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24)
로판 속 공무원 824화(825/945)
북부 하우젠츠로 가기 전, 황실 직할령의 주인인 황제에게 허락을 받았다. 비록 내 능력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개입한 허락이었으나, 아무튼 허락만 맡으면 그만 아니겠나. 과정이 조금 이상해도 결과만 좋으면 되지.
그러나 황제의 허락을 받았다고 곧장 이동하지는 않았다. 명의를 보면 황제가 주인이기는 하나, 황제는 북부 하우젠츠에 살기는커녕 가지도 않잖아. 실질적으로 북부 하우젠츠를 관리하는 주인(의 대리인)은 따로 있다.
직할령을 관리하는 지방관들. 그리고 지방관들 중에서도 한 지역의 책임자인 수석 지방관. 북부 하우젠츠의 수석 지방관에게도 신혼여행을 갈 거라는 통보를 보냈다.
애석하게도 수석 지방관은 다른 용무로 바빴는지, 수석 지방관의 보좌관이 대신 연락을 받기는 했지만.
‘상관없겠지.’
어차피 통보인데 당사자가 받나 보좌관이 받나 무슨 의미가 있겠어. 보좌관이 알아서 수석 지방관에게 보고했겠지.
그렇게 페렌츠와 포옹을 하고, 다른 부인들과 아이들에게도 다녀오겠다 인사를 하고, 북부 하우젠츠의 볼거리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텔레포트를 통해 북부 하우젠츠로 이동했다.
“백작 각하와 부인을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그리고 텔레포트 마법진을 나오자마자 수석 지방관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맞이해주었다.
“수석 지방관인가?”
“예, 각하! 과분하게도 이 북 하우젠츠를 관리하는 수석 지방관, 윈스턴 멀렌이라고 합니다!”
90도 수준으로 허리를 숙이는 수석 지방관─ 윈스턴의 어깨를 토닥이며 몸을 일으켜줬다.
오늘 온다고 말은 했지만 정확한 시간은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를 반겨준 걸 보면 이른 시간부터 하염없이 기다린 것일 터.
“편히 있어라. 그대는 황제 폐하의 신임을 받아 이 지역을 관리하는 자가 아닌가. 본작과 부인은 공적 업무가 아닌 사적인 이유로 온 것이니, 그저 손님으로 온 것에 불과하다. 어찌 주인이 손님에게 허리를 숙이겠나.”
“가, 각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폐하께 죽어서도 갚지 못할 크나큰 은혜를 입은 건 사실이나, 존엄한 황실의 영토에서 어찌 주인처럼 행세하겠습니까!”
내 토닥임에 윈스턴은 파르르 어깨를 떨었다.
윈스턴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지방관은 앞에 수석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대리인에 불과하다. 황제의 변덕에 따라 당장 내일이라도 교체될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부부는 철저히 사적인 이유로, 그냥 놀기 위해서 왔다는 걸 다시 강조하기 위해서. 감찰관이 아닌 손님으로 왔다는 걸 확실하게 못 박기 위해서.
‘말해도 썩 효과는 없겠지만.’
여전히 진동 상태인 윈스턴을 보니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분명 보좌관에게 신혼여행을 위한 방문이라고 말했다. 윈스턴이 마중까지 나온 걸 보면 제대로 보고가 된 모양이고.
하지만 윈스턴은 신혼여행이라는 말에 안심하지 않고, 그저 나와 에리의 방문에 기겁하며 벌벌 떨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지역은 훌륭한 지방관들의 관리 덕에 나날이 발전하는 중이라 들었다. 황제 폐하께서도 그대들의 분투와 헌신에 기뻐하시고 있지.”
그래서 즉석으로 지어낸 덕담으로 윈스턴을 달래주었다. 적어도 ‘네 윗사람이 너 좋게 보더라.’ 같은 말 정도는 해야 이 긴장이 풀리지 않겠나.
다행히 아예 근거가 없는 말도 아니다. 이 지역은 황제의 역린이자 발작 버튼인 곳. 그런 곳을 맡길 정도라면 황제가 신뢰하는 인재라는 뜻이며, 몇 년 동안 잡음 없이 이끌었다는 건 황제의 믿음에 부합했다는 뜻이다.
황제의 역린을 훌륭하게 관리하는 수석 지방관. 이건 황제도 말만 하지 않았을 뿐, 내심 흡족하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
“황송한 말씀입니다!”
