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19)
로판 속 공무원 819화(820/945)
아이를 가진다는 건 모든 생명에게 있어 최고의 선물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물론, 평범한 짐승들까지 전부.
그리고 그것을 막연히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건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도 결혼 전부터 아이가 최고의 선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막상 페디가 마르의 품에 안길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지 않았던가. 품에서 벗어나 우리 곁에 찾아왔을 때는 눈물까지 나올 것 같았고.
아니,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울었었나? 정신이 없어서 가물가물하다. 게다가 출산 경험만 여섯 번이라 영.
아무튼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도, 지겨워지지도 않는 행복한 이벤트다.
‘이게 뭔데.’
다만 나르가 아빠를 좀, 많이 놀라게 하고 싶었나 보다. 설마 황녀가 태어난 다음 날에 바로 나오려고 할 줄은 몰랐지. 그나마 같은 날에 태어나지 않은 게 나르의 마지막 배려라고 봐야 하나?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나르가 작정했다면 오늘이 아니라 어제 태어났을 거고, 내가 귀가한 다음이 아닌 외출 중에 나오려 했을 거다. 그랬다면 난 여덟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했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제는 떨지도 않는군.”
“아, 장인어른.”
멍하니 출산실 문을 바라보던 중, 복도 너머에서 익숙한 걸음 소리와 함께 장인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지금은 긴장보다 당혹감이 더 컸다. 몇 번을 겪어도 가라앉지 않던 불안과 초조가 나르 덕에 사라졌다. 이 얼마나 효심 넘치는 아이인지.
“마르와 우리 아이라면 반드시 건강할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불안해하는 건 오히려 가족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겠죠.”
소소한 감동과 별개로 장인어른에게는 가장 교과서적이고도 훌륭한 대답을 돌려드렸다. 장인어른 입장에서는 새로운 막내 외손주가 탄생하는 자리인데, 정작 막내 사위라는 놈이 다른 집 자식에게 정신이 팔린 상태라면 얼마나 서운할까.
그러니 황녀를 생각 중이었다는 말은 하지 말고, 마르와 나르를 믿는다는 대답으로 밀고 가자.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은퇴하셔서 그런가 빨리 오셨네.’
그보다 누구보다 빨리 달려온 장인어른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장인어른이 마르를 아끼는 건 잘 알고 있었으나, 설마 연락을 드리자마자 5분 안에 오실 줄은 몰랐지. 남들 몰래 나르 출생 5분 대기조라도 준비 중이셨나.
“네 말이 맞다. 떠는 건 처음으로 충분하지. 그 뒤는 가족을 믿고 기다리면 그만이다.”
전직 공작의 5분 대기조라는 경이로운 광경을 보며 감탄하는 사이, 장인어른은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다행이다. 즉흥적으로 나온 대답치고는 좋은 결과를 냈어.
“외하라버지!”
“어이구, 우리 페디도 있었구나!”
이윽고 내 옆에 있던 페디의 인사에 장인어른의 엄격 근엄 진지했던 표정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기분 탓인가. 이제 공작이라는 작위도 내려놓으셔서 이전보다 더욱 유해지신 것 같다. 특유의 거구만 아니라면 정말 평범한 외할아버지처럼 보일 정도로.
“페디야, 곧 새 동생이 태어나겠구나. 축하한다.”
“우웅! 동생 또 생겨서 조아! 동생 보고 왓는대 우리집애도 동생 생겻서!”
“동생을 보고 왔다고?”
페디의 말에 장인어른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후,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게 무슨 말이냐는 것처럼.
“어제 황녀 전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아직 황후 폐하께서 몸을 추스르시는 중이라, 공식 발표는 내일이나 모레쯤에 한다고 하시더군요.”
“허어.”
내 대답에 장인어른은 탄성을 흘렸다.
“공식 발표도 안 한 걸 벌써 안 것이냐.”
“저야 황궁에 갈 일이 많지 않습니까.”
머쓱히 웃으며 답하자 장인어른은 작게 혀를 차셨다.
사실 나도 에리가 아니었다면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을 거다. 황후의 명예 동생이 저택에 있어서 바로 안 거지.
“뭐, 됐다. 그보다 황녀 전하시라. 우리 나르와 하루 차이라면 좋은 친구가 되겠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시 굳게 닫힌 출산실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황태녀와 황자는 우리 아이들과 남매처럼 지내고 있다. 당연히 어제 태어난 황녀도 우리 아이들의 친구이자 남매로 지낼 터인데, 때마침 하루 차이로 태어난 아이가 있다? 영혼의 친구 수준으로 붙어 다니지 않을까 싶다.
‘이성 친구가 될지, 동성 친구가 될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기는 하나, 이왕이면 동성 친구였으면 좋겠다. 나를 닮은 아들이 있으니 이번에는 마르 닮은 딸이 태어날 차례니까.
물론 마르 닮은 아들도 괜찮다. 아들이든 딸이든 둘 다 내 아이인 건 매한가지니.
2황녀 캐롤라인의 친구는 동성 친구로 결정됐다.
“으에에에에에엥!”
크라시우스와 바렌티의 피를 동시에 물려받은 아이답게 출산실이 떠나가라 우는 여아.
솜털 수준의 아주 얇고 짧은 머리카락이나, 이번에도 크라시우스의 흑발을 타고 태어난 아이.
‘마르가 내 유전자랑 합이 잘 맞나?’
다른 아이들은 엄마 머리카락을 타고 태어나던데, 묘하게 마르가 낳은 아이들은 아빠를 닮은 흑발이다. 신기하기도 하지.
“고생했어, 마르. 이번에는 예쁜 딸이네.”
“후후… 아들이든 딸이든 건강하기만 하면 좋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딸도 가지게 되니까 기쁘네요. 사람 욕심이 끝이 없기는 해요.”
