌다.
나도 나를 포함하면 삼형제였으나, 저렇게 우애롭고 귀엽게 자라지는 못했다. 내가 누리지 못한 행복을 저 아이들이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우웅? 때부?”
“땨부?”
그렇게 뜨거운 눈빛으로 막내를 보던 아이들은 장관의 걸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살짝 서운했다. 아빠와 대부가 같이 왔는데 대부를 먼저 찾다니. 이럴 때는 아빠를 먼저 불러줘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몇 분 전까지 이 방에 있다가 장관을 맞이하고 온 것이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나보다 장관이 더 반갑겠지만.
“황태녀 전하, 황자 전하. 예쁜 동생이 생긴 것에 진심으로 축하드립─”
“쉬이이.”
“쉬이~”
장관이 축하 인사를 건네자 황태녀와 황자는 단호히 말을 끊어냈다.
“때부. 엄마랑 깨롤라인 자구잇써.”
“아, 송구합니다.”
슬쩍 고개를 숙이는 장관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 기특한 장녀. 참으로 당차기도 하지.
***
졸지에 침묵 수행을 하고 왔다.동생이 태어날 때마다 뛸 듯이 기뻐하던 황태녀를 생각하면 의외의 상황이었다.
“나, 너무 놀라면 안대. 놀라두 적땅히 놀라야대.”
“예?”
게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도 하더라. 적당히 놀라야 한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도 황태녀가 기강을 잡은 덕에 우리 아이들도 자동으로 침묵 상태를 유지했다. 그저 초롱초롱한 눈으로 2황녀를 바라보다가 무난히 돌아왔지.
어른도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홀로 휘어잡는 위엄. 미래의 황제는 뭐가 달라도 다른 건가 싶다.
“주인님!”
그런 생각을 하며 저택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유리스가 달려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생겼어?”
다급한 표정에 절로 긴장감이 치솟았다.
언제나 헤헤 웃으며 다니고 늘 해맑은 유리스다. 그런 유리스가 저렇게 허둥지둥거릴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다.
“처, 첫째 마님이! 방금 막 진통을 시작하셨어요! 바로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주인님이 돌아오시는 게 창문 너머로 보여서…!”
?
“진통?”
“네!”
아이가 태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우르르 황궁에 다녀왔다.
황궁에 다녀오니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아이가 태어난단다.
‘이게 뭔.’
아니, 뭐, 확실히 황후와 마르의 임신 시기가 나름 비슷하기는 했다. 기껏해야 몇 주 정도 차이니 어쩌면 연달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거라 짐작하기는 했지.
그래도 하루 차이 출산은 좀 심한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