실제로 내 인스턴트 덕담에 윈스턴에 동요가 다소 누그러들었다.
미안하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네 칭찬 황제한테 많이 할게. 사람이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유능한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면 서민원 입성도 꿈은 아니겠지.
“그럼 이만 돌아가 보도록. 업무로도 바쁠 터인데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면 쓰나.”
윈스턴 멀렌이라는 이름을 머리에 확실히 각인한 후, 다시 윈스턴의 어깨를 다독였다.
적당히 인사도 나누었고, 그럭저럭 긴장도 풀어주었다. 이제 서로 자기 할 일을 하러 헤어지면 된다.
“각하. 각하께옵서 귀중한 시간을 내시어 이 북 하우젠츠까지 오셨는데, 부디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셨으면 합니다! 각하께서 괜찮으시다면 북 하우젠츠 내에서도 명성 높은 곳들을 말씀드리고자 하는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다만 윈스턴은 이대로 넘어가기는 조금 불안한지, 관광 정보를 공유하겠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음만 고맙게 받지. 나름 알아보고 오기도 했고, 여행은 원래 부딪히며 겪는 재미가 있─”
“괜찮아요! 저희 예전에 와 본 적 있거든요!”
그 말에 나도, 윈스턴도 흠칫 몸을 떨었다.
“부, 부인. 예전에 와보셨다는 건…?”
“예전에 애실로,”
“생각해 보니 현지에 있는 사람의 추천을 받는 것도 좋겠어. 알려준다면 참고하도록 하지.”
황급히 에리의 입을 막으며 미소를 짓자 윈스턴도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입술을 잡는 게 아닌, 입을 막은 걸로 끝낸 내 이성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차마 남들 앞에서 부인의 입술을 잡을 수는 없지.
‘여기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하지만 속으로는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공포에 떨던 윈스턴 앞에서 애실론 얘기를 꺼내는 건 협박이나 마찬가지잖아. ‘애실론 족칠 때 왔던 곳인데, 여길 또 왔네. 왜 왔을까?’ 로 해석해서 들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
‘나도 그때 와서 알 건 알긴 하지.’
사실 에리보다는 내가 이 지역에 대해 능통할 거다. 애실론 숙청은 전대 감찰부장 처단, 2황자 제거와 더불어 감찰부의 주요 작전으로 꼽히는 일이니.
덕분에 하우젠츠 지역에 뭐가 있는지, 어떤 게 유명한지, 길은 어디로 나있는지 확실하게 조사했었다.만약 애실론이 도주하면 그대로 추격해서 처단해야 하니까. 과장 좀 보태면 하우젠츠 내에 집이 몇 가구인지, 개나 소는 몇 마리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윈스턴의 정신 건강을 위해 모르는 척하려고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당당히 돌아다니자. 마침 현지에서 몇 년 동안 지낸 사람도 정보를 준다고 하니, 내 기억과 윈스턴의 정보를 결합하면 훌륭한 관광 지도가 나올 거다.
애실론을 죽이기 위해 습득한 지식이 관광 지도로 탈바꿈하다니. 세상 일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윈스턴에게 제공받은 관광 정보는 내 지식과 대부분 유사했다. 기껏해야 요 몇 년 사이에 각광받기 시작한 관광지, 먹거리 정도만이 차이점일 정도로.
오히려 좋다.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튀어나오면 기껏 짠 계획을 다시 손봐야 하는데, 그냥 예정대로 움직이면 되겠어.
“오랜만에 오니까 색다르고 좋네요! 일하러 온 게 아니라 놀러 와서 그런가?”
“제발 그런 건 작게 말해.”
그리고 마냥 해맑은 에리의 말에 씁쓸히 중얼거렸다.
우리 둘만 있을 때는 상관없지만, 제발 밖에 있을 때는 작게 말했으면 좋겠다. 자꾸 감찰부 시절의 일이 연상되는 말을 하면 위화감 조성되잖아. 이러다 윈스턴은 선 채로 죽겠어.
물론 윈스턴은 다시 업무를 위해 청사로 복귀했지만, 하우젠츠 곳곳에 윈스턴의 눈과 귀가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서로 민망해질 말은 아예 자제하는 게 좋지.
“뭐 어때요. 제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지방관이 떳떳하면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신경 안 쓰겠죠!”
‘안 쓰겠냐고.’