작게 웃음을 흘린 마르는 조심스레 상체를 일으켰다.
페디를 낳았을 때와 달리 고통을 줄여주는 마법도 받은 상태고, 두 번째 출산이라 예전보다 수월하게 낳은 상황. 덕분에 누워있는 게 아니라 앉아있을 정도는 된다.
“아버님도 바쁘실 텐데 직접 와주셔서 감사해요.”
“나야 바쁠 게 어디 있겠느냐. 연회 준비는 다 네 오빠와 새언니가 하고 있다.”
당당한 장인어른의 대답에 픽 웃음이 나왔다.
현재 바렌티 공작가는 형님의 공작 등극을 기념하며 연회를 준비 중이다. 바렌티 공작가가 전력을 다하여 진행해야 할 일이나, 장인어른은 모든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난 전대 가주. 귀찮고도 귀찮은 가문 일에 굳이 관여할 필요가 없는 자유인이다.
아마 장모님 없이 장인어른 혼자 오신 것도 그 일환일 거다. 장모님은 형님이 눈에 밟혀 손을 보태는 중이겠지만, 장인어른은 그런 거 없이─
“왜 그렇게 보느냐?”
“철혈공이 자리를 지켜주었으니, 우리 나르도 장인어른처럼 튼튼한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반사적인 아부에 장인어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장인어른의 사위로 살아간 것도 어언 4년. 이제는 장인어른 귀에 달콤한 말 정도는 무의식적으로 쏟아낼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흐에에엥…”
“호오, 빨리 그치는구나.”
그 와중에 우렁찬 나르의 울음소리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기특한 아이다.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단계는 빠르게 넘기고, 모두가 평온할 수 있는 수면 단계에 돌입하겠다는 뜻 아닌가. 역시 우리 나르는 효녀였다.
***
꿈인가?
“장관. 지금 뭐라고 했나?”
– 소신도 어제 작고 소중한 막내를 얻게 되었습니다. 황녀 전하와 같은 어여쁜 딸이지요.
장관의 말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턱을 매만졌다.
어제라면 장관이 아이들을 데리고 황궁에 왔던 날이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3일이나 4일 내내 잠든 것이 아니라면 분명 그렇다.
헌데 황녀를 보고 돌아간 장관이 그날 바로 자기 아이까지 보게 되다니. 이 얼마나 공교로운 일인가.
“절묘한 우연이로군. 하루 간격으로 황실과 크라시우스 가문의 막내가 변할 줄 누가 알았겠나.”
– 조금 늦은 새해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기쁜 일 아니겠습니까? 작위를 팔아도 가질 수 없는 귀한 선물입니다.
“핫, 그도 그렇군.”
은근슬쩍 희망 사항을 말하는 장관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터졌다. 평소에도 작위를 팔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저런 말이 자연스레 나올 리 없다.
“그래서, 막내의 이름은 무엇인가?”
– 율리아로 지었습니다.
“그런가.”
율리아. 율리아 크라시우스라.
‘좋은 친구가 되겠어.’
황실과 크라시우스 가문의 아이들이 전부 황녀의 오빠나 언니인 상황에서 기다렸다는 듯 황녀와 동갑으로 태어난 아이. 올해 안에 장관의 아이가 얼마나 더 태어날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황녀의 유일한 동갑인 아이.
아니. 생일이 하루 차이인 걸 감안하면 다른 동갑이 생기더라도 황녀와 율리아의 사이가 각별할 수도 있다. 마침 성별도 같지 않나.
“율리아가 외출을 해도 될 정도가 되면 황궁으로 데려오게. 황녀와 인사라도 시켜야지.”
– 예, 폐하. 그리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장관을 보던 중, 문득 황녀 옆에 있을 황태녀가 떠올랐다.
황녀에게 정신이 팔린 황태녀가 율리아의 탄생 소식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새로운 동생의 탄생에 기뻐하다가 또 새로운 동생이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놀랄까.
그리고 한참 놀라고 난 뒤에는 황궁에 남아야 할지, 장관의 저택으로 가야 할지 갈팡질팡하며 어쩔 줄 몰라 하겠지.
‘며칠은 숨겨야겠군.’
아직 어린 황태녀에게 그런 무겁고 버거운 선택지를 주는 건 가혹한 일이다. 황태녀의 원활한 선택을 위해서라도 며칠은 숨기고 있자. 황태녀가 황녀와 충분히 교감을 나누고, 새로운 동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그러고 보니 아인테르도 올해 자식을 볼 텐데.’
일단 올해인 건 확실하나, 대략적인출산 예정일이 가물가물하다.바란디가 후작령에서 조용히 신혼을 즐기는 중이라 임신 소식도 몇 주가 지난 후에야 알게 됐었지. 덕분에 출산 예정일을 계산하는데 조금 고역이었던 건 기억난다.
정작 중요한 예정일은 기억이 안 나고 말이야.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건 참.
‘아무튼 올해기만 하면 됐어.’
황녀와 율리아, 올해 태어날 아인테르의 자식까지.
아카데미에서 그 셋이 열심히 뛰어놀 미래가 어렴풋이 보인다.
…
“장관.”
– 예, 폐하.
“지금 임신 중인 부인이 몇 명이었지?
– 둘이옵니다.
황녀와 율리아, 아인테르의 자식. 추가로 태어날 장관의 아이 둘까지.
아카데미에서 그 다섯이 열심히 뛰어놀 미래가 어렴풋이 보인다.
아니지. 마종공이 세쌍둥이를 낳았던 걸 생각하면 한 번에 여럿이 태어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지.
‘과연 그때는 누가 교장일까.’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존 봉급 외에도 여러 보상을 챙겨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