꿈틀거리는 손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에리는 더 이상 탄식이 절로 나오는 부하 직원이 아니라, 내 부인이자 페렌츠의 엄마다. 에리의 명예와 권위를 위해서라도 입술 잡기 같은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두렵다. 과연 내가 얼마나 인내할 수 있을지 너무나 두려워. 제발 에리가 내 이성 안에서만 돌아다녀야 할 텐데.
“아, 저기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착잡한 고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을 내렸다.적당히 걷다 보니 첫 번째 관광지에 도착했으니까.
‘하우젠츠 서클.’
북부 하우젠츠는 물론, 애실론 가문이 다스리고 있는 남부 하우젠츠까지 포함해도 하우젠츠 제일이라 불리는 번화가.온갖 상점이 자리 잡았으며, 이곳에 없는 물건은 제도나 국경 바깥에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대한 상권을 자랑하는 공간.
빙의 전 세계로 치면 거대한 쇼핑몰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 규모가 제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미친 수준인 것이 특이점이지.
“여긴 예전보다 커진 것 같네요?”
“애실론의 흔적이기는 하지만, 없애기는 아깝잖아. 어차피 황실 재산이 됐으니까 더 키워야지.”
공작령도 아닌 후작령이었던 곳에 이런 미친 상권이 자리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전대 애실론 가주 시절, 애실론의 폭주와 만행이 상당했으니까.황제의 처가라는 입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국내는 물론 국외의 상단과도 접촉하여 촘촘한 물류망을 구성했으니까. 당연히 그 물류의 중심은 자신들의 영지로 정했고.
정작 그 영지가 직할령으로 뜯길 줄은 몰랐겠지만. 아주 흐뭇한 일이야.
“진짜 이런 거 볼 때마다 인성과 능력은 별개구나 싶어요.”
“나도 그래.”
에리의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서클의 창시자인전대 애실론 가주, 갤런 애실론 오브 하우젠츠 후작. 누군가 ‘그 새끼는 개새끼인가요?’ 라고 물으면 부정할 사람이 없지만, 그렇다고 무능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솔직히 능력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양반이었어. 아무리 적자라지만 그 인성 터진 2황자를 앞세워서 파벌을 규합했고, 리더로서 실격인 2황자를 대신해 파벌원을 거느린 거물이었지. 오죽하면 황태자가 책봉된 이후로도 한동안은 애실론을 쥐어패지 못했겠나.
후작가를 단숨에 날리면 제국이 휘청거릴 수 있다는 이유였지만, 그건 그만큼 애실론의 흔적이 깊고 짙다는 뜻이기도 했다.
“제도 제일의 위세를 자랑하던 우리 애실론이 어쩌다 이런 꼴이 됐는가!”
그렇게 황실과 숨 막히는 눈치 싸움을 하던 애실론은 당시 애실론 소가주의 취중 망언 덕에 무너졌다.
지금 생각해도 그 머저리 새끼한테는 너무 고맙다. 평소에 얼마나 황실을 우습게 봤으면 감히 황실을 무시하고 제도 제일을 운운했겠어.
‘넌 역사에 남을 거다.’
딱히 좋은 의미로 남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남기는 할 거다.
하우젠트 몰─ 아니, 하우젠트 서클에 발을 들이자마자 다른 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고작 정문 하나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급변했다.
‘오.’
한때나마 대륙과 제국의 물류 중심지였고, 지금은 황제의 깊은 관심을 받는 황실 직할령. 그 어마어마한 타이틀 덕분에 하우젠트 서클은 사실상 하나의 세계처럼 변했다.
“하여간 검 쓰는 녀석들 아니랄까 봐! 머리까지 쇠처럼 굳어버렸어!”
“뭐라? 그러다 처맞으면 덜 아프냐? 네놈들 팔다리는 지팡이처럼 얇은 게, 툭 치면 부러질 것 같구만!”
제국과 큰 접점이 없는 제3국들의 국가 감정을 제국에서 직관할 수 있을 정도로.
‘여기가 대륙인가.’
느그 나라 사람들이 제국에서 싸우는 광경을 볼 줄 누가 알았을까. 확실히 제국은 모든 것을 품기에 제국이라고 하고, 모든 것이 존재하기에 제국이라고 하는 법이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것까지 아우르는 제국. 이 위대한 제국의 위용에 가슴이 절로 웅장해진